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 (Eden, 2006) 감독: 미하엘 호프만
-난 항상 넉넉한 것보다 더 많이 먹었어. 어릴적 꿈은 나이와 함께 잊어지고 어른이 되면 웃게 만들지.
*
이 영화의 정체성을 묻는다면, 미각세포를 자극해 도덕률을 마비시키는 '기괴한 소화 불량'이라 정의하겠다. 요리사 그레고리는 최고의 맛을 추출하기 위해 살육을 수행한다. 그의 주방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행위는 숭고한 장인 정신이라기보다, 피 묻은 칼을 든 도살자의 제의에 가깝다.
그가 유부녀 에덴에게 바치는 사랑은 아가페라 포장되어 있으나, 실상은 식욕과 성욕의 경계를 허무는 위험한 화학 실험이다. 사람들은 그의 요리를 먹고 혀로 접시를 핥으며 에로스의 노예가 된다. 행복, 잉태, 질투, 그리고 살인. 식탁 위에서 벌어지는 이 모든 인과율은 결국 '먹는다'는 행위가 얼마나 폭력적인가를 증명할 뿐이다.
에덴은 미각에 홀려 그레고리의 영역을 침범하지만, 정작 육체의 절정은 남편과 나눈다. 기묘한 아이러니다. 와인을 얼굴에 들이붓는 장면은 상심의 표현이라기보다, 흘러넘치는 욕망을 감당하지 못해 뒤집어쓰는 붉은 세례처럼 보인다.
살아있는 생명의 가죽을 벗기는 장면의 질감은 섬뜩함을 넘어선다. 감독은 요리사의 노고를 칭송하려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 내면에 잠재된 가학적 포식 본능을 조롱하려는 것인가. 확실한 건, 그레고리의 요리를 탐닉하는 인간 군상이 보여주는 쾌락은 천상의 것이 아니라 지극히 동물적인, 내장이 꿈틀거리는 종류의 것이라는 점이다.
남편 드렙의 행태는 보편적 인간의 저열함을 표본처럼 전시한다. 스트립 바를 전전하던 수컷이 아내의 변화 앞에서 갑자기 순정파 흉내를 내며 광기 어린 질투를 폭발시킨다. 오토바이 바퀴로 하트를 그리는 행위? 낭만이 아니라 촌극이다. 그는 그레고리의 와인바를 박살 내고, 폭력을 휘두르며 독일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된 맹목적 광기를 우스꽝스럽게 재연한다.
영화의 백미는 단연 후반부의 추격전이다. 날렵한 돼지처럼 숲을 가르는 그레고리와 살의를 띤 남편. 나무 위로 도피한 그레고리가 비로소 정면 승부를 결심하고 몸을 던지는 순간, 영화는 비극을 가장한 희극으로 전락한다.
중력은 정직했다. 그레고리의 육중한 질량은 드렙을 문자 그대로 '압사'시킨다.
피해 다니던 자의 무게가 가해자를 짓눌러 죽이는 이 결말이야말로 완벽한 블랙 코미디다. 복잡한 감정싸움 따위는 물리적 무게 앞에 무력하다.
몇 년의 수감 생활 후, 아이 둘을 데리고 나타난 에덴과 그레고리의 재회. 이것을 해피엔딩이라 부를 수 있을까? 성욕 위에 식욕이 군림한다는 생물학적 보고서의 결론 같기도 하다. 식탐이 지배하는 내 위장도 묘하게 동요했다.
이 영화는 착하지 않다. 인과응보는 확실하나 도덕의 저울은 고장 나 있다. 의붓아버지에게 개 요리를 먹이고, 연인의 남편을 깔아뭉갠 남자가 주인공인 서사라니. 성욕에 눈먼 자들이 파멸하듯, 식욕에 눈먼 자들도 비틀거린다. 독일 영화 특유의 건조하고 무거운 유머가 혀 끝에 씁쓸하게 남는다. 기묘하게 재미있는, 불편한 만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