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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텀블벅 Sep 16. 2019

견고한 세상에 작은 균열 만들기,
비릿

텀블벅 첫 연재/구독 기획전 <시리즈 오브 시리즈> 인터뷰(5)


연재・구독 기획전 <시리즈 오브 시리즈> 참가팀 중 마지막 인터뷰의 주인공은 올해 5월 첫 호를 발행한 문학잡지 <비릿 be:lit> 팀입니다. ‘한국문학 안에서 그동안 주목받지 못한 작가를 주제로, 다른 여러 작가가 공동작업한 컴필레이션 앨범 형태의 잡지’라는 소개가 퍽 매력적이죠. <비릿>에 대한 후한 감상평이 주변에서 들려올 때쯤 한 권을 구해 정독했고, “사회에 고착화된 메이저리티와 마이너리티의 경계를 허무는 데 일조하기를 바란다”는 포부에 반하고 말았습니다. 어렵게 등단하고도 청탁을 받지 못하는 작가와 또 등단을 못해서 청탁이 없는 작가 사이에서 도대체 등단이 뭐기에,라는 의문이 부정으로 바뀌어가던 때이기도 했고요. 게다가 분명, 등단과 비등단의 경계를 허물고 주목받을 기회가 없던 작가들을 위해 직접 지면을 만든 <비릿 be:lit>의 목표와 정기적인 연재처가 필요한 창작자들과 독자를 직접 연결하고자 했던 <시리즈 오브 시리즈>의 목표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비릿 be:lit> 팀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독립문학잡지 <비릿 be:lit>을 만드는 사람들이에요. 각자의 자리에서 소설과 평론, 시와 에세이를 쓰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한국의 문학과 사회에 고착화되어 있는 여러가지 경계들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경계, 남성과 그 밖의 성별 사이의 경계, 수도권과 주변 지역의 경계, 작가와 독자 사이의 경계 등. 

이러한 모든 경계는 위계로 작동함으로써 서로 다른 존재 간의 단순한 차이로 남지 않고 도리어 차별의 근거가 됩니다. 한 사람이 어떤 사회 안에서 메이저리티 또는 마이너리티로 구분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지는 현실. 그뿐 아니라 주체로서의 선택권을 출생 이전부터 상실했다고 하더라도 과언이 아닌 현실. <비릿 be:lit>은 이러한 현실을 응시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문학이 현실의 부당한 면모를 부수지는 못하더라도 자그마한 균열 정도는 만들어내기를 바랍니다. 


잡지를 함께 만드는 에디터들은 서로 어떻게 만나셨나요?

저희는 같은 대학을 모교로 두고 있는 사람들이에요. 학과 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는데, 각자 어느 정도씩 지인 관계이기는 했습니다. 그렇다고 사적으로 친분이 짙은 사람들로 구성된 건 아니어서 대부분 서로 존댓말로 대화를 나누고 있어요. 

나름대로 전혀 다른 삶과 전혀 다른 스타일의 문학을 경험하고 실천해온 사람들이라서, 돌이켜보면 지금 <비릿 be:lit>을 통해 드러나는 주제는 수많은 대화의 산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언젠가는 모교 밖에서 저희와 함께할 수 있는 에디터를 모시고 싶지만, 지금은 돈이 되는 일이 아니고 오히려 사비를 지출해가며 진행하게 되는 일이다 보니 아직은 시기상조인 것 같습니다.


텀블벅에서 선보이는 새 콘텐츠는 어떤 기획인가요?

새 콘텐츠 제목은 <be-lit-review>입니다. 에디터들이 각자 하나의 채널이 되는 느낌으로 독립문화콘텐츠를 리뷰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기획되었어요. <비릿 be:lit> 1호 후반부에 특정 독립문화콘텐츠를 가볍게 소개하는 히든 트랙이 있었는데요, <be-lit-review>는 그 연장선상에 있는 확장판입니다. 에디터 각자의 개성과 창작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어요. 리뷰라는 틀, 형식에 대해서도 고민 중입니다. 대부분 부담 없이 접할 수 있는 전형적인 리뷰의 형태가 될 것으로 예측되지만, 가끔은 독자에게 소설이나 에세이를 읽는 경험을 안길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후원자를 위한 또 다른 콘텐츠인 <be:lit be:hind>의 경우 창간호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탈락된 아이디어들, 숨겨진 에피소드들, 그리고 비릿 Ask.fm을 통해 받은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다룰 예정이에요.



소개글을 읽으며 어떤 경계 혹은 위계에 대한 의심과 불만에서 출발한 기획이라고 느꼈어요. 여기저기서 등단과 비등단 같은 경계에 불만을 갖고 이를 허물기 위한 시도와 노력이 일어나고 있지요? 다양한 방식 중 ‘종이잡지라는 매체를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이번 질문에 대한 답변은 조금 길어질 것 같네요. 양해 부탁드려요.
문학의 종언이니 책의 죽음이니 하는 말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세상을 떠돌고 있고, 한 편의 영화를 천만 명이 보는 일은 그리 놀랍지 않은 시대가 되었지요. 문학작품 한 편보다 SNS의 텍스트가 훨씬 많은 독자를 확보하는 시대이기도 하고요. 문장웹진이나 웹진비유 같은 좋은 웹매거진이 있고, 차현지 소설가가 운영하는 SRS처럼 흥미롭고 유의미한 형태의 온라인 플랫폼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종이잡지’라는 형식을 선택한 이유, 당장 떠오르는 건 두 가지예요. 하나는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여전히 문학만이 할 수 있는, 문학이 다른 매체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예술의 영역이 있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 이유를 충족하는 소통의 형식은 종이잡지였어요.
한편으론 몇 년 전부터 한국 출판시장에서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갖게 된 독립출판의 흐름에 동참해보고 싶었어요. 우리가 보기에, 한국의 독자들이 그동안 접해온 문학은 대형 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된 영화 또는 음악과 비슷한 위치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문학이, 문학 그 자체라기보다는 하나의 장르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라고 명확하게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우리는 한국문학이라는 이름 아래 생산되는 작품들이 외국의 문학과 구별되는 특징을(좋게 말하면 개성을) 가지고 있음을 느껴요. 예컨대 한국의 많은 단편소설은 200자 원고지 기준 80매~100매 사이에서 쓰이며, 문제적인 성격을 지닌 인물이 문제적인 사건을 관통하면서 겪게 되는 문제적인 의미를 담아내는 데 공을 들입니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외국의 단편소설들로부터는 느끼기 어려운 일률적인 형식 또는 패턴을 봐요. 장르문학은 특정한 소재와 배경, 그리고 규칙을 중심으로 쓰인다는 점에서 순수문학과 구별되어 왔는데, 위와 같은 의미에서 한국의 순수문학은 또 하나의 장르문학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저희는 그와 같은 기성문학의 문법을 잣대로 보자면 좋은 작품으로 규정되기 어려울지라도 자신의 자리에서 꿋꿋하게 문학을 하고 있는, 대중들에게 익히 알려져 있지 않은 작가들의 개성에 주목하고 싶었습니다. 이를 통해 문단 구조의 폐쇄성을 극복하고 한국문학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싶었고요. 어쩌면 이같은 저희의 바람이, 이제는 무시할 수 없게 된 독립출판의 바람과 비슷한 결을 지니고 있지 않나, 생각했어요.

그뿐 아니라 등단제도에 대한 비판적인 의식 또한 저희가 종이잡지를 선택한 이유일 수 있겠네요. 등단제도를 통해 신인 작가와 시인을 선발하는 한국 문단은 동시에 종이잡지라는 형식을 통해 그들의 권력을 유지해 왔습니다. 그들의 오래된 방식과 같은 방식으로 조금 다른 형태의 문학을 독자와 함께 나눌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등단제도가 한국문학 특유의 형식으로서 지난 100년간 한국문학사를 이끌어왔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문단이라는 추상적인 세계로의 진입을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의무적인 관례, 상징적인 전통이라는 의미를 보존하고자 그것을 계속해서 남겨두기에는 구태에 가까운 면이 있다고 봐요. 문학은 모든 형태의 권력과 고착화된 형식으로부터 탈피를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예술이기 때문에. 문학은 권력이나 형식이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무한경쟁을 유도해서도 안 되고요. 혹여 저 자신도 모르게 그러한 것이 되지 않을까 언제나 스스로 점검하고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한국문학은 언제부턴가 권력과 형식을 통해 유지되어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등단제도는 문학이 가장 멀리해야 할 권력과 형식을 매년 재생산하는 기틀로 남아있는 듯하고요. 끊임없는 경쟁을 촉발함으로써 독자들을 소외하고, 같은 것들의 세계로 변모하는 듯합니다. 대한민국이 제아무리 오디션의 천국이라지만, 적어도 문학은 오디션이어선 안 될 일 아닐까 생각해요. 오늘날, 그리고 다가오는 시대의 등단제도는 슈퍼스타K나 K팝스타, 프로듀스101과 다를 바 없이 위험합니다. 오히려 그러한 신인 발굴 과정에 독자가 철저히 소외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여타 오디션 프로그램보다 더더욱 좋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보고요. 문단이 그들 자신이 아니라 진정 한국 문학과 사회를 위한다면, 신인 작가들로 하여금 거대한 권력의 인정을 받음으로써 비로소 작가로 인정 받았다는 수동적인 믿음을 안겨주는 구조는 이만 버리고, 작가들이 주체적으로 글을 쓰고 능동적으로 독자와 만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일 정도를 맡아서 수행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비릿 be:lit>이 생각하는 ‘독립문화콘텐츠’란 무엇인가요? ‘독립’ 범주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생각하면 <비릿 be:lit> 에디터들 사이에서도 각자 생각과 시선이 다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모로 고민해오고 있는 부분입니다. 이분법적으로 딱 잘라서 구분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고, 그렇게 구분하는 방식이 독립문화에 이롭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만 독립문화콘텐츠와 비독립문화콘텐츠를 구별짓는 가장 큰 차이점이 자본에 있는 것 같기는 해요. 상업적 목표가 분명한 거대 자본을 토대로 생산된 것이 아닌, 개인 또는 개인에 가까운 조직이 그들의 소규모 자본으로 창작한, 구조적으로 큰 수익을 기대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콘텐츠 말이지요. 독립영화, 독립출판물, 인디음악, 더 넓게는 독립서점이나 소규모 복합문화공간까지 해당 영역에 포함될 수 있다고 봐요. 오늘날 대중이 경험할 수 있는 콘텐츠는 거대자본의 생산물로 획일화되어 있는 편이죠. 따라서 대중의 취향이라는 것도 같아지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는 이게 정말 무서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와 구별되는 독립문화콘텐츠의 경험이란 소소한 개개인들에 의해 창작된 다양한 콘텐츠, 그에 대한 수평적인 경험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결과물을 통해 일정한 수익성을 창출하게 된다면 당연히 좋은 일이겠지만, 독립문화콘텐츠의 창작자들은 애초에 그런 기대가 크지 않은 것 같아요. 오히려 본인의 자본을 투자해서라도 세상에 창작물을 내놓고 싶어하고, 결과적으로는 세상으로부터 어떤 응답을 받는 상호작용을 꿈꾼다고 할까요.

덕분에 독립문화콘텐츠는 보다 다양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거대 자본은 상업성과 수익성이 검증된 창작물을 향해 안전한 투자를 하고, 그러다 보면 상업성과 수익성을 이끌어내는 창작물로부터 일정한 규칙을 추출함으로써 몇 번이고 그것을 겉보기에만 다른 작품으로 복제, 재생산하기 마련인데요. 독립문화콘텐츠는 그러한 기대가 애초에 크지 않다 보니 작가의 개성이 검열되지 않고 더욱 다양한 형태로 드러나는 거죠. 그러한 과정에서 가끔은 기대하지 않은 수익을 이끌어내는 창작물이 등장하기도 하고, 의도치 않게 우리 문화의 외연을 확장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서로 이롭지 않나 싶네요.

콘텐츠 수용자가 조금 더 부지런하게 움직여야 발견하고 향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독립문화콘텐츠의 경험은 결국 수용자의 적극성을 수반하는 경험, 수용자에 의해서 완성되는 경험이라고도 생각해요. 이는 창작자와 수용자의 관계가 근대적인 작가와 독자의 관계를 넘어서는 수평성을 지향하게 되는 과정인 것 같아요. 독립문화콘텐츠의 수용자는 그 과정에서 자신이 갖는 창작자로서의 잠재력을 확인하게 될 수도 있다고 보고요.


<비릿 be:lit>이 주목하고 있는 독립 작가들을 소개해 주신다면요?

한두 명 꼽기는 쉽지 않은 일 같아요. 이미 주목한 바 있는 작가를 말씀드리자면, <수영, 다녀오겠습니다>의 주윤 작가님(최근 <나만 두려운 건 아니겠지>라는 신간을 출판하기도 하셨어요), <모든 시도는 따뜻할 수밖에>의 저자이자 싱어송라이터인 이내 작가님, <경찰관 속으로>의 원도 작가님, 그리고 매거진 <쓰레기>의 발행인인 저스트 프로젝트의 이영연님을 소개해드리고 싶어요.

또한 <비릿 be:lit>의 디자이너이자 싱어송라이터인 나다은. <비릿 be:lit> 팀은 그의 모든 활동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텀블벅을 통해 뜻밖의 연재를 선보이게 되셨는데요, <시리즈 오브 시리즈>에 참여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마침 10월 중순쯤 <비릿 be:lit> 2호 발행을 위한 텀블벅 펀딩 계획을 세우고 있었기 때문에 먼저 제안을 받게 되어서 많이 놀랐습니다. 무엇보다 <비릿 be:lit>처럼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독립문학잡지에 이런 관심과 기회를 건네주셨다는 점에서 감사했습니다. 연재라는 주제 자체도 무척 좋았어요. 사람들이 텀블벅, 하면 떠올리게 되는 일회성의 후원과 창작의 메커니즘을 깨트릴 수 있는 즐거운 상상력으로 여겨졌고, 창작자에게는 단비와도 같은 좋은 기획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번 텀블벅 연재를 통해 기대하는 바가 있으시다면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연재라는 경험 자체를 얻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느껴요. 창작자로서 자신과 무관한 삶을 살아온 독자와 텍스트를 매개로 만나는 경험은 쉬운 경험이 아니니까요. 작가라는 존재의 공적인 성격을 느끼게 될 테고, 텍스트 자체가 갖는 성격에 비하자면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막중한 책임감을 겪게 될지도 몰라요. 따지고 보면 각 에디터가 많은 글을 연재하지는 못할 테지만, 그럼에도 마감과 연재라는 공적인 체험은 팀원들을 한 단계 성숙하게 하리라 믿고 있어요. 
또한 <be-lit-review>를 통해 우리가 보다 다양한 독립문화콘텐츠를 경험하고, 독자에게 소개함으로써 독립문화 시장을 활성화…시킬 수는 없겠지만, 서로서로 좋은 환경이 조성되는 데 보탬이 되고 싶어요. 요컨대 우리가 주체적으로 그런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시리즈 오브 시리즈> 기획전 참여를 추천하고픈 팀이나 필자가 있으신가요?

<비릿 be:lit>은 최근 2호를 위한 원고 투고를 받았습니다. 들어온 원고들을 검토하는 동안 너무 좋으면서도 한편으론 마음이 착잡해지기도 했는데 그건 종이잡지라는 물리적인 공간 안에 이 작품들을 모두 실어드릴 수 없다는 현실적인 한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었어요. 어느 잡지나 마찬가지겠지만, 저희 같은 독립문학잡지는 페이지수의 한계와 원고료의 한계, 디자인 비용의 한계가 너무나도 뚜렷하거든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처럼 다양하게 꿈틀거리는, 살아있는 원고들을 실어줄 수 있는 온라인 매체가 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텀블벅 연재 기획을 준비하면서도 이를 어떻게 접목해볼 순 없을까, 고민해본 것도 사실인데요. 그러기엔 준비할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했습니다. 여하간, 이 같은 독립작가들의 원고를 연재 또는 게재해주는 시스템을 어쩌면 <시리즈 오브 시리즈>에서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돼요.


향후 활동 계획을 들려주세요!

당장 눈앞에 둔 계획은 <비릿 be:lit> 2호 발행과 <시리즈 오브 시리즈>의 연재입니다. 아무래도 2호 발행을 위해 적잖은 공을 들이고 있는데요. 11월 말 발행을 목표로 하고 있는 가운데, 10월 중순경에 텀블벅 펀딩을 오픈하려고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따뜻한 관심 부탁드려요.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의 독자분들께 남기고 싶은 말씀 있으신가요?

<비릿 be:lit>은 반년간 문학잡지입니다. 1년에 2권을 목표로 기획하고 발행하며, 그리 유명하지 않은 주제작가와 다른 여러 작가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컴필레이션 앨범 형태의 문학잡지입니다. 아무래도 독자님들께 친근한 형식을 갖춘 잡지는 아닐 듯한데요. 그럼에도 1호 발행 이후 우리는 처음에 기대한 것보다 훨씬 큰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본 문제는 팀에게 매순간 위기로 작용합니다. 애써 긍정회로를 돌려서 생각하자면 그러한 긴장감을 통해 우리는 매순간 살아있다는 감각을, 살아남아야 한다는 야생의 감각을 느껴요. 때론 외롭고 힘겹지만 할 수 있을 때까지 이 일을 해보려 합니다. 한국문학의 독자들과 문단 안팎의 작가들이 <비릿 be:lit>의 의미를 필요로 할 때까지 말이지요.



인터뷰. 김민규(프로젝트 매니저), 비릿 | 사진. 비릿 | 정리. 주소은(프로젝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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