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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적 친화력-요한 볼프강 폰 괴테

by 무체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누가 더 보태 주고 더 받았는지 계산할 수 없을 만큼 서로 간에 신세를 많이 지고 있소. 할 일이 없다는 거, 그게 그 사람의 고통이지요. 그동안 쌓아 온 다방면의 능력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 매일매일 때맞춰 발휘해야만 그는 비로소 만족할 수 있소. 또한 그게 그의 열정이라오. 그처럼 완벽한 재능을 갖추고 있는데도 사용할 수 없고, 두 손을 그냥 호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이거 저거 더 배우려고 공부를 더 해야 하다니... 12.


시골 사람들은 아는 게 상당히 많지만, 전달하는 방식이 조리가 없고, 또 그들은 정직하지도 않아요. 도시 출신의 대학 졸업자들은 사리가 분명하고 단정하긴 하지만, 일에 대한 구체적인 안목은 없어요. 14.


남자들은 하나하나의 일만 생각하고, 현재만 고려하는데, 그건 옳기도 해요. 남자들은 실행하거나 활동하도록 타고났으니까요. 반면에 여자들은 삶에 있어서 상호관계를 먼저 따지는데 그것도 마찬가지로 옳아요. 여자들의 운명이나 가족들의 운명은 관계 속에서 얽혀 있고, 또한 여자들은 바로 그러한 연관 관계를 살피도록 요구받고 있기 때문이죠.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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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과 관계되는 모든 것을 삶과는 확실히 구분하게! 사업은 진지함과 엄격함을 요구하지만, 삶이라는 건 자의적이야. 사업은 인과 법칙을 따르는 가장 순수한 결과지만, 삶에는 종종 비논리적인 모순이 필요하며, 바로 그것이 삶을 사랑스럽고 또 유쾌하게 만들어 주는 거지. 48.


여기서 선택이라는 말은 결코 적절해 보이지 않아요. 오히려 자연의 필연성이라고 보는 게 나을 거예요. 왜냐하면 결국에는 계기의 문제가 중요하니까요. 계기가 상황을 만드는 거라고요. 마치 계기가 도둑을 만들 듯이요. 59.


그리고 자연의 친화력과 선택적 친화력이 우리 사이에 거리낌 없이 의견을 나눌 수 있게 해 준 것은 다행이라고 봐요. 63.


능력은 당연히 전제가 되어야 하고, 능력은 숙련에 이르도록 다듬어져야 합니다. 그것이 모든 교육의 목적이며, 부모님과 상부의 공공연하고 명백한 의도입니다. 아이들도 어렴풋하게나마 마음속으로 그러한 의도를 품고 있지요. 바로 그것이 시험의 대상이며, 교사도 학생도 바로 그것에 의해 평가됩니다. 67.


무언가를 얻는 대신에 무엇을 희생할 것인가를 제대로 헤아린다는 건 참으로 어렵지. 목적을 위해 수단을 거부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로 어려워! 많은 사람들이 수단과 목적을 혼동하고, 목적은 놓쳐 버린 채 수단에 기뻐하지. 온갖 불유쾌한 일이 겉으로 드러나면 그때서야 부랴부랴 치유하려고들 해. 그렇게 된 근원이 어디에 있고 또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는 알아보지도 않고서 말이야. 그래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에는 아주 현명하지만 내일 그다음의 미래는 거의 내다보는 일이 없는 자들과는 의논하기가 어려워. 공공시설을 지을 경우 어떤 자는 이익을 보고, 어떤 자는 손해를 본다면 그것을 조정하는 일은 불가능하게 되지. 그래서 공동의 이익과 관련된 일이라면 그 모든 것이 절대 권력에 의해 추진되어야 하는 걸세. 80.


세상 모든 일에서 현명한 착상과 단호한 결심이 중요하다는 걸 나는 잘 알아. 81.


결혼이란 그토록 많은 행복을 가져다주기에, 그에 비하면 하나하나의 불행은 아무것도 아니지요. 생각해 봅시다. 불행이란 도대체 뭔가요? 조급함이란 녀석이 이따금 인간을 덮치면, 그는 불행하다고 느끼곤 하죠. 하지만 그 순간만 넘기면, 오래 지속되어 왔던 관계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음을 알고는 행복해하기 마련이오. 서로 갈라서기에 충분한 이유란 없는 거요. 111.


결혼은 양쪽이, 또는 어느 한쪽이 세 번 결혼했을 경우에만 깨어질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거지요. 왜냐하면 바로 그런 사람의 경우야말로 결혼의 필수불가결함을 단적으로 보여 주니까요.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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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결혼은 원래부터 미움의 대상이 되지요. 일반적으로 결혼이라는 것은 유감스럽게도, 좀 지나친 표현을 쓰는 걸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만, 뭔가 어리석은 데가 있는 법입니다. 아주 섬세한 관계를 망쳐 버리니까요. 121.


그녀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마음이 약한 사람들은 눈물을 보임으로써 대개는 우아함을 잃지만, 우리가 흔히 강하고 자제력이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눈물을 흘림으로써 오히려 무한한 것을 얻는 법이다. 134.


사소한 것일지라도 익숙한 것들이 사라지고 나면 섭섭해 하기 마련인데, 하물며 중요한 것들이 없어지면 우리는 고통을 느끼기 마련이다. 176.


삶의 불확실성 속에서, 희망과 두려움 사이에서 헤매는 가련한 영혼에게, 비록 그쪽으로 항해해 갈 수는 없더라도 그쪽을 바라볼 수는 있게 인도하는 하나의 별만은 그대로 내버려 두시지요. 194.


.. 그렇게 궁지에 몰렸을 때는 마침내 시간을 때우고 삶의 공허를 메우기 위해 오래된 습관이나 이전의 취향이 되살아나기 마련이다. 사냥과 전쟁은 그러한 귀족들을 위해 언제나 마련되어 있는 하나의 도피처였다. 197.


그다지 잘하지는 못하는 분야의 일을 하다 보면 아주 유쾌한 기분이 든다. 어떤 아마추어가 결코 익히지 못할 예술에 손을 댄다고 해서 그를 욕해서는 안 되며, 어떤 예술가가 자신의 영역을 넘어 이웃 분야로 들어가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고 해서 그를 비난할 필요도 없다. 217.


내가 보기에 인간은 오로지 모는 것을 중지하지 않으려고 꿈을 꾼다. 내면의 빛이 일단 우리에게서 비쳐 나온다면, 우리는 더 이상 다른 빛을 필요로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225.


다행스럽게도 인간은 어느 정도의 불행만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 정도를 넘어서는 경우 인간은 파멸하거나 도리어 무심해진다. 공포와 희망이 하나가 되어 서로를 상쇄함으로써 둔탁한 무감각의 상태로 빠져 버리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226.


그런 식으로 루치아네는 사교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도취의 삶을 강행했다. 241.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모든 사람을 자신이 내세우는 대로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우리도 무엇이라도 되는 듯 자신을 내세워야 한다. 우리는 보잘것없는 사람들보다는 차라리 불편한 사람들을 참고 견딘다. 256.


인간의 성격이나 특성을 어떻게 삶의 방식과 더불어 유지할 수 있을까? 고유한 특성은 삶의 방식을 통해 비로소 드러나는 법이다. 누구나 중요한 존재가 되고자 하지만, 다만 그것이 다른 이에게 불쾌감을 주어서는 안 된다. 257.


서투른 민간인만큼 성가신 사람은 없다. 그런 사람은 거친 일을 할 필요가 없으므로 그에게 섬세함이라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257.


평범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위안은, 천재도 불멸의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위대한 인물들은 언제나 약점을 통해서 그들의 세기와 관계를 맺는다. 우리는 대개의 경우 사람들을 실제 그런 것보다 더 위험하게 여긴다.

바보와 현명한 자들은 둘 다 해롭지 않다. 어중간한 바보와 어중간한 현자들, 다만 그들이 가장 위험하다. 259.


목표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어려움은 커진다. 씨를 뿌리는 것은 수확하는 것보다 어렵지 않다. 260.


그러니까 훌륭한 교육은 바로 훌륭한 삶의 방식과는 정반대군요. 사교 모임에서는 어느 한 가지에 머물러서는 안 되는데 교육에서는 모든 산만함을 막는 것이 최고의 원칙이군요.

산만해지지 않으면서 변화를 따르는 것이야말로 교육과 삶에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슬로건일 겁니다. 다만 그러한 바람직한 균형을 쉽게 유지할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276.


삶이 지속되는 동안 우리는 자기 자신의 뜻에 따라 행동하며, 스스로가 자신의 활동과 만족을 선택한다고 여겨요. 하지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들은 우리가 따르지 않을 수 없는, 그 시대의 계획이자 경향이랍니다. 290.


탄생과 죽음, 관과 요람을 바로 옆에서 나란히 목격하고 사유한다는 것, 그것도 그냥 상상 속에서가 아니라 두 눈으로 이 엄청난 양극단을 한꺼번에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너무나 힘든 일이었고, 너무도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라 더욱더 그랬다. 오직 오틸리에만이 잠들어 있는 자를, 친절하고 호의적인 표정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노인을 일종의 질투심으로 바라보았다. 그녀의 영혼은 이미 생명을 잃었는데 육신이 더 오래 보존될 이유가 있단 말인가? 296.


결국 이야기란 것은 대체로 실제 일어났던 일이지만, 있었던 일 그대로 전해지는 경우는 결코 없는 것이다. 327.


우린 과오를 저질렀어. 내 눈에는 그게 잘 보여. 나이가 어느 정도 들어서 그 옛날 청춘 시절의 소망을 실현시키려 하는 사람은 언제나 착각하기 마련이야. 왜냐하면 인간은 나이에 따라 그때마다 고유한 행복과 희망과 전망을 가지고 있으니까. 주어진 상황이나 망상에 따라 앞으로 나아가거나 뒤로 물러서는 사람들은 불행한 거야! 그런데 우리가 한 번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다고, 그것이 평생 지속되어야 한단 말인가? 신중을 기하려고 그 시대의 윤리가 금지하지도 않은 것을 굳이 거부해야 한단 말인가? 많은 경우에 인간들은 자신의 계획이나 행위를 취소하기도 하지. 더군다나 부분이 아니라 전체가 문제 되고, 삶의 몇몇 조건이 아니라 삶 전체가 문제가 되는 이런 경우에 그렇게 하지 말란 법이 어디 있단 말인가! 337.


운명이 끈질기게 시도하는 일들은 있기 마련이에요. 이성이나 덕망이든지, 의무나 성스러움 같은 것들이 그 길을 막으려 해도 헛될 뿐이에요. 우리에게는 부당해 보이지만 운명이 옳다고 하는 것들은 일어나기 마련이랍니다. 우리는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만, 운명은 끝내 자신을 관철하고 말아요. 355.


이모님 고독이 은신처가 될 수는 없어요. 가장 가치 있는 피난처는 우리가 활동할 수 있는 바로 그곳에 있어요. 불길한 운명이 우리를 뒤쫓는 게 정해져 있는 경우라면, 아무리 속죄하고 헐벗은 채 지내더라도 우리는 그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제가 이 무심한 세상에서 구경거리나 된다면 저는 그런 세상이 싫고 두려울 뿐이에요. 365.


모든 사람에게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우리의 천성이 바로 그렇게 규정하기 때문이다. 성격, 개성, 경향, 방향, 공간, 환경, 습관 등은 다 함께 하나의 전체를 이루며, 모든 인간은 전체 속에서, 어떤 자연 원소나 대기 속에 있기라도 한 양 편안함과 아늑함을 느끼며 헤엄친다. 그리하여 우리는 인간이란 변하기 마련이라며 그토록 비탄에 빠지곤 하던 이들이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변하지 ㅇ낳고, 밖으로부터 안으로부터 무수한 자극을 받고도 변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는 놀라는 것이다. 386.


아, 나의 모든 노력이 언제난 모방에 불과하고, 잘못된 시도에 머물고 말다니 난 얼마나 불행한 사람인가! 404.



전형적인 통속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낭만이 덜하고 뭔가 계몽적이거나 철학적인 메시지를 담기에는 어설픈 감이 있다. 이 책은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선택했고, 작가가 괴테라서 읽어 보기로 했다. 시대의 천재이지만 세상이 바뀌면 그런 것도 희석 혹은 변질되기 마련. 그러나 여전히 그의 글에는 촌철살인 공감하는 부분이 있고.

이 책은 그냥 막장 소설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철학적 메시지가 있어서 쭉 읽어보긴 했다. 현재 시점으로 이보다 더 재밌는 통속 소설은 많으니까 굳이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이 책이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다소 기괴하긴 하지만 이중 불륜에 관한 부분이다. 재혼 부부 에두라르트와 샤를로테가 권태기에 접어들고 서로 다른 사람을 사랑한 채 애정 없이 어쩌다 아이가 생겼는데 태어난 아이의 눈은 남편이 사랑한 오틸리에를 닮았고 몸은 샤를로테가 사랑한 대위의 몸을 닮았다. 기발하면서 엽기적인 설정으로, 당시 상당히 논란이 되었나 보다. 혹자는 그냥 정신적 불륜이 아닌 실제로 불륜을 저지른 결과라고 하질 그랬느냐며 혹평했는데, 아무튼 정신적인 불륜 만으로도 이들의 결과는 파탄이 났다. 끔찍할 정도로 불행의 극을 달렸다.


괴테가 아무리 대문호라고 해도 모든 작품이 걸작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괴테의 선택적 친화력 줄거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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