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드 보통의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by 무체

죽음이 임박했을 때 갑자기 생기는 삶에 대한 애착은, 우리가 흥미를 잃은 것은 목적이 보이지 않는 삶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영위하는 삶의

일상적인 형태라는 것, 그리고 우리에게 불만이 생기는 것은 인간의 경험이 돌이킬 수 없도록 음울하기 때문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특정한 방식 때문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미학적으로 볼 때 인간 유형은 매우 제한되어 있으므로 우리는 어디에 있든지 항상 우리가 아는 사람들을 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지나간 시대의 사람들은 우리와 무한히 먼 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하늘의 음영, 표정의 변화무쌍함, 친구의 위선, 또는 이전에는 슬퍼할 줄도 몰랐던 어느 상황 속에 숨겨진 슬픔에 주의를 기울이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사람은 같지 않다.

내가 진정 슬플 때 위안이 되는 것은 오직 사랑하고 사랑을 받는 것이다. 외부로 드러난 사실들로 이뤄진 현실 및 가슴으로 느끼는 감정들이 얼마나 알 수 없고, 끝없이 추측할 수밖에 없는 요소들인지를 우리에게 드러내 주는 것이야말로 질투가 가진 힘들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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