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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텀블벅 영퍼센트 Oct 15. 2019

활자 디자이너의 일, 이용제

'걷고자 하는 길을 오래 유지한다는 건...?'


2019년 10월 9일, 573돌을 맞이했던 한글날 즐거이 보내셨나요? 여러 브랜드에서 새로운 서체를 출시하고, 한 포털에서는 나의 손글씨로 폰트를 만들어주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명필과 악필 선발대회가 열리는 등 한글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다양한 현장이 목격됐습니다. 저도 광화문광장을 지나며, 그리고 타이포그라피 전시를 보며 한글의 무궁한 변주에 감탄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디자인 일을 하거나 글꼴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텀블벅을 둘러볼 때 '폰트 제작'을 위한 펀딩이 눈에 띈 적 있으실 겁니다. 지금도 활자디자인 그룹 활자모의 지백고담초행Tlab font의 월광소나타, 판테온, 꺾인고딕, 기은 작가의 펜타스틱 등 제각기 다른 모습의 서체 제작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어요. 쓰임을 예상하며, 혹은 예상하지 못한 채로 세심한 차이와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일은 들여다볼수록 경이로운 것 같습니다. 그 과정과 활자 제작 생태계를 좀 더 가까이서 듣고자 20여 년간 한글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교육에도 힘을 쏟은 이용제 디자이너를 오랜만에 다시 만났습니다. 아모레퍼시픽 전용서체인 '아리따'와 텀블벅에서 많은 후원을 받아 제작된 '바람.체'를 디자인한 분이지요. 

 

가수 아이유의 리메이크 앨범 표지에 사용된 바람.체


✦활자 디자이너로 살아가기 


한국에서 한글디자인으로 첫 박사학위를 받은 이용제 디자이너는 몇 년 전 처음으로 '폰트 제작 펀딩'을 진행하며 아름다운 한글 서체를 만드는 일의 보람과 열악한 활자 제작 신의 어려움을 같이 들려주신 바 있습니다.

"2013년 텀블벅에서 처음으로 바람.체 제작 펀딩을 열 때는 '이게 되겠냐'와 '해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반반이었습니다. 크라우드펀딩을 택한 것은 폰트를 제작하는 데 드는 비용을 후원받기 위함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사람들에게 한글 폰트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고 함께 이야기할 기회를 갖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보니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제작 과정에 호응해주고 응원해주어서 저뿐 아니라 주변 디자이너들도 크게 놀랐지요. 저희끼리는 바람.체를 이렇게 부릅니다. '사람들의 바람으로 만들어진 서체'." (2016년 인터뷰 중에서)

이용제 디자이너의 바람.체 펀딩은 2013년 2월부터 약 80여 일간 진행되며 2,400만원 가량을 모아 한글 폰트 시장에 유례없는 사례를 만들어냈습니다. 그후 2016년 다양한 굵기의 바람.체를 추가 제작하는 펀딩에서는 4,100만원이 모여 또 한번 놀라움을 자아냈죠. 바람.체는 지금도 계속 다듬어지는 중입니다.


한글 디자인은 어떻게 시작하셨는지요? 한글을 디자인하면서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들도 궁금합니다.

처음 한글 디자인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던 시점은 대학교 3학년이 끝날 무렵이었어요. '앞으로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가 주변에서 한글디자인을 해보라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민을 시작했어요. 그래서 한글디자인과 관련된 사업계획서를 써서 선생님들께 보여드렸지요. 당시에 저는 안상수 선생님과 한재준 선생님께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그리고 졸업하면서 선생님들과 함께 연구소를 시작했습니다.

한글 디자인을 하면서 좋은 점은 한글이 디자이너에게 꽤 정신적인 성숙함을 가져다준다는 것이에요. 제가 어떤 디자인을 결정할 때는 ‘ 이런 것이 좋다'라고 해서 하는 건 아니에요. 제가 생각하는 디자인은 진정으로 사람을 위한, 즉 사람의 삶에 손을 대는 행위라고 생각하는데 한글만큼 사람을 생각한 결과물이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제 취향이 좋은 취향도 아니고 감각적인 사람도 아니어서 무엇을 디자인할 때면 항상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사람들이 잘 쓸 수 있으려면 어떻게 만드는 것이 좋을까?'혹은 '이것을 만들었을 때 버려지게 되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이제는 유료와 무료 폰트, 폰트 사용 가능 범위에 대한 인식이 알려졌지만, '폰트를 만드는 일과 사람'은 여전히 미지의 세계로 느껴집니다. 현업으로 활동하며 체감하시기론 어떤가요? 

텀블벅을 통해 창작자와 사용자를 만나게 하고 싶었던 바람은 단순히 소통에 대한 갈증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강연에서 한글 폰트를 사서 쓰는지 물어보면 10명 중에 1~2명이 손을 들 만큼 한국에서 한글 폰트는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쓰이는 대상이 아니었어요. 이른바 한글 폰트 생산구조의 악순환은 계속해서 자유로운 창작을 저해하고 창작자의 생계를 위협했습니다. ‘이런 악순환의 구조를 어떻게 하면 끊을 수 있을까?’ ‘이 구조 안에서 폰트를 제작하고, 교육도 하고, 저작권과 관련한 연구도 하고 있는 나라면, 구조 안의 여러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니 좀 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바람.체 텀블벅 프로젝트는 사실 이러한 조금은 절박한 바람에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폰트뿐 아니라 여러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어요. 그러나 아직은 무료를 찾아 쓰려고 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습니다. 최근 2017년 어떤 폰트를 많이 썼는지 조사한 적이 있는데, 사용 빈도가 높은 폰트 중에서 무료라는 이유가 중요했던 것을 보면서, 좀 놀라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현실을 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글 디자인 잘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되는 걸까요?

"폰트 디자인을 하려는 분들에게 드리는 조언이라면, 힘들다고 다들 안 하려고 하는 것도 누군가는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짧은 시간안에 재미있게 쓸 수 있는 것을 디자인하는 일은 비교적 쉬워서 많은 사람이 하고 있어요. 근데 조금만 어렵거나 힘들면 사람들이 다가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좀 괜찮은 결과물이 나오려면 '길게 간다'는 점을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것은 누군가 쉽게 따라 하기도 어렵죠. 좋은 것을 만들려면 몇 년씩은 걸려야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몇 년이라고 하면 ‘그걸 어떻게 하지?'부터 생각합니다. 하지만 조금 더 깊게 생각해 보면 힘들진 몰라도 남들 역시 쉽지 않을 것을 하는 것이 자신만의 정체성을 만드는 일이죠. 그래서 저는 조금 더 어렵고 힘들지라도, 그러한 일이 가볍고 쉽게 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더 해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2016년 인터뷰 중에서)


최근 한글을 그리는 디자이너가 많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시도들을 하는 젊은 디자이너들을 눈여겨보고 있고요. 이런 지평이 더 넓어지면 좋겠어요. 그 중에는 저에게 배운 친구들도 있고, 제가 모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글자를 잘 그린다고 생각되는 몇몇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잘 그려서 관심이 갖기보다 작업의 맥락과 자신이 그리고 있는 활자를 어떻게 설명하는지 유심히 봅니다. 글자를 잘 그릴 수 있는 감각은 타고난 경우도 있고, 훈련으로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생각(철학)은 타고난 것이 아닌 학습하고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어서, 그 부분에 더 많은 관심이 있습니다. 갑자기 찾아가서 말을 건네지는 않지만 계속 학습하고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역할을 고민하는 젊은 디자이너들에 기대와 바람을 가지고 보고 있어요. 

한글 디자인을 잘하기 위해서는 사람에 대한 이해, 매체에 대한 이해, 기술에 대한 이해가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너무 미세해서 잘 인식하지 못하는 크기와 형태의 관계를 관찰하고 스스로 형태를 조절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문화에 대한 이해와 미적 가치에 대한 공부도 물론입니다.



✦지금 '최정호 활자'를 다시 주목한 이유


현재 텀블벅에서는 선생님과 함께 공부한 세 분의 디자이너가 최정호 초기 활자를 재해석한 새로운 폰트 제작 펀딩을 진행 중이지요. 최정호 디자이너의 활자는 과거 세로쓰기에서 가로쓰기로 넘어가는 시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업적을 남긴 분인가요?

현재 총 일곱 명의 디자이너가 최정호 초기 활자를 바탕으로 새로 그리고 있습니다. 최정호 디자이너는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활자 모습을 만든 분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활자가 그렇듯이 이전 시대의 글자체를 바탕으로 했습니다. 최정호 활자를 중요하게 보는 것은 가로쓰기에 맞는 활자의 구조와 획 운용 방식을 제시하고, 활자의 균형과 비례 등 조형 품질을 획기적으로 높인 결과물이라서 그렇습니다. 세로짜기용 활자를 가로로 썼을 때 불균질해지는 글줄을 가지런하게 만들어 내는 등 근대에서 현대로 전환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시점에 최정호 활자를 주목한 이유가 있으신지요?

최정호 활자 이후 가로쓰기에 적합한 방향으로 글자체가 진화했고, 매체 환경 변화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여 요즘 널리 쓰이는 활자가 제작되고 있습니다. 어제오늘 일은 아닙니다. 단지 최근 한글 활자 디자인이 독립디자이너 사이에서 조금 활발해지고 있는데, 여전히 본문용 활자는 최정호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심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고 갑자기 조선시대 만들어진 글자체를 리-디자인해서 지금 본문에 쓰자고 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해결책으로 최정호 활자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자세히 관찰하고, 그 형태의 맥락을 짚어야 최정호 울타리에서 벗어난 본문용 활자를 제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디자이너가 세로 전용 서체와 가로 전용 서체를 각각 쓸 때 염두에 두거나 유의할 점이 있을까요? 

활자를 사용한 모습을 보고 ‘마음에 든다, 들지 않는다’만큼이나  ‘지금 상황에 적합한가 그렇지 않은가’로 판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오래전 꽃길을 발표하고 몇몇 회사에서 꽃길을 쓰고 싶다고 연락이 왔는데, 모두 가로로 쓰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쓰면 좋지 않다고 말씀은 드렸습니다만, 당시에는 써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제가 세로쓰기 전용 활자를 가로로 쓸 때 어떠한 점이 좋지 않은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도 못했죠. 몇 년 흐르고 난 뒤, 그것이 왜 어색한지 알게 된 뒤로는 꽃길의 경우 가로로 쓴다면 판매하지 않고 있습니다. 단적인 특징을 하나 말하면, 꽃길은 서간체 양식의 세로쓰기 전용 활자입니다. 이런 경우 가로로 쓰면 글줄흐름이 불안정하게 흔들리기 됩니다. 이 모습을 하나의 개성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세로쓰기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을 남기고 싶지 않아서 판매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로쓰기와 가로쓰기 모두 가능한 활자는 글자사이가 상당히 넓어 촘촘한 글자사이를 선호하는 사람들에게는 어색해 보여서 이를 유의해야 합니다. 



✦ 앞으로의 활자모와 이용제


제자 분들과 함께하는 활자 디자인 그룹 '활자모'는 어떤 활동을 하는지요?

저에게 활자디자인을 배운 사람들 중에서 ‘히읗 전시’를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히읗 전시’를  졸업전시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정한 교육은 수료한 상태라고 봅니다. 그러나 한번 배웠다고 해서 배운 것을 모두 기억하거나 실제로 활용하기는 어렵습니다. 20년 가까이 교육을 했지만 늘 함께했던 학습시간이 지나고 나면 여러 아쉬움이 남습니다. 좀 더 공부해야 하는데, 배운 것을 실제 활용해야 하는데 하고요. 그래서 2017년 말에 ‘활자모’라는 활자디자인 모임을 만들고, 그동안 저에게 배웠던 사람들과 실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배운 것을 몸에 익히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 진행 중인 활자모의 ‘최정호 프로젝트’는 저에게 배운 뒤, 폰트를 출시한 사람들입니다. 프로젝트를 통해서 예전 교육 내용을 반복하고, 좀 더 깊게 학습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지금보다는 더 많은 활자디자이너가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독립 활자 디자이너만의 특수성이 점점 사라져서 경쟁이 또 치열하게 될 것입니다. 이때 자신의 디자인 방향을 잃지 않고 꾸준하게 작업할 수 있는, 그래서 오랫동안 활동할 수 있는 디자이너가 될 수 있도록 강조하고, 프로젝트 역시 그런 성격에 맞게 기획하고 있습니다. 


2016년 '바람.체'를 만드실 때 "활자의 균형이나 흐름이 맞다, 틀리다를 금세 알 수 있는 세로 전용 서체에 비해, 가로 전용 서체는 기준이 모호해서 대충 맞아 보이곤 한다. 완전하게 세로 전용 서체를 만들어봤기에 이후 가로 전용 서체를 만들 때 더 자신 있게 작업할 수 있겠다"는 이야길 들려주셨습니다. 앞으로의 서체 제작 계획은 무엇인가요?

여전히 세로쓰기용 활자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2014년에 바람.체를 끝낼 때만 해도 다음에는 가로쓰기용을 만들어야지 했는데, 여전히 세로쓰기용 에서 해결하지 못한 부분이 있어서 당분간 3~4년은 더 세로쓰기용 활자를 그려나갈 것 같습니다. 가로쓰기용 활자의 경우 시도해볼 방향은 생각나는데 직접 그리지 못하고 있고, 교육을 통해서 학생들이 해볼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가로쓰기용에 적합한 형태보다는 세로쓰기와 가로쓰기를 모두 할 수 있는 한글 형태를 시험하고 있는 중입니다. 몇 년째 이런 시도를 하고 있는데 아직 선명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바람.체 자족을 보완하면서 좀 더 고민하고 실험해볼 계획입니다. 


최정호 활자를 재해석한 지백, 고담, 초행 서체.


11월 5일, 패스트파이브 시청점에서 '한국에서 독립 활자 디자이너로 살기'라는 주제로 이용제 교수님의 강연이 진행됐습니다. 강연 참석자의 선착순 모집을 시작하자마자 마감이 됐을 만큼 뜨거운 호응을 얻었던 이번 강연에서 오간 이야기를 이곳에도 살짝 들려드립니다. 


이용제 교수님은 지난 2004년부터 한글을 연구하고 디자인하는 '활자공간'을 운영 중입니다. 그 과정에서 카페 히읗과 마켓 히읗을 운영했고, 타이포그라피 잡지 히읗을 출판하기도 했는데, 이 모든 것은 활자 디자인을 일반인들에게 더 널리 알리고, 생산자와 사용자 간의 신뢰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국내에서 활자 디자인은 어떤 위치에 와 있을까요. 5~6년 전까지만 해도 제작 프로그램이 워낙 고가였고, 많게는 11,172자의 활자를 다듬어야 하니 개인이 제작한다는 것은 떠올리기조차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활자를 사용하고 지불하는 비용을 산정하는 기준이 없다 보니 베일에 싸여 생산자와 사용자 사이에 신뢰도는 점점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즉, 더 잘 만드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관리, 통제, 확인, 감독 등에 꽤 많은 비용을 지출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지요.


디자인 학도와 현역 디자이너 분들께서 강연을 많이 신청해주셨습니다.(사전조사 결과)


그러던 중 과거 일방적으로 기업이 판매하는 유통 방식에서 벗어나 클라우드 혹은 구독 방식으로 전환을 꾀하면서 대안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로써 사용자와 양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더 좋은, 더 가독성이 뛰어난 활자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신뢰받을 수 있는 활자가 탄생할 가능성은 커졌습니다.


그렇다면 근대 한국 활자의 역사를 이끈 '최정호' 활자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천재 활자 디자이너'라는 수식어로 묘사되는, 아직도 많은 영향을 미치는 분이지요. 과거 손으로 하나하나 틀을 조각하고 찍어내야 했다면, 근대로 넘어오면서 기계로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활자가 정교해졌습니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1. 늘 가독성을 고민한다 2. 늘 당대의 미감을 따른다 3. 늘 새로움을 추구한다 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시대 상황 속에서 '최정호'는 바탕체를 만들어 내면서 중국과 일본보다 한층 앞선 활자 디자인 시대를 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최정호 활자에서 한글 활자의 현대성을 볼 수 있다고 해요. 그러다 보니까 여전히 최정호 활자는 현대 사회에서도 벗어날 수 없는 족쇄가 되기도 하는 등 최정호 활자 만의 강력한 힘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이후 지면에서 온라인으로 환경이 변하면서 활자도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활자 구조에 따라 쓰임새가 달라서 과거에는 지면에 쓸 수 없었던 장체들도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지요. 최근 인기있는 활자를 보면서 '메신저 용인가?'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었다고 해요. 따라서 이용제 교수님은 현재 한글 활자 디자이너는 '같고 다름 - 고유성 찾기의 시작'을 중요시해야 한다고 합니다. 우선 자기 활자 디자인의 고유성을 밝혀 변조, 모방, 표절에서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고 해요.

또한, 활자는 적절한 응축과 팽창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적당히 긴장감도 있으면서도 풀어주는 곳이 있어야 어떤 활자인지 선명하고 분명해지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균등하기만 하다고 좋은 것이 아닌, 약간의 불균형도 심각한 문제가 있지 않은 한 시선을 흘러가게 만드는 동력이 될 수 있다고요.


이응이 모음에 영향을 받지 않고, 온전한 동그라미로 표현되는 것은 최정호 활자 시대의 특징이라고 합니다.


이후 교수님은 일문일답을 끝으로 강연을 마무리했습니다. 일문일답 중 재미난 내용을 함께 소개해 드릴게요.



Q1. 활자 디자이너를 하면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A1. 모음과 자음의 거리, 어떤 글자를 쓸 때 이응의 모양처럼 남들이 보지 못하는 걸 나만 본다는 점이 흥미롭고, 그러다 보니 세밀하고 섬세한 것에 집착한다.


Q2. 활자 디자이너가 제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A2. 사용자. 그래야 그들의 환경까지 볼 수 있으니까.


Q3. 디자인 모티브는 어디서 얻나?

A3. 사람, 변하는 디바이스 환경, 우리 문화 역사 자료를 관찰한다. 


Q4. 활자 디자인의 매력은?

A4. 공공재라는 것. 한 번 잘 만들면 오래 쓰인다는 점도.


Q5. 활자 디자인을 할 때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A5. 글자를 그린다는 느낌이 아닌, 공간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디자인을 한다.


Q6. 창작의 한계가 왔을 땐?

A6. 2~30대에는 심각하게 '내가 살아서 뭐 하나?' 싶었고, 지금은 그런 시기를 벗어나 잘 하려 하지 않고, 해야 할 것에 집중한다. '내가 지금 할 일을 하고 있나?' 라는 것만 생각한다.



이용제

한글 디자이너, 계원예술대학 교수. 홍익대학교 동 대학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으며 한글디자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첫 번째 디자이너이다. 1999년부터 5년간 한글디자인연구소에서 일했고, 2004년부터 한글을 연구하고 디자인하는 활자공간’을 운영하고 있다세로쓰기 전용글꼴 바람.’, ‘꽃길’ 제작아모레퍼시픽 전용서체 아리따’ 제작에 참여했으며, 저서로는 <한글 한글디자인 디자이너>(2009), <한글디자인 교과서>(2009) 등이 있다.


인터뷰 정리. 주소은, 강연 스케치. 권수현 | 이미지 제공. 활자모, Tlab, 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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