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은 처음이지?
좋은 문제를 찾는 능력만큼 중요한 것이 ‘어떤 문제를 선택하느냐’이다. 기획은 결국 선택의 기술이다. 문제는 항상 여러 개가 한꺼번에 보이고, 그중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 모르면 기획은 쉽게 산만해진다. 좋은 기획자는 문제를 많이 찾는 사람이 아니라, 그중에서 ‘지금 해결할 문제’를 정확히 골라내는 사람이다. 문제의 선택은 기획의 방향을 결정하는 출발점이다.
문제를 선택하는 기준을 이해하려면 먼저 ‘모든 문제는 해결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실제로 조직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대부분은 해결해도 큰 변화가 없다. 영향력은 작고, 비용은 크고, 구조적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반면 일부 문제는 한 번 해결하면 시스템 전체가 개선된다. 문제 해결에 투입한 에너지가 더 큰 성과를 만들어낸다. 기획자가 집중해야 할 문제는 바로 이런 문제들이다.
문제를 선택하는 첫 번째 기준은 ‘영향력’이다. 한 문제를 해결했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가, 시스템 전체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가를 살펴봐야 한다. 예를 들어 고객센터 상담 시간이 길다는 문제와 결제 오류가 자주 발생한다는 문제가 있다고 하자. 둘 다 중요해 보이지만, 결제 오류는 매출, 신뢰도, 서비스 지속성을 동시에 떨어뜨리는 핵심 문제다. 이 문제를 해결하면 전체 시스템이 안정된다. 영향력은 문제 선택의 가장 기본적인 기준이다.
두 번째 기준은 ‘반복성’이다. 한 번의 사건으로 끝나는 문제는 기획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반복되는 문제는 구조적인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구조를 고치면 조직 전체가 개선된다. 도요타 생산방식(TPS)이 반복적 이상 징후를 ‘문제의 신호’로 보는 것도 이 때문이고, 미국 의료 시스템 연구에서도 반복되는 작은 오류들이 전체 비용의 10~15%를 낭비하게 만든다는 데이터가 있다. 반복되는 문제는 해결할 가치가 높다. 반복은 구조다.
세 번째 기준은 ‘급박성’이다. 조직에는 중요하지만 긴급하지 않은 문제도 있고, 긴급하지만 중요도가 낮은 문제도 있다. 기획자는 언제나 중요성과 긴급성의 교차점을 본다. 예를 들어 IT 서비스에서 보안 취약점은 하루만 방치해도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긴급성과 중요성이 동시에 높은 문제다. 반면 내부 보고 체계가 조금 비효율적인 문제는 중요하지만 긴급하지 않다. 급박성이 있는 문제를 우선 해결하는 것이 기획의 기본이다.
네 번째 기준은 ‘성장성’이다. 어떤 문제는 해결하면 단순히 상태가 좋아지는 것으로 끝난다. 그러나 어떤 문제는 해결하는 순간 새로운 기회가 열린다. 넷플릭스가 DVD 대여 시스템의 ‘기다림 문제’를 해결했을 때, 그 해결책은 단순히 대여 속도를 높이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스트리밍이라는 새로운 시장 전체가 열렸다. 즉 문제를 해결할 때 시장과 고객의 행동이 바뀌는 문제는 높은 성장성을 가진 문제다. 성장성이 있는 문제는 기획에서 가장 높은 우선순위를 가져야 한다.
다섯 번째 기준은 ‘실행 가능성’이다. 해결할 가치가 매우 큰 문제라도, 현실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면 기획할 수 없다. 예산, 인력, 기술력, 조직의 저항 등을 고려해야 한다. 이 요소들은 해결책의 질을 결정한다. 맥킨지는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항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를 가장 먼저 묻는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붙잡으면 기획은 소모전이 된다. 실행 가능성이 문제 선택의 핵심 조건이다.
문제를 선택할 때 도움이 되는 도구가 있다. 바로 ‘우선순위 매트릭스’다. 문제를 중요성과 긴급성, 영향력, 반복성, 실행 가능성 등으로 평가해 점수를 매기는 방식이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문제를 표로 옮기면 감정이 사라지고 사실만 남는다. 많은 조직이 이 방식을 사용하는 이유는 단순하지만 강력하다. 문제 선택을 논리적으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감정적 우선순위 대신 구조적 우선순위를 만들 수 있다.
좋은 문제를 선택하기 위해 기획자가 반드시 가져야 할 태도는 ‘무엇을 하지 않을지 정하는 용기’다. 인텔의 앤디 그로브는 “전략이란 결국 무엇을 하지 않을지 결정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기획도 똑같다.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하면 결국 아무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다. 선택은 포기다. 좋은 문제 하나를 해결하기 위해 나머지 문제들을 뒤로 미루는 결정이 필요하다. 이것이 기획자의 용기다.
문제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고객의 관점’이다. 고객에게 실제로 영향을 주는 문제, 고객이 반복적으로 불편해하는 문제, 고객 행동이 바뀌는 문제는 가장 높은 가치를 가진다. 애플이 아이폰 초기 기획에서 복잡한 기술보다 사용자 경험 자체에 집중한 것도 이 때문이다. 고객에게 의미 있는 문제는 시장을 움직인다. 고객 중심의 문제 선택은 기획의 본질이다.
문제를 선택하는 기술은 개인의 삶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우리는 매일 여러 문제를 마주한다. 건강, 시간, 관계, 감정, 경제적 문제 등. 하지만 그중 무엇을 먼저 해결할지는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다. 대부분은 쉬운 문제부터 해결하려 하지만, 기획의 관점에서는 가장 삶을 바꿀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운동 부족, 시간 부족, 집중력 저하가 동시에 있다면, 문제의 뿌리는 ‘수면 부족’일 수 있다. 이 문제 하나만 해결해도 나머지 문제가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좋은 문제를 선택하는 힘은 삶의 구조를 새롭게 만든다.
좋은 문제를 선택하는 기준을 다시 정리하면 이렇다.
1) 해결할 가치가 있는가? (영향력)
2) 반복되는가? (구조성)
3) 빨리 해결해야 하는가? (급박성)
4) 해결하면 새로운 기회가 생기는가? (성장성)
5) 현실적으로 해결 가능한가? (실행 가능성)
이 다섯 가지를 기준으로 문제를 선택하면 기획은 자연스럽게 방향이 생긴다. 방향이 정해지면 해결책은 그 뒤에서 따라온다. 기획은 결국 문제를 고르는 행위이며, 문제의 선택은 기획의 절반이다. 좋은 문제를 선택한 순간 기획은 이미 절반 성공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