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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감정은 책을 만나면 제자리를 찾는다

독서는 처음이지?

by 에밀


 살다 보면 감정이 먼저 터질 때가 있다.

 머리는 ‘이건 아닌 것 같다’고 신호를 보내는데, 마음은 이미 저만치 앞서가버린 순간들.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작은 말 한마디에도 부풀어 오르고, 사소한 실수에도 지나치게 흔들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땐 감정이 마치 파도처럼 나를 덮쳤고, 나는 그 파도를 수습하느라 늘 지쳐있었다.


 예전에 누가 이런 말을 했었다.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그 말이 틀린 건 아니었지만, 실제로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았다.

 마음이란 스위치처럼 켜고 끄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대니얼 골먼도 “감정은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이해될 때 비로소 줄어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 ‘이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러다 나는 우연히 한 책 속 문장을 통해 처음으로 마음의 속도를 마주했다.

 그 문장은 이렇게 시작했다.

 “당신이 느끼는 감정은 당신을 해치려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설명하려는 것이다.”

 그것은 유명한 심리학자의 문장도 아니었고, 철학자의 고전에서 나온 말도 아니었다.

 단지 무명의 한 작가가 소설 속 인물의 독백으로 써놓은 문장이었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툭 하고 내려앉았다.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감정이 나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알려주는 것이구나.”


 그 뒤로 나는 책을 읽을 때마다 ‘감정을 관찰하듯’ 읽기 시작했다.

 주인공이 화를 내면, ‘왜 화가 났을까?’를 따라가보고,

 인물이 상처받으면, ‘나는 왜 이런 장면에서 마음이 움직일까?’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 과정에서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책 속의 감정은 결국 나의 감정을 비추는 거울이었다는 사실이다.


 심리학자 브레네 브라운은 말한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은 결국 우리를 지배한다.”

 나는 그 문장을 읽고 한동안 멈춰 있었다.

 책을 읽으며 감정을 말로 설명하는 습관이 생기기 전까지,

 내 감정들은 거대한 덩어리처럼 내 안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감정을 ‘설명하기’ 시작하자, 덩어리가 작은 조각들로 나뉘기 시작했다.

 조각이 되니 다룰 수 있었다.

 이건 분명한 변화였다.


 예전에 나를 크게 흔들었던 한 사건이 있었다.

 직장에서 예상치 못한 오해로 마음이 무너졌던 날이었다.

 그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퇴근했고, 집에 돌아와 책을 펴들었지만 글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읽은 짧은 구절이 있었다.

 “상처를 피하려고 할수록 상처는 더 깊게 파인다. 상처를 본다는 건 용기이며, 용기는 언제나 방향을 바꾼다.”

 그 문장을 읽고 나서야 나는 마음속 이야기를 천천히 꺼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상할 정도로, 그날 잠은 평소보다 편했다.

 책이 내 감정을 대신 정리해준 최초의 경험이었다.


 책은 감정을 억누르라고 하지 않는다.

 책은 그저 감정의 ‘모양’을 보게 한다.

 기쁨도, 분노도, 슬픔도, 두려움도—모양이 보이면 다룰 수 있다.

 모양을 모르면 감정은 커지고, 결국 사람을 흔든다.

 책을 읽는다는 건 감정의 윤곽을 찾는 행위다.


 나는 독서를 통해 감정의 ‘속도’도 알게 되었다.

 예전에는 감정이 먼저 폭발하고, 생각이 뒤늦게 수습하는 방식이었다.

 지금은 생각이 먼저 중심을 잡고, 감정은 뒤에서 천천히 따라온다.

 이 변화는 내가 책에서 배운 가장 실용적인 힘이었다.

 책은 단단한 사람을 만들지는 않지만, 덜 흔들리는 사람을 만든다.


 당신도 그런 순간을 경험해본 적 있을 것이다.

 뭔가 답답하고 복잡한데, 책 한 장 넘기는 순간 마음이 풀리는 경험.

 이유 없이 한 문장이 위로처럼 느껴지는 경험.

 안도의 숨이 나오는 경험.

 그건 우연이 아니다.

 책은 감정의 언어를 되돌려주는 존재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말했다.

 “책을 읽다 보면 내 안의 문이 하나씩 열린다.”

 감정은 그 문을 통해 조금씩 나간다.

 밖으로 나가 숨을 쉬고, 다시 돌아올 때는 처음보다 부드러운 모습이 된다.

 그게 독서가 주는 치유다.


 나는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독서를 감정을 ‘없애기 위한 도구’로 삼지 않았으면 한다.

 감정은 없어지지 않는다.

 다만 설명되면 조용해지고, 이해되면 작아지며, 인정되면 형태가 바뀐다.

 책은 그 과정의 첫 번째 친구다.

 당신의 감정 옆에 조용히 앉아, 말없이 손을 잡아주는 친구.


 당신이 지금 어떤 감정을 겪고 있든,

 독서는 그 감정을 밀어내지 않는다.

 그 감정이 어디에서 왔는지, 어떤 모양인지,

 그리고 앞으로 어디로 흐를지를 살펴보게 한다.

 그것만으로 삶이 조금 덜 흔들린다.


 감정이 제자리를 찾는 순간,

 삶도 조금씩 제자리를 찾는다.

 그리고 그 길 끝에, 당신은 지금보다 더 단단해진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책은 그 길을 비추는 작은 등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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