해가 넘어가서 다시 올라올 때까지 김광석 노래만 틀던 막걸릿집 [항아리]
나무, 바람과 나 새장 속의 친구
맑고 향기롭게 바람이 불어오는 곳
거리에서 기다려줘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너에게
먼지가 되어 날아가야지
서른 즈음에 사랑했지만 사랑이라는 이유로 변해가네
그녀가 처음 울던 날 혼자 남은 밤 외로운 밤
말하지 못하는 내 사랑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부치지 않는 편지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뜬금없는 시처럼 보이지만 실은 김광석의 노래 제목을 그럴듯하게 배열해 본 거다.
김광석은 여러 가수가 함께 한 무대에서 그의 목소리만 오토튠 입힌 거냐는 영상이 있을 정도로 귀에 착 스미는 매력적인 음색을 지닌 가수이기도 하고 그의 노래들은 가사를 곱씹을수록 아련해지게 하는 뭔가가 있다.
때로 아무 일도 없는데 노래를 듣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게도 하니 참 묘한 일이다.
한창 에너지가 넘치던 때에 많이 듣던 노래들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어느덧 갱년기에 접어들어 요동치는 호르몬의 파도에 이리저리 떠밀리는 중이라서인지 부쩍 예스러운 것에 마음이 가고 울컥하는 요즘이다.
웹툰, 웹소설, 드라마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빙의, 회귀, 타임리프물이 유행이던데, 나도 한 번 과거로 돌아가볼까. (진짜로 돌아갈래? 하면 글쎄... )
공대에서 빵판에 땜질하고, C언어 배우다 그만두고 훌쩍 서울로 올라가 횟집에서 홀서빙을 하며 자취방과 가게만 오가며 반년을 살다가 춘천으로 내려와 7-8개월 도서관 들락거리며 책도 보고 영화도 보면서 팔자 좋은 반수생 노릇을 하다 수능을 다시 보고 사회대에 들어갔다.
1학년을 마친 겨울, 야학 교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다른 동아리 활동이나 모임은 거의 하지 않았다.
일요일을 제외한 매일 저녁 7시에서 10시 반까지 야학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수업하고 하는 게 일상이었다.
운 좋게 학부 생활 동안 모친께서 학비와 생활비를 도와주셔서 아르바이트하는데 시간을 많이 쏟지는 않았지만 4학년 올라가기 전 자취를 시작하면서 생활비도 부족하고 해서 아르바이트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호프집,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일하기도 했는데 학교 생활 중 가장 오래 일한 곳은 "항아리"라는 이름의 막걸릿집이었다. 지금은 없어진 곳이라 기억 속에 있던 상호를 떡하니 써본다.
해가 넘어갈 무렵 문을 열어 손님이 다 나가야 문을 닫던 곳이다. 손님이 일찍 끊기면 밤 한 시에도 닫고, 늦도록 일어나지 않는 손님이 있을 때면 해가 다시 뜨고서야 문을 닫기도 했었다. 널따란 팬에 나오는 돼지 주물럭에 소주 한 병을 마셔도 만 원이면 배불리 먹을 수 있던 곳이었다. 안주에 넣어 함께 볶아 먹던 우동 사리는 학생들이 저렴히 배를 채울 수 있는 좋은 곁다리이기도 했다.
가게가 딱히 깔끔스럽진 않았는데, 가운데 버너가 있는 동그란 스뎅(스테인리스라고 하면 왠지 맛이 안 산다) 테이블이 열네 개 정도 있었고 벽에는 한가득 한지가 붙어 있고, 천장에 군데군데 매달린 동그란 전구도 노란 한지로 감싸 놓아서 밝지 않았으니 적당히 취하면 여기가 지저분한지 깨끗한지 딱히 신경 쓰이지 않기도 했다.
요새는 레트로라고 해서 다시 이런 집들이 인스타에 보이는 걸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항아리가 있던 근처에 역시나 학생들에게 인기가 있던 술집은 주인이 몇 번 바뀌면서도 인테리어와 간판이 그대로인데, 오히려 그래서 더 인기가 있다 하니 아이러니하다. 오래된 테이블에 세월이 한가득 묻어나는 벽이며, 영업시간 내내 김광석 노래만 틀어주는데 주문은 테이블에 앉아서 QR코드를 찍고 카톡으로 한다고 한다. 항아리도 없어지지 않았다면 그렇게 변했을지도 모르겠다.
항아리는 야학 생활하면서 동료 교사들과 참 많이 갔었다. 말이 교사들이지 20대 초중반 대학생들이니 돈은 별로 없고 배는 고프고 술도 땡기고. 밤 10시 반이 넘어 야학 수업 마치고 1주일에 한 번 있는 회의까지 마치고 나면 어찌나 배가 고픈지...
여러 명이 몰려가 안주 하나 시키고 우동사리 추가해서 먹으면서 소주나 막걸리를 마시곤 했었는데, 사장 오라버니 인심이 좋으셔서 눈치도 안 주고, 기분 좋을 땐 사리 한 움큼씩을 서비스로 더 갖다 주셨더랬다. 고맙다고 인사하면 형이 주는 거야, 먹어~ 하면서 씩 웃고 가시곤 했다. 그렇게 알게 된 인연으로 나중에 아르바이트까지 하게 됐었다. 아, 왜 사장 오라버니인고 하면 항아리를 오가다 야학 교사들이라는 걸 알고 꼭 장T, 강T, 이T 이렇게 부르시면서 사장님이라고 부르면 사장님은 무슨 사장님이냐며 형이라고 해, 오빠라고 해 하시는데 삼촌뻘 되시는데 오빠라고 부르기가 뭣하여 오라버니라고 부르곤 했다.
항아리에서 일하면서 제일 좋았던 건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는 김광석 노래였다. 빠르면 오후 6시 늦으면 8시에 나가서 가게 닫을 때까지 일하다 왔었는데, 일하는 기간 내내 들어도 참 질리지 않았다. 음성 자체가 그냥 음악 같아서 흘려들으며 다녀도 좋았다.
그리고 좋았던 건 아무 때나 퍼마실 수 있던 양조장 막걸리!!!
이야~ 잘 숙성된 양조장 막걸리 맛은 시중 막걸리가 절대 못 따라간다. 잘 익은 막걸리는 그 자체로 얼근 달근한 맛에다 약간의 탄산이 느껴진다. 입안에 들어와서 착 감기는 그 맛이란...
거기에 항아리의 별미주 껄떡주와 벌렁주가 있었으니~. 왜 이름이 그러한가 하니, 마시면 껄떡거린다 하여 껄덕주, 벌렁벌렁한다 하여 벌렁주라고 한다.
항아리 막걸리는 노란 양은 주전자에 담아 나갔었는데, 벌렁주나 껄떡주 주문이 들어오면 첨가하는 비밀 재료가 있었다. 얼지 않을 정도로 유지되는 커다란 막걸리 통에서 커다란 스테인리스 국자로 주전자에 막걸리를 떠 담으면서 한 번 침을 꿀꺽, 통 뚜껑 닫고 주전자 뚜껑 닫으면서 또 한 번 침을 꿀꺽. 벌렁주 주문이 들어오면 양은 주전자에 막걸리는 정량보다 아주 약간 적게 넣고 베지밀 B를 그만큼 더 넣는다. A는 맛이 안 난다, B를 기억하자. 껄떡주에는 사이다를 넣어서 좀 더 달고 톡 쏘는 맛을 냈다. 요즘 나오는 탄산 톡톡 쏘는 시중 막걸리 맛을 연상할지 모르지만 숙성 막걸리에 사이다 쪼로록 넣은 맛은 시중 막걸리가 흉내내기 어렵다.
나는 벌렁주 취향이라, 일하면서 막걸리 통 한편에 대접 하나 얹어놓고 한 잔씩 떠 마시면서 일하곤 했다. 단체 손님 들어와서 미치게 바쁜 날은 쟁반 들고 날고뛰는 중간에 마시는 막걸리 한 모금이 자양강장제였다. 이 모든 건 사장 오라버니 묵인 하에 했던 음주 근무이니 오해는 마시라.
이때 일하면서 넘기는 막걸리 한 모금의 단 맛을 알아버렸으니 이후 긴 술 사랑이 이어진 것이리라.
이제 곧 장마가 온다고 하는데 , 빗소리 들리는 밤이면 버릇처럼 떠오르는 김광석 노래와 함께 항아리 막걸리 향이 코끝을 스쳐가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