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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파미 Aug 15. 2016

나는 이탈리아로 간다 with (feat.엄마) 7부

7부. 나는 왜 파도파를 선택했나.


워낙 베네치아에서 가까운 도시이기 때문에 기차 예약 없이 바로 자동판매기에서 표를 끊고 레지오날레를 이용해서 파도바로 이동했다. 숙소로 잡아 놓은 곳이 역에서 조금 거리가 있었지만 버스 이용에 두려움이 있었기에 방향과 위치를 대략 숙지한 후 무작정 걸었다. 다행히도 방향을 잘 잡았지만 거의 30분 정도 걸려 호텔에 도착했다. 

마지막이었기에 처음으로 3성도 아닌 4성호텔을 예약했다. 물론 주요 관광지가 아니기에 다른 곳 2성호텔보다도 저렴했기에 지를 수 있었다. 바로 '갈릴레오 파도바' 라는 곳이다.

역시 4성이라 그런지 깨끗하고 친절하고 조식도 괜찮았다고 기억한다.





주요 볼거리와 동선까지 체크해준 지도를 얻어 파도바 탐사를 시작한다. 호텔 뒤편으로 빠지니 조그만 강을 따라 나무로 둘러싸인 환상적인 산책길이 펼쳐진다. 이런 길을 매일 아침, 저녁으로 걸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행복한 삶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한참을 걷다 보니 왼편으로 구시가지가 시작됨을 알려준다. 다리를 건너니 옛 건물들과 골목골목 자리 잡고 있는 식당들, 활기에 찬 대학생들과 젊은이들이 눈에 띈다. 현대와 고대가 적절히 조화가 되어 다른 도시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지만, 이탈리아 특유의 느낌은 기본적으로 장착하고 있다.

스파게티와 샐러드로 오랜만에 여유로운 점심식사를 하고, 파도바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카페 페드로키를 찾았다. 

와! 근데 이게 카페가 맞는거야? 라고 의심될 정도의 규모와 예술적인 건축물의 카페다.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 많은 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듯했고, 길지는 않지만 줄을 서야 될 정도로 손님들이 계속 들어왔다. 당연히 가장 유명하다는 '카페 페드로키' 일명 민트 커피를 주문했다. 처음 보는 비주얼과 그 향기에 우선 놀랬고, 첫 모금에 훅 들어오는 차가운 민트맛과 찐하고(진하고 아님) 따뜻한 커피맛이 오묘하게 조화됨이 너무 신기했다. 





식사와 커피까지 마쳤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구경을 해야겠지? 

지도에 의존하면서 성 안토니오 대성당을 찾아갔다. 약간의 보수공사가 있었지만 다행히도 내부 관람까지 가능했다. 언제나 그렇듯 성당 안에만 들어오면 마음이 경건해진고 경외감이 느껴진다. 포르투갈 출신의 성 안토니오는 파도바에서 생을 마감하며 파도바의 수호신이 되었다. 가난한 이들을 돕고, 이단에 맞서 싸웠다는 그를 생각하며 나는 소박하게 가족의 건강을 기도해본다. 

정원을 둘러보다가 성 안토니오의 동상이 있어 그의 손을 잡고 사진을 찍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잡았는지 그의 손이 반질반질하다.





성당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1545년에 개장했다는 세계 최초의 식물원을 들어가 보기로 했다. 막상 들어가 보니 규모도 생각보다는 크지 않았고, 식물 종류도 다양한 것은 아니었지만, 세계 최초라는 것에 무언가 의미를 두게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조용히 식물을 감상하며 마음을 정화시키기에는 오히려 다른 식물원보다 좋았다는 느낌이다.





프라토 델라 발레 광장으로 옮기니 오늘이 토요일이라 그런가 파도바 시민의 절반은 여기에 나와 있는 듯 하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서 키우는 강아지들을 끌고서 나와 벤치나 광장 곳곳에 둘러앉아서 한가로운 토요일 오후를 만끽하고 있다.

나 역시 이렇게 가만히 앉아 사람들 구경하며 아무 생각 없이 있는 것을 좋아하는지라 한참을 그렇게 앉아있었다. 





구시가지에서 숙소가 멀다 보니 6시 정도부터 일찌감치 숙소 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오면서 미리미리 마트에 들러 간단히 먹을거리를 사고서 돌아오는 길에 맥주를 한잔하기로 한다. 술이 빠지면 될쏘냐! 하지만, 생각보다 술 마실만한 곳이 없다. 그렇다고 흔하디 흔한 동네 피자집이나 케밥집에서 마시기는 그렇지 않은가.

다행히도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2군데의 맥주집이 보였고, 그중 한 곳에 자리를 잡고 맥주를 주문했다. 주인이 중국인 같았는데, 여기 이탈리아 답지 않게 기본 안주인 감자칩을 준다.이런 고마울 데가 있나.

이상하게 놀러 와서 마시는 술은 늘 맛있다. 하지만 내일은 아침부터 베로나를 다녀와야 하는 관계로 가볍게 3잔 정도로 마무리했다. 해가 저물어가는 브렌타 강의 산책로는 너무 아름답다고 또 한번 생각했다.





아침부터 일찌감치 일어나 조식을 먹고 베로나로 가기 위해 기차역으로 향한다. 

하지만 오페라의 도시라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정보도 없던 나는 기차에서 내려 구글 지도를 이용해 간단히 코스를 잡아본다. 지금와서 다시 보니 상당히 비효율적인 동선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왜 그랬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처음 간 곳은 줄리엣의 무덤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로미오와 줄리엣이니 진짜로 무덤이 있을 리는 만무하지만, 돌로 만든 무덤과 그 주변을 보게 되면 어쩐지 진짜라고 착각하게 된다. 불멸의 사랑의 아이콘이라고 하니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 중 하나다. 근데 불멸의 사랑이라니, 그런 게 현실에 존재할까? 소설이니까 가능하지 않았을까? 내가 너무 순수하지 못한 걸까? 나는 이런 생각 중인데, 엄마는 무척 감동받은 표정이다. 역시 이게 남자와 여자의 차이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





그곳을 빠져나오니 앞쪽에 높은 탑이 하나 보였다. 지도로 확인해보니 람베르티의 탑이다. 일단 저런 탑이나 높은 곳을 만나면 오르고 싶은 욕구가 솟는다. 이미 줄이 길게 늘어섰지만 바로 그 줄의 대열에 합류한다. 근데 입장료가 겨우 1유로?? 확인해보니 매달 첫 번째 일요일은 입장료가 1유로라고 한다. 이런 행운이 있나! 게다가 다른곳과 달리 엘리베이터 설치가 되어있어 순식간에 정상까지 도달한다. 커다란 종이 우리를 반긴다. 괜히 종도 한번 쳐보고 싶지만 너무 멀다. 베로나 시내 전경을 바람을 맞으며 내려다본다. 가슴이 뻥 뚫리는 것같다. 피렌체 전경과 흡사하지만 뭔가 또 다른 차분한 느낌이 전해져 온다. 




내려와서 탑을 다시 바라보니 벌써 3시 20분을 가리키고 있다. 

이번엔 베로나 원형경기장으로 향했다. 콜로세움과 상당히 흡사한 모양이지만 크기는 게임이 안된다. 입장료가 비싼 관계로 들어가는 건 포기하고 아레나의 외관만 감상하며 어설픈 포즈로 사진도 찍어본다.





오는 길에 카스텔 베키오 성벽의 웅장함에 감탄했지만, 다리를 건너 내부에는 들어가 보지 못한 것이 아직도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사실 나에겐 너무 정보가 없었고, 시간이 촉박해서 빨리 파도바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베로나 역으로 가니 집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이 모여 엄청나게 북적거렸고, 여러 대의 자동판매기가 있었지만 티켓을 사려는 줄로 꽉 들어차 있었다. 거의 40분만에 가까스로 티켓을 끊고서 의자에 앉아 숨을 돌리고 있으니, 이곳에 사시는듯한 한 할머니가 나에게 말을 건다. 


"넌 어디에서 왔니?"

"한국에서 왔어요~"

"베로나는 어땠니?"

"너무 좋았어요. 이제 파도바로 돌아가요."

"어디 어디 갔었니? 어디가 제일 좋았어?"

"다 좋았지만 로마가 제일 좋았던 것 같아요. 물론 베로나도 멋졌어요."


할머니의 기차 시간이 다가와 더 많은 얘기를 나누지 못했지만, 스스럼없이 말을 건네는 모습에 그들의 여유가 가슴으로 느껴졌다. 





우리도 기차를 타고 파도바 역에 도착하니 벌써 7시 30분쯤. 어서 빨리 마트를 찾아 맥주와 안주거리를 사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은 조급해졌지만, 시내까지 다시 가기에는 시간도 애매하고 몸도 너무 지쳐있었다. 

그래서 그냥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마트 한두 개쯤 나오겠지 하는 심정으로 걸었지만, 마트는 커녕 비슷한 것도 나오지 않고 거의 호텔까지 다 달았다. 절망적인 기분이 들었지만, 신은 그렇게 불공평하지 않다. 생각해보니 어제 이미 술집 2군데를 찾아놓지 않았던가! 오늘은 어제 마시지 않았던 반대편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여기는 계산을 하고 잔을 받아와야 한다. 대신 가격이 조금 저렴하다. 베로나에서 샀던 바나나와 조식 때 챙겼던 과자가 훌륭한 안주가 된다. 

돌아가는 내일 로마를 제외하고는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 그런 건지, 오늘 힘들에 돌아다녀서인지는 몰라도 맥주가 물처럼 넘어간다. 마트도 들르지 못했기에 맥주잔은 계속 비워져 갔고, 어느새 취기가 꽤 오른다. 몇 잔을 마셨는지는 모르지만 어느새 밤은 깊어졌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숙소로 돌아왔다. 하지만 늘 그렇듯 숙소로 돌아오면 뭔가 한잔 더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술 좋아하는 사람들의 특징일 것이다. 그리고 술을 마시면 용감해진다. 

평소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던 냉장고를 열어 과감하게 맥주 1병씩 마셔준다. 조금 비싸면 어떠한가. 약간 남아있던 갈증이 해소되는 느낌이다. 씻고 침대에 누우니 바로 잠으로 빨려 든다.





오늘은 로마로 돌아가 귀국 준비를 해야 한다. 다음날 오전 7시 30분 정도 비행기라 일찌감치 공항행 버스를 타야 해서 가볍게 잠만 잘 수 있는 숙소를 예약했다. 짐만 풀어놓고 로마에 있을 때 배터리가 없어 찍지 못했던 곳을 다시 가보려고 한다. 

도심 한가운데 로터리옆에 있어 그냥 휙 지나치기 쉬운 알타레 델라 파트리아가 바로 그것이다. 베네치아 광장 바로 앞에 있으며 비토리아 에마누엘레2세의 동상이 있어 유명하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건물 외곽만 찍고 가볍게 스킵해주신다. 왜냐면 로마에는 볼게 솔직히 너무 많다. 제대로 공부하고 오지 않으면 우리처럼 스킵하기 십상이다.

다음으로 캄피돌리오 광장과 궁을 다시 갔다. 인상이 깊었던 곳이지만 투어 막판이라 사진을 전혀 찍지 못했기 때문이다. 햇빛이 따가웠지만 추억이 될 사진을 생각하니 덥다고 느껴지진 않는다. 





마지막으로 로마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콜로세움을 다시 한번 가 보았다. 이번에는 멀리서 또는 가까이서 찬찬히 감상을 하고 그때 찍지 못한 사진도 또 찍다 보니 서서히 어둠이 오며 콜로세움이 조금씩 불빛이 들어온다. 이런 기회를 놓칠쏘냐!

어스름히 점점 파랗게 그리고 좀 더 새파랗게 진해지는 하늘 색깔이 맞춰 콜로세움의 불빛은 강해진다. 인터넷 사진에서 많이 보던 바로 그 장면이 연출된다. 나도 모르게 2시간 넘게 콜로세움 사진만 찍어대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완전히 어두워지고 나서야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서 밤늦은 로마의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으니 2주 전 처음 로마에 도착했을 때가 생각났다. 두렵고 걱정되고 설레던 그 느낌이 이제는 아쉽고 그립고 행복한 감정이 되어 나를 둘러싸고 있다.





역사와 문화의 도시 로마는 말 그대로 도시 전체가 하나의 큰 유적지임을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고, 그만큼 유지와 관리가 잘 되어있다. 비단 로마뿐만이 아니라 옛것을 소중히 할 줄 알고 문화를 지키며 자연을 보존하는 그들의 생활방식이 너무도 부럽다. 

이제는 경제가 최고 가치가 되어 자연을 파괴하고 개발만을 해대는 우리나라를 보며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지도층에 분노를 느낀다. 과연 언제쯤 문화와 자연의 소중함을 느끼게 될는지?


맥주 한 병을 마시고 어렴풋이 잠들었나 싶었지만 곧바로 알람이 울리고 벌써 새벽 4시 30분이다. 간단하게 씻고 테르미니역 앞에 가보니 이미 버스가 대기하고 있고 한 청년이 표를 끊어주고 있다. 버스에 올라타니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다. 1시간 정도를 달려 공항에 도착했는데, 아무리 돌아다녀도 티켓팅 하는곳을 모르겠다. 부족한 영어로 그곳을 지나가던 경찰에게 물었지만 그들도 의견이 분분하다. 이러다 비행기를 못 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결국은 찾아내서 티켓을 받아 들고 나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올 때는 아부다비에서 한번, 아테네에서 한번, 총 2번의 경유를 했어야 했는데 오히려 이게 좀 더 편했던 것 같다. 그리고 아테네 공항에서는 면세점에서 술과 먹을거리도 살 수 있어서, 로마에서 사지 못했던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게다가 인천으로 오는 비행기 편은 갈때와 달리 좌석이 3분의 1 정도 비어 오는 바람에 중앙의 4자리는 모두 우리 차지였다. 하지만 내 자리는 1자리요, 엄마는 3자리를 모두 차지하며 편안하게 올 수 있었다. 


이탈리아에 다녀온 지 벌써 2년 하고도 3개월이 지났지만, 그 이후로 엄마와 나는 부쩍 친해졌고, 아직도 가끔 술 한잔하며 그때 그 이야기를 나눈다. 여행을 같이하면 남게 되는 것은 다름 아닌 바로 기억과 추억의 공유인 것 같다. 

첫 유럽여행이었지만 너무도 특별했고 인상적이었던 이탈리아는 이제 나에게 제2의 고향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지금은 아파트 숲에 둘러싸여 있지만 언젠가 이곳을 벗어나 다시 한번 방문하기를 고대하며 길었던 7편의 이탈리아 여행기를 마무리한다. 



"Addio! Italia~!!"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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