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李箱)은 대인기피증이 심했고, 습관처럼 겨드랑이를 벅벅 긁어댔다. 그는 무심한 어투로 종종 이렇게 중얼거렸다.
"날개가 생기려는지 왜 이렇게 어깻죽지가 가려운지 모르겠다."
그는 원인을 찾으려 하지 않았다. 세상에 가려움처럼 하찮은, 그러나 성가신 증상은 없으니까. 사람들은 긁을수록 번지는 시원함만 탐닉할 뿐, 그 후에 남겨질 치명적인 부스럼과 딱지는 고려하지 않는다. 가려움증을 앓던 이상은 경쟁에 부적합했고, 적응력 있는 위인도 못 되었다. 오직 날고 싶은 생각만 가득했던 무능한 몽상가. 그는 선천적 나약함과 세상으로부터의 소외를 견디지 못하고 일찍 요절했다.
그러나 그의 아내 안부진의 뱃속에는 이상의 아이가 자라고 있었다.
특이한 몽상가 이상과 달리 안부진은 무지하고 겁이 많은 여자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무지가 아들 '이새'를 살렸다. 지금처럼 '불량품'을 사전에 폐기하는 테크니컬한 시대였다면, 이새는 산전 기형아 검사에서 분류되어 의료 폐기물 통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남편이 죽고 안부진은 죽은 듯 지내며 배를 불렸고, 허름한 무허가 조산원을 찾았다.
"낳다 죽어도 자연분만을 하겠어요."
오십 줄에 들어선 임산부의 무모한 노욕이었을까. 이새가 세상에 나오던 날, 곁에 있던 이는 늙은 조산원 원장과 산파뿐이었다. 난산이었다. 아이는 머리가 아닌 다리부터 비집고 나왔다.
"고추다!"
산파의 외침과 동시에, 피와 양물을 뒤집어쓴 아기의 등 뒤로 축축하고 검붉은 덩어리가 펄럭였다. 노련한 산파조차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안부진은 아기를 받아 든 순간 눈을 질끈 감았다.
"날개라니... 날개라니... 그놈의 입방정이..."
죽은 남편의 농담이 저주가 되어 돌아온 것 같았다. 조산원 원장은 망연자실한 산모 앞에서 괴물 같은 아기를 황급히 담요로 둘둘 말아 구석에 치워두었다. 아기는 울지도, 새소리를 내지도 않았다. 당시 조산원은 불법 체류자나 사연 있는 여자들이 찾는 시대의 그늘이었다. 날개 달린 괴물이 태어났다는 소문은 영업에 치명적이었다. 모두가 암묵적으로 아기의 죽음을 바랐다.
하지만 이틀이 지나도 아기는 죽지 않았다. 오히려 양수에 젖어 있던 날개가 마르자, 깃털은 윤기를 띠며 거대하게 퍼덕거리기 시작했다. 안부진은 그 기이한 생명력을 보며 "이 새끼가..."라고 욕을 뱉으려다 멈췄다.
"이새... 이새라고 부르겠어요. 남편도 외자였거든요."
안부진은 그제야 젖을 물렸다. 아기는 젖을 빠는 것이 아니라, 마치 먹이를 쪼듯이 맹렬하게 유두를 파고들었다.
안부진은 이새를 숨겨 키우다 결국 한 대학 교수를 찾아갔다. 날개를 제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흉물이 돈이 될지도 모른다는 본능적 감각 때문이었다. 교수는 경악했고, 학회는 전율했다. 인류의 오랜 꿈인 '비행'의 유전자가 발견된 것이다.
세계의 석학들이 인천의 허름한 연구실로 집결했다. 날개 유전자 백신을 추출하는 건 의외로 간단했다. 위대한 발견은 늘 그렇듯 우연과 허탈함 속에 이루어졌다. 마치 태초에 인류는 날 수 있었으나, 잠시 그 기능을 잊고 있었던 것처럼.
이새는 '오리지널 날개'를 가진 최초의 신인류(New-type)가 되었다. 안부진과 이새는 하루아침에 막대한 부를 거머쥐었다. 조산원 원장조차 말을 바꿔 가게 간판에 천사의 날개를 그려 넣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세상은 '선택적 출산'에 미쳐 있었다. 돈만 주면 아이의 눈동자 색, 키, 성별까지 쇼핑하듯 고르는 시대. 성형보다 표정 연기가 중요하고, 모기는 못 없애면서 화성 이주 계획을 세우는 모순의 시대. 인류는 근본적인 문제는 방치한 채 화려한 허상에만 매달렸다. 무빙워크 위에서 아이가 공산품처럼 생산되는 공장이 생겨났고, 싱글들은 마트에서 계란을 고르듯 아이의 유전자를 쇼핑했다.
그런 세상에 '날개 백신'이 출시되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너도나도 자녀의 등에 날개를 달아주려 혈안이 되었다. 이새가 태어난 지 불과 5년 만의 일이었다. 5살 이새는 백신 홍보 대사가 되어 천사처럼 하늘을 날며 쇼를 했다. 지구의 인구 절벽 문제는 해결된 듯 보였다. 조작의 한계로 출산을 포기했던 이들도, 날개만 달면 내 아이가 '슈퍼맨'이 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졌다.
그러나 부작용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인간의 몸은 날개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사람들은 황홀한 비행에 취해 잊고 있었다. 거추장스러운 날개 때문에 좁은 집에 살 수 없었고, 옷을 입을 수 없었으며, 깃털 빠짐으로 인한 호흡기 질환이 창궐했다. 더 큰 문제는 통제 불능이었다. 5살짜리 아이들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건 재앙이었다. 부모의 손이 닿지 않는 공중에서 아이들은 미아가 되거나 추락했다.
이새는 무작정 집을 나와 떠돌았다. 그는 백신으로 만들어진 '카피(Copy)'들과 달랐다. 그는 본능적으로 비행했고, 나무 열매를 쪼아 먹었다. 이새의 입은 점차 딱딱한 부리처럼 오므라들었고, 눈매는 맹금류처럼 매서워졌다. 다리는 퇴화하여 가늘어졌고, 언어조차 잊어버렸다. 그는 인간보다 새에 가까웠다. 날개 달린 아이들이 이새를 추종하며 무리를 지었다. 그들은 학교 대신 전깃줄 위에 앉아 신호로 소통했다.
세상은 아비규환이 되었다. 날개 인간, 즉 '조인(鳥人)'들은 더 이상 천사가 아니었다. 그들은 하늘에서 아무 데나 똥을 싸질렀고, 유리를 깬 채 고층 빌딩을 약탈했다. 지상에 남은 인간들, 일명 '워킹 거지(Walking Beggar)'라 불리는 노인과 백신 부작용자들은 하늘을 향해 삿대질을 해댔다. "저 빌어먹을 새끼들! 다 쏴 죽여야 해!" 인간들은 날개 없는 자들을 납치해 고공에서 떨어뜨리는 놀이를 즐겼고, 반대로 지상의 인간들은 날개족을 사냥해 날개를 꺾고 불태웠다. 거리는 피와 깃털, 그리고 썩어가는 시체 냄새로 진동했다.
결국 정부와 학회는 항복했다. '날개 제거 수술'이 의무화되었다. 날개를 떼어내는 과정은 날개를 달 때보다 백배는 더 고통스러웠다. 도시는 비명으로 가득 찼다. 이 날은 역사에 '추락하는 천사의 날'로 기록되었다. 날개를 잃은 인간들은 등 뒤에 흉측한 흉터를 남긴 채, 다시금 땅을 기며 선량한 척 미소를 지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원조', 이새만 남았다. 그를 죽여야 한다는 여론과 연구용으로 박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안부진은 분노에 차 학회 연구실을 급습했다. 청소부 차림의 늙은 여자를 막는 경비는 없었다. 그녀는 개발 중이던 미완성의 알약 두 개를 훔쳐 나왔다.
안부진은 숨어 있는 이새를 찾아갔다. 아들은 이미 인간의 형상을 거의 잃은 채, 나무 위에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걸 먹어라. 이게 네 운명을 결정할 거다."
하나는 인간으로 돌아가는 약, 다른 하나는 완전한 새가 되는 약이라고 했다. 하지만 안부진조차 무엇이 어떤 약인지 몰랐다. 이새는 말없이 엄마의 손에 들린 알약을 낚아챘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초고속으로 창공을 향해 날아올랐다.
학회는 발칵 뒤집혔다. 이새가 먹은 약이 무엇인지, 어떤 부작용을 일으킬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다. 과학자들은 그가 우주로 날아가 불타 없어졌거나, 어딘가에서 거대한 타조가 되어 숨어 살 것이라 추측했다.
과연 그랬을까? 이새는 이제 범접할 수 없는 영역에 존재한다. 사람들은 그를 잊었지만, 그는 사라지지 않았다. 가끔 죽음이 임박한 사람들의 눈앞에 검은 그림자가 어른거리거나, 초고층 빌딩 사이를 비현실적인 속도로 가로지르는 무언가가 목격되곤 한다. 그것은 인간도 아니고 새도 아닌, 진화가 버려둔 고독한 찌꺼기이자 영원한 방관자. 이새는 오늘도 인간들이 만든 혼돈의 도시 위를 소리 없이 선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