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말 하다 보면 이상하고 기이하고 아름다운 곳에 닿길 바라요"
작가님마다 고유의 분위기를 가진 일러스트레이션 프로젝트들을 보는 일은 텀블벅 일상 중 큰 즐거움입니다. 그날도 스크롤을 멈췄다 내렸다를 반복하다 덜컥 눈에 띄는 그림을 발견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강렬한 색상 중 하나로 손꼽히는 빨간색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은 물론, 전체적으로는 몽환적이면서도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눈빛 덕에 자꾸만 보게 만드는 힘이 있었어요. 아마 저뿐만 아니라 수많은 후원자들도 비슷한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첫 펀딩임에도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거든요.
그렇게 호기심 섞인 마음으로 천천히 <장례식 케이크 전문점 연옥당> 프로젝트 소개 글을 보다 한참 모니터를 바라보았습니다. 망자를 위로하는 케이크라는 주제가 눈이 아닌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입니다. 무거운 주제일 수 있는 ‘죽음'에 위로와 몽환적인 그림체를 한 스푼씩 섞은 산호 작가가 궁금했습니다. 어떤 것이 그림을 그리게 만드는 원동력인지도 알고 싶어졌고요. 죽은 자를 위로하기 위한 케이크를 굽기 위해 현실 속에서 비현실을 만들어 가고 있는 산호 작가와 세계관만큼 디테일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최근 텀블벅에서는 많은 일러스트레이터들이 다양한 소재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산호 작가님은 어떻게 텀블벅을 접하게 되셨나요? 펀딩을 진행하게 된 계기도 궁금합니다.
텀블벅은 예전부터 여러 작가님들의 활동을 통해 알고 있었습니다. 좋아하는 작가님들이 텀블벅 펀딩으로 출판하는 것을 종종 보았고, 나중에 저도 책을 내게 된다면 펀딩 형식으로 진행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요.
그러다가 <장례식 케이크 연옥당>(이하 <연옥당>)을 출판물로 제작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제작비가 마련되어야 하던 차에 독립 출판물이다 보니 주변에서 텀블벅 펀딩을 통한 제작 판매를 추천해 주셨어요. 이후 여러 가지 사항을 고려한 뒤 최종적으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연옥당>은 장례식에 케이크를 올리는 오랜 전통이 있는 곳을 배경으로, 케이크는 고인을 위로하고 다독여 주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세계관이 매력적이고 독특하다는 말씀 많이 들으셨을 것 같은데요, 이러한 주제를 떠올리게 된 배경이나 계기가 있는지요?
사실 어릴 적 잔병치레가 잦아 죽음에 대해 굉장히 큰 두려움이 있었어요. 자반증으로 신장이 약해져 몇 달간 침대 밖으로 나오지 못한 적도 있었고요. 그러다가 한 학년당 반이 하나밖에 없는 시골로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집 위치가 바로 산 밑이라 집 담벼락 옆에 무덤가가 있었습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무연고자 무덤이었고 잡초가 무성해 처음엔 굉장히 무서웠지만, 아버지께서 무덤에 술을 올리시면서 “오히려 이분들이 우리 집을 잘 지켜주실 거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말을 듣고 나서는 신기하게도 두려운 마음이 없어졌고, 실제로 거주하는 동안 한 번도 아픈 적이 없었습니다. 닭들이랑 동네 강아지들이랑 신나게 동네를 쏘다니면서 시골에서의 어린 시절을 만끽했죠. 처음으로 ‘죽음’이 두렵지 않았던 시기였습니다.
그렇게 2년 정도 거주한 뒤 떠나게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이삿날 전날이 제 생일이었어요. 당시 먹었던 케이크를 한 조각 잘라 이사 가기 전에 집 옆 무덤가에 두고 왔습니다. 이후 꽤 오랫동안 잊고 지내다가 학교를 휴학하고 얼마 되지 않아 그때의 경험이 불현듯 다시 떠올랐고, 그동안 풀어내고자 생각하고 있던 이야기들 중 하나와 그때의 경험이 만나 <연옥당>의 초안이 되었습니다.
사실 지금도 여전히 죽음이 두려워요. 죽은 다음에 아무것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 더 무섭죠.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될까. 나는 잊혀지고 아무런 것도 남기지 않고 의식 없이 사라지는 건 아닐까? 그리고 그렇게 두려울 때마다 어떤 상상을 해요. 죽고 나서 다시 눈을 뜨면 내 앞에 케이크 한 판과 커다란 앨범 하나가 있을 거라고요. 케이크를 먹으면서 내가 살아온 인생의 장면을 보며 울고 웃다가 마지막장을 덮으면 그 때 다음 생으로 가는 거에요. 그 상상을 하면 마음이 많이 편해져요. 이 상상을 꽤 오래 했는데, 이것도 역시 <연옥당>의 다른 뿌리가 된 것 같네요.
작품을 준비하는 기간은 얼마나 되셨나요? 원고 집필 과정에서 즐거웠던 점이나 힘들었던 점을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총 준비 기간은 2년 정도입니다. 학교를 다니면서 1년 정도 내용 구상을 거쳤고, 그 과정에서 세부적인 설정을 바꾸고 4가지였던 에피소드를 2개로 줄이는 등 긴 이야기를 조금 더 짧게 만들었습니다. 원래는 아예 내용을 압축해 36페이지 가량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는데, 그리다 보니 분량이 늘어 80페이지 이상이 되었어요.
콘티를 포함해 원고 작업은 총 약 5~6개월이 소요됐고, 편집하면서 계속 컷을 삭제하거나 추가해서 그 기간까지 포함하면 최종적으로는 7개월 남짓 걸린 것 같아요. 사실 펀딩 기간 동안에도 추가로 넣고 싶은 이야기가 생겨 몇 페이지를 더 작업하고 있어요. :)
원고 작업 중에는 디지털 안에서 브러쉬나 스크린 톤을 통해 컷마다 원하는 효과를 어떻게 구현할까 고민하는 것이 가장 오래 걸렸어요. 연필 질감이 나면서도 적당히 촉촉한 효과를 내기 위해 브러쉬를 세 개 정도 커스텀해 사용하였고, 채색도 여러 번 다른 형태로 해 보다가 키 컬러인 빨강만 사용하는 쪽으로 바꾸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만든 세계 속 인물들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을 보는 순간 자체가 즐거웠어요. 또 어떤 컷을 그리고 나서는 명암이나 선, 구성이 만족스럽게 표현돼 이야기와 잘 맞물리는 순간순간이 행복했습니다. 대사 한 마디를 여러 번 고민해서 꼭 맞는 말을 넣었다는 생각이 들 때도 기뻤어요.
<연옥당>에서 사용하는 ‘까마귀 케이크나이프'를 보고 감탄했습니다. 이런 디테일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요. 또 연옥당을 집필하면서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으신지요.
이런저런 상상이나 생각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트에 기록해두는 걸 좋아합니다. 대부분은 의미 없는 낙서지만 그 낙서 여러 개를 조합하다 보면 재미있는 결과물이 나올 때가 많거든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물체를 더해보면 생각보다 어울릴 때가 많아서 그것도 재미있고요. 개중에서도 조금 으스스하고 이상한 결과에 끌리는 편이에요. 뼈로 된 나뭇가지나 이빨로 가득한 석류알처럼요. 까마귀 발을 본뜬 케이크나이프도 그런 조합을 거치며 나왔다고 볼 수 있을 듯해요. <연옥당>의 트레이드마크는 까마귀니까, <연옥당> 안의 집기들도 까마귀를 닮았으면 좋다고 생각했고 까마귀와 주방 도구를 조합한 결과, 까마귀 케이크나이프가 나온 것이죠.
<연옥당>을 그리면서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은 인물의 개인적인 서사를 '케이크' 라는 소재로 녹여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케이크'라는 소재의 의미에 대해 항상 고민했어요. 특히 생일 케이크는 사람이 태어난 것을 축하하기 위해 만드는 음식이고, 그 기저에는 어떤 대상에 대한 사랑이 깔려 있잖아요. 그래서 탄생을 축하하는 의미를 뒤집어 죽음을 위로하는 의미로 바꾸었을 때도 그 핵심은 바뀌지 않는다고 떠올렸어요. 누군가를 떠나보낼 때 케이크를 올리는 것도 곧 그리움과 사랑에서 나온 행동일 테니까요. 남은 사람이 떠나보낸 사람을 위해 어떤 케이크를 준비할까, 그 케이크는 어떤 모양일까 상상하며 캐릭터의 삶과 케이크를 밀접하게 연결시키려고 했습니다. 미리 인물의 이야기를 다 짜놓고 자연스럽게 케이크의 종류나 모양을 생각하게 된 에피소드도 있고, 아예 특정 케이크로부터 출발한 에피소드도 있어요.
첫 텀블벅 펀딩을 준비하면서 힘든 점이 있었다면 알려주세요.
펀딩도 제 작업을 다른 분들에게 소개하는 장이라는 생각이 들어 준비 과정은 매우 즐거웠어요.
다만 개인적으로 힘들 것 같은 부분은 펀딩이 마감된 후에 책을 배송하는 단계예요. 2000부 가까이 되는 배송 건을 안전하고 정확하게 전달해 드리기 위해 아예 물류창고와 작업실을 대여해 조금 더 꼼꼼하게 챙기려고 합니다. 저는 지방에 거주하기 때문에 서울까지 여러 번 오가면서 제작과 포장, 배송을 작업하게 될 것 같아요.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단 하나의 리워드도 빠지지 않고, 꼼꼼히 전달해 드리는 게 펀딩의 가장 큰 달성목표라고 여기기 때문에 약속된 날짜에 소중히 전해드릴 수 있도록 열심히 달리겠습니다!
평소 텀블벅에서 눈여겨본 프로젝트가 있었는지요?
여러 작가님들의 일러스트 작품집이나 만화 단행본 발행이 제일 눈에 띄어요. 텀블벅이 작가님들의 새로운 발행 창구가 되는 느낌입니다. 사실 늘 펀딩이 끝나고 난 뒤 독립서점 등에서 한발 늦게 알고 작품을 사는 편인데, 최근에는 에디시옹 장물랭에서 출간한 로버트 헌터 작가의 책들과 22인의 여성 작가들로 이루어진 브랙퍼스트 클럽에서 출간한 <수입코너>라는 책이 기억에 남습니다.
제가 환경단체에서 일하고 있다 보니 환경 관련 펀딩도 자주 둘러보는 편인데, 가장 최근에는 합성섬유 없는 오가닉 티셔츠 펀딩에 참여했어요. 합성섬유를 세탁하면 나오는 미세플라스틱이 해양오염에 큰 문제라고 들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연옥당>도 비닐을 최소화한 방식으로 포장해 보내드릴 계획입니다.
현재 <연옥당>이 목표 금액인 2,000,000원을 훌쩍 넘어 3,500% 이상 초과 달성 중입니다. 후원자도 약 2천 명 가까이 되고요. 기분이 어떠신지 또 이런 뜨거운 호응을 예상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처음엔 ‘한 백 권 정도 만들 수 있겠지’ 했는데, 지금은 2000여 권 정도를 기준으로 잡고 견적을 받아보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하고 또 감사한 마음뿐이에요. 또 규모가 커진 만큼 제작 상황이나 배송 준비 등 남은 단계들을 조금 더 꼼꼼히 살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이제 산호 작가님에 대해 조금 더 깊게 알아보고 싶습니다. 작가님의 트위터에서 미술 전공이 아니라는 것을 보고 무척 놀랐어요.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기까지의 과정이나 노력을 들려주세요!
그림을 시작했던 것은 9살 내지는 10살 무렵이었을 거예요. 이후 미대에 진학하고자 했었지만, 집안 사정이나 환경적으로 어려웠어요. 그래서 가장 좋아하는 것을 배우지 못한다면 그다음으로 좋아하는 것을 전공으로 삼자고 다짐을 했고, 그렇게 영상과 영화를 배웠습니다.
재학 중에도 그림 그리는 것을 멈추지는 않았어요. 아르바이트로 받은 첫 월급으로 맨 처음 했던 것도 물감을 사는 일이었으니까요. 그림은 제게 여전히 행복한 취미고 친구였거든요. 그래서인지 선배나 동기들 영화 스탭으로 촬영을 다니면서도 가장 많이 했던 일은 영화 스토리보드를 그리는 것이었어요. 스토리보드가 은근히 만화와 닮은 구석이 많아서 그리면서 여러가지 훈련을 하게 되었던 게 아닐까 해요. 구도를 설정하는 법, 인물을 크거나 작게 그리는 법, 사물을 의도에 맞게 배치하는 법을 스토리보드를 하면서 손에 익힌 것 같습니다.
단편영화 실습작도 실사영화가 아니라 애니메이션을 만들었어요. 그렇게 애니메이션 실습작을 한 학기 동안 만들고 그다음 해 휴학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방 안에 작업 책상을 들여놓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죠. 색깔을 조합하고 붓으로 형태를 만들어내는 일 자체가 너무 행복했어요. 새벽 다섯 시쯤 밤새도록 그림을 하나 완성해 놓고 의자에 앉아서 그 그림을 보는데 문득 그림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부터 나 자신이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인식을 갖기 시작했어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예비 창작자님들은 늘 궁금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아하는 그림 그려서 먹고살 수 있나요?’라는 질문도 많이 하시고요. 저희도 궁금한데요, 그림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데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그림을 멈추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림은 배울 것도 너무 많고, 세상에 잘 그리는 분들도 너무나 많고, 게다가 저는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못했던 터라 그런 걸 자주 느꼈죠. 그래서 슬럼프가 올 때마다 ‘더 열심히 그려야지’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부족하다는 걸 아니까 손에 펜만 있으면 계속 그렸어요.
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봐요. 색채든 형태든 그림체든 어느 정도 그림에 대한 생각과 개념이 싹트고 나면 거기 물을 줄 수 있는 게 '내가 하고싶은 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믈론 저도 계속 제 말을 찾아가는 중이고, 언젠가는 제가 하고 싶은 말을 그림에 완전히 담아낼 수 있길 바라요.
작품을 처음 봤을 때 실제로 만지면 유화 같은 질감이지 않을까 했는데 수채화라고 하셔서 의외였습니다. 산호 작가님만의 특별한 표현법이 있을까요? 그림 완성에서 중점을 두는 부분도 궁금합니다.
과슈와 수채화를 섞어 그리는 불투명수채화 기법을 사용하고 있어요. 물을 가능한 한 적게 사용해서 밀도 높고 깊은 색감을 내는 방법을 선호하는데, 수채화보다는 묵직하고 과슈보다는 가벼운 특유의 질감을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림을 완성할 때는 전체적인 색감의 조화에 민감한 것 같아요. 아주 선명한 원색보다는 한 겹 어두운 채도의 색을 선호하기에 그림 속에서 서로 맞닿는 색들에 특히 신경 쓰는 편이고요. 색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덧칠하고 수정하고 끝없이 고치고 또 고쳐요. 만족스러운 색감을 얻기 위해서 혼색을 굉장히 많이 하는데, 채색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팔레트를 두어 번 씻어야 할 때가 많습니다.
한 가지만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형광펜, 과슈, 색연필, 디지털 등 다채롭게 사용하시고 있는데, 각각의 매력에 대해 들려주세요.
우선 형광펜은 마카의 라이트 버전 같은 느낌으로, 가볍게 채색을 할 수 있다는 점이 포인트지요. 펜으로 아무렇게나 그린 그림에 여기저기 쓱쓱 칠하고 나면 자유로운 기분마저 들고요.
과슈와 색연필은 질감이 정말 매력적이에요. 과슈는 재료 자체에 묵직하고 풍부한 느낌이 있어서 색을 섞고 얹었을 때 제가 원하는 매끈하면서 두터운 질감 그대로를 쉽게 만들어낼 수 있고, 색연필은 건식 재료가 만들어내는 특유의 선과 면을 또렷하게 표현할 수 있어요. 색연필의 경우 세게 칠하면 오일파스텔처럼 도톰하게 올라가고 약하게 칠하면 옅은 베일이 깔린 것처럼 표현할 수 있어 재료 하나로 다양한 표현도 가능하고요.
디지털은 역시 ‘뒤로 가기’ 버튼이 있다는 게 절대적인 강점이자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많은 도구와 색채를 쉽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도요. 직선과 도형을 클릭 한 번으로 만들어낼 수 있어서 만화를 그릴 때도 편한데, 일러스트레이션을 수작업으로 하다 보니 이런 디지털의 기능을 소중히 여깁니다.
작품이 가진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인물의 눈에는 강렬한 힘이 느껴져 인상적이었습니다. 어쩐지 에곤 실레의 그림이 떠오르기도 했고요. 작가님 특유의 화풍이 생기기까지, 혹은 지금도 영향이나 영감을 받는 작가와 작품이 있으신지요?
프리다 칼로와 프랜시스 베이컨의 작품을 정말 좋아하고, 언제나 저 두 화가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다고 생각해요. 프리다 칼로가 자신의 이야기를 그림에 담아내는 방식에, 프랜시스 베이컨이 색채로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에 항상 경외심을 느낍니다.
영화와 영상 작업을 하다 보니 영화에서도 많은 영감을 받습니다. 잉마르 베리만과 헨리 셀릭, 마야 데렌,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영화를 좋아합니다. <매그놀리아>를 연출한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작품은 특히 구도와 배경, 미술을 통한 미장센이 스토리와 잘 어우러져서 볼 때마다 감탄하게 돼요.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 영화는 장면마다 멈춰 놓고 크로키를 하기도 합니다. 학교에서 비평 강의를 들을 때 썼던 방식이라 익숙하면서도 감독마다 서로 다른 작가적 색채가 보여서 흥미로워요.
마치 현실에 있을 법하지만 그 무엇보다 비현실적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오묘한 화풍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어 어떻게 흘러가는 중인가요?
<코렐라인>과 <크리스마스의 악몽>으로부터 시작되었고 <록키 호러 픽쳐 쇼>를 지나 지금은 <리틀 숍 오브 호러스>로 가고 있는 것 같아요. 계속 기괴하고 이상하고 신기한 것들을 그리려고 하는데 그 그림들과 함께 어디로 흘러가게 될 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렇게 하고 싶은 말을 하다 보면 어딘가에 닿아 있을 텐데, 그곳이 여전히 이상하고 기이하고 아름다운 곳이었으면 좋겠어요.
작품에서 붉은색이 매력적입니다. 강렬하면서 차분한 느낌이 신기하기도 하고요. 키컬러 삼아 의도적으로 사용하시는 것인가요?
어느 순간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 자연스레 빨강으로 손이 가는 것 같습니다. 빨강 계열 색만 모아두는 팔레트가 따로 있을 정도로 붉은색을 정말 좋아합니다. 빨강은 시선을 모으는 동시에 위험을 경고하는 색이고, 뜨거우면서도 어딘가 서늘하지요. 이중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어서 쓸 때마다 즐거워요.
당분간은 <연옥당> 완성과 전달에 여념이 없으실 텐데요, 혹시 그 후의 계획을 여쭤봐도 될까요? 차기작이라든지, 다음번 텀블벅 펀딩 계획 등이 궁금합니다.
<연옥당> 펀딩 완료 이후에는 잠시 쉬면서 그림 공부를 더 하고 싶어요. 실크스크린이나 리소프린팅 같은 기법도 더 배워보고 싶습니다. :)
마지막으로 후원해주신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연옥당>의 작가 산호입니다. 먼저 뜨거운 성원을 보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께서 함께해 주셨기에 <연옥당>이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후원해주시는 걸 보면서 매일매일 새로운 감동을 받고 있어요. 커뮤니티나 SNS를 통해 전해주신 응원들도 너무나 감사드려요! 한 분 한 분 만나서 악수와 포옹을 하고 싶은 기분이에요. 봐주시는 분들이 있기에 그리는 제가 있는 것이니까요. 어떻게 해야 감사한 마음을 100% 온전히 전할 수 있을까 매일 고민해요.
올 겨울 차 한 잔과 함께하는 <연옥당>이 여러분들의 마음에 케이크 한 조각처럼 녹아드는 작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 번 <연옥당>에 커다란 호응을 보내주신 분들, 제 작업을 응원해주시고 지켜봐주시는 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사랑해요..정말 많이..! 산호 드림.
산호 작가가 빨간색을 선호하는 이유도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중의적인 색깔인 ‘빨간색'은 ‘피’를 상징해 죽음을 뜻하기도 하지만, 그 피를 내뿜는 ‘심장'도 연상돼 강인한 생명력을 담아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산호 작가는 죽음을 단순히 끝이 아닌 시작이라는 중의적인 뜻을 담아 위로와 격려를 건네기 위해 <연옥당>을 그린 것 아닐까요. 앞으로 산호 작가가 우리에게 보여줄 멋지고 중의적인 세상이 더욱 기대되는 오후입니다.
산호, 일러스트레이터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며 과슈, 수채화, 색연필을 사용한 일러스트레이션 작업과 디지털 페인팅을 통한 만화 작업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빨간색과 새, 모든 종류의 식물과 좀비영화를 좋아하며, 이상하고 사랑스러운 그림을 그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현재 직접 쓰고 그린 그래픽 노블 <장례식 케이크 전문점 연옥당>의 출간을 앞두고 있습니다.
취재・편집 권수현 | 작품 이미지 제공 산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