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규모 생산으로 플라스틱 업사이클을 실천하는 스튜디오들
플라스틱은 튼튼하고 싸다. 만들기도 쉽고 사용도 편하다. 그래서 처음 발명된 1950년부터 지금까지 83억 톤의 플라스틱이 생산되었다. 그 가운데 63억톤이 이미 쓰레기로 버려졌고, 매년 800만톤의 새로운 플라스틱이 바다에 뿌려진다. 그리고 이 쓰레기는 무려 500년 동안 썩지 않는다. (출처: Geyer et al., 2017, Science Advances, “The New Plastics Economy — Rethinking the future of plastics”)
플라스틱으로 인한 해양 오염 문제가 대두되자, 일부 기업들은 생분해성 플라스틱 소재를 개발하는 등 기술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물론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신기술 개발을 위한 투자를 하기 힘든 소규모 스튜디오라면 플라스틱 문제 해결에 어떻게 동참할 수 있을까?
그들이 선택한 방법은 플라스틱을 재활용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버려진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일은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플라스틱에는 무려 41가지의 종류가 있는데, 열에 녹여 새로운 형태를 만들 수 있는 '열가소성 플라스틱'만 골라 수집해야 하고 그중에서도 PET, HDPE, PVC 등 종류에 따라 플라스틱의 녹는 점이 다르므로 철저히 분류해야 하기 때문이다. 녹는점이 서로 다른 플라스틱을 섞어 녹였다가 일부 플라스틱이 타게 되면 몸에 치명적인 가스가 방출된다.
게다가 디자인의 한계도 있다. 새 플라스틱은 투명하고 착색이 쉽기 때문에 자유롭게 원하는 색을 입힐 수 있지만, 재활용된 플라스틱은 본래의 색이 존재하기 때문에 색을 덧입힐 경우 탁하고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런 수고로움을 감내하고 작은 부분까지 신경 써서 쉽게 버려지지 않을 제품을 만드는 디자이너들이 있다. 재활용 소재를 사용하면서도 자신만의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스튜디오 3곳의 업사이클링 제품을 소개한다.
종류별로 모아 분쇄한 플라스틱을 가열하고 압축하는 과정에서 플라스틱은 저마다의 무늬를 얻는다. 로사드 스튜디오는 이렇게 여러 색의 플라스틱을 같이 녹일 때 생기는 패턴을 디자인의 핵심 요소로 활용했다. 검은색과 흰색의 병뚜껑을 섞어 달마시안 강아지가 연상되는 감각적인 패턴을 만들어낸 것이다.
재밌으면서도 효율적인 디자인을 고민했어요. 녹은 재활용 플라스틱을 금형에 주입하여 성형하는 과정인 '사출'을 통해 기하학 도형의 모습을 본따 달마시안과 가장 어울리는 형태를 구현했습니다.
로사드 스튜디오는 이렇게 완성된 달마시안 무늬 플라스틱을 가볍고 튼튼한 알루미늄으로 연결해 시각·촉각적 대비를 주었다. 다양한 샘플링을 비교·대조하여 찾아내 절곡한 선반의 각도는 안에 담길 사물을 돋보이게 한다. 달마시안 선반은 플라스틱 외의 어떠한 첨가제, 가소제, 광택제, 바니쉬를 사용하지 않아 다시 재활용이 가능하게끔 설계되었다.
로사드 스튜디오
이지원, 조다솔 디자이너 듀오로 구성된 로사드 스튜디오는 플라스틱 문제를 윤리적 디자인을 통해 해결하고자 2019년 네덜란드의 PRECIOUS PLASTIC과 협업을 맺고, 문래동에 작업실을 차렸다. 플라스틱 수거부터 선별, 파쇄, 사출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정을 직접 진행한다.
인스타그램 @nowislosad
아이웨어 브랜드 윤(Yun)은 버려진 아세테이트로 안경을 만든다. 아세테이트는 식물성 플라스틱의 일종으로, 폐아세테이트는 플라스틱을 재활용할 때처럼 수집, 분쇄, 압출 과정을 거친다. 이때 여러 색상이 이미 입혀진 상태로 녹기 때문에 앞서 언급했던 불투명하고 탁한 색상 표현만 가능하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투명하면서도 깊은 색감을 줄 수 있는 새 아세테이트를 사용하면 해결될 문제였으나 윤은 폐소재를 고집했다. 색상의 한계는 검은 염료로 보완하되, 브랜드가 추구하는 담백한 디자인에 입각해 심플하게 완성했다.
안경은 얼굴과의 조화가 중요해요. 색상이 얼굴에 비해 너무 도드라지면 윤이 추구하는 ‘매일 쓰는 담백한 안경’을 만들기 힘들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고안 끝에 블랙 색상으로 염료를 입혀 심플하게 디자인했습니다.
YUN
윤은 2015년 10월 베를린에서 처음 시작한 한국 아이웨어 브랜드로, 인하우스 디자인 및 생산으로 유통마진을 줄여 고품질의 안경을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한다. ‘시야의 확장' 이라는 슬로건 아래 시력보정을 위한 검안/안경조제 서비스, 크리에이티브한 창작자들과의 다양한 문화 활동을 전개하면서 우리 삶의 전반적인 시야를 확장한다.
인스타그램 @Yun.seoul
플라스틱 베이커리는 플라스틱으로 물건을 만드는 과정과 와플을 만드는 과정이 비슷하다는 점에서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만드는 과정에서 부푸는 특성이 있는 다른 디저트와 달리, 와플은 와플팬에 반죽을 붓고 눌러 찍어내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바로 이 점에서 와플을 만드는 과정은 녹인 플라스틱을 금형(몰드)에 부어 찍어내는 과정과 놀라울 만큼 닮았다.
실제 베이커리에 사용되는 와플팬에 병뚜껑을 잘게 부숴 구우면 플라스틱 와플이 완성된다. 이런 와플은 홈에 명함을 끼워 명함꽂이로 사용하거나 든든하게 컵을 받쳐 주는 티코스터로 쓸 수도 있다. 백색 배경에 다양한 색상이 알록달록하게 섞인 조합 역시 플라스틱 소재가 녹는 과정에서 생기는 우연한 특성을 반복하여 대조하며 연구한 결과다.
뚜껑의 종류별로 그 재질과 색상이 주는 느낌이 달라요. 어느 색상은 텁텁하고 어느 색상은 너무 밍밍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맛의 균형을 잡듯, 색상 간의 밸런스를 연구해 매력적인 색감 레시피를 만들어 플라스틱 베이커리만의 독특한 컬러감을 표현했습니다.
플라스틱 베이커리
Ceasar Park이 운영하는 플라스틱 베이커리는 업사이클 플라스틱을 활용하여 마치 빵처럼 예쁘고 귀여운 생활 제품들을 만든다. 텀블벅에서 <더 와플> 프로젝트로 플라스틱 베이커리의 시작을 알렸다.
인스타그램 @plastic.bakery.seoul
업사이클링 관련 전시
노플라스틱선데이X플라스틱방앗간 전시 in 모레상점 팝업스토어 : 프레셔스 플라스틱 서울
플라스틱이 업사이클링되는 구체적인 과정이 궁금하다면 병뚜껑을 모아 전시를 방문해보자. 병뚜껑 3개를 모아가면 플라스틱을 새활용한 제품과 실제 제품 제작에 사용되는 기계를 직접 살펴볼 수 있다.
참고할 만한 사이트
또한 프레셔스 플라스틱 서울 홈페이지에서는 플라스틱 업사이클링과 관련한 오픈소스, 기계 제작 도면, 국내 팀들의 작업공간, 수거공간, 머신샵의 위치가 표시된 지도 등 업사이클링 창작자를 위해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글 홍비 / 일러스트 최재훈
자료제공 로사드 스튜디오, YUN, 플라스틱 베이커리, 노플라스틱선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