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1980년대를 대표한 여배우 하면 정윤희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녀가 1980년대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된 것은 결혼 후 연예계를 완전히 떠났기 때문이다. 본래 베일에 싸이면 대중은 더 궁금해하고 그리워하기 마련이니까. 또한, 가장 예뻤을 때 은퇴하였으니 대중은 그녀의 노화를 전혀 알지 못한다. 그렇게 대중과 멀어지면서 정윤희는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세기의 미인 1순위에 올랐다.
그런가 하면 그녀의 후발대로 뒤를 이어 엄청난 인기를 얻은 배우 원미경은 사뭇 다른 행보를 보였다. 그녀는 정윤희 못지않은 완벽한 미모에 농염한 연기로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고 이미숙이 질투할 정도로 빼어난 미인이었다.
당시 여배우하면 재벌 혹은 돈 많은 사짜 직업군으로 시집을 가던 수순과 반대로 비교적 평범한 방송국 피디와 결혼해 의아함을 자아냈다. 그러다가 평범하게 주부 생활을 하면서 잊히는가 싶더니 십여 년 만에 평범한 모습으로 복귀했다. 보통 그 나이에 재등장하는 여배우들은 열에 아홉은 결혼 실패 후 생계형으로 복귀하는 수순인데 원미경은 자식들 공부시키고 오로지 다시 연기가 하고 싶어서 돌아온 케이스이다.
전성기 때 그렇게 야하고 가벼워 보이던 원미경이 실제는 이렇게 야무지고 개념차고 성실한 배우였다니.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원미경은 왕년의 아름답던 모습을 버리고 그냥 평범하다 못해 심하게 늙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러면서 원미경은 자신의 주름을, 노화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병원에서 한없이 주름 펴고 있던 동료 배우들 화들짝 놀랄 말이었다. 그렇게 원미경은 자연스럽게 늙은 모습에 푸근하게 살찐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면서 연기에 매진하였다. 또래의 다른 늙고 끼 많은 여배우들이 젊은 남자 꼬시고 날씬한 몸매를 과시하는 등의 천박한 연기가 아닌 수수하고 나이에 맞는 연기를 보여주어 나름 귀감이 되고 있다. 그러나 원미경의 이러한 마인드는 한없이 칭찬할 일이긴 하지만 여배우들이 아무리 늙었다 해도 이렇게 나간다면 대중 입장에서는 보는 재미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자고로 여배우는 적당히 스캔들도 있고 트러블도 만들고 볼거리 얘기 거리도 만들어가면서 화제성이 있어야 존재 가치가 있는 법이다. 그런 면에서 이미숙은 완벽하고 전형적인 여배우 이미지에 걸맞다. 이미숙처럼 데뷔 초부터 스캔들이 많던 배우도 드물다. 그런 스캔들과 상관없이 사연도 참 많다. 그런 흥미로운 험담은 뒤로하고 올해 환갑이 넘은 이미숙은 여전히 매력적이며 아름답다는 점이다. 이미숙은 그녀 말대로 죽을 때까지 멜로 연기가 가능해 보이는 이미지를 발산하고 있다.
물론 중간에 17세 연하남과의 열애도 있었다고 하니 인생을 얼마나 열정적이면서 부지런하게 사는 배우인지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원미경과는 다른 차원에서 존경심이 든다.
그녀가 연기를 엄청나게 잘하고 뭐, 그런 것은 잘 모르겠지만 그 어떤 배우가 그렇게 자기 관리를 잘하면서 오랫동안 섹슈얼한 이미지를 고수할 수 있을까? 타고난 아름다움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세련된 미의식을 가지고 있어서 과장된 꾸밈도 다 그럴듯하게 근사해 보인다. 게다가 한 번의 이혼 후 두 아이를 쿨하게 키우며 당당한 싱글로 사는 모습도 멋있어 보인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황신혜도 비교되는 특징을 지닌 배우이다. 황신혜는 80년대 그 어떤 여배우보다 미모 우위를 점유하면서 찬란한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현재 그녀는 위의 다른 배우들에 비해서 현저하게 매력이 떨어진다. 물론 그녀도 세 번의 결혼과 이혼 그리고 딸을 키우면서 꿋꿋한 돌싱 배우의 삶을 대중에 노출하면서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배우이기도 하지만 그녀의 신비스러웠던 외모에 비해 삶의 이력은 억척스럽다는 게 다소 괴리감이 느껴지긴 하다.
그녀를 보고 있으면 미국의 인기 프로그램 비벌리힐즈의 진짜 주부들 프로그램이 떠오른다. 신비하고 완벽한 미모의 여배우로서의 매력은 떨어졌지만 돈독한 모녀 사이를 과시하면서 연예인 족벌체제를 계승시키는데 일조한 것은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겠다. 대를 이어 동종업계에 종사하는 것은 기특해 보이기도 하지만 오로지 부모 버프로 자식의 능력과 외모는 배제한 채 띄워주는 행태는 단순 가재나 붕어로 사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들만의 특권으로 보이지 않을까?
특히, 연기나 노래는 자신이 없던 것인지 썩 바람직하지 않은 하드웨어임에도 모델로 데뷔하고 그것을 용인하는 사회는 좀 눈살이 찌푸려지는 일이다. 그런 면으로 가장 일조하고 있는 셀럽이 외국에는 케이트 모스가 그러고 다닌다면 한국에는 황신혜가 그렇다. 그건 그렇고 미모도 우아함이라던가 원숙함이 느껴지지 않고 원판 보존에 치중하니 더 역효과가 나는 모습이다. 이래저래 신중함이나 치밀함은 없어 보인다. 물론 신비함은 사라진 지 오래고. 하지만 대중친화적인 모녀 케미로 성공한 것은 인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