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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튤립 Apr 21. 2021

차였을 땐 비빔밥을 먹는 거야.

비빔밥: 부조화 속의 조화로움에 대하여


 냉장고의 반찬통을 몽땅 꺼낸 여주인공은 커다란 양푼에 밥을 펐다. 그녀는 다이어트 중이었지만 그 날은 그런 것들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직장도 그만둔 마당에 뭐가 신경이 쓰이겠는가. 남아있는 반찬을 다 때려 넣고 고추장까지 듬뿍 떠서 야무지게 비비며, 그녀는 비빔밥을 안주삼아 소주를 마셨다.


 "엄마, 슬플 때는 비빔밥을 먹는 거예요?"

 "응, 그런 날이 있어."

 "엄마, 나는 슬프진 않은데 저거 보니까 비빔밥 먹고 싶어요."

 "이거 다 끝나고 먹자."


 드라마를 보며 묻는 내게 조금 붉어진 눈을 한 엄마는 대답했다. 분위기 깨는 초딩의 질문에도 엄마는 성의 있게 대답해주셨다. 그런 부모님의 옆에 앉아, 아직 나에게는 어려운 어른들의 이야기를 열심히 시청했다. 그 이후로도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종종 양푼 비빔밥이 등장했다. 주로 주인공이 화가 나거나, 슬픈 일이 생기면 어김없이 비빔밥을 비볐다. 고추장도, 참기름도 잔뜩 두르고, 꼭 한 입 가득 떠서 입에 넣는 주인공들을 보면서,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비빔밥이 슬픔을 치유해 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시간이 훌쩍 흐른 후였다. 타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하루 종일 업무에 시달리다가 돌아온 불 꺼진 자취방은 스산했다. 아르바이트 한 번 해보지 못해 보고 갑자기 시작한 직장생활은 고됐고, 매일매일이 전쟁 같았다. 캄캄한 방을 멍하니 보고 있자니 문득 외로움이 밀물처럼 나를 덮쳤다.


 요리를  기운도 없고, 라면을 먹자니 서럽고, 배달음식도 지겹고, 나가기도 귀찮고, 일단 냉장고를 열었다.


 본가에서 챙겨온 반찬통을 몽땅 꺼내고, 고추장과 참기름도 준비했다. 양푼이 없어서 냄비를 꺼내 들고, 밥을 퍼서 넣었다. 조금 이상한 조합이긴 했지만 모든 반찬을 조금씩 덜었다. 고추장은 듬뿍, 참기름도  바퀴나 두르고 열심히 비볐다.


 볼이 미어터져라 밥을 집어넣고 씹었다. 맛있다. 안 어울릴 것 같은 재료들이 한데 어우러져 술술 넘어갔다. 매콤한 고추장 맛에 스트레스가 풀렸다. 들어있는 무말랭이를 오독오독 씹으며, 오늘 있었던 일들도 그냥 씹어 삼켜버렸다. 이래서 그 주인공들은 비빔밥을 먹었구나. 차였을 때도, 싸웠을 때도, 짤렸을 때도.


 비빔밥을 거의 다 먹었을 무렵,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퇴근했니?"

 "엄마, 나 양푼 비빔밥 먹는다."

 "우리 딸 고생이 많구나."

 "괜찮아. 아빠는 뭐하세요?"

 "피곤하신지 일찍 주무시네."

 "엄마도 너무 무리하지 말고 얼른 주무셔요."

 "너도 얼른 자. "

 "네, 안녕히 주무세요. 주말에 봐요."


 엄마는 기억하고 계셨던 걸까? 비빔밥 먹는다고 한 마디만 했을 뿐인데, 내 마음이 어떤지 너무 쉽게 들켜버렸다. 순식간에 눈물이 차올랐지만, 그래도 꾹 참고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나는 냄비를 부여잡고 혼자 엉엉 울어버렸다. 작은 밥그릇이었다면 아마 제대로 쥐고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래서 주인공들은 양푼에 밥을 비볐구나. 한참을 울고 나니 한 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잔뜩 부은 눈으로 설거지를 했다. 빨간 양념이 씻기듯, 슬픔도 씻겨나갔다. 내일은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드라마의 여주인공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비빔밥을 먹었으니까, 해피엔딩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중얼거리며 잠들었다.


 비빔밥은 상처를 치유해준다. 힘든 일도 싹싹 비벼버리고, 어려운 일들도 꿀꺽 삼켜버릴  있게  준다.



한밤중에 양푼 비빔밥을 먹으며, 나는 조금 더 어른이 되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인 비빔밥은 그 조리법이 간단하고 다양한 재료를 활용할 수 있어서 인기가 많다. 기본적으로 밥에 각종 채소와 고기를 넣고 양념장에 비벼 먹는 음식이다.


 집에서 먹을 때는 보통 냉장고에 있는 나물 반찬류를 활용하는 경우가 가장 많지만 제대로 준비하려면 각종 재료를 채 썰어 볶는 등 손이 많이 간다.


 선조들부터 즐겨 먹었던 비빔밥에 대한 내용은 16세기 문헌에도 등장하며, 제사를 지내고 남은 나물을 밥에 비벼 먹거나 했다는 기록도 존재한다. 양념으로는 주로 고추장을 넣지만 매운 음식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간장을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주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할 때 간장 비빔밥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비빔밥은 전 세계에서 인기가 많은데 인기의 비결은 일단 재료의 다양성이 있다. 건강, 웰빙을 중시하는 요즘 글로벌 트렌드 상 비빔밥은 최적의 음식이 아닐 수 없다. 각종 채소를 활용하고, 밥도 흰쌀뿐만 아니라 현미, 흑미, 렌틸콩, 퀴노아 등을 활용하여 좀 더 건강에 신경 쓸 수 있다.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서 완전 비건(완전 채식) 음식으로 만들 수도 있고, 달걀 프라이와 치즈를 얹어 락토 오보(달걀, 유제품까지 허용하는 채식)로 만들 수도 있다. 원하는 재료를 골라 넣을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고객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궁극의 음식인 것이다.


 게다가 보기에도 좋다. 색색의 재료를 둘러 담아 무척 화려한 비주얼은 낯선 외국 음식을 접하는 사람도 혹하게 된다. 대부분의 한식당에서는 비빔밥을 판매하고 있으며, 한국 음식을 외국에서 판매하는 모 방송국의 프로그램에도 비빔밥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일등공신이다.



전주비빔밥(2인분)


<재료>

- 밥 2공기

- 달걀 2개

- 시금치 적당량

- 콩나물 적당량

- 당근 1/4개

- 애호박 1/4개

- 고사리 한 줌

- 도라지 한 줌

- 소고기 100g (다지거나 간 것으로 준비)

- 소금 적당량

- 간장 적당량

- 참기름 적당량

- 다진 마늘 1큰술(나물용) + 1작은술(양념장용)

- 참기름 적당량

- 깨 적당량

- 고추장 2큰술

- 설탕 혹은 올리고당 1큰술


<만드는 법>

- 소고기에 간장 2큰술, 다진 마늘 반 큰술, 참기름 한 큰술로 간을 하고 30분 이상 재운다.

- 시금치(30초), 콩나물(2분), 고사리(5분 이상), 도라지(2분)를 끓는 물에 데친다. 색깔이 바래지 않게 주의한다. 건져낸 재료 중 시금치와 콩나물은 간장, 다진 마늘, 소금, 참기름을 넣고 무친다.

- 도라지와 고사리는 팬에 소금과 참기름을 넣고 볶는다.

- 당근과 애호박도 채 썰어서 소금과 참기름을 넣고 볶는다.

- 고추장 2큰술, 다진 마늘 1작은술, 올리고당 1큰술을 섞어 양념장을 만든다.

- 계란 프라이는 반숙으로 준비한다.

- 밥 위에 빙 둘러가며 준비한 재료를 얹고 가운데에 계란프라이를 얹어준다.

- 양념장, 참기름과 함께 내면 완성이다.



 뭐니 뭐니 해도 비빔밥은 냉장고 비빔밥이 최고인 것 같다. 요리하기 귀찮은 날, 아니면 반찬들이 애매하게 남은 날, 커다란 양푼을 꺼내고 비빔밥을 만들어보자. 여러분도 비빔밥을 먹으면 행복해질 수 있다.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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