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함은 치열한 노동이다.

by Tugboat

가만히 보면 착하고 선하게 사는 건 절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그냥 내버려 두면 우리는 잡초처럼 이기적인 마음을 불쑥불쑥 뻗어낸다.

신입사원 교육부터 높은 임원들의 윤리 교육까지, 회사에서 엄청난 돈과 시간을 들여 규정을 지키라고 강조하고 도덕을 가르치는 이유는 뻔하다. 인간의 기본 설정은 남을 돕는 게 아니라 철저하게 자기 자신부터 지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굳이 목소리 높여 정의를 따지지 않아도, 평범한 일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인간이 본래 악하다는, 아니 지독하게 이기적이라는 사실을 이미 본능적으로 안다.


회사나 비즈니스 현장에서 '신뢰'라는 단어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서로를 믿지 못하는 곳에서 쓰인다. 두툼한 계약서에 빼곡하게 적힌 불리한 조건들, 성과를 평가한다는 명목으로 만든 촘촘한 감시 장치, 그리고 법무팀의 깐깐한 확인 절차. 이 단단한 시스템들은 상대방이 언제든 자기 이익을 위해 나를 배신하거나 책임을 떠넘길 수 있다는 차가운 계산 위에 세워져 있다.




처음부터 선과 악을 똑 부러지게 나누는 절대적인 기준 따위는 없었다. 우리가 마땅히 지켜야 한다고 믿는 상식과 도덕은, 사회나 조직이 무너지지 않게 하려고 수많은 갈등을 겪으며 억지로 만들어 낸 꽤나 피곤한 규칙에 가깝다. 우리가 누군가의 조건 없는 호의와 책임감에 깊이 감동하는 진짜 이유는, 그것이 이기적인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대단히 부자연스럽고도 훌륭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냉정한 사실 앞에서 나는 과연 어디쯤 서 있을까. 20년 넘게 치열한 회사 생활을 하면서, 나는 남들의 이기심을 비웃고 회사의 문제점을 콕콕 짚어내는 똑똑한 관찰자인 척했다. 하지만 겹겹이 껴입은 가짜 어른의 겉옷을 벗겨내면, 그 속에는 한없이 쪼잔하고 속물적인 중년 남자가 웅크리고 있다.

결재 서류의 숫자 하나에 울고 웃고, 내게 책임이 돌아올 것 같은 일에서는 어떻게 빠져나갈지 도망칠 길부터 계산하던 치밀함. 동료가 크게 성공했을 때는 겉으로 너그럽게 박수를 쳐주면서도, 속으로는 질투심에 밤잠을 설치던 옹졸함. 남의 약점을 밟고 올라가 내 성공의 발판으로 삼아온 영악한 이기주의가 바로 내 진짜 얼굴이다.


어쩌면 나는 제대로된 어른이었던 적이 아예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저 사회생활을 하면서 큰 싸움을 피하려고 속마음을 들키지 않게 훈련된, 제법 능숙한 연기자였을 뿐일지 모른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얄팍한 이기심을 마주하는 일은 언제나 뼈아프고 부끄럽다.




실험실에서 쓰는 정밀한 저울은 매일 아침 눈금을 '0'으로 맞추는 작업을 해야 한단다. 미세한 온도 변화나 공기의 흐름, 어제 올려두었던 물건의 아주 가벼운 무게만으로도 저울은 금세 균형을 잃고 눈금이 틀어지기 때문이다. 인간이 도덕을 지키고 착한 마음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도 이것과 꼭 닮았다.


한 번 큰 깨달음을 얻거나 높은 자리에 올랐다고 해서 영원히 훌륭한 인격이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가만히 두면 매일 자기 합리화와 욕심 쪽으로 기울어버리는 마음의 눈금을, 매일 아침 부끄러움을 참고 억지로 끌어당겨 '0'에 맞춰놓으려는 피곤하고 반복적인 노력. 선하다는 것은 가만히 있어도 유지되는 명사가 아니라, 이기적인 본성을 거스르기 위해 평생을 바쳐 움직여야 하는 지독하게 인위적인 동사다.




50대의 길목에서, 인간이 본래 이기적이라는 사실은 오히려 묘한 위로와 해방감을 준다. 이건 다른 사람과 세상을 향한 부정적인 포기가 아니다. 오히려 사람에 대한 기대치를 한껏 낮추고, 부족하고 불완전한 우리 삶을 있는 그대로 안아주게 만드는 따뜻한 시선이다. 치열한 경쟁에 지치고 앞뒤가 다른 인간관계에 질려버린 사람들이 있다면, 완벽하게 착할 수 없는 나와 남의 한계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부터 다시 시작해 보라 권하고 싶다.


내 안의 쪼잔함을 매일 마주하며 묵묵히 마음의 눈금을 '0'으로 맞추려 애쓰는 그 처절한 발버둥 자체가, 어쩌면 나이 들어가는 과정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치열하고 아름다운 예술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부디 세상의 이기심에 쉽게 상처받아 차갑게 돌아서기보다는, 나와 당신의 부족함을 그저 서툰 눈금 조절의 과정으로 너그럽게 바라봐 주면 어떨까. 매일 조금씩 어긋나는 서로의 마음을 가만히 토닥이며, 야만적으로 살지 않기 위해 고단한 하루를 버텨내는 서로의 굽은 등을 다독이는 것. 그렇게 묵묵히, 그리고 다정하게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시간을 함께 걸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선함은 타고나는 체질이 아니라,
매일 아침 이기심의 무게를 덜어내며
억지로 마음의 눈금을 '0'에 맞추는 치열한 노동입니다."
월요일 연재
이전 15화새벽 두 시의 질문: 당신의 '선'은 정말 안녕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