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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오토픽션

먼지 그 자체

by 무체

인형 뽑기 기계 앞에 한 사람이 서 있다. 그 사람은 꽃무늬 바지를 입고 손톱은 초록색으로 번들거렸다. 펌이 다 풀려 푸석해 보이는 갈색 긴 머리에 야구 모자를 눌러쓰고 줄담배를 피워대는 꼴이라니. 165센티미터 남짓의 그 사람은 어딘가 부실해 보였다.


나는 빨래방 유리벽 안에 앉아 건조가 다 되길 기다리는 중이다. 이곳에 앉아 있으면 마치 동네 사람들을 감시하는 CCTV가 된 기분이다. 워낙 별난 인간들이 많은 동네라 사람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먼지가 되다.jpg


내가 빨래방을 들락거린 건 얼마 전 친구에게 받은 문자 한 통 때문이었다. 드럼 세탁기를 제때 청소하지 않으면 폭발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친구는 친절하게도 청소대행업체 연락처까지 찍어 보냈다. 비용은 십만 원에서 이십만 원 선이라고 했다. 나는 진지하게 계산해 보았다. 일상에서 세탁기가 폭발할 확률은 과연 몇 프로나 될까. 그 희박한 사고를 막겠다고 쌩돈 이십만 원을 써가며 유난을 떨어야 하나? 하지만 재수 없기로 치면 나를 따를 자가 없지 않은가. 뉴스에 ‘세탁기 터져 사망한 주부’로 나오고 싶진 않았다. 그렇다고 굳이 청소 업체를 부르고 싶지도 않았다. 결국 나는 그 문자를 보낸 친구를 원망했다. 몰랐으면 그냥 살았을 텐데, 알아버린 이상 그 불안은 내 몫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세탁기 폭발의 공포가 사라지거나, 큰맘 먹고 청소부를 부르기 전까지는 이 빨래방을 계속 이용할 작정이다.


맞은편 편의점에서 육중한 몸집의 화장기 없는 여자가 인상을 구기며 걸어 나왔다. 햇살이 눈부셔서 찌푸린 건지, 원래 인상이 더러운 건지는 알 수 없다. 하긴, 화장 안 한 여자들은 대개 뭔가 불만 있는 표정이긴 하다. 그 여자는 캔 커피 하나를 들고 꼬깃꼬깃한 천 원짜리 몇 장을 세고 있었다. 거스름돈 확인이 아니라 전 재산이 얼마인지 세어보는 궁색한 손놀림이었다. 여자는 아까 그 꽃무늬 바지에게 돈을 건넸다. 한눈에 봐도 여자가 예닐곱 살은 많아 보였고, 꽃무늬 바지는 무능력한 게 확실했다.


똘이와 나는 텔레비전을 보듯 유리창 밖 그들의 행동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밖에서도 우리가 보였겠지만, 그들은 초점이 흐린 눈으로 주변엔 관심도 없다는 듯 굴었다. 꽃무늬 바지는 여자가 준 돈으로 다시 기계 레버를 돌렸다. 잘났건 못났건, 길거리에서 인형 뽑기에 매달린 어른들은 좀 한심해 보인다. 유흥가도 아니고 동네 귀퉁이 기계 앞에서 저러고 있으니 더 그렇다.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뭔가 절박함 같은 게 묻어나서다. 참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딱 두 판. 둘은 아무것도 건지지 못하고 돌아섰다. 아쉬워하거나 웃어넘기는 표정도 없었다. 그냥 길에서 습관처럼 담배를 물듯, 실패가 너무나 당연하다는 무심한 얼굴들. 그 패배감이 그들에겐 몹시 익숙해 보였다.


그들 말고도 몇몇 엑스트라가 거리를 지나갔다. 파지를 줍는 노인, 우울증 직전의 표정으로 유모차를 미는 젊은 여자, 요구르트 아줌마... 그저 이 세상이 아직 굴러가고 있다는 걸 확인시켜주는 미약한 배경 화면들.


그때 똘이가 지나가는 행인을 보고 미친 듯이 짖어댔다. "똘이! 아빠 아니라니까." 녀석은 내 말을 믿지 않는 눈치다. 똘이가 발광을 하는 통에 테이블 위 리모컨이 눌렸나 보다. 벽걸이 텔레비전이 켜졌다. 오래전 토크쇼 재방송이었다. "내가 가출을 왜 해? 집에 부모가 없는데." 출연자의 말에 낄낄대고 웃다가 문득 멈췄다. '부재(不在)'라는 단어가 내 일처럼 훅 들어왔기 때문이다. 없다는 것과 죽었다는 것의 차이는 뭘까. 눈앞에 안 보이고 마음에서도 지워지면 그게 죽은 거지, 별건가. 그렇게 치면 죽음은 두려운 게 아니라 그냥 텅 빈 공허함일 뿐이다. 비워졌으니 오히려 홀가분하지 않을까. 죽음이 꼭 슬프고 괴로워해야 할 일은 아닌 거다. 어차피 사람은 누구나 사라지니까.


죽음이란 그냥 사라지는 것. 그냥 없어지는 것뿐인데. 죽으면 죽는 거지, 뭐.


갑자기, 정말 뜬금없이 거대한 허무함이 밀려오면서 죽는 게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이상한 용기가 생겼다. 세상 사람들은 나를 '충동적인 자살자'라 부르겠지만, 원래 삶이란 게 숱한 충동의 연속 아닌가. 왠지 이렇게 불현듯 찾아온 죽음의 유혹을 피하고 싶지 않았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건조기에서 막 꺼낸 뜨끈한 빨래와 똘이를 내팽개치고 허둥지둥 밖으로 나갔다. 가슴이 쿵쾅거리는 게 꼭 젊은 날의 열정 같기도 하고,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 같기도 했다. 게다가 날씨는 또 얼마나 기막히게 좋은지. 자살하기에 이보다 더 완벽한 날은 없을 것이다.


10층 이상이어야 확실하다. 우리 아파트는 옥상이 잠겨 있다. 열려 있다 해도 내 집에서 뛰어내리긴 싫었다. 집구석에선 생활의 때가 묻어 충동이 기를 못 펴니까. 나는 눈대중으로 적당한 건물을 찾았다. 문득 건너편 다세대 주택 옥상이 떠올랐다. 창문 너머로 훔쳐보던 그곳. 주민들이 상추를 키우고, 빨래를 널고, 여름엔 애들이 고무통에서 물장구를 치던 곳. 삼겹살 냄새가 올라오던 그 옥상.


언젠가 남편이 집어던진 내 핸드폰이 그 집 옥상 장독대 사이로 날아간 적이 있다. 하필이면 뚜껑 열린 간장독에 퐁당 빠졌다. 몰래 건지러 갔다가, 무슨 소리냐며 의심스럽게 쳐다보는 주인 할아버지 때문에 빈손으로 돌아왔었다. 내 핸드폰은 여전히 그 간장독 바닥에 가라앉아 있을까. 아마 삭아 문드러졌겠지. 누군가는 그 핸드폰이 우러난 간장으로 밥을 비벼 먹었을 게 분명하다. 직접 담근 집간장이라며 이웃에게 나눠줬을지도 모른다. 남편은 그 상상을 하며 낄낄거렸었다.


나는 그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몸을 던졌다. 조금이라도 머뭇거렸다면 못 뛰었을 거다. 나는 원래 겁이 많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이상하게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얼굴로 바람이 훅 끼쳐 들어왔다. 막힌 속이 뻥 뚫린 듯한, 난생처음 느껴보는 시원함에 나는 웃었던 것 같다. 순간 가족들 얼굴이 스쳤다. 얼굴도 모르는 아빠, 치매 걸려 요양원에 있는 엄마, 돈 떼먹고 튄 동생, 보름째 연락 없는 남편... 내 앞으로 보험 하나 들어둔 게 없으니, 남편에겐 참 귀찮은 죽음이 되겠다.


이 와중에 옆집 암 환자가 생각나는 건 또 뭔지. 암이 재발했는데도 "사람 목숨 잘 안 끊어진다"며 태평하던 그 사람. 죽는다고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해 놓고 20년째 잘 먹고 잘 사는 어느 배우 이야기도 떠올랐다. 죽음이란 준비한다고 오는 게 아닌 거다. 나는 내가 실타래 뒤엉킨 섬유 공장 구석에서 남몰래 태어났듯, 죽음도 그렇게 별 볼 일 없을 거라 확신했었다. 아침에 똥 싸다 발견한 바퀴벌레를 슬리퍼로 탁 쳐죽이듯, 그렇게 난데없고 쓸쓸하고 조용하게 갈 거라고.


모든 걸 체념하니 이토록 자유로운 것을. 그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땅바닥에 쳐박혔다.


쿵.


철퍼덕. 수박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내 두개골이 박살 났다. 너무 아파서 아픈 줄도 모를 지경이다. 그런데 이 철퍼덕한 기분은 뭐지? 심장은 멎어가는데 머리는 여전히 팽팽 돌아가고 있다. 으깨진 입가가 나도 모르게 경련한다. 의식이 사라지지 않는다. 젠장, 죽었는데 왜 자꾸 옛날 생각이 나는 거야. 요양원에 있는 엄마... 간병인한테 남편 찾아주면 1억 주겠다고 헛소리하던 엄마... 아, 그만하자. 감상에 빠지기 싫어 고개를 저으려는데 몸이 말을 안 듣는다.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입안에 비릿한 무언가가 가득 차오르는데 뱉을 수가 없다. 등에는 차가운 시멘트 바닥이, 얼굴에는 끈적한 피가 엉겨 붙는다. 신경 세포가 몇 개 살아남았는지 통증이 참 별나다. 오후 세 시쯤 됐으려나. 다리 저는 세탁소 주인이 귀찮은 듯 절뚝거리며 다가온다. 또 고양이가 차에 치였나 보다, 생각하는 눈치다. 아저씨 표정에 ‘재수 옴 붙었네’라고 쓰여 있다. 그리고 연극의 2막처럼 아까 그 인형 뽑기 커플이 나타났다. 아직도 이동네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나? 꽃무늬 바지가 내 쪽으로 달려온다. 생사를 확인하려는 듯 나를 쿡쿡 찔러본다.


조용하던 동네가 시끌벅적해졌다. 달팽이집 속에 숨어 남을 훔쳐보던 사람들이 하나둘 기어 나왔다. 나는 나도 모를 유언을 웅얼거렸지만, 뭉개진 입에서 나온 소리를 알아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다. 세탁소 주인은 뒤늦게 사람인 걸 알고 손을 덜덜 떨며 전화기를 꺼냈다. 하지만 이미 꽃무늬 바지가 신고하고 있었다. 세탁소 주인은 자기의 느린 걸음을 원망할까, 아니면 아까 귀찮아했던 마음을 반성하며 이번 주 교회에 나갈까? 죽음을 코앞에 두고도 별게 다 궁금하다.


꽃무늬 바지의 목소리는 예상대로 촌스럽다. 이제 정말 끝인가 보다. 심장이 시큰해지더니 멎는 소리가 들린다. 머리는 이렇게 멀쩡한데 심장만 멈추다니, 죽음이란 참 놀라운 불일치다. 소위, 나는 죽은 것이다. 꽃무늬 바지가 나를 내려다본다. 가운데 손가락이라도 날려주고 싶은데 손이 안 움직인다. 나는 웃음을 꾹 참는다.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호들갑인데, 정작 당사자인 나는 이렇게 멀쩡하다니. 내가 죽은 척 연기하는 건 아닐까?


사이렌 소리. 들것에 실리는 느낌. 아는 사람들의 웅성거림.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감이 안 온다. 지루한 것 같기도 하고, 순식간인 것 같기도 하고. 누군가 내 부릅뜬 눈을 감겼지만 여전히 다 보인다. 다만 세상이 하얀 막을 친 듯 뿌옇게 변했다. 흰 천을 덮어놔서다. 아, 답답해. 영원히 이 상태로 세상을 봐야 하나? 잠시 후 천이 걷히고 남편 얼굴이 쑥 들어왔다. 젠장. 반쪽이 날아간 내 얼굴을 봤으니 슬픔보다 공포가 앞서겠지. 남편은 세상을 다 잃은 사람처럼 절규했다. 나도 순간 찡해서 눈물이 날 뻔했다. 우리가 한때 미친 듯이 사랑했을 때, 같은 날 죽자고 했던 약속을 기억하는 걸까?


그런데 가만 보니, 우는 꼴이 금세 멀쩡해진다. 눈물을 훔치는 남편의 손톱이... 투명하게 반짝거린다. 네일 케어를 받았다. 순간 퍼즐이 맞춰진다. 아까 그 꽃무늬 바지의 물주, 화장기 없는 퉁퉁 부은 여자. 남편이 칡즙을 이고 와서 '투자자'라고 했던 그 여자였나? 남편은 그 여자한테 돈 뜯어내서 손톱 다듬고 다니고, 나는 20만 원 아끼겠다고 빨래방에서 떨다 죽었구나. 웃음이 터질 것 같은데 몸이 굳어버렸다. 내가 벌떡 일어나 "너 그 여자랑 잤니?" 물으면 기절초풍하겠지. 다시 태어난다면 절대 입 다물고 살지 않을 거다. 죽어서도 이렇게 생각이 많은데, 말이라도 실컷 하고 죽을걸. 죽음은 생각보다 훨씬 심심하고, 정체된 지루함이었다. 그나마 고통이 없으니 다행이라 해야 하나.


그 뒤로는 소란한 방문의 연속이었다. 다들 슬픔보단 장례 치르느라 정신없어 보였다. 누군가 피떡이 된 내 몸을 닦아줬다. 느낌은 없지만 다음 순서가 기다려졌다. 장례식장 병풍 뒤에 누워 내 욕하는 소리나 들을 줄 알았더니, 웬걸. 냉동고 옆 칸에 누운 다른 시체와 나란히 침묵만 지켰다. 죽은 자들의 세계는 철저한 대화 단절의 사회였다.

또 얼마나 지났을까. 화장터로 가는 길이다. 흙에 묻히든 불에 타든 이젠 아무렇지도 않다. 남편의 가짜 같은 흐느낌과 지인들의 곡소리가 들린다. 관 뚜껑을 박차고 나가 "나 여기 멀쩡히 있다!"고 소리치고 싶어 미치겠다. 처음으로 후회가 됐다. 입이 있는데 말을 못 하다니.


그렇게 나는 가루가 되었다.


잠잠하다가 무언가 탁, 투둑 하고 터지는 소리가 났다. 불길 속에서 내 뼈가 튀겨지는 소리. 난생처음 듣는 그 소리가 묘하게 경쾌하고 신비로웠다. 불에 타 죽는 기분도 꽤 나쁘지 않네, 생각했다. 뜨거운 불구덩이 속에서 한 줌의 재가 되어가는데도, 여전히 내 생각은 멈추지 않았다.


도대체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아는 목소리들은 점점 멀어지고, 나는 줄곧 생각만 하고 있다. 누가 날 데리러 오지도 않는다. 사후 세계니 천국이니 다 인간이 지어낸 뻥이었나 보다. 비누거품처럼 공중에 붕 뜬 기분이지만 어디로 날아가지도, 바닥에 닿지도 않는다.


그냥 나는, 생각하는 먼지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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