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은 처음이지?
문제를 본다는 것은 단순히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는 것과는 다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제가 보이면 바로 해결책을 떠올린다. 매출이 떨어지면 마케팅을 강화하자고 하고, 팀 분위기가 안 좋으면 팀빌딩을 하자고 하고, 공부가 안 되면 책을 더 많이 사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해결책들은 대부분 본질을 건드리지 못한다. 기획이 어려워지는 순간은 언제나 같다. 문제를 제대로 보지 않은 채 해결하려고 할 때다.
문제를 제대로 보기 위해선 무엇을 봐야 할까? 먼저 봐야 할 것은 ‘현상’이다. 현상은 눈에 보이는 일이다. 수치의 변화, 고객의 반응, 프로젝트 지연, 불량률 증가, 팀 간 갈등, 매출 하락 등. 현상은 문제의 표면에 나타난 흔적이다. 하지만 현상만 보고 문제를 판단하면 거의 항상 빗나간다. 현상은 문제의 결과이지 문제 그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획자가 보는 것은 ‘현상 뒤의 구조’다. 가령 고객 클레임이 증가하고 있다. 이것만 보면 제품의 품질 문제가 떠오른다. 하지만 실제 구조를 보면 다른 이유일 수도 있다. 배송 지연이 원인일 수도 있고, 고객센터의 응답 태도가 문제일 수도 있고, 고객 기대 수준이 변화했을 수도 있다. 겉으로는 같아 보이는 현상 뒤에 여러 구조가 숨어 있다. 문제를 잘 보는 사람은 구조를 본다.
문제를 분석하는 또 하나의 핵심은 ‘원인’을 찾는 일이다. 원인은 계층적이다. 표면 원인, 중간 원인, 근본 원인으로 나뉜다. 일본의 품질 경영에서 자주 사용하는 ‘특성요인도(피시본 다이어그램)’는 바로 이 다층적 원인 구조를 파악하는 도구다. 실제로 도요타 생산방식에서도 문제를 해결할 때 최소 세 단계 이상 원인을 파고들도록 권한다. 표면 원인에서 멈추면 해결책은 임시방편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문제를 보는 데 중요한 질문은 “정말 이게 문제인가?”다. 많은 조직에서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는 이유는 ‘문제로 보이는 것’을 문제라고 믿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회사 내부에서 회의가 너무 많아 직원들이 피로감을 호소한다고 하자. 대부분은 회의 시간을 줄이자고 한다. 하지만 회의 수 자체가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문제는 회의 방식이 비효율적일 수도 있고, 의사 결정이 느려 회의가 반복되는 것일 수도 있다. 문제를 잘못 보면 해결책도 잘못된다.
문제를 정확히 보기 위해 실무자가 자주 사용하는 방식 중 하나는 ‘문제의 문장화’다. 문제를 한 문장으로 쓰면 불명확한 해석이 사라진다. 예를 들어 “요즘 매출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는 기획의 언어가 아니다. 반면 “지난 3분기 대비 신규 고객 전환율이 18% 감소했다”는 문제는 훨씬 정확하다. 문제를 문장으로 쓰는 순간 사실과 의견이 나뉜다. 기획은 이런 작은 구분에서부터 정확해진다.
이제 사례를 하나 보자. 해외 컨설팅 회사 BCG가 진행했던 유명한 프로젝트가 있다. 한 글로벌 식품 기업이 특정 지역에서 판매량이 크게 줄어들었다. 회사 내부에서는 ‘상품 경쟁력이 떨어졌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BCG는 일주일 동안 해당 지역의 소비자를 직접 관찰했다. 그 결과 문제의 핵심은 ‘제품 경쟁력’이 아니라 ‘유통경로의 변경’이었다. 지역 대형마트의 구조가 바뀌면서 해당 제품의 진열 위치가 눈에 띄지 않는 구역으로 내려간 것이었다. 문제를 잘못 보면 수백억 원의 마케팅 비용을 낭비할 뻔했던 순간이다. 결국 문제는 관찰을 통해 발견되었고, 해결책은 단순한 진열 변경이었다. 기획에서 ‘보는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문제를 볼 때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맥락’이다. 문제는 맥락에 따라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예를 들어 한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판매량이 줄고 있다고 하자. 이 문제를 단독으로 보면 고객 취향 변화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주변 상권의 변화를 보면 또 다르게 보인다. 바로 옆 건물에 대형 카페 브랜드가 들어왔을 수도 있고, 근처 회사가 이전해 유동인구 자체가 줄었을 수도 있다. 문제는 항상 맥락 속에서 해석해야 한다.
맥킨지에서는 문제를 ‘분해’하는 과정을 강조한다. 문제를 여러 조각으로 나누면 본질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고객 만족도 하락’이라는 문제를 다음처럼 분해할 수 있다.
제품 품질 요소
서비스 요소
가격 요소
접근성 요소
커뮤니케이션 요소
이렇게 나누면 문제의 위치가 더 선명해진다. 무엇을 봐야 하는지, 무엇을 보지 않아도 되는지 기준이 생긴다. 기획은 나누는 기술이다. 나눠야 보인다.
개인의 삶에서도 이 방식은 유효하다. 예를 들어 “운동을 매일 못 하겠다”는 문제는 너무 추상적이다. 시간을 분해해 보면 아침 시간대가 바쁘다거나, 저녁엔 피곤하다거나, 운동 장소가 멀다는 원인이 보일 수 있다. 행동의 흐름을 쪼개면 문제는 단순해진다. ‘문제를 보는 힘’은 일상의 난제를 풀어내는 중요한 도구다.
문제가 보이기 시작하면 기획의 절반은 준비된 것이다. 문제를 제대로 보면 해결책은 그 주변에서 자연스럽게 나온다. 문제를 잘못 보면 해결책은 늘 빗나가고, 문제를 잘 보면 해결책은 복잡하지 않다. 기획자의 역할은 더 많이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더 정확히 보는 사람이다.
기획을 배운다는 것은 결국 문제를 보는 기준을 배우는 일이다.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의견인지, 어디까지가 현상이고 어디부터가 원인인지, 무엇이 본질이고 무엇이 주변인지 구분하는 기술이다. 이 기술이 생기면 기획은 어렵지 않다. 세상은 문제를 보는 눈을 가진 사람에게 구조적으로 보이고, 구조가 보이면 기획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주석
피시본 다이어그램(Fishbone Diagram): 문제의 원인을 계층적으로 분석하는 품질관리 기법.
5 Why 기법(5 Why Analysis): 반복 질문을 통해 근본 원인을 찾는 도요타식 문제 분석 방식.
문제 분해(Problem Breakdown): 복잡한 문제를 작은 요소로 나누어 구조화하는 접근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