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뷰티 칼럼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체 Apr 13. 2024

나는 예쁜 여자가 좋다

나는 예쁜 여자가 좋다. 내가 예쁘지 않아서도 아니고 내가 예뻐서도 아니다. 그냥 단지 예쁜 것만 보면 이상하게 끌리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주욱 그래왔다. 친구도 예뻐야 사귀었고, 그냥 예쁜 사람이면 모든 게 다 용서가 될 정도로 좋았다. 웃겨도 모든 게 용서가 되었는데 나에게 예쁜 것은 웃긴 것만큼 기분을 유쾌하게 만들었기 때문인 것이려나? 하는 생각도 새삼 해본다. 아무튼, 내 기분을 유쾌하게 만든 덕분인지 예쁜 여성들만 보면 이상하게 추앙하게 된다. 그래서 멋진 남자를 보는 것보다 예쁜 여자를 보는 게 훨씬 좋다.


어쩌면 내가 전생에 예쁜 공주를 모시는 궁중 시녀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습성은 현생에도 이어져 예쁜 사람을 더 예쁘게 꾸며주는 일을 업으로 살게 된 건 아닌지. 그러다가 사람을 예쁘게 만들어 주는 것도 좋았지만 시간이 지나서는 그냥 예쁜 것을 보고 평가하는 게 더 적성에 맞았다.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보다 관찰하려고 태어난 숙명 같기도 하고.



나는 예쁜 사람을 좋아하는 것을 넘어 편견까지 지니고 있다. 예쁜 사람이 성격도 좋다는 의미이다. 여기서는 범위를 좀 더 넓혀도 될 것 같다. 단지 보기에만 예쁜 것이 아니라 마음이 예쁜 사람도 있다. 그러니까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서 온 세상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그런 유형은 표정이 예뻐서 예쁜 사람으로 간주해도 될 정도이다. 이목구비 하나도 안 예쁜데도 인기 많고 예뻐 보이는 부류가 딱 그런 사람에 해당할 거다. 당연히 성격도 좋고.


물론 아무리 예쁘게 태어나도 불행한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이 성격이 좋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질 수도 있을 거다. 그러나 대체로 예쁜 사람은 세상이 관대하기 때문에 기회가 많다. 반면 예쁜 사람들은 연약한 꽃처럼 순수하고 상처도 잘 받는다. 그로 인한 예민함이 작용해 신경질적으로 보일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천성은 착하다는 게 내 결론이다.


다시 정리를 좀 하자면, 타고나길 예쁜 사람은 아무리 막장 환경에서 태어나도 인생에 어드벤티지가 많기 때문에 금방 극복할 수가 있다. 열악한 환경 출신의 성공한 여자 연예인들을 보면 답이 나온다. 그들은 오로지 얼굴 예쁜 것 하나로 인생 성공한 거니까. 물론 부와 명성은 얻었어도 사생활은 망친 케이스도 적지 않지만 적어도 성공할 기회는 평범하게 생긴 사람들보다는 많았을 테니 외모가 기회이자 경쟁력이란 말은 진리라고 봐도 될 정도이다.



간혹 미학적으로 너무 집착해 사치와 허영 거기에 허언까지 일삼는 부류들도 있지만 그런 부류는 실제 보면 결점 투상이 더 많다. 실제 연예인 중에도 정말로 예쁜 탑스타들은 사회적으로 크게 물의를 일으키지 않는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예쁜 사람과 예뻐 보이는 사람의 구분을 잘해야 한다. 그리고 보면 볼수록 매력 있거나 간혹 가다 예뻐 보이는 것은 후천적 노력에 의한 결과이지 선천적 미인이 아니다. 내가 말하는 미인은 타고나길 예쁜 사람이다. 예쁜 사람은 타고나는 거다. 그냥 타고나길 예쁘게 태어난 사람은 죄를 지을 수도, 성격이 모날 수도 없다. 그냥 완벽한 인성을 갖고 태어나는 거다. 아니 세상이 그렇게 만들어 줄 수밖에 없다. 심지어 죄를 지어도 쉽게 용서가 된다. 


예쁜 사람의 기준에는 당연히 비율도 포함된다. 얼굴의 이목구비만 완벽하다고 절대 미인의 기준에 들어가는 건 아니다. 신체 비율도 보기 좋아야 하고 얼굴 이목구비도 누가 봐도 예쁘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균형이 잡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누가 봐도 미인이라는 결정을 내리는데도 사람들의 의견이 다를 수 있다는 걸 비교적 늦은 나이에 깨닫고 말았다. 그러니까 내 눈에만 예쁘다고 타인의 눈에도 똑같이 예뻐 보이지는 않는다는 점. 홍채의 문제인지 수정체의 문제인지는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무턱대고 나의 안목이 높다고 단정할 일도 아닌 것이 연령대, 성별, 지역, 나라별로 미인의 기준이 다른 법이고 시대가 변할 때마다 새로운 유형의 미인이 선호되니까 미인은 어떻다,라는 기준을 제시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진 세상이긴 하다.


1980년대 어린 시절을 보낸 내 경우는 그저 이목구비 뚜렷하면 다 예쁜 줄 알고 살았고. 그러다 신체 비율을 중시하게 되고 21세기 현재는 부분적 미학의, 특히 큰 엉덩이가 미인의 기준에 포함되기도 하는 세상에 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한 일이다. 출산율이 저조한 시대에 엉덩이 큰 여성을 선호하는, 그것도 남성들이 딱히 선호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엉덩이를 키우는 그런 아이러니한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러니까 요즘은 미인의 기준을 특이함에 두는 것 같고 내가 살던 과거에는 미인의 기준이 완벽한 비율로 정의되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미스코리아 선발 대회 같은 프로그램을 선호하는 시대를 살았던 이유가 크지 않았나 싶긴 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