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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체 May 17. 2024

불멸의 새

이상은 대인기피증이 심하였으며 항상 겨드랑이를 벅벅 긁고 다녔다. 그리고는 무심한 어투로 이렇게 말했다.



“날개가 생기려는지 왜 이렇게 어깻죽지가 가려운지 모르겠다.”



그런데도 이상은 원인을 찾으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았다. 세상에 가려움처럼 하찮은 증상은 없으니까. 보통 사람들은 가려운 증세가 어떤 병의 징후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긁을수록 시원한 것만 생각하지 긁고난 후 치명적인 부스럼으로 남는 불행은 도통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려움을 달고 산 이상은 경쟁에도 강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적응력이 뛰어난 위인도 못 되었다. 언제나 날고 싶은 생각만 가득했던 무능한 몽상가였다.



이상은 선천적인 나약함으로 수반된 특이함과 세상의 소외를 극복하지 못하고 일찍 죽고 말았다. 그리고 안부진의 뱃속에는 이상의 아이가 자라고 있었다.



특이한 몽상가 이상에 비해서 안부진은 무지한 유형에 속했다. 안부진의 무지로 인해 득을 본 사람은 그의 아들 이새였다. 테크니컬한 시대를 감안하면 이새는 산전 검사에서 이미 기형아 판정을 받고 산산조각이 났을 터였다.



남편이 죽고 나서 무지하고 겁 많고 가난했던 안부진은 죽은 듯이 지내며 배를 불렸고 집 근처 허름한 조산원에서 출산 준비를 하였다. 그녀의 무모한 출산을 염려한 소수의 지인들에게는 병원을 믿지 못해서라는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더니 무모한 용기까지 더해 낳다 죽는 한이 있어도 자연 분만을 하고 싶다는 소리를 지껄였다.



나이 오십의 임산부가 저지른 무모한 노욕이라고 할 수 있었을까. 안부진의 지인들은 그녀가 미친 게 분명하다고 떠들었고 더는 곁에 있어봤자 아쉬운 소리나 원망하는 소리를 들을 판이라며 떠나갔다.


 그래서 이새가 태어날 때 그녀 곁에 있던 사람이라곤 조산원 원장과 객원으로 일하는 늙은 산파뿐이었다.


 예상대로 아이는 묵힌 변처럼 힘들게 나왔고 자신도 부끄러움을 알았는지 끝까지 머리를 안 보이고 다리부터 모습을 드러내었다.



 고추다,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기의 어깻죽지에 날개 같은 것이 달린 것을 보고 노련한 산파조차 아기를 놓치며 기겁을 하였고. 겨우 꺼낸 뒤 아기를 산모에게 안겼을 때 산모는 눈을 질끈 감으며 넋을 잃었다. 자신의 기진맥진함이 헛것을 본 것이라고 주입하고 싶었던 거다.




“날개라니… 날개라니… 그놈의 입방정이…”



안부진은 죽은 남편을 원망했다.


어쩐지 조산원에서 낳고 싶더라니, 이럴 줄 알았으면 병원에서 기형아 검사를 받을걸, 등등의 소소한 후회도 밀려왔다. 날개 달린 아기를 차마 안지 못하고 망연자실한 산모 앞에 조산원 원장은 어찌할 바를 몰라 일단 아기를 담요에 둘둘 말아 두다.



애가 울지도 않고 그렇다고 새소리를 낸 것도 아니었다. 나름 산전수전 다 겪어온 산파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방도를 찾지 못했다.



조산원은 불법 영업은 아니었지만 시대의 천덕꾸러기 직종에 속했기에 원장은 각별히 이미지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북쪽이나 중국 쪽에서 몰래 체류한 이들 중 적잖이 아이를 낳았고 이들 모두는 조산원을 이용했다. 점점 아시아 전역에서 불법 체류한 여자들이 입소문으로 몰려드는 곳이라 수입이 좋은 편인데 낙후된 조산원에서 날개 달린 기형아가 태어났다는 소문이 퍼지기라도 한다면 당장 영업을 중단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산파는 면허도 없이 경험만 풍부한 터라 관행적 용인은 한다 쳐도 막상 법적으로 문제가 생긴다면 더는 일을 못할 수도 있었다. 따라서 아기의 죽음은 조산원에 있는 모두의 바다.




넋을 잃다 정신을 차린 안부진은 남편 이상을 생각했다. 처음에는 원망을 했지만 다음으로는 정자를 의심했고 그라다 홀로 된 외로움으로 인한 설움을 담은 그리움 같은 감정으로 전환했다. 그러다 보니 아기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자라나고 있었다. 그러나 조산원 원장의 만류에 좀처럼 아이에게 손을 못 대고 있었다.




“아서. 일단  조류 독감도 유행이고 하니까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어.”


“조류 독감 때문에 저리 된 건가요?”


안부진의 물음에 조산원 원장은 얼버무리고 말았다.





대책 없이 이틀이나 흘렀고 그런 사이 아기는 울지도 않고 죽지도 않고 이틀이나 살아 있었다. 아기의 축축했던 날개가 마르자 퍼덕거리며 나는 시늉도 하였다. 안부진은 아기의 퍼덕이는 모습을 보며

“이 새끼가..”라고 말하다 뭔가 떠오른 표정으로 “이 새라고 해야겠어요. 아이의 이름 말이에요. 죽은 남편도 외자였거든요.”




조산원 원장과 산파는 아이의 이름 따위에 관심을 둘 리 없었다. 일단 조산원 원장은 께름칙한 표정으로 이새를 집어 안부진에게 안겼다. 비로소 안부진은 이새에게 젖을 먹이기 시작했다.


이새를 집에 데려 온 안부진은 며칠 동안 고심하다 알음알음 물어 물어 한 대학의 교수를 찾아갔다. 안부진이 이새를 병원이 아닌 대학 교수에게 데리고 간 이유는 병리학적 치료보다는 학문적 호기심이 더 컸기 때문이다.


날개를 떼어내는 것보다 환경에 적응시키고자 하는 목적도 컸다. 그러나 그러한 결심이 구체적인 건 하나도 없었고 막상 교수에게 보여주고 난 뒤 그에 따른 결과가 엄청난 부를 거머쥘 수 있다는 사실을 안 뒤로는 모든 동기를 망각해 버다.




교수가 이새를 보고 놀란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고 마침 그 분야에 관심이 있던 교수와 그가 속한 학회에서는 이새의 신기한 탄생에 대하여 경이로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후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이새 모자는 신변이 보장된 안전한 곳에 기거하며 연구진들의 각별한 보호를 받았고 몇 년 동안은 아무 걱정 없이 생애 처음 맛보는 안락한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세계 유수의 연구진들은 인천의 오래된 대학 연구실에 모여 연구를 거듭했고 그들은 고대하던 인간의 숙원이 이루어질 수도 있겠다며 날개 유전자 백신을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생각보다 무척 간단하다는 사실에 다들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언제나 발견이나 발명은 늘 그딴 식이다. 우연한 계기에 의해 위대한 작품이 탄생하는 것과 같이 어쩌면 모든 인류의 탄생과 진화는 노력의 산물보다는 미처 알지 못한 것을 새롭게 깨닫게 된다던가, 기막힌 우연한 발견의 결과로 변화해 가는 것이 아닐는지. 그건 마치 태초에 인류는 이보다 더 발전한 상태였으며 어쩌다 인간은 멸망을 자초하는 사건을 만든 후 소멸 일보 직전까지 갔다가 소수의 살아남은 자들에 의하여 서서히 발견을 해나가며 옛 명성을 되찾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에 대한 의구심마저 불러일으킬 정도다.



아무튼, 이새는 백 프로 순수 오리지널 날개를 갖고 태어난 최초의 인간이었다. 그리고 날개 유전자를 세상에 유포시킨 자가 되었다.


 날개 백신을 전파한 대가로 이새 모자는 부자가 되었다. 안부진은 이새의 탄생을 남편 이상이 남겨준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비밀 결의를 주도하던 조산원 원장도 연구가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조산원 건물 전신에 날개 도상을 그리며 천사가 태어난 곳이라고 떠들고 다녔다.



 이새가 태어나기 전에도 문명은 나날이 발달하여 아이를 선택적으로 낳을 수 있는 시대였다. 유전자 검사는 말할 것도 없고 돈만 있으면 아이의 눈동자 색상은 물론 머리 색부터 키와 성별까지 선택하여 낳을 수 있다.


그러한 최첨단의 기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모기는 없애지 못하고 퇴치약만 개발되고 있었으며 쓰레기를 현명하게 처리하지 못해 고심하던 시대이기도 했다.



 당시 인류는 커다란 도피병 같은 것을 앓고 있었던지 눈앞에 닥친 근본적인 문제는 방치로 일삼으며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허상에만 불을 켜고 개발에 몰두하며 과시하고 있 터라 부작용이 컸다.

그러니까 성형외과보다 아름다운 표정 연구 학원이 번성했어야 할 시기를 거치지 못하고 곧바로 스킵한 진화가 엄마들의 취향에 들어맞는 아기를 선택한 세상이 되었으니… 인간의 기형적인 사고를 탓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이 시대는 결혼의 유무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업적 같은 후세를 만드는 게 최상의 미션이자 자랑이었다. 이상한 쪽으로 개성도 두드러져, 다산에 목적을 두거나 양보단 질로 승부하겠다며 기능을 강화한 아이 생산에 주력하는 등 독특한 행위를 일삼았다. 특히 고무적인 것은 무빙워크 위에 누에처럼 돌돌 말린 아기가 생산되는 공장이 가동되기 시작한 점이다. 남자건 여자건 싱글 천지인 세상에서 아이를 싱싱한 계란 구입하듯이 고르는 일이 윤리적으로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은 세상인 것만은 분명했다.



그러니 불완전하고 부실한 유전자는 애초부터 태어나지 않게 했던 이 시대에 이새의 어머니 안부진은 얼마나 돈이 없고, 원시적인 방법으로 아이를 낳았는지 섬뜩할 정도이다. 어쩌면 이새가 변형 유전자인 날개를 달고 태어나게 된 것도 이상이 젊은 시절 자신의 몸속에 무언가를 투여했거나, 실험 대상이었거나 혹은 무엇에 의해서 오염된 결과일 수도 있는데 정작 그것에 관하여 고민하거나 의구심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이상은 대체 자신의 몸에 무슨 짓을 했던 걸까.


 어쨌거나 이새의 날개 백신은 최고의 유전자로 판명이 났고 그야말로 날개 돋친 듯 날개 돋는 백신이 팔리기 시작했다. 인간들은 더는 바랄 게 없다는 듯이 흥분하며 좋아했고 너도 나도 자신들의 아이에게 날개를 달아주기 위해 백신을 맞혔다. 그것이 이새가 태어난 후 불과 오 년 만에 이뤄 낸 업적이었다. 그 사이에 이새는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나무랄 데 없이 귀엽게 생긴 어린아이가 날개까지 달려서 훨훨 날아다녔으니 누가 봐도 천사처럼 보인 것은 당연했다. 이새의 뒤를 이어 백신을 맞고 날개가 달려 태어날 아기도 예견된 스타였다. 이제 여섯 살이 된 이새는 첫 번째 백신을 맞고 태어날 아기의 탄생을 지켜보기 위해 초대되었다. 동방박사의 축복이 부럽지 않을 날개 백신을 맞은 아이들은 우후죽순처럼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러한 날개 백신의 영향으로 지구의 인구 감소도 줄어들었고 세상에 새롭게 활기가 돋는 듯싶었다. 그동안 아무리 유전자 변형을 하고 아기 아이템 시장에서 원하는 스타일의 아기를 태어나게 한다 해도 조작의 한계로 인하여 출산을 포기하는 인간들이 적지 않았는데 외모와 상관없이 날개를 달아주는 것만으로도 멋진 인간으로 재기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으니 어찌 마다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새로운 연구가 항상 좋은 결과만 있는 것이 아니듯 날개 백신에도 여러 가지 결함이 도출되었다. 마치 아주 오래전에 인구의 절반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임플란트를 하거나 라식 수술 후유증으로 뒤늦게 이가 몽땅 빠지고 눈먼 자가 득세하는 세상을 경험했으면서도 그들은 그 시절을 망각하고 당장의 만족에만 취해 있었다.


 날개가 달려서 태어났다고 해서 그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닌데 사람들은 이새에게 불편함 따위는 묻지도 않았고 이새 또한 그것이 고충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거다. 예를 들어 거추장스러운 손놀림이라던가 날개로 인해 공간을 남들보다 넓게 써야 한다는 것 따위 말이다. 그리고 깃털이 빠지거나 옷을 입는 데에 따른 불편함 따위도 해당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신들이 도저히 할 수 없는, 새처럼 날아다니는 인간들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황홀함에 빠져서 제 자식에게 갖게 한다거나 죽기 전에 갖추어야 할 자신의 버킷 리스트로 날개를 원했다.


한편, 날개를 달지 못한 기존 세대들은 날개를 달고 태어난 신세대를 무한정 부러워하였다. 그러나 이제 갓 오 세를 넘고 겨우 말을 하고 들을 줄 아는 아이들이 날아다니는 일은 차라리 공포에 가까웠다. 부모들은 자식에게 날개를 준 대신에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기에 날개 달린 미아들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날개 달린 세대는 그야말로 통제 불능이었다.


날개 인간의 원조 이새는 무작정 떠돌아다니며 그러니까 여느 새들처럼 벌레를 잡아먹지는 않았지만, 점차 소소한 열매를 따먹는 데 재미를 붙였다. 들에 마구 자란 과일이나 열매 등을 채집해 끼니를 때우고 어디론가 하염없이 날아다니는 일을 즐길 줄 알았다. 그런 건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본능처럼 숙달하고 적응이 되었다. 이새처럼 날개 달린 아이들은 그렇게 돌아다니는 것이 더 적성에 잘 맞았다. 이새는 점차 학교에 가지 않았다. 다른 날개 달린 아이들도 통제가 안 되긴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학교보다는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것이 좋았다. 점차 새들과 미묘한 경쟁을 하기까지 했다. 새들 역시 사람인가 싶으면 자기들처럼 날아다니고 있었으니 심하게 혼란스럽긴 마찬가지였다.


 날개 달린 아이들은 어느덧 일종의 무리를 만들어 다니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조상을 찾아서 물어물어 찾아온 일종의 팬덤 현상을 일으키며 이새를 추종했다. 이새는 처음에 그들을 뿌리쳤으나 이미 너무 멀리 날아와 길을 잃은 날개들 그리고 자유를 찾아 떠난 날개들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점차 그들과 무리 생활을 했다. 기존의 날개 없는 인간들은 유독 머리가 크고 팔이 길며 손가락이 발달하였지만, 날개 달린 인간들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들에게 지나치게 큰 머리와 손가락은 무용했다. 다리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다리가 길면 날개에 부딪히기만 하고 쓸모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점차 성장하면서 불필요한 것들이 자라지 않고 있었다. 가끔은 걷는 방법을 잊을 정도로 뒤뚱거리기도 하였다. 날개가 달린 것만으로 생활이 이렇게 편리할 수 있다는 데에 그들은 만족했다. 가끔은 며칠씩 집에 들어가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다행히 길을 잃지는 않았다. 물을 건너지만 않으면 길을 잃을 일은 없었다. 점점 이새의 시력도 좋아지고 있었다. 성장할수록 이새의 입은 열매를 쪼아 먹기 좋게 점점 오므라들고 눈매는 더욱 매서워졌다. 하지만 그것은 자연도태 혹은 진화를 했다기보다는 유전적으로 엄마 안부진을 닮아서 그런 것 일수도 있다.


안부진은 새를 닮은 새상이다.


학회에서도 이새의 변해가는 얼굴로 의견이 분분했다. 어떤 학자들은 후천적 변형이라고도 하고 어떤 이들은 선천적인 유전에 기인한 것이라고도 했다. 어쨌든 혼란의 원인은 완전히 새처럼 생긴 안부진의 얼굴 때문이다. 그런 것과는 별개로 이새는 점점 말 수가 줄어들었다. 학교에 가지 않기 때문이었다. 학습을 제대로 받지 않은 탓인지 말은 점점 어눌해지고 표현에 한계를 느꼈다. 차라리 말을 하지 않는 게 나을 정도였다. 이새와 함께 다니는 날개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말이 필요 없었다. 오직 신호만 보내면 되었기 때문이다.


날개 달인 아이들의 가출이 잦자 점차 날개 백신을 맞게 한 부모들의 원성이 늘었다. 이제 그들을 통제할 방법은 어디에도 없을 듯싶었다. 이새는 최초의 날개 달린 인간으로서 일말의 책임감을 느끼기도 했고 엄마 안부진의 강요를 이기지 못해 오랜만에 푸드덕 거리며 학교에 나갔다. 학교에서 동급생 중 날개 달린 아이는 이새가 유일했다. 그러니 학교에서 이새의 소외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들은 이새를 부러워하기도 하고, 병적으로 싫어하기도 했다. 사회의 혼란을 야기한 변태 돌연변이로 취급하기도 했다. 이새가 학교에 가기 싫은 이유였다. 그들은 간혹 이새의 날개깃을 부러뜨릴 작정인 것처럼 괴롭혔다. 그럴 때면 이새는 날아서 교실 구석 천장에 매달려 선생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렇다고 선생이 그런 이새를 보고 챙겨 주지도 않았다.  선생들은 마치 성가신 기물 취급하듯 이새를 귀찮아했다. 자신에게 깃털 알레르기가 있다느니, 푸닥거리지 말라느니, 하면서 노골적으로 이새를 비하하기도 했고 어떤 생물 선생은 날개 달린 인간이 태어나면서 종의 변형을 일으켰다며 인간이란 종족의 위계가 무너지는 개탄할 노릇이라며 한탄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들에게 이새의 존재는 혐오스럽고 거추장스러운 돌연변이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토록 날개 달린 인간들을 비난했던 인간들도 날개를 가질 수 있는 백신이 개발되었다고 하니까 너도 나도 구입하겠다고 난리들이었다. 그동안 극도의 콤플렉스에 시달렸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그들의 난리는 아주 가관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지만 인간에게 날개 달린 백신이 생긴 것은 또 다른 혼란을 야기했다. 땅 위를 걸어 다니는 인간들이 드물 정도였다. 땅 위를 걸어 다니는 인간들을 일컬어 워킹거지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주로 기력이 쇠한 노인들이나 백신 효과가 없는 인간들이었고 그들은 백신을 맞으면서 마지막 소원인 날고자 하는 소망을 가졌지만 닭처럼 제대로 날 수가 없었다. 간혹 지붕 위에 꼬꼬댁거리면서 신세 한탄을 하는 노인들이 보이기도 했다.


인간들은 무모하기까지 했다. 드래건 플라이트 비슷한 게임을 만들어 직접 자행하면서 죽어나가기도 했고 우주에 가겠다고 더 높이 날으려는 통에 영영 지구로 돌아오지 못하거나 대기권 밖으로 이탈하여 죽어나가는 사례가 속출했다. 가장 빠른 속도로 날 수 있는 인간을 선발하기도 하였고 무리를 지어 마라톤 같은 장거리 비행도 하였다. 그들의 모험심은 끝도 없이 진행되었다. 또한, 기괴한 장난도 일삼았다. 아직 미처 날개 백신을 맞지 않은 인간들을 납치하거나 폭행하는 사례도 많았고 남의 집을 약탈하거나 도둑질도 서슴지 않았다.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이새의 뒤를 이어 날개로 태어난 인간들이 점차 새가 되어가고 있을 즈음 그들은 악마로 변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들은 똥도 아무 데나 싸대는 통에

 가뜩이나 양도 많은 인간들의 똥이 거리에 넘쳐났다.


 날개 백신은 누구나 맞을 수 있었지만 효력이 누구에게나 발생되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돈이 많고 많이 맞아도 절대 날개가 생기지 않는 부류는 도태되었다. 얼마동안 절망하던 그들은 날개를 달지 못할 바에 차라리 인간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날개 달린 인간을 축출하자는데 의견을 일치했다. 기어이 그들은 무자비하게 날개 달린 인간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날개들이 아니었다. 결국, 날개족과 날개 없는 인간은 전쟁을 시작했다.


날개 달린 인간들은 날개 없는 인간들을 무작위로 잡아 물에 빠뜨리거나 공중에서 떨어뜨려 산산조각이 나게 만들었다. 학회도 분열되기 시작했다. 이새의 치명적인 약점을 찾아 공략하려는 부류와 강점을 찾아서 더욱 개발하려는 부류로 나뉘었다. 이새는 누가 자신의 적이고 편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그들에게 이새의 피만 제공할 뿐이었다.


  하다 하다 안 되겠다 싶었는지 결국 합의를 보기로 하였다. 결과적으로 인간들이 원하던 날개 달린 세상은 더욱 피폐하고 고통스럽고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란 사실을 깨달은 거다. 인간들은 일대 혁명처럼 스스로 날개를 떼어내기로 하였다. 그것은 마치 피의 혈서를 쓰는 것처럼 고통스럽고 감동스러웠다.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자신들의 어깻죽지에 생겨난 날개를 도려내었다. 거리에 난무하는 날개는 피와 함께 뚝뚝 떨어져서 넘쳐나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날을 날개 잃은 천사의 날이라고 지정하였다. 그렇게 날개를 모두 잃은 인간들은 상당히 겸연쩍은 미소를 지어 보였고 비로소 예전의 선량한 모습을 되찾은 듯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날개 백신의 원천 제공자인 이새만 남게 되었다. 정부는 물론 학회는 고심했다. 이새를 죽일 것이냐부터, 이새의 날개를 없앨 것이냐 말 것이냐로 논쟁하기도 하였고 마치 마녀 사냥이라도 하듯이 이새를 공개 처형하여 악의 근원을 몰아내자고도 하였다. 하지만 희소성이 있는 만큼 연구 가치가 있으니 실험실에 가둬두고 연구해 보자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이새의 엄마는 분노하였다. 안부진은 용기를 내어 학회 사무실을 뒤졌다. 경계심을 주지 않는 평범한 아주머니들은 생각 외로 무방비 상태로 아무 곳이나 들락거릴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안부진은 성급하게 그곳을 침입해 최대한 그럴듯한 장소에 있는 백신을 가져왔다. 그리고는 이새더러 막무가내로 먹으라고 하였다. 도대체 무슨 약인 줄 알고 아들이 약을 먹는단 말인가. 하지만, 안부진은 이 약이 이새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라고 하며 결코 죽지는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리고 이 약을 먹고 영원히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숨어 살라고 하였다. 안부진의 초인적인 확신에 이새는 말없이 약을 먹었다. 안타깝게도 안부진은 아들의 변이를 지켜보지 못하였다. 이새는 약을 먹자마자 순식간에 초고속으로 직행하여 날아갔다.



  학회는 뒤집어졌다. 대립각을 세우며 이새의 장점과 약점을 살린 두 가지 약을 개발 중이었는데 실험도 하지 못하고 약 하나를 분실하고 만 것이다. 안부진은 어지럽게 사무실을 뒤적인 상태였고, 물론 모든 소행은 안부진이 그랬음이 밝혀지긴 했지만, 무지한 그녀를 나무랄 수는 없었다. 이미 모든 것이 허사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새가 어떤 약을 먹었는지 그것이 어떤 효과로 나타나는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안부진은 눈앞에서 사라져 버린 이새의 존재를 똑 부러지게 설명하지 못했을뿐더러 그 시점에는 업무 방해 및 기물 손괴죄로 감옥에 간 상태라 얘기를 할 수도 없었다. 과학자들은 추측하기를, 이새가 장점을 살린 약을 먹었다면 불사조처럼 우주 어디든 떠돌아다닐 수 있을 거라고 했으며 약점을 강조한 약을 먹었다면 들판 어딘가에 날지도 못하는 닭이나 타조 따위가 되어 평범한 새처럼 살게 될 거라고 하였다. 과연 그들의 예언대로 되었을까? 약의 부작용이란 것은 생각지 못했던 걸까?



이제 이새는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을 살게 되었지만 그들은 이새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


이새는 가끔 죽어가는 이들의 눈앞에 어른거리기도 하였으며 순간의 속력으로 종횡무진 돌아다니기도 할뿐더러 가끔 누군가의 환상 속의 새가 되기도 하고, 환영처럼 나타나기도 하며 인간 세계에 혼돈을 주는 존재 그러니까 불멸의 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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