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은 처음이지?
문제를 ‘본다’고 해서 문제가 자동으로 정의되는 건 아니다. 많은 사람이 문제를 본다고 말하지만, 문제를 정의하는 데 실패한다. 문제를 보는 단계가 관찰이라면, 문제를 정의하는 단계는 정리와 판단이다. 기획에서 가장 많은 시간이 소모되고, 가장 많은 오해가 발생하는 지점도 바로 여기다. 문제를 정확히 정의하지 못하면 기획은 시작조차 되지 않는다.
문제를 정의하는 기술이 왜 중요한지는 여러 실무 사례가 증명한다. 한 글로벌 전자회사가 스마트폰 판매 부진을 겪고 있을 때, 내부에서는 디자인 문제, 배터리 문제, 카메라 화질 문제 등 여러 의견들이 나왔었다. 그러나 외부 컨설팅 회사가 시장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문제는 제품이 아니라 ‘중저가 시장의 공백’이었다. 고가 제품만 파는 전략이 시대 흐름과 맞지 않았던 것. 이 회사가 문제를 정확히 정의하지 못했다면 수천억 원 규모의 잘못된 연구개발 투자가 이어졌을 것이다. 기획의 진정한 힘은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 정의에서 시작된다.
문제를 정확히 정의하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문제 문장을 짧고 명확하게 만드는 것이다. 많은 조직에서 문제를 설명할 때 불필요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요즘 분위기가 별로인 것 같아요.” “고객들이 좀 줄었어요.” “아무래도 경쟁사가 강해진 것 같아요.” 이런 표현들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문제는 감정이나 추측이 아니라, 사실 기반의 문장으로 정의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고객이 줄어든 것 같다”는 표현은 기획에 쓸 수 없다. 반면 이렇게 문장을 바꾸면 문제는 명확해진다.
“지난 3개월간 신규 고객 수가 전년 대비 22% 감소했다.”
문제가 문장으로 표현되는 순간 해석이 사라지고, 사실만 남는다. 기획은 이 ‘사실의 문장’에서 시작된다.
문제를 정의하는 또 하나의 기술은 문제를 좁히는 것이다. 문제는 처음부터 크게 잡히기 마련이다. “회사가 성장하지 않는다”, “팀 분위기가 좋지 않다”, “프로젝트가 계획보다 늦어진다” 같은 문장은 범위가 너무 넓다. 범위가 넓은 문제는 공감을 얻기 어렵고, 해결책도 흐리다. 문제를 정확히 정의하려면 문제의 범위를 ‘좁혀야’ 한다.
맥킨지는 문제를 좁히는 기술을 ‘스코핑(scoping)’이라 부른다. 스코핑은 문제를 너무 크게 잡아서 기획 범위가 흔들리는 것을 막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회사가 성장하지 않는다”는 문제는 너무 크다.
이 문장을 다음처럼 좁힐 수 있다.
“신규 고객 전환율이 18개월 연속 감소했다.”
혹은
“주력 제품의 재구매율이 2년 동안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문제가 좁혀지는 순간 해결책도 특정 지점에 맞춰진다. 문제 정의는 문제를 ‘작게 만드는’ 기술이다. 작아져야 정확해진다.
문제를 정의할 때 중요한 또 하나의 기준은 **문제가 ‘행동 가능한가’**다. 어떤 문제는 너무 추상적이라 해결이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우리 회사는 혁신이 부족하다”는 문제는 아무도 해결할 수 없다. 이는 해석이지 문제 문장이 아니다. 행동 가능한 문제는 구체적이다.
예: “신제품 개발 프로세스에 평균 7개의 승인 단계가 있어 개발 기간이 길어진다.”
이 문장은 명확하다. 그리고 해결 가능하다. 기획자가 쓰는 문제 문장은 언제나 행동 가능한 수준까지 내려와야 한다.
문제를 정의하는 과정에서 자주 사용하는 도구가 ‘문제 트리(Problem Tree)’다. 이는 문제를 나무처럼 뿌리(원인), 줄기(문제), 가지(결과)로 나누는 방식이다. 문제 트리를 사용하면 표면 문제와 근본 문제를 명확히 구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회사가 고객 이탈이 늘었다고 할 때, 문제 트리를 그려보면 원인이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제품 경쟁력 약화
고객 경험의 하락
각 항목을 다시 나누면 더 많은 지점이 보인다. 제품 경쟁력의 경우 품질, 가격, 기능이 있을 수 있고, 고객 경험에는 배송 경험, 상담 품질, 구매 편의성 등이 있다. 이렇게 문제를 나눠야 문제 정의가 선명해진다.
문제를 정의하는 기술이 중요한 이유는 또 하나 있다. 문제는 언제나 여러 개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기획자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라 ‘더 중요한 문제’를 찾는 사람이다. 애플이 초창기 PC 제품을 개선할 때 스티브 잡스는 모든 기능을 다 개선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단 하나의 문제—‘사용자가 PC를 어렵게 느낀다’—에 집중했다. 문제를 좁히는 순간 해결책이 만들어졌다. 직관적으로 보이는 문제들이 많은데 잡스는 핵심 문제 하나를 골랐다. 그게 기획이다.
실제로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는 기획자를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한 역량을 ‘문제 정의 능력’이라고 말한다. 분석, 전략 수립, 실행 계획은 모두 중요하지만, 그 모든 단계의 출발점이 문제 정의이기 때문이다. 문제를 정확히 정의할 줄 아는 사람은 조직에서 방향을 만드는 사람이다.
문제를 정의하는 기술을 개인의 삶에 적용해보면 그 효력이 더 잘 드러난다. 예를 들어 “나는 계속 운동을 실패한다”는 문장은 문제 정의가 아니다. 이건 평가다. 문제 정의는 이렇게 내려와야 한다.
“퇴근 후 집에 도착하면 에너지가 부족해서 운동 계획을 시작하지 못한다.”
혹은
“운동 장소가 너무 멀어 지속적인 실천이 어렵다.”
이런 문장은 해결 가능한 문제다. 문제 정의는 인생의 난제를 ‘행동 가능한 문제’로 바꾸는 기술이다.
문제를 정확히 정의하면 기획의 절반이 끝난다. 문제 정의는 방향을 정하고, 우선순위를 정하고, 무엇을 하지 않아야 하는지를 결정한다. 기획자의 역할은 많은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가장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문제를 정확히 말할 수 있으면 해결책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주석
스코핑(Scoping): 문제 범위를 적절한 크기로 제한하여 해결 가능하도록 만드는 기술.
문제 트리(Problem Tree): 문제의 원인·결과를 나무 구조로 시각화하여 본질을 찾는 분석 도구.
특성요인도(Fishbone Diagram): 문제의 원인을 분류·분해하여 근본 원인을 찾는 품질 관리 기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