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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튤립 Jul 05. 2021

소주가 마시고 싶은 밤엔!

회: 인류가 가장 오랜 시간 동안 먹어온 날 것에 대하여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는 나의 물음에 A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딱 한 글자로 대답했다.

      "회."

 왜 하필 그 메뉴를 가장 좋아하냐고 묻는 것은 무의미했다. A는 애주가였다. 맛있는 회와 함께라면 쏘주가 술술 넘어간다고 말했던 어느 봄날이 떠올라 나는 혼자 가만히 웃었다. 우리의 만남이 저녁이라면 절반 이상은 해산물과 함께했던 이유가 여기 있었군!


 A는 튼튼한 간을 가진 덕인지 운동으로 다져진 체력 덕인지 주 7일을 술을 마셔도 멀쩡했다. 혼자서도 자기 전에 맥주 한 캔을 마시는 그를 보고 나는 알코올 의존증 아니냐고 놀리곤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두말할 것도 없이 약속 장소는 일식집으로 당첨. 촉촉한 숙성 회가 먹고 싶다는 말에 맛집 담당인 나는 온갖 SNS를 뒤져 그럴듯한 식당을 고른다. 몇 개의 후보군 중에 컨펌을 받은 강남의 한 이자카야를 예약한다.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우리는 모둠회 앞에 자리했다. 술을 마시지 않는 나는 물로, A는 처음 보는 일본주로 천천히 잔을 채웠다. "그거 그렇게 혼자 따르면 앞에 앉은 사람이 3년 재수 없대. 나 어떡해?" 내 물음에 그는 술도 못 마시면서 어디서 그런 이상한 미신을 배워왔냐고 묻는다. 원래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이 이론에 충실한 거라고 대답하고 잔을 맞부딪친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반가운 마음이 찰랑거린다.


 무거운 도자기 접시 위에는 이름을 알고 있는 생선부터 모르는 생선까지 낱낱이 해체되어 도톰하고 얇은 꽃잎 모양으로 무채 위의 짧은 기다림을 견디고 있었다. A는 살짝 데친 껍질이 붙어있는 도미를 한 점 집어 입에 넣었다. 나도 똑같은 걸 먹을까 하다가 제일 좋아하는 것부터 먹자 싶어 연어를 접시에 덜었다. 배꼽살인지 연한 주홍빛 사이사이로 하얀 지방이 줄무늬를 그리고 있었다. 간장을 찍는 젓가락질은 신중해야 한다. 너무 많아도 적어도 안 되기 때문에. 달짝지근하면서도 짭조름한 간장과 코끝이 찡해지는 와사비, 입안에 퍼지는 연어의 부드러운 촉감에 절로 입가가 누그러졌다.


  흔히 '쓰키다시'라고 불리는 곁들임 음식으로는 생선구이부터 생새우 회까지 다채로웠다. 바다 맛이 물씬 풍기는 성게알을 음미하는 A의 눈썹이 여덟 팔을 그린다. 즐거워하는 모습에 내 몫까지 먹으라고 슬쩍 밀어주었다. 아주 오랜만에 다시 만난 우리는 그간 있었던 일들에 대해 주고받으며 서로에 대해, 주변에 대해, 세상에 대해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참치회 한 점에 A의 이상한 직장 동료와, 연어회 한 점에 나의 취미생활과, 광어회 한 점에 우리의 학창 시절이 지나갔다.


"너 그때 자율학습 빠지고 막 도망갔잖아."

"사람이 일탈을 좀 해야지, 너처럼 네모난 칸 안에서만 살면 재미가 없어."

"그건 그래."

"가끔 횟집 중에 그런 데 있잖아. 눈 깜박거리는 생선 머리랑 같이 나오는 그런 데, 생선한테 너무 미안해서 나는 항상 상추로 눈을 덮어줬어. 마음이 너무 아픈 거야."

"그래서 안 먹었어?"

"아니! 잘 가리고 열심히 먹었지!"


 청량한 웃음소리가 작은 방을 울렸다. 맛있는 회와 술이 함께 있다면, 갑자기 주제가 바뀌는 의식의 흐름 같은 대화에도, 아주 시답잖은 농담에도 즐거워지나 보다. 접시는 조금씩 비어 가고, 밤은 깊어가고, 잔은 찰랑거리고, 좋은 사람과 함께 있고. 아름다운 시간이다.



 회는 인류가 가장 오랜 시간 동안 먹어온 음식 중 하나이다. 사냥, 어로, 채집 등을 통해 식량을 충당하던 구석기의 인간들은 처음엔 불을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잡은 생선을 날로 먹었을 것이다.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지금까지도 흔하게 접하는 음식이지만, 날 고기를 먹는 것에 혐오감을 가지는 나라들도 꽤 많아서 회 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일반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위의 두 나라를 제외하고는 대만이나 홍콩, 마카오 같은 바다와 인접한 국가에서 회무침, 새우 회 같은 요리가 인기가 있으며 유럽 국가 중에선 이탈리아 사람들이 얇게 썬 날생선을 양념에 절인 카르파쵸 등을 즐긴다.


 회 문화의 양대 산맥이라 불리는 한국식 회(활어회)와 일본식 회(선어회)를 비교해보자면, 둘 다 생선이 살아있는 채로 회를 뜨는 것은 동일하나 활어회는 회를 뜨고 바로 먹고 선어회는 냉장고에서 일정 시간을 숙성해서 먹는 것이 다르다. (다시마 등을 이용해서 재우는 경우도 있다) 또한 한국에서는 회를 주로 초고추장, 쌈장, 된장, 마늘장 등과 함께 먹는 편이며, 일본은 압도적인 비율로 와사비 간장에 찍어 먹는다. 회덮밥 같은 경우에도 한국은 생선과 야채를 함께 섞어서 초고추장 양념에 비벼 먹는 회덮밥이 발달해 있고 일본은 생선 재료를 밥 위에 얹어 간장에 찍어 먹는 카이센동이 주류를 이룬다. 하와이로 이주한 일본인들이 만든 포케(깍둑썰기한 생선회, 아보카도가 올라간 덮밥)도 섞어 먹기보다는 밥과 재료를 따로 먹는 편이다.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인간은 날 생선을 먹는다. 활어회는 산뜻해서 먹고 선어회는 쫀득해서 먹는다. 든든한 회덮밥도 좋고 새콤한 초무침도 술술 넘어간다. 날 것이 먹고 싶은 날, 가까운 횟집에 가자고 아끼는 사람에게 연락해보는 것이 어떨까.

 


 집에서 먹는 연어회(2인분)


<재료>

 - 생연어 500g

 - 굵은소금 많이

 - 다시마

 - 얼음+물

 - 청주 한 컵


<만드는 법>

 - 마트에서 판매하는 냉장 연어를 구입한 후 차가운 소금물에 5분 정도 담근다. (레몬즙을 섞어도 좋다)

 - 건져낸 연어는 물기 제거 후 앞뒤가 하얗게 될 정도로 굵은소금을 뿌려 냉장고에서 30분 정도 염지 한다.

 - 염지가 진행되는 동안 다시마를 청주를 섞은 물에 담가 불린다.

 - 연어의 소금을 털어내고 다시 한번 얼음물에 씻어낸 뒤 물기를 제거한다.

 - 불린 다시마에 연어를 싸서 냉장고에서 3시간 이상 숙성한다.

 - 쫀득해진 연어를 반으로 갈라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낸다.

 


집에서 가장 간단하게 먹기엔 가시가 모두 제거된 연어회가 좋다. 와사비 간장이나 초장에 찍어먹어도 좋고 크림소스에 케이퍼를 곁들여도 근사하다. 저렴하고 푸짐한 한 상을 원한다면 당장 마트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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