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 한국인의 소울푸드에 대하여
초등학생 시절, 학교가 끝나면 정문으로 나가는 것이 집에 훨씬 빨리 갈 수 있는데도 일부러 후문으로 돌아가곤 했다. 학교 뒤 분식점엔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는 참새들이 무척 많았고, 나도 그중 하나였다. 담임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나면 수많은 학생들이 자기만 한 가방을 등에 메고 학교 뒤쪽으로 난 문으로 달렸다.
고학년 언니 오빠들은 다행히도 끝나는 시간이 달랐기 때문에 전투는 수월한 편이었다. 적당히 무리와 섞여 들어가서 줄을 서면 주인아주머니가 살갑게 맞아주셨다. "뭘 줄까?"라고 물으시면 나는 뒤에 기다리는 친구들의 눈치를 보며 재빨리 메뉴를 골라야 했다.
금방 튀겨주는 새콤달콤한 소스를 바른 떡꼬치도 좋았고, 밀가루가 폭신하게 부푼 핫도그도 좋았다. 케첩을 잔뜩 뿌려주는 피카츄 돈가스를 먹을지 아니면 옹기종기 귀여운 메추리알 꼬치를 먹을지 고민을 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나의 대답은 "컵볶이 주세요!"였다. 철판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떡볶이를 지나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그러면 아주머니는 여름이면 슬러쉬 잔이 되는 길쭉한 종이컵에 넉넉하게 떡볶이 개수를 세어 담으시곤 위에 어묵 조각을 몇 개 얹어주셨다. 소스까지 말끔하게 닦아내고 길쭉한 꼬치를 꽂아내면 나는 작은 지갑에서 오백 원짜리를 하나 꺼내 아주머니의 왼손에 건네고, 넘칠 듯 담겨있는 컵을 받았다.
분식집 문 앞에 길게 놓여있는 벤치에는 다들 손에 무언가를 든 초등학생들이 나란히 앉아있었다. 그들은 서로 아는 사이기도 했고, 모르는 사이기도 했다. 그래도 사이좋게 앉아 각자 산 간식들을 먹었다. 보들보들한 밀떡은 조금만 씹어도 꿀꺽꿀꺽 잘 넘어갔다. 매워서 콧물이 나도 좋았다.
옆의 친구가 먹는 순대 꼬치가 맛있어 보여서 다시 분식집으로 들어가는 친구도 있었고, 다른 친구가 국물이나 소스를 흘리기라도 하면 가져온 티슈를 건네는 다정한 친구도 있었다. 가게 앞은 언제나 부산스러웠지만, 그래서 활기찼다.
오백 원짜리 한 개면 출출했던 배를 채우고 씩씩하게 집에 갈 수 있었는데, 요즘 학교 근처에 가보면 컵볶이를 파는 곳조차 드물고(이젠 인분으로 파는 경우가 많다) 사이즈마저 작아진 컵볶이의 시세는 천 원이 되었다(피카츄 돈가스도 천 원이다). 심지어 집에서 시켜 먹는 배달 떡볶이는 기본으로 만원을 훌쩍 넘어가는 세상이 왔다. 2021년의 꼬마들은 코로나19 때문에 떡볶이를 나눠 먹기는커녕 학교에 잘 가지도 못하니, 학창 시절의 추억과 낭만을 찾는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떡볶이는 비빔밥, 양념치킨, 김밥, 삼겹살과 함께 나만의 K-푸드 5대 천왕 중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인이라면 아마 떡볶이와 관련된 추억이 없는 사람을 찾는 것이 더 어려울 것이다. 어릴 적 엄마 손 붙잡고 갔던 시장에서 먹었던, 직장에서 속상한 일이 있었을 때 제일 매운맛으로 시켜 먹었던, 학교 시험 끝나고 우르르 친구들과 가서 먹었던, 각자의 이야기는 다르겠지만 마음속에 매콤달콤하게 자리 잡은 떡볶이의 추억은 모두가 같지 않을까?
떡과 미나리, 무, 송이와 도라지 같은 다양한 채소를 간장에 볶아내는 '궁중떡볶이'의 역사는 조선 시대부터 오래되었지만, 우리가 흔히 접하는 빨간 떡볶이의 역사는 채 100년이 되지 않았다. 1953년, 마복림 할머니가 짜장면에 떡을 떨어트린 순간에서 고추장 떡볶이의 스토리가 시작된다. 짜장에 빠진 떡을 건져서 먹어보니 의외로 너무 맛있었던 것. 느끼함을 잡기 위해 춘장에 고추장을 섞은 소스를 개발한 할머니는 연탄불에 특제소스를 넣고 떡을 볶아 먹는 레시피를 완성한다.
노점에서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가는 떡볶이는 점점 전국으로 퍼졌고, 1970년대에 라디오 방송에서 신당동 떡볶이 골목이 소개되며 그 인기는 하늘을 찌르게 된다. 조리법이 간단하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 때문에 국민 간식 자리를 차지한 떡볶이는, 뭉근하게 끓여낸 철판 떡볶이뿐만 아니라 직접 조리해 먹는 즉석떡볶이, 전자레인지에 돌려먹는 인스턴트 떡볶이, 원하는 재료를 골라 만드는 떡볶이 뷔페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즐길 수 있다.
고추장, 간장 외에도 현재는 짜장떡볶이, 치즈떡볶이, 로제 떡볶이, 크림 떡볶이 등 다양한 소스가 개발되어 소비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고 있으며, 라볶이, 쫄볶이, 차돌박이 떡볶이, 곱창볶이 같이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서도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다. 배달 떡볶이는 어묵 외에도 돈가스, 비엔나소시지, 중국 당면, 만두, 튀김, 치즈볼 등을 토핑으로 골라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인기가 많다.
추억의 옛날 떡볶이(2인분)
<재료>
밀떡 또는 쌀떡 200g
납작 어묵 2장
대파 약간
물 2컵
고운 고춧가루 1큰술
고추장 3큰술
물엿 4큰술
간장 1큰술
식용유 반 큰술
(+MSG 넣고 싶으면 약간)
<만드는 법>
떡은 미리 찬물에 약간 불려주면 더 말랑말랑하게 먹을 수 있으나 생략해도 괜찮다.
어묵은 한입 크기로 썰어주고 대파도 어슷썰기 해 준비한다.
- 식용유를 냄비에 두르고 고추장, 고춧가루, 물엿, 간장을 넣고 타지 않게 약한 불에서 잘 저어준다.
- 달콤한 냄새가 올라오면 물을 한 컵만 붓고 소스를 끓인다.
- 떡을 넣고 소스가 잘 밸 수 있도록 버무리듯 볶아준다.
- 팔팔 끓으면 물을 한 컵 추가하고 어묵과 파를 넣는다.
- 원하는 농도가 될 때까지 끓여주면 완성이다.
*라볶이나 쫄볶이가 먹고 싶다면 어묵을 넣는 타이밍에 미리 끓여서 건진 사리를 넣고 3분 정도 익히면 된다.
*중국 당면은 불리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따뜻한 물에선 최소 2시간, 찬물에서는 6시간 이상 불린 후 넣어야 맛있게 먹을 수 있다.
*국물떡볶이를 원한다면 저기에 물만 한 컵 더 넣어주면 된다.
이젠 떡볶이를 먹으려면 오백 원이 아니라만 오천 원이 필요한 시대가 오긴 했지만, 직접 재료를 사서 만들어 먹으면 훨씬 저렴하고 추억의 맛도 느낄 수 있다. 바닥이 두꺼운 냄비를 이용하여 천천히 오래 끓이는 것이 맛의 관건이다. 물론 MSG도 한몫하므로 넣어주면 진짜 그때 그 맛을 느낄 수 있다. 이번 주말에는 매콤달콤한 떡볶이와 함께 시간여행을 떠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