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의 점심시간

모두가 귀한 아이들인 걸

by 뚱이

오늘 우리 큰아이가 학교에서 급식실 선도를 섰다. 요새도 선도라고 하나? 학생회 임원인데 오늘 담당하는 곳이 급식실이었단다.


중학교 때에 이어 고등학교에서도 학생회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런저런 학교 일을 도맡아 하는 일이 많아진 것 같다. 피곤해하는 걸 보면 안쓰럽기도 하고 왜 이리 일을 도맡아 하나 걱정이 될 때도 있지만 나름 책임감을 갖고 성실하게 해내는 모습이 기특하다. 평소 칭찬에 인색한 엄마라 속으로만 내 새끼 잘 크고 있네 궁디 팡팡~ 해본다.


평소처럼 순서를 지키며 급식실로 들어가게 하는데 한 1학년 아이가 제 순서가 아닌데 들어가려 하더란다.


그냥 들여보낼 수도 있었겠지만 기다렸다 들어가라 제지하니 “다른 날엔 그냥 들어갔는데 왜 오늘은 잡냐”고 항의를 하더란다.


아들은 상황을 잘 풀어보려고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을 하고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이따 들어오라 했는데, 거기서 일이 커졌다.


그 아이가 갑자기 “성추행하지 마세요”라고 항의한 것이다. 우리 아들도 당황스러웠겠지만 허락받지 않은 접촉이 기분이 나빴을 수 있겠다 싶어, 바로 미안하다 사과를 했단다.


그렇게 끝난 줄 알았는데 한 시간쯤 지나 급식실 담당 선생님께 불려 가고, 또 다른 선생님,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아이 담임 선생님까지 세 번이나 불려 가게 됐단다. 그 아이가 성추행으로 신고를 하고 싶다고 했다고, 정식으로 사과를 받고 싶어 한다고 했다. 아들은 “상대가 불쾌했다면 당연히 사과를 해야지”라며 담담히 사과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만난 그 아이 담임 선생님께서 사과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단다. 그러면서 조심스레 말씀하시길, 그 1학년 아이는 남학생이지만 본인을 여자로 인식하는 아이라서 남자 화장실 이용도 불편해 장애인 화장실을 이용하고 있고, 점심시간에도 그런 이유로 민감하게 반응했을 거라고 하셨단다.


그 말을 듣고 오히려 당황스러웠던 듯싶다. 사과할 마음을 이미 갖고 있었기에, 사과하지 않아도 된다는 선생님의 말이 의외였던 것이다.


선생님께서 미안하다시며 중간에서 잘 해결하실 테니 걱정 말라고 하셨단다.


자초지종을 듣고 나니 그런 설명을 그 후배의 동의 없이 전했을 것 같아 마음이 좀 복잡해졌다. 혹시 주변에 이야기했는지 물으니 민감한 부분이기도 해서 친구들에게도 이 일은 굳이 말하지 않고, 그냥 본인만 알고 조용히 넘기기로 했다고 했다.


나는 아들에게 잘 대처했다고, 마음 잘 썼다고 했다. 그리고 그 후배도 얼마나 힘들까 싶어 짠한 마음이 들면서도, 혹여 주변에 시비를 자주 불러일으키는 성격일지도 몰라 걱정스럽기도 했다. 이건 내 오지랖인 거지...


선생님께서 구태여 그 친구의 내밀한 사정까지 설명하지 않고, 그냥 우리 아이가 미안하다 사과하고 마음을 풀어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내 자식도 귀하지만 얼굴도 모르는 남의 자식도 귀하긴 마찬가지라 서로의 마음이 다치지 않고 잘 지나가길 바란다.


오늘 이 일은 아마 우리 아들에게도, 그리고 그 후배에게도 오래 남을 것 같다. 모두가 저마다의 사정과 복잡한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며 어른이 되어갈 수 있을지, 또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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