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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기획을 배운다는 건 ‘더 잘 보는 법’을 배우는

기힉은 처음이지?

by 에밀

1-5 기획을 배운다는 건 ‘더 잘 보는 법’을 배우는 일


사람들은 흔히 기획을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만드는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기획을 잘하려면 특별한 영감이나 번뜩이는 직관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실제 기획의 현장을 보면 조금 다르다. 기획을 잘하는 사람들은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들이 아니라, 더 잘 보는 사람들이다. 기획은 결국 관찰의 기술이고, 좋은 기획은 더 정확하게 보고, 더 깊게 보고, 더 넓게 보는 데서 시작된다.


관찰은 단순히 눈으로 보는 행위가 아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힘이다. 많은 사람들은 문제를 볼 때 이미 자기 해석을 섞는다. “매출이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들으면, “마케팅이 부족해서 그런가?” “요즘 소비자들이 변한 걸까?” 같은 해석을 즉시 붙여버린다. 그러나 기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해석이 아니라 사실 그 자체다. 사실을 사실 그대로 보는 능력이 기획의 첫 단계다.


기획을 잘하는 사람들은 작은 변화도 놓치지 않는다. 고객의 행동 패턴이 아주 조금 변해도 그 안에 있는 신호를 포착한다. 사무실에서 반복되는 비효율도 단순한 ‘불편함’으로 넘기지 않고, 문제의 구조를 찾는다. 문제를 깊게 들여다보면 기획의 절반이 끝난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대부분의 해결책은 이미 현장 안에 숨겨져 있다. 다만 그것을 ‘보는 사람’만이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기획을 배운다는 건 결국 이 관찰의 능력을 키우는 과정이다. 회사든 개인이든, 문제를 제대로 보지 못하면 해결책은 항상 빗나간다. 예를 들어 어떤 회사가 직원들의 업무 피로도를 낮추기 위해 근무 시간을 줄이는 정책을 도입했다고 하자. 하지만 실상은 근무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불필요한 회의와 보고 체계가 업무 스트레스를 더 크게 만들고 있을 수도 있다. 문제를 잘못 보면 해결책 역시 잘못 향한다. 기획에서 가장 무서운 건 ‘틀린 해결책’이 아니라 ‘틀린 문제 정의’다.


기획은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꾸는 일이다.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하고, 겉으로 보이는 현상과 근본 원인을 구분하고, 수많은 정보 속에서 정말로 의미 있는 조각만 골라내는 과정이다. 이 능력이 생기면 기획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그리고 이런 능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학습과 훈련을 통해 충분히 길러질 수 있다.


역사 속 여러 사례를 보면 ‘잘 보는 능력’이 얼마나 큰 변화를 만들어내는지 알 수 있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만들 때 사용한 기술 대부분은 이미 세상에 존재하던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는 기존의 스마트폰이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사람들이 어떤 경험을 원하고 있는지를 더 깊이 보았다. 단순히 기계의 기능을 개선하는 데 머물지 않고, 사용자 경험 전체를 다시 정의했다. 이는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새로운 관찰에서 출발한 기획이었다.


또 다른 예로 일본의 편의점 산업을 들 수 있다. 일본의 편의점은 단순한 소매점이 아니라 생활 인프라에 가까울 정도로 발달해 있다. 이는 하나의 거대한 기획의 결과가 아니라, 고객의 행동을 세밀하게 관찰한 작은 기획들이 반복된 결과다. 사람들이 아침에 가장 먼저 찾는 식품, 점심시간에 필요한 서비스, 퇴근 후 구매하는 상품의 변화 등을 꾸준히 관찰했고, 그 관찰이 상품 구색, 점포 운영 시간, 점포 위치 선정 등으로 이어졌다. 결국 편의점이라는 시스템 전체가 관찰에서 시작된 기획을 통해 재정비된 것이다.


기획자가 관찰하는 대상은 늘 문제만이 아니다. 때로는 기회가 관찰을 통해 발견된다. 새로운 소비 변화, 기술의 등장, 고객의 작은 불편, 시장의 빈틈 등 많은 기회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기획자는 이 작은 신호를 놓치지 않고 구조화한다. 예를 들어 배달의민족은 ‘음식점 전화 주문의 불편함’이라는 작은 현실에서 출발했다. 당시에도 배달 문화는 있었지만, 누구도 그것을 문제로 보지 않았다. 그러나 이 작은 불편을 ‘기획의 출발점’으로 본 순간 새로운 시장이 열렸다. 관찰이 시장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기획이 일상에서 유용한 이유도 같다. 공부 계획을 세우는 것도 관찰에서 시작된다. 나는 왜 공부가 힘든가? 어떤 시간대에 집중이 잘 되는가? 어떤 방식이 나에게 맞는가?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으면 공부 계획은 항상 실패한다. 일상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운동을 지속하지 못한다면 이유는 여러 가지일 수 있다. 시간이 부족한 건지, 동기부여가 약한 건지, 환경이 불편한 건지. 이를 제대로 보지 않으면 어떤 계획도 오래가지 못한다. 기획은 생활의 문제를 관찰하고 구조화하는 일이다.


기획을 배운다는 건 세상을 ‘해석’이 아니라 ‘사실’로 보는 훈련이다. 세상은 늘 여러 가지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해석하고 싶은 방식으로 해석한다. 기획자는 한 걸음 떨어져서 사실을 바라보려고 한다. 사실이라는 토대 위에서만 기획은 흔들리지 않는다.


기획은 결국 ‘더 잘 보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잘 보기 시작하면 문제는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해결책은 그 주변에서 나타난다. 기획은 세상을 단순하게 바라보는 힘을 길러준다. 복잡한 것들 속에서 핵심만 골라내는 능력, 사소한 것들 속에서 의미를 찾는 능력, 변화의 흐름 속에서 방향을 읽는 능력. 이 모든 것이 기획을 통해 성장한다.


기획을 배우면 인생의 많은 장면이 달라진다. 일의 속도도 달라지고,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지고, 문제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진다. 기획은 세상을 더 명확하게 보게 해주고, 명확함은 결국 행동과 결과를 바꾼다. 기획은 특별한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다. 세상을 더 잘 보고 싶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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