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난히도 찌푸등한 초여름 한낮에 딸을 낳았다. 아플까 걱정이 되어 무통 주사를 맞을까 제왕절개를 할까 고민한 순간 덜컥 빨갛고 큰 핏덩어리가 튀어나왔다. 개운했고 초연하게 딸을 받았다. 이름조차 생각하지 않던 이 딸은 내가 살아오면서 삭제한 불행한 과거들이 쌓여서 살덩어리로 탄생한 것 같았다. 나를 꽉 막고 있던 막힘 덩어리가 힘들게 빠져나온 별 볼 일 없는 분신이란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전혀 감동이 없던 건 아니다. 그러나 대체로 변덕의 정체를 알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막힌 곳이 뚫린 것같이 후련하면서 무언가 몸 안이 뻥 뚫려버린 공허함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몸을 추스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모른 채 볼품없는 회복기를 거치며 아기에게 젖을 물리기 시작했다. 엄마들은 모두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하니까 나도 그렇게 했다. 그러한 과정을 겪으며 번잡한 설움이 들기도 했고 하여튼 어지러운 모성애였다. 혹독한 젖몸살을 앓기도 하였지만, 내 몸의 망가짐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딸은 간혹 잔혹한 선악의 수위를 넘나들기도 했지만 대체로 순한 편이었다. 잠투정도 없었고 울어야 할 때도 타당성이 있었다. 다채로운 걱정 속에서도 나는 온종일 딸을 보살피며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감동을 할 틈도 없이 충혈된 포옹으로 일관했다. 어쩌면 무척이나 긴장된 나날들이라고 볼 수 있었다. 예상치 못한 사건도 터졌다. 어떤 날 모서리에 부딪혀 눈가가 찢어져 세 바늘 정도를 꿰매야 했던 일이 커다란 사건에 속했다.
딸은 8개월째부터 서기 시작하더니 아장아장 걷고 뛰어다녔다. 본격적으로 말을 하기 시작한 것은 두 돌이 지나고 부터다. 딸의 이름은 주희라고 지었다. 순전히 내 운이 잘 풀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명소를 찾아갔다.
-성씨는?
-부씨요.
-부?
-네. 성도 바꿀 수 있나요?
-요즘 법이 막 그래도 되나? 부씨가 아빠 성이야 엄마 성이야?
-제 성이요.
-아빠 성은?
-몰…. 라요.
-몰?
-모른다고요.
-아. 몰. 아몰랑. 그래서 엄마 성으로 하겠다는 거군.
내가 아는 바로는 엄마 성이나 아빠 성으로 밖에 못 바꾸는 걸로 아는데. 아무튼 성씨와 상관없이 이름은 지민, 은지, 주희, 중에서 골라봐.
-너무 흔한 이름들 아닌가요?
-사주가 평범한데 어떻게 이름을 특별하게 짓나 이 사람아.
처음부터 아이가 특별할 거라고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그나마 큰맘 먹고 낳은 자식인데 사주마저 평범하다고 하니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주희로 할게요.
비교적 최선의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솔직한 이름이거나.
작명소를 나오며 원망하는 눈빛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한숨이 나왔다. 산부인과에서 유산을 했을 때보다, 출산을 했을 때보다 더 암담했다. 키워봤자 별 볼일 없을 거라는 자식을 이십 평생을 뒷바라지할 생각을 하니 끔찍했다. 족쇄가 따로 없다. 이후로 6년이 되도록 그 생각이 가시질 않았다. 그래도 딸에 대한 최소한의 애착과 양심은 있었다. 그 말은 인성의 수위를 넘지 않았고 못된 계모처럼 굴지도 않았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내가 주희를 잃어버린 것은 고의가 아니었다. 나는 낮에는 공장에서 일했고 밤에는 클럽에서 남자를 만났다. 일하고 노는 동안 주희를 돌봐 줄 기관이나 사람을 구한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기에 주희를 홀로 두고 나갔다. 다행히 주희는 순하디 순했다. 사과 한 개를 주고 얌전히 있으라고 하면 그 자리에서 꼼짝도 안 하고 하루종일 사과를 깨작거리며 먹고 앉아 있었다. 가끔은 그게 기특하기도 하고 애가 어디가 모자란 게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이제 겨우 여섯 살짜리가 한글을 읽고 쓸 줄 아는 걸 보면 바보는 아닌 게 분명했다.
주희를 잃어버린 그날은 시골에 있는 이모집에 가는 길이었다. 몇 주 동안 주희를 맡겨 둘 곳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빌어먹을 주희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주희는 그날따라 유독 짜증을 냈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어딘가에 맡겨진 다는 사실을 직감했던 걸까. 아니면 엄마와 오랜만에 외출하는 터라 기도 살고 긴장이 되었던 탓인가. 아무튼 주희는 그날따라 유난히 산만했지만 나는 주희에게 손지검을 하지 않았다. 내가 그날 주희를 이모댁에 맡겨두려 한 이유는 친한 언니와 중국에 3주 동안 다녀오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그 언니가 말하길 단둥에서 당근인지 양파인지를 캔다고 했던가 깐다고 했던가. 아무튼 덕분에 여행도 가고 일도 하고 모처럼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언니의 말이 그곳 밭뙈기 주인이 부농 노총각인지 홀아비라며 꼬셔보라는 말에 혹했던 것도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이 잘 되면 그 참에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생각도 있었다. 게다가 수학여행 이후 비행기는 처음 타보는 거라 준비하는 내내 설레었고 힘들게 이모랑 연락해서 허락을 받아내고 난 뒤의 후련함이랄까. 아무튼 나도 이상하게 설레고 긴장되고 초조한 마음이었다는 건 인정해야겠다. 그리고 대체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주희와 사진관에 가서 사진을 찍었다.
주희와 나는 버스를 타고 지하철 역 앞에 내렸고 계단을 한참 올라 플랫폼에 서 있었다. 비위가 약한 주희는 시내버스 한 번에 한차례 토를 하였고 기력 없이 계단을 올라야 했다. 나도 주희를 안고 올라갈 기운이 달려 막무가내로 주희의 손을 잡고 계단을 겨우 올랐다.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아래 주희는 연신 목이 마르다고 했고 나는 열차가 곧 도착하니 조금만 참으라고 하였다. 어느새 사람들로 북적였고 열차가 도착했다. 열차 문이 열리자 주희는 잽싸게 올라탔고 나는 주희를 따라 가려다 새치기하는 노인이 가로채는 바람에 주희의 손을 놓쳤다. 그런 사이 사람들이 비집고 들어갔고 내가 타려는 찰나에 문이 닫혔다.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열차가 떠나갔고 주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 순간 정신이 멍했다. 주희는 다음 역에서 스스로 내릴 수 있을까. 신고를 해야 하는데. 신고를 해야 하는데. 발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나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사람은 없고 아무도 이 상황을 알지 못한다. 내가 주희를 놓쳤다. 아니 주희가 떠났다. 아니 내가 주희를 떠나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