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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기획은 ‘문제’에서 시작된다

기획은 처음이지?

by 에밀


기획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마주치는 질문이 있다. “기획은 어디서 시작되는가?” 많은 사람들은 아이디어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리면 좋은 기획이 나온다고 믿는다. 그러나 실제 기획 현장에서 오랫동안 일을 해온 사람들, 기업의 전략을 세우는 실무자들, 정책을 만드는 행정가들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한다. 기획은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기획은 문제에서 시작된다.


피터 드러커는 “올바르게 정의된 문제는 이미 절반 해결된 것”이라고 말했다. 단순한 말이지만, 기획자들이 매일 체감하는 진리다. 문제를 제대로 보지 못하면 아무리 화려한 해결책도 소용이 없다. 반대로 문제를 정확히 보면 해결책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그래서 기획의 첫 단계는 언제나 ‘문제를 발견하는 능력’을 기르는 일이다.


문제를 발견하는 일은 단순히 현상을 보는 것과 다르다. 예를 들어 회사 매출이 떨어졌다. 이건 ‘현상’이다. 하지만 이 현상이 진짜 문제인가? 아니다. 매출 하락은 문제의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그 뒤에는 더 깊은 원인이 숨어 있다. 소비자 취향의 변화일 수도 있고, 경쟁 제품의 등장일 수도 있고, 공급망의 문제일 수도 있다. 표면에 드러난 현상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드러난 현상을 그대로 문제로 착각하면 기획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간다.


기획이 어려워지는 가장 큰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람들은 보이는 것을 그대로 믿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기획자는 ‘보이는 것’ 뒤에 있는 ‘진짜 문제’를 찾는 사람이다. 하버드대의 ‘케이스 메소드(사례 분석법)’에서도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문제 진단이다. 여러 데이터와 증거를 살펴보고, 현상을 해석하지 않고, 먼저 문제를 가장 단순한 형태로 표현한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문제를 발견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관찰’이다. 관찰은 세상을 판단 없이 바라보는 태도다. 애플이 아이폰을 만들 때 사용한 기술들은 대부분 이미 존재하던 것들이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는 기존 스마트폰이 가진 문제를 누구보다 정확히 보았다. 버튼이 너무 많았고, 조작이 복잡했고, 인터넷 사용이 불편했고, 사용자의 경험이 분절되어 있었다. 그는 새로운 기술을 만든 것이 아니라 기존의 문제를 정확히 관찰했다. 그 관찰에서 아이폰의 기획이 시작된 것이다.


문제를 발견하는 능력은 기업의 흥망을 결정한다. 넷플릭스 역시 마찬가지다. 넷플릭스가 DVD 대여 사업에서 스트리밍 서비스로 전환한 이유는 미래 기술을 예측했기 때문이 아니라, 고객의 행동을 관찰했기 때문이다. 고객들이 DVD를 우편으로 받는 대신 즉시 보고 싶어 한다는 ‘문제’를 발견했고, 이 문제를 해결하면 새로운 시장이 열린다는 것을 이해했다. 관찰은 곧 기획의 출발점이 되었고, 그 기획은 산업 전체를 바꿨다.


개인도 다르지 않다. 어떤 사람이 공부 계획을 계속 실패한다고 하자. 대부분은 “의지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획 관점에서 보면 이건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문제는 ‘의지의 부족’이 아니라 ‘환경 설계의 부재’일 수 있다. 책상이 정돈되어 있지 않거나, 시작할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거나,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가 분명하지 않거나. 문제를 잘못 보면 해결책도 잘못된다. 그래서 기획의 출발점은 언제나 문제를 다시 묻는 것이다.


문제를 정의할 때 도움이 되는 구조가 있다. “왜?”를 반복해서 묻는 것이다. 도요타의 ‘5 Why’ 기법이 대표적이다. 예를 들어 한 공장에서 불량률이 높아졌다고 하자.


불량이 생겼다 왜? 온도가 일정하지 않다.

온도가 일정하지 않다 왜? 센서가 오작동한다.

센서가 오작동한다 왜? 정기 점검이 안 됐다.


이 과정을 통해 문제는 ‘불량 발생’이 아니라 ‘점검 체계의 부재’라는 본질로 드러난다. 이처럼 문제를 정확하게 보는 기술은 기획의 성패를 결정짓는다. 표면을 보면 표면적인 해결책만 나오고, 본질을 보면 본질적인 해결책이 나온다.


문제가 제대로 정의되면 그다음 과정은 상대적으로 단순해진다. 해결책은 문제에 맞춰 자연스럽게 따라오고, 실행계획도 구조를 갖는다. 그래서 세계적인 경영학자들은 전략이나 기획의 절반 이상이 문제 정의라고 강조한다. 맥킨지, 보스턴컨설팅그룹(BCG) 같은 컨설팅 회사들 역시 프로젝트의 70%를 문제를 정리하는 데 쓴다. 문제만 정확히 보면 해결은 그리 복잡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를 볼 줄 안다는 건 세상을 보는 방식이 바뀐다는 뜻이다. 문제를 잘 보는 사람은 감정이 앞서지 않는다. 판단보다 관찰이 먼저고, 의견보다 사실이 먼저다. 이 태도는 기획뿐 아니라 인생 전체에서 큰 힘이 된다. 어떤 문제든 ‘본질’을 보려는 습관이 생기면 불필요한 걱정과 오해가 줄고, 해결에 가까워지는 속도가 빨라진다.


기획은 문제에서 시작된다. 문제를 정확히 보고, 더 깊이 보고, 더 넓게 보면 해결책은 언제나 그 뒤에 따라온다. 문제를 잘 보는 힘이 곧 기획의 출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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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문제 정의(Problem Definition): 현상과 원인을 구분하여 해결해야 할 핵심 지점을 찾는 과정.

5 Why 기법(5 Why Analysis): 원인을 찾기 위해 ‘왜?’를 반복해 묻는 문제 분석 기법.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 제품·서비스 사용 과정에서 사용자가 느끼는 전체 경험.

케이스 메소드(Case Method): 실제 사례 분석을 통해 문제를 진단하는 하버드의 교육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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