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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좋은 문제는 어떻게 찾는가

기획은 처음이지?

by 에밀


좋은 기획은 좋은 문제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막상 “좋은 문제를 찾으라”고 하면 대부분 막막함부터 느낀다. 문제는 세상에 너무 많고, 그중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어떤 것이 중요한 문제인지 기준도 모호하다. 그래서 많은 조직의 기획이 방향을 잃어버린다. 문제는 분명 보이는데, ‘좋은 문제’를 찾지 못한 채 주변만 떠도는 것이다.


좋은 문제는 무엇이 다를까? 좋은 문제는 해결할 가치가 있는 문제다. 모두가 겪고 있는 불편,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영역, 사람들의 행동을 바꾸는 지점, 시장의 흐름을 바꾸는 균열. 이런 것들은 하루아침에 나타나지 않는다. 대부분은 오랫동안 방치된 작은 징후로 존재한다. 좋은 문제를 찾는다는 건 결국 ‘작은 신호’를 감지하는 능력이다.


좋은 문제를 찾은 대표적인 사례로 넷플릭스의 변화를 자주 이야기한다. 넷플릭스는 DVD 대여 사업을 운영하던 시절, 고객들이 가장 많이 남긴 피드백을 분석했다. 피드백의 핵심은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기다림’이었다. DVD가 집에 도착하기까지 며칠씩 걸리는 이 기다림이 고객을 불편하게 했다. 넷플릭스는 이 작은 불편을 ‘미래의 문제’로 보았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면 시장의 구조 자체가 바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결국 넷플릭스는 ‘스트리밍’이라는 새로운 문제 해결 방식을 선택했고, 이는 산업 전체의 지형을 바꿨다.


넷플릭스가 한 일은 대단히 특별해 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기본적이고 기획다운 접근이었다. 고객이 오래 불편해하고, 아무도 해결하지 않은 문제를 찾은 것. 좋은 문제는 대개 이렇게 ‘지속되지만 해결되지 않은 문제’에서 나온다.


기획자가 좋은 문제를 찾으려면 먼저 ‘문제 후보’를 넓게 봐야 한다. 문제는 늘 눈앞에는 보이지 않는다. 작은 변화, 반복되는 패턴, 사람들의 말투, 불만, 행동의 흔적 속에 숨어 있다. 스티브 잡스가 말한 것처럼,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모른다. 보여줘야 안다.” 그래서 기획자는 말로 듣는 것이 아니라 행동을 본다. 행동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일본의 편의점 산업이 세계에서 가장 정교해진 이유도 작은 행동 관찰에서 출발했다. 한 컨비니언스 브랜드는 손님들이 아침마다 어떤 상품을 먼저 집어 드는지, 어느 시간대에 어떤 포장 음식이 잘 팔리는지, 점심 시간대 고객 동선이 어떻게 흐르는지 꾸준히 관찰했다. 그러다 발견된 작은 문제들이 있었다. 아침엔 영양바와 간단한 도시락이 가장 빠르게 팔리고, 오후에는 커피 대기 줄이 길어지며, 저녁엔 간편식을 사는 사람들이 ‘전자레인지 대기’에서 불편함을 느낀다는 사실. 이 미세한 문제를 하나씩 해결하면서 일본 편의점은 하나의 생활 인프라가 되었다. 좋은 문제를 찾는 힘이 나라 전체의 소매 구조를 바꾼 것이다.


좋은 문제는 ‘반복되는 문제’다. 한 번 발생했다 사라지는 문제는 대개 기획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매일 반복되거나, 특정 상황에서 꾸준히 나타나는 문제는 기획자가 반드시 다뤄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회사가 매년 연말만 되면 생산성이 떨어지고, 팀 간 갈등이 생기고, 업무 실수도 늘어난다고 하자. 대부분은 “연말이라 바쁜가 보다” 하고 넘기지만, 기획자는 이 문제를 ‘반복되는 패턴’으로 본다. 반복은 구조가 있다는 뜻이다. 반복되는 문제는 해결할 가치가 있는 문제다.


좋은 문제를 찾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사람을 관찰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말을 통해서는 문제를 정확히 드러내지 못한다. 그러나 행동과 표정, 선택과 불편의 순간을 보면 문제의 단서가 보인다. 디자인 이론에서 자주 인용되는 도널드 노먼의 말이 있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보다, 사람들이 실제로 하는 것을 보라.” 기획에서도 이 말은 똑같이 적용된다. 예를 들어 어떤 앱 서비스에서 설문조사로는 ‘불편함 없다’고 답하지만, 실제 데이터에서는 특정 페이지에서 이탈률이 높다면 문제는 ‘말로 표현되지 않은 행동’ 안에 있다.


좋은 문제는 ‘숨어 있는 문제’다. 누구도 불편함이라고 말하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문제. 예를 들어 사람들이 출근길에 자주 사용하는 카페에서 대기 줄이 길어 여러 번 돌아간 적이 있다고 하자. 누구도 그것을 문제로 말하지 않지만, 그 자리를 해결하면 새로운 기회가 된다. 배달의민족은 바로 이런 ‘숨겨진 문제’에서 출발했다. 전화 주문이 번거롭다는 지점에서 시작된 문제 정의가 거대한 시장을 만들었다.


좋은 문제를 찾기 위해 기획자가 던져야 할 질문은 단순하지만 강력하다.

• 왜 이것이 지금도 존재하는가?

• 누구에게 영향을 미치는가?

• 이 문제를 해결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가?

• 해결하면 ‘사람의 행동’이 달라질까?


이 질문에 답이 명확해지는 문제라면 기획할 가치가 있다.


좋은 문제를 찾는 과정에서는 ‘데이터’도 중요하다. 하지만 데이터는 해석을 필요로 한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해석은 언제든 틀릴 수 있다. 그래서 넷플릭스는 정성적 인터뷰와 정량 데이터를 함께 사용했다. 데이터는 문제의 크기와 패턴을 보여주고, 인터뷰는 문제의 맥락과 감정을 보여준다. 좋은 문제는 이 둘이 만날 때 드러난다.


문제를 찾는 과정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문제의 우선순위다.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수는 없다. 기획자는 많은 문제 중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를 골라야 한다. 그리고 그 문제는 대개 ‘고객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문제’, ‘비용 손실이 큰 문제’, ‘행동을 바꿀 수 있는 문제’, ‘시장 구조를 바꿀 수 있는 문제’다. 이 우선순위 판단 능력이 기획자의 수준을 가르는 핵심이다.


좋은 문제는 빛나는 아이디어보다 중요하다. 아이디어는 떠올릴 수 있지만, 문제는 발견해야 한다. 문제는 숨어 있고, 문제는 반복되고, 문제는 행동 속에 있고, 문제는 때로 말로 표현되지 않는다. 그래서 좋은 문제를 찾는 기획자는 결국 ‘세계의 가장 작은 신호’를 포착하는 사람이다.


기획의 성패는 좋은 문제를 찾는 데서 결정된다. 문제를 찾으면 방향이 보이고, 방향이 보이면 방법은 따라온다. 좋은 문제는 기획의 첫 페이지를 열고, 해결책은 그 뒤를 따른다.


주석

문제 후보(Problem Candidates): 해결 가능성·영향도·반복성 등을 기준으로 검토하는 문제 목록.

정성 데이터(Qualitative Data): 사람의 감정·행동·경험을 관찰해 얻는 비수치 정보.

정량 데이터(Quantitative Data): 수치·패턴·지표로 분석하는 데이터.

행동 관찰(Behavior Observation): 사람들이 실제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기반으로 문제 단서를 찾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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