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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기획의 핵심구조: 왜 – 문제 – 방법 – 실행

기획은 처음이지?

by 에밀


기획을 배워보면 생각보다 단순한데, 막상 기획서를 앞에 두면 괜히 긴장하게 된다. 내용도 많고, 용어도 어렵고,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기획의 속을 들여다보면 언제나 같은 흐름으로 움직인다. 왜 해야 하는가, 무엇이 문제인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어떻게 실행할 것인가. 이 네 가지는 모든 기획에서 반복되는 기본 구조다. 기획이란 이름만 다를 뿐, 전략 기획이든 서비스 기획이든, 정책 기획이든 결국 이 네 가지를 차근히 밟아가는 일이다.


먼저 왜다. 기획은 이유에서 출발한다. 어떤 일을 하려면 그 일을 해야 하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목적이 불분명하면 기획은 쉽게 흔들린다. 방향이 없는 배가 항로를 잃고 떠도는 것처럼, 목적이 흔들리는 기획은 어떤 대안을 가져와도 설득력이 생기지 않는다. 많은 조직에서 기획이 지치고 모호해지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일단 해보자’, ‘올해 해야 하는 과제니까’ 같은 식의 접근은 기획의 출발점을 약하게 만든다. 사이먼 시넥이 왜를 먼저 말하라고 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왜에 대한 답이 분명해지면 기획의 전체 방향이 잡히고, 해결책을 고르는 기준이 생긴다.


두 번째는 문제다. 목적이 잡히면 이제 무엇이 문제인지 확인해야 한다. 기획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문제를 정확히 보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피터 드러커가 문제 정의를 가장 중요한 단계로 강조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를 잘못 보면 해결책은 아무 의미가 없다. 현상과 원인을 구분하지 못하면 기획은 계속 빗나간다. 매출이 떨어졌다고 했을 때, 대부분은 마케팅이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고객 취향의 변화일 수도 있고, 제품 경쟁력 약화 때문일 수도 있고, 경쟁사의 새로운 전략 때문일 수도 있다. 문제에는 여러 층위가 있다. 현상만 보고 성급하게 해석하면 해결책은 어긋난다. 문제를 정의하는 힘은 기획의 중심이다.


문제를 제대로 본다는 건 두 가지를 의미한다. 하나는 ‘지금 보이는 현상이 실제 문제인가?’를 의심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 문제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일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눈앞의 문제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기획자는 현상을 다시 분해하고, 관련된 요소들을 살펴보고, 가장 핵심적인 원인을 찾아내야 한다. 문제를 정확히 이해하는 순간 기획은 절반 이상 해결된 셈이다.


세 번째는 방법이다. 문제를 정확히 봤다면 이제 어떻게 해결할지 정해야 한다. 이 단계에서 기획자들은 종종 불필요하게 고민한다. 기획은 멋진 아이디어 경쟁이 아니라 구조를 세우는 일이다. 여러 해결책을 나열하고, 각각의 장단점을 비교하고, 조건에 맞는 방법을 선택하는 과정이 중심이다. MECE나 Why–How–What 같은 도구는 이런 정리에 도움을 준다. 하지만 도구 그 자체가 목적이 되면 기획은 복잡해진다. 중요한 건 ‘왜 이 방법을 선택했는가’라는 근거다. 목적과 문제에 맞는 방법을 고르는 일. 기획의 절반은 이 판단에서 갈린다.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조건을 고려하는 것’이다. 기획은 이론적으로 좋은 방법을 고르는 일이 아니다. 실제로 가능한 방법을 고르는 일이다. 예산, 인력, 시간, 조직 문화 등 현실적인 제약을 고려하지 않으면 아무리 훌륭한 방법이라도 현실에서 무너진다. 그래서 기획자는 문제를 해결하는 최선과 현실에서 가능한 최선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현실을 고려한 기획이 살아 있는 기획이다.


네 번째는 실행이다. 실행은 기획이 끝난 뒤에 덧붙이는 마지막 장식이 아니다. 기획의 일부다. 실행이 없으면 기획은 종이에만 존재하는 계획에 불과하다. PMBOK 같은 프로젝트 관리 체계에서 실행 계획을 기획 안에 포함시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행을 설계할 때 중요한 요소는 네 가지다. 언제까지 할 것인지, 누가 맡을 것인지, 어떤 자원이 필요한지, 어떤 위험이 있는지. 일정이 불분명하면 실행은 늦어지고, 역할이 분명하지 않으면 책임이 흐려지고, 자원이 부족하면 계획은 멈추고, 위험을 예상하지 않으면 기획은 쉽게 흔들린다. 실행은 기획을 현실로 끌어내리는 가장 중요한 단계다.


이 네 가지 구조를 알고 나면 기획이 단순해 보이기 시작한다. 복잡한 기획서도 결국 이 네 줄기 위에서 움직인다. 겉으로 보기엔 화려한 용어와 복잡한 표가 가득해도, 본질은 같다. 기업의 전략 문서도, 신제품 기획서도, 정부 정책 문서도, 개인 프로젝트도 결국 같은 흐름을 따른다. 왜 하는지, 어떤 문제가 있는지, 어떤 방법이 적절한지, 어떻게 실행할지. 기획의 본질은 형태를 가리지 않는다.


기획이 어려워 보이는 이유는 기획이 어려운 게 아니라 기획을 다루는 환경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많은 조직에서 기획을 복잡한 문서로만 배우고, 기획서를 잘 만드는 것이 기획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기획의 본질은 문서가 아니라 사고의 구조다. 왜–문제–방법–실행이라는 네 가지 흐름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이미 하고 있는 사고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기획은 거창한 작업이 아니라 생각을 정리하는 일이다.


기획을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 이 네 가지 구조는 나침반 역할을 한다. 모든 기획은 이 흐름을 기본으로 한다. 불필요한 복잡함을 지우고 본질만 보면 기획은 충분히 단순하고 인간적이다. 이 네 가지 질문을 따라가면 누구든 기획을 시작할 수 있다.


주석

골든 서클(Golden Circle): 행동과 기획은 왜(Why)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구조 모델.

문제 정의(Problem Definition): 현상과 원인을 구분해 실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찾는 과정.

MECE(Mutually Exclusive, Collectively Exhaustive): 겹치지 않으면서 빠짐없이 정보를 나누는 사고 정리 원칙.

Why–How–What 구조(Why–How–What Framework): 목적, 방법, 구체적 실행 순서로 생각을 정리하는 구조.

PMBOK(Project Management Body of Knowledge): 국제 프로젝트 관리 지식체계로, 실행 계획을 기획 과정에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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