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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시대별

헤어밴드의 시대별 변천사와 문화 및 패션적 가치

by 무체

서양에서는 흔히 '헤드밴드(headband)', 한국에서는 '헤어밴드(hairband)'라고 불리는 머리띠는 단순한 패션 액세서리를 넘어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문화적 아이콘이다. 대중의 인식과 달리, 1980-90년대 유행에 국한된 아이템이 아닌 인류 문명의 초기부터 존재해 온 장신구로, 그 역사적 맥락과 의미는 생각보다 훨씬 더 깊고 다양하다. 고고학적 기록에 따르면, 머리띠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부터 사용되었다. 당시 머리띠는 현대와 같은 장식적 목적보다는 지성과 강인한 체력, 그리고 위엄을 상징하는 의례적 장신구였다. 특히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남성, 특히 지도자와 운동선수들이 착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며, 월계관(laurel wreath)의 형태로 승리와 명예를 상징했다.


시대가 흐르면서 머리띠는 점차 여성의 패션 아이템으로 변모했다. 중세 시대에는 귀족 여성들이 베일과 함께 착용했으며, 르네상스 시대에는 보다 장식적인 형태로 발전했다. 이러한 역사적 흐름은 머리띠가 단순한 유행이 아닌, 문화적 정체성과 사회적 지위를 반영하는 중요한 상징물이었음을 보여준다.


흔히 머리띠의 대중적 유행을 1980년대 록 음악의 전성기와 연관 짓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현대적 의미의 머리띠 유행은 1920년대 재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플래퍼(flapper)' 문화를 대표하는 배우 클라라 보우(Clara Bow)는 끈 형태의 밴드를 머리에 두르고 다니며 자신만의 트레이드마크로 삼았다. 이는 전통적인 여성상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현대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상징했다.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머리띠는 여성의 사회적 역할 변화를 반영하는 아이템으로 진화했다. 대공황 시기에 노동 현장에 참여하게 된 여성들이 실용적인 목적으로 두건 형태의 머리띠를 착용하기 시작했고, 이는 독립적이고 강인한 여성의 이미지를 표현하는 수단이 되었다.


1980년대는 머리띠가 패션의 범주를 넘어 스포츠 문화의 핵심 아이템으로 자리 잡은 시기다. 에어로빅 열풍과 함께 테리 클로스(terry cloth) 소재의 스포츠 헤드밴드가 대중화되었으며, 남녀 구분 없이 활력과 건강을 상징하는 액세서리로 널리 사용되었다. 이 시기 테니스 선수 비외른 보그(Björn Borg)와 존 매켄로(John McEnroe)의 트레이드마크였던 헤드밴드는 스포츠 패션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락 음악계에서도 건 앤 로지스(Guns N' Roses)의 액슬 로즈(Axl Rose)와 같은 뮤지션들이 헤드밴드를 착용하며 반항적이고 자유로운 록 스피릿의 상징으로 삼았다. 이처럼 머리띠는 '헤드뱅잉'을 하는 락커들의 실용적 액세서리이자 문화적 아이덴티티를 표현하는 수단이 되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머리띠는 하이패션의 영역으로 확장되었다. 프라다(Prada), 구찌(Gucci), 에트로(Etro) 등 다양한 디자이너 브랜드에서 고가의 명품 헤어밴드를 선보이며 여성스러움과 우아함을 표현하는 대표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한국에서 에트로의 페이즐리 패턴 헤어밴드는 당시 인기 절정을 이루며 하이엔드 머리띠 시장을 선도했다. 놀랍게도 당시에는 명품 핸드백보다 에트로의 헤어밴드가 여성들 사이에서 더욱 강력한 워너비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을 정도로 그 인기와 상징적 가치가 대단했다. 이 시기에는 두꺼운 플라스틱 소재부터 섬세한 새틴 리본까지 다양한 소재와 디자인으로 머리띠의 형태가 다양화되었다.

국내에서는 드라마나 영화 속 스타들의 영향력이 유달리 크게 작용했다. 1998년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심은하가 착용한 심플한 헤어밴드는 지적이고 세련된 여성의 이미지를 구축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어 1999년 드라마 '토마토'에서 김희선이 선보인 헤어밴드 스타일은 전국적인 유행으로 확산되었다. 심은하가 헤어밴드의 유행을 선도했다면, 김희선은 그 유행을 대중화하고 확장시키는 파급력을 보여주었다. 또한 배우 이승연은 두건 스타일의 헤어밴드를 착용하며 90년대 한국 여성들 사이에서 또 다른 헤어밴드 트렌드를 형성했으며, 이는 당시 한국 사회의 세련됨과 현대성을 상징하는 패션 코드로 자리 잡았다.


최근에는 넷플릭스 시리즈 『브리저튼(Bridgerton)』의 세계적 인기와 함께 리젠시 시대(Regency era)의 화려한 머리 장식이 재조명받으면서 머리띠 패션의 부활 조짐을 보여줬다. 특히 티아라 형태의 머리띠나 재즈 시대의 장식적인 띠 형태 등 과거의 클래식한 스타일이 현대적으로 재해석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몇 년 전 국내에서는 머리띠가 개그우먼들의 코믹한 패션 아이템으로 활용되기도 했으나, 최근에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레트로 패션의 일환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이는 머리띠가 단순한 유행을 넘어 시대적 정서와 문화적 코드를 반영하는 중요한 패션 아이템임을 보여준다.


이처럼 머리띠는 단순한 액세서리를 넘어 시대와 문화의 변화를 반영하는 상징적 아이템이다. 고대 문명의 위엄과, 1920년대의 자유로움, 1980년대의 활력, 그리고 현대의 다양성까지 - 머리띠는 인류 문화사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그 의미와 형태를 변화시켜 왔다. 특정 시기에 유행했다가 사라지는 일회성 패션 아이템이 아닌, 잊을 만하면 새로운 형태로 등장하며 패션과 문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영속적인 패션 코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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