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튤립 Feb 19. 2021

빵순이가 빵을 끊었다

식빵: 어디에나 어울리는 무던함에 대하여


빵순이인 내가 빵을 끊은 지 어언 나흘째, 눈 앞에는 오만가지의 빵이 동동 떠다닌다. 왜 빵을 안 먹고 있냐고 묻는다면 연말이라는 이유로, 연초라는 이유로, 날씨가 좋다는 이유로, 날씨가 안 좋다는 이유로 매일매일 케이크와 각종 구움 과자류를 잔뜩 먹어서 그런지 얼굴에 뾰루지가 났기 때문이다. 아마 스트레스나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걸 지도 모르겠지만, 일단은 밀가루를 좀 줄여보자는 마음에 빵을 끊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문제는 나의 정신 상태였다. 평소 같으면 아주 온화하고 해맑았으련만 지난 삼 일간은 저기압에 얼굴은 죽상을 하고 돌아다녔다. 빵과 단 음식을 안 먹는다고 사람이 이렇게 슬프고 암울할 수 있나? 있다. 그냥 모든 것에 짜증이 나고 사소한 일에도 인내심이 바닥을 친다. 아마 나 같은 사람을 탄수화물 중독자 혹은 당 중독자라고 명명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스스로와 타협을 했다. 작심삼일은 지켰기 때문에 나름 내가 기특하고, 기특하기 때문에 상을 줘야 한다고 자기세뇌를 한 것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빵 한 조각을 먹기로 결심했다. 한 조각밖에 먹을 수 없으니, 무엇을 먹을지 고르는 일은 아주 신중해야 했다.

 

딸기가 올라간 보드라운 생크림 케이크를 먹을까? 버터가 잔뜩 들어간 고소한 스콘을 먹을까? 아니면 통팥이 들어간 앙버터? 완두콩과 옥수수가 옹기종기 올라가 있는 치즈 소시지빵? 하나하나 떠올릴수록 고민은 깊어졌다. 아마 팀원들은 내가 새로 맡은 프로젝트 때문에 고심하는 줄 알고 있겠지만, 나는 하루 종일 대체 무슨 빵을 먹어야 만족스러울지 머릿속의 수많은 나와 싸우는 중이었다.


퇴근할 때까지도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그냥 제과점에 가볼까 하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딱 한 개만 먹을 수 있는데 금방 구운 빵이 아니라니 너무 아쉬웠다. 고민을 하다가 결국 하루 더 약속을 지켜버린 나는, 우울한 다리를 질질 끌며 침대로 향했다. 자려고 누운 순간, 머릿속에 의외의 주인공이 떠올랐다. 화려한 페이스트리도, 케이크도 아닌 바로 식빵. 어디에나 어울리는 식빵이라면, 나의 고민을 해결해줄 것만 같았다.


금방 구운 통식빵을 손으로 뜯어서 꿀을 찍어 먹어도 맛있고, 아니면 아보카도랑 계란 프라이를 얹어서 오픈 토스트를 만들어도 근사하다. 카야잼을 발라서 계란 간장에 찍어먹는 것도 맛있겠다. 피넛버터 앤 젤리 샌드위치는 어떨까? 집에 포도잼과 땅콩버터가 있으니 금방 만들 것이다. 아니면 클래식하게 토스터기에 금방 구워낸 식빵 한 조각에 딸기잼과 버터를 발라 먹어도 좋을 것이다. 팬에 노릇하게 식빵을 구운 다음 설탕과 계핏가루를 뿌려먹을까? 계란물을 입혀 촉촉한 프렌치토스트를 만들어도 환상적일 텐데...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동네에서 제일 일찍 문을 여는 제과점으로 달려갔다. 고소한 냄새가 유혹했지만 다른 빵에 정신이 팔린다면 하나만 사서 나올 수 없을 것을 알기에, 둘러보지도 않고 바로 식빵 매대로 직진했다. 아직 채 식지도 않은 식빵을 한 봉지 사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어찌나 멀던지!


애지중지 모셔온 식빵은 일단 한 입 뜯어 순수함을 맛보고, 두 번째는 꿀을 찍어 먹었다. 제대로 안 식어서 결국 찌그러지게 자른 소중한 한 조각은 절반은 딸기잼과 버터를 바르고 나머지 절반은 땅콩버터와 포도잼, 치즈까지 얹어 혼돈의(?) 반반 토스트를 만들었다. 행여 맛이 섞일까 조심히 들어 야무지게 먹고 나니 세상이 다시 아름답게 보인다. 출근을 해야 하는데도 즐겁다. 세상에!


정말 탄수화물은 위대하다는 것을 깨달으며, 다시 빵순이의 작심삼일이 시작된다.




밀가루, 효모, 물, 소금을 넣어 만드는 식사용 빵의 역사는 고대 이집트부터 아주 오래되었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잘린 식빵(sliced bread)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지 않다. 1928년 미국 미주리주의 오토 로웨더가 빵 절단기를 만든 것이 그 시작으로 채 100년도 되지 않았다. 이 식빵 절단기는 빵 포장이 시작된 이후 '제빵 산업에서의 가장 위대한 한 걸음'이라고 평가되며 전 세계로 퍼져 나겠다. 식빵(食빵)의 어원을 살펴보면 포르투갈어로 빵을 의미하는 pão(빠오)와 먹는 것을 뜻하는 한자 밥 식(食)이 합쳐진 것으로, 아마 일제시대에 밀가루 공장이 세워지고 서양식 빵을 먹기 시작하면서 같은 뜻과 어원을 가진 일본어 쇼쿠판(食パン)이 한국에도 똑같이 들어온 것이 아닐까 추정한다.


단순한 재료만 넣은 식빵도 있지만 요즘은 밤, 무화과, 초콜릿, 치즈 등을 넣은 여러 종류의 식빵이 판매되고 있으며 건강에 좋은 통곡물이나 잡곡을 사용해서 만든 식빵도 다양하게 출시되었다. 식빵만 뜯어먹어도 맛있지만 어떤 재료와도 어울리기 때문에 과일잼이나 스프레드를 발라먹거나, 여러 가지 재료를 넣은 샌드위치나 토스트로 주로 이용되는 편이다.



<재료>

- 따뜻한 물 2컵(40-45도 사이로 준비한다)

- 강력분 5컵(혹시 반죽이 질다면 1컵 정도 더 추가해도 된다)

- 설탕 0.5컵(조금 줄여도 괜찮다)

- 드라이 이스트 1.5큰술

- 소금 1.5작은술

- 식용유 혹은 녹인 버터 4큰술


<만드는 법>

- 큰 그릇에 따뜻한 물을 담고 설탕을 녹인 뒤 이스트를 넣고 젓는다.

  5분 정도 이스트가 활동할 수 있도록 놔둔다.(거품이 이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 소금과 식용유(혹은 녹인 버터)를 먼저 이스트에 섞어주고 밀가루를 한 컵씩 더해준다.

- 최소 7분 이상 치대며 반죽하고, 기름을 바른 그릇에 반죽을 넣는다.

- 젖은 천으로 그릇 위를 덮은 뒤 1차 발효를 1시간 정도 시킨다.

- 두 배로 부풀면 반죽을 두드려 가스를 빼고 두 덩이, 혹은 세 덩이로 나눈다.

- 식빵 틀에 얇게 기름을 바르고 반죽을 놓은 뒤 30분 정도 2차 발효를 시킨다.

- 윗면이 매끈매끈하기를 원하면 계란물을 발라주면 된다. (아니면 다 구운 뒤 버터를 발라줘도 된다)

- 오븐을 175도로 예열하고 30-40분 정도 윗면 색깔을 확인하며 구워준다.



혹시 식빵 한 봉지를 다 못 먹겠다면, 남은 식빵은 잘게 잘라 팬에 구운 뒤 설탕을 씌운 러스크로 만들어도 맛있다. 그래도 남는다면 밀봉해서 냉동실에 보관하고 먹고 싶을 때 꺼내서 토스터기에 구우면 그럴듯하다. 냉장실에 넣으면 빵이 냄새를 흡수하고 빨리 노화가 올 수 있으니 꼭 냉동실에 보관하길 바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