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 패스트푸드와 슬로푸드 그 어딘가에 대하여
좋아하는 음식을 물었을 때 햄버거라고 대답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농담을 한 줄 안다.
닭갈비나 된장찌개같이 뭔가 진짜 '요리'라고 생각하는 메뉴를 대답하라고 하면 나는 또 말한다.
"햄버거가 왜요? 햄버거는 완전식품인데요."
번(빵)에 있는 탄수화물, 패티와 치즈에 있는 단백질, 각종 야채에 들어있는 무기질과 비타민까지 얼마나 완벽한 음식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지만 이렇게 이야기해도 사람들은 내 유머감각을 칭찬하며 빨리 '진짜' 좋아하는 음식을 말하라고 한다. 구구절절 설명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왜 이렇게 햄버거는 폄하되는 음식인지 모르겠다. 아마 그들은 정말 맛있는 햄버거를 먹어보지 못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혹은 건강에 나쁘다고 생각해서일지도 모르고.
나의 햄버거에 대한 사랑은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해의 여름은 어쩌다 보니 샌디에이고에서 보내게 되었는데 도착한 다음 날 친구 H가 나를 빨간 간판의 햄버거 가게에 데려갔다. '인 앤 아웃'이었다.
시차 적응도 제대로 못했는데 처음 먹는 외식이 이런 패스트푸드라니. 그때의 나는 햄버거가 영 반갑지 않았다. 이름부터 느끼한 더블더블 버거(패티와 치즈가 두 장씩 들어간다)와 애니멀 스타일 프라이(대체 감자튀김이 동물스러운 게 뭐란 말인가?), 바닐라 셰이크까지 깨알같이 시키는 그녀를 그저 꺼림칙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하지만 햄버거를 한 입 베어 문 순간, 나는 왜 이걸 어제부터 먹지 않았나 후회했다. 부드러운 패티에선 육즙이 흘러나왔고, 잘 익은 양파는 달콤했으며, 진한 치즈는 고소하고, 신선한 양상추와 토마토는 아삭거렸다. 보통 햄버거에서 존재감이 흐린 번도 한쪽은 바삭하고 한쪽은 촉촉하게 구워져 나머지 재료들과 어우러지고 있었다. 순식간에 반을 먹어치운 내게 친구는 감자튀김을 내밀었다. 생감자를 오늘 썰어서 튀긴 거란다.
특제 스프레드와 치즈, 익힌 양파가 얹어진 감자튀김은 입에서 살살 녹았고 바닐라 셰이크에 찍어먹으면 이 세상 스트레스가 다 풀리는 것 같았다. 예상외로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고 음식점 문을 나서며 나는 친구에게 선언했다. "나, 햄버거 투어를 하고 싶어!"
그 이후로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햄버거를 찾아 나섰다. 웬디스, 잭 인 더 박스, 해빗 버거 같은 체인점부터 유명한 개인 햄버거 전문점까지(샌디에이고에서는 오션 비치에 있는 호다즈를 추천한다) 한 달 동안 삼일에 한 번꼴로 햄버거를 먹었다. 매 끼니마다 1000칼로리를 육박하는 식사에 기함을 했지만 아침저녁을 가벼운 음식들로 채우며 강행군을 이어갔다.
3대 버거 도장깨기를 위해 한국에 돌아와서는 셰이크 쉑 버거를 찾았고, 미국 동부에는 갈 수 없어서 영국 여행길에 겨우 파이브 가이즈 버거를 먹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개인 전문점을 찾아다니다가 최애 햄버거 가게도 생겼다. 노란 친구가 눈물을 흘리고 있는 간판이 인상적인 삼성동의 C 음식점인데(이 곳은 인 앤 아웃 버거와 90% 싱크로율을 자랑한다) 나만 알고 싶어서 진짜 소중한 사람만 데려간다. 물론 버거 러버들에겐 이미 유명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햄버거가 먹으면 살찌고 건강에 좋지 않은 음식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고, 그저 바쁠 때 대충 때우는 맛없는 음식이라고 기억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좋은 햄버거는 나름 괜찮은 음식이다. 심지어 맛있다! 매일 먹으면 '슈퍼사이즈 미'처럼 될지도 모르지만 한 끼 정도는 괜찮다. 햄버거를 먹는 것에 너무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챙겨 먹는 나 같은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나는 비만도 아니고, 그 어떤 성인병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니 걱정 마시라.
햄버거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자면 13세기 몽골에서 날고기 조각을 안장 아래에 넣어 가지고 다니며 부드럽게 만들어 먹었다는 것에서 시작한다. 몽골제국이 유럽으로 진출하면서 러시아부터 이 방식이 점점 퍼져나갔고, 17세기 즈음엔 독일에서도 다진 고기를 부드럽게 만들어 먹었다. 1747년에 독일의 유명한 항구도시인 함부르크에서 처음으로 햄버그 소시지가 요리책에 소개가 되었고, 1840년대 독일인들의 대거 미국 이주 후 1873년에는 뉴욕의 델모니코스 레스토랑 메뉴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물론 이때의 모양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함박스테이크 형식의 다진 고기 스테이크였다.
몇 년 뒤에 뉴욕주와 위스콘신주의 지역 박람회에서 빵 위에 고기를 얹은 패티 온 어 번(patty-on-a-bun)이 소개되었고 1904년 세인트 루이스 세계 박람회에서 플레처 데이비스가 번 사이에 양파와 패티를 넣어 판 것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1916년에 햄버거 전용 번이 개발되고 난 뒤에는 각종 햄버거 체인점이 생기기 시작하며 지금의 인기 메뉴인 치즈버거 등이 개발되었고 햄버거는 전 세계로 퍼져나가게 된다.
아주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오늘은 1948년에 창립된 '인 앤 아웃 버거'의 레시피를 공개한다. 그것도 애니멀 스타일로 준비했다. 만드는 과정은 꽤 까다롭지만 그래도 캘리포니아의 맛을 느끼고 싶다면 도전해보길 바란다.
인-앤-아웃 더블더블 버거 (2인 분량)
<재료>
- 지방이 풍부한 쇠고기 250g 깍둑썰기 해서 준비(혹은 간 고기로 준비)
- 식용유 2 티스푼
- 잘게 썬 양파 1개
- 소금, 후추 약간, 설탕 0.5 티스푼
- 마요네즈 2.5 테이블스푼
- 케첩 1 테이블스푼
- 피클 렐리쉬(다진 피클) 2 티스푼
- 화이트 식초 0.5 티스푼
- 길게 썬 피클 8조각
- 두껍게 썬 토마토 2조각
- 양상추 (흰색 부분 빼고 연두색 부분만)
- 미국식 머스터드 1/ 4컵
- 햄버거용 번 2개
- 아메리칸 치즈 4장(그냥 한국식 가벼운 체다 말고)
<만드는 법>
- 고기를 베이킹 쟁반에 조각조각 떼어 펼쳐 놓고 10분 정도 냉동실에 넣어 고기가 단단해질 수 있도록 한다.
- 분쇄기에 고기를 갈아준 뒤(분쇄기 날도 차갑게 하는 것이 좋다) 고기를 큰 그릇에 담아 냉장실에 넣는다.
-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한 스푼 넣고 양파를 넣은 뒤 약불에서 갈색이 될 때까지 볶아준다. 중간에 좀 건조해 보이면 물을 1큰술씩 추가해준다. 보통 15분 정도 볶으면 된다.
- 소스를 위해 케첩, 마요네즈, 렐리쉬, 설탕, 식초를 작은 그릇에 섞어준다.
- 200℃로 예열한 오븐에 번을 반으로 갈라 2분간 구워준다. 아랫면의 테두리가 살짝 어두워지면 완벽하다.
-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반 스푼 둘러준 후 번을 앞 뒤로 뒤집어가며 1분 정도 굽는다
- 갈아놓은 고기에 소금과 후추로 충분히 간을 하고 네 덩이로 나눠서 패티를 만들어준다. 가운데 부분을 살짝 눌러서 움푹 파이게 만들어야 나중에 패티가 부풀어도 모양이 예쁘다.
- 남은 식용유를 팬에 두르고 중불에서 살짝 연기가 올라올 때까지 팬을 달구고 패티를 얹어준다. 충분히 익을 때까지 뒤집지 말고 아랫면이 갈색이 될 때까지 2분 30초-3분 정도 익힌다.
- 한쪽 면이 익는 동안 패티의 다른 쪽 면에 머스터드를 한 큰 술 발라주고 뒤집어서 1분 이상 충분히 익힌다.
- 번 양쪽 면에 소스를 바르고 아래 번에 피클 4조각, 토마토 1조각, 양상추 순으로 쌓는다.
- 패티 위에 바로 치즈를 얹어준다. 그리고 익힌 양파를 얹은 뒤 패티-치즈-양파-패티-치즈의 순서로 쌓아 빵 사이에 끼운다. 더블더블이 부담스럽다면 패티-치즈-양파만 해도 괜찮다.
- 무너질 것 같다면 종이 포일로 싸거나 이쑤시개로 고정하면 완성이다.
위의 레시피는 더블더블로 2인 분량이지만 그냥 치즈버거로 만들면 고기와 치즈를 절반 분량으로 준비하면 된다. 혹은 야채와 빵을 2배로 늘려서 4인이 즐겁게 먹어도 좋다. 만약 만들기 귀찮다면? 오늘 점심은 근처의 노란 간판이나 파란 간판, 혹은 빨간 간판의 햄버거 가게에서 보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