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지원기관, 플랫폼 사례로 본 온라인 상영의 현재
지난 5월 6일, 미쟝센단편영화제 홈페이지에 공지가 올라왔다. '코로나19 유행과 극장, 미디어 환경의 변화, 그에 따른 한국 영화계 격변의 소용돌이 속에서 영화제 형식의 페스티벌을 종료'한다는 내용이었다. 미쟝센단편영화제는 나홍진, 조성희, 장재현 감독 등 독창적인 신진 감독의 등용문이 되어준 영화제다.
'격변의 소용돌이'라는 말은 과장일까. 영화진흥원에서 발표한 2020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전년 대비 극장 관객 수는 약 74% 감소했고, 매출액은 2005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¹ 반면 팬데믹의 반사이익을 얻은 넷플릭스, 왓챠 등 스트리밍 서비스는 계속 몸집을 불리고 있다. 넷플릭스의 경우 19년 9월에서 20년 5월까지 단 6개월만에 가입자 수가 2배로 늘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많은 영화제들이 '특정 기간에 특정한 기준으로 선정된 영화를 상영한다'는 기본 형태를 유지하는 대신 스크린을 온라인으로 옮기고 있다.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가 국내 국제영화제 중 최초로 온라인 상영을 시도한 것을 시작으로, 여러 국내 유수 영화제들이 스트리밍 서비스 또는 TV 방송사로 영화를 상영했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온라인 상영을 병행한 제 22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온라인 관객이 전년 대비 81%나 늘었다.² 영화제 슬로건은 '영화는 계속된다'였다.
온라인 상영이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전까지 온라인은 어디까지나 극장 상영의 대안이자 추가적인 선택지였다면, 현시점에서는 온라인 없이는 배급을 진행할 수 없는 상황까지 와버렸다. 윤성현 감독의 《사냥의 시간》, 이충현 감독의 《콜》, 조성희 감독의 《승리호》처럼 메이저 스튜디오 영화들도 넷플릭스 등을 통한 온라인 개봉을 선택했다.
극장이란 물리적 공간이 아닌 디지털 공간에서 관객은 '유저'라는 생소한 존재가 된다. 단순히 티켓 판매 수 뿐 아니라 이탈률이라는 새로운 지표가 추가되면서 감독들과 제작·배급 관계자들이 신경써야 할 것이 늘었다. 신작, 구작, 상업영화, 예술영화 할 것 없이 수천 편의 영상 콘텐츠가 뷔페처럼 차려진 플랫폼에서 선택받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다. 전과는 180도 달라진 방식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 온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격변이 소규모 단편영화 및 독립·예술영화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아직 팬데믹은 끝나지 않았지만 그러한 논의가 이미 시작되었다. 영화진흥위원회는 포스트코로나 영화정책추진단을 신설하여 유의미한 정책을 마련하기 위한 보고서를 제작 중이다. 제작 및 배급사 외에도 여성영화인, 독립영화 연출가, 기술가, 프로듀서, 해외 세일즈, 지역 미디어센터 등 영화계 전반에 있는 업계인 모두 포괄하는 기획위원회에서는 최근 관련 정책 과제 포럼을 열기도 했다.
해당 포럼에서 가장 큰 화두는 극장 생태계의 변화였다. 극장과 관객 자체가 사라진 현실에 대한 위기의식은 물론 크지만, 오히려 스크린 독과점 문제 등 극장 중심으로 커진 한국 영화 산업이 가진 문제를 해결할 유효한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희망도 엿볼 수 있었다. 넷플릭스 등 여러 온라인 플랫폼으로 영화를 보는 경험이 늘어난다면, 생소했지만 개성 강한 독립・예술 영화를 보고 즐기는 경험으로까지 번져나갈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국내 독립 영화 시장이 크게 확대될 수 있지 않을까?
온라인 플랫폼은 극장 상영에서는 빗겨났지만 특별한 가치를 가진 독립 영화를 더 많이 소개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독립 영화의 상영을 이야기할 때는 주로 '비상업성'의 가치 판단에 따른 소외를 떠올리지만, 사실 물리적인 상영이 불가능할 때도 있다.
단편 영화가 그렇다. 단편 영화는 20~40분의 짧은 러닝타임 탓에 단독으로 극장에 걸릴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여러 작품을 묶어서 상영할 수밖에 없는데, 이를 위해서는 '기획자'가 필연적으로 등장해야 한다. 소수 기획자로 이루어지는 단발적 상영 방식으로는 관객 저변을 넓힐 수 없다. 관객층은 일차적으로 영화를 접한 다른 관객들의 입소문에 의해 넓어지지만, '재미있다'는 이야기가 돌아도 a상영 기회가 없다면 1차 관객의 반응은 금방 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별도 상영 조건의 제한 없는 온라인에서는 단편 영화도 관객층 확대의 가능성이 생긴다. 물론 이 가능성을 어떻게 영화 생태계 위에 삽입하고, 확장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보다 여러 실험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근 이러한 생각이 실제 새로운 실험으로 이어지고 있다. 작년 국내 독립예술영화 유통배급지원센터가 ‘인디그라운드'라는 이름으로 개소되면서, 온라인 상영 플랫폼 구축과 공공 라이브러리 운영을 핵심 사업 과제로 삼고 있다. 단편 포함 국내에서 제작되는 독립영화는 매년 천 편 이상이지만 실제 극장에 걸리는 영화는 20%에 불과하기에, 독립・예술 영화산업이 지속성을 가지려면 유통배급 구조의 다원화를 통한 접근성 강화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인디그라운드에서는 다양한 작품을 온라인 플랫폼에서 볼 수 있는 새로운 채널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기획들을 선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여성 영화 전문 스트리밍 서비스인 ‘퍼플레이'와의 협업으로 여성영화 랜선 특별전인 〈난 퍼플레-인디〉를 개최하기도 했다. 인디그라운드에서 선정한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작품 중 여성 감독 또는 여성 서사를 담은 영화 28편을 골라 퍼플레이 플랫폼에서 2주간 상영한 것이다.
이러한 실험을 조금 더 앞서 해 나가고 있는 사례를 해외에서 찾을 수 있다. 최근 몇 년 새 독립・예술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 사이에서 자주 언급되는 온라인 플랫폼이 있다. 넷플릭스도, 왓챠도, 디즈니 플러스도 아닌 MUBI다. MUBI는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든지 영화를 볼 수 있는 도서관을 만들고자 했다. 2007년에 론칭한 MUBI는 다섯 가지 질문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도쿄의 한 카페에 앉아서 《화양연화》를 당장 아이패드로 볼 수 없는 이유가 있을까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를 사랑하는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울까요?
영화 테라피가 필요한 친구에게 자크 타티의 《플레이타임》을 즉시 보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인터넷에서는 왜 이렇게 영화들이 못생겨 보일까요?
왜 우리는 지금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의 존 쿠삭처럼 말하고 있는 거죠?
MUBI는 독립・예술 영화를 주로 보는 관객층의 형성 과정을 훑어 이를 스트리밍 서비스에 접목했다. 너무 많은 선택권으로 시청 경험을 지연시키기보다 일정 기간에만 특정 영화를 집중적으로 만날 수 있는 영화제 형태를 모방했다. 매일 새로운 영화가 업데이트되고, 30일의 상영 기간이 끝나면 더 이상 볼 수 없는 독특한 관람 구성을 만들었다. 즉, 30일 기준으로 매달 30개의 새로운 영화가 상영되는 온라인 영화제를 구현한 것이다.
영화제가 가지고 있는 다른 순기능도 구현하고자 했다. 특히 독립・예술 영화의 초기 반응 형성 과정에서 평론가 및 소위 ‘씨네필'이라 불리는 영화광의 반응이 중요하다는 데에서 착안해 Notebook이라는 웹 평론 지면을 만들었다. 이곳에서 필자들은 MUBI 상영작 외에도 구, 신작을 가리지 않고 독립・예술 영화에 대한 글을 자유롭게 기고한다. 글을 읽고 관심이 생긴 독자는 이를 볼 수 있는 ‘장소'에 대해 궁금해하고, 곧 MUBI에 대해 인지하게 된다. 비록 그 영화가 지금 당장은 스트리밍되고 있지 않더라도, 매일 새로운 영화가 업데이트된다는 시스템을 인식한 독자는 기대감에 이끌려 구독하게 된다.
MUBI는 현재 총 9백만 명 이상의 구독자를 보유한 서비스로 자리 잡았으며, 직접 제작 및 배급 사업에도 뛰어들고 있다. 아직 한국에서는 정식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아 영문 자막으로만 시청할 수 있다는 치명적인 단점에도 불구하고, 국내 독립・예술 영화 관객층 사이 더 이상 ‘낯선 서비스'가 아니다.
MUBI의 성공 과정에서 볼 수 있듯이, 단순히 독립·예술 영화를 온라인으로 옮겨놓는다고 해서 관객층이 생기지는 않는다. 지금 한국에서 독립·예술 영화에 관심을 가질 만한 관객들이 주기적으로 관심을 갖고 방문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할 것이다.
장영엽〈씨네21〉 편집장은 2021년 첫 호를 펴내며, 재택근무로 완성되고 온라인으로 개봉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소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가운데 완성된 이 작품은,
물리적으로 함께 있지 않아도 모두가 같은 꿈을 꿀 수 있음을 입증하는
하나의 경이로운 사례로 남게 될 것이다.
생각해보면 본래 영화란 서로 다른 두 시공간을 하나의 스크린을 통해 연결짓는 것이다. 관객인 우리는 영화 속 등장인물과 어떠한 공통점도 없지만 그와 동일한 시공간 속 사건을 겪고 감정을 느낀다. 이러한 기이한 경험을 우리는 당연하게 받아들이거나 쉽게 잊어버리기도 하지만, 이따금씩 누군가의 인생을 뒤바꿔놓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적은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과 거대한 IMAX 스크린을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이미 검증된 명작 혹은 유명 감독의 작품이 아니더라도, 정말 처음 들어보는 감독의 데뷔작 혹은 정말 짧은 5분짜리 단편 영화에서도 그 기적을 마주할 있다. 독립・예술 영화는 익숙하지 않은 문법과 이야기, 시선으로 가득 차 낯설기도 하지만 그만큼 더 독특한 경험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비록 극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뜸해진 요즘이지만, 이런 시기에 지금 온라인에서 만나볼 수 있는 작고 특별한 영화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예전에 영화를 접하는 방식으로는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기회일지 모른다.
글 김민규 / 일러스트 최재훈
¹ 영화진흥위원회 <2020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2021.04.
² "극장 관람 1만3천명, 온라인 관람 1만2천명"…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폐막, 조선일보 2021.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