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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텀블벅 Sep 11. 2019

시가 아닌 것에서 건져올린 시다운 것, 시인 윤지양

텀블벅 첫 연재/구독 기획전 <시리즈 오브 시리즈> 인터뷰(3)


‘익숙한 것을 어떤 방식으로 다르게 관찰하고 새롭게 보여줄 것인가’가 예술의 중요한 메커니즘이라면, 세 번째 인터뷰의 주인공 윤지양 시인이 연재한 <비시각각>은 그 안에서 흥미로운 시선을 제안하는 프로젝트입니다. 2018년 1월부터 5월까지 웹진 <비유>에서 연재한 이 프로젝트는 비시(非詩, 시가 아닌 것들)를 통해 시(詩)가 무엇인지 탐구합니다. 경고문, 안내문, 광고문, 낙서 등 일상적으로 접하는 텍스트는 보통 시라고 일컬어지지 않지만 반대로 시라고 불리는 것 또한 명확하지 않습니다. 윤지양 시인은 시가 아닌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면 오히려 시에 대해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정하에 비시를 살피고 이것들이 과연 시인가 아닌가 질문하며 생각을 이어왔습니다.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 걷거나 뛰지 마세요.”와 같은 경고문은 어쩐지 이미 걷거나 뛰고 있는 사람에겐 읽히지 않을 것만 같지요. “서부산 최초! 단 하나의 랜드마크!”는 어떨까요? 최초, 단 하나의, 두 개의 느낌표가 주는 강한 어조 덕분에 이미 걷거나 뛰고 있던 사람조차 한번쯤 눈길을 줄 것만 같습니다. 자세히 보면 나름의 운율이 있을 것도 같고, 의미나 전달력이 제각각인 이런 문장들은 시일까요? 아니라면 왜일까요? 이런 질문을 수시로 던지는 윤지양 시인의 글과 대답을 따라가다 보면 시를 두고 생각할 때보다 더 시에 대한 감상이 깊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비시각각 인스타그램


연재가 끝난 뒤에도 비시 이미지를 제보받는 인스타그램 계정(@bisi_write)은 꾸준히 업데이트되어 왔으나 <비시각각> 시즌2 소식은 어디서도 접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리즈 오브 시리즈>에 윤지양 시인을 모셨습니다. 그의 다음 글을 읽어야 했으니까요. 





안녕하세요, '시인 윤지양'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시와 시가 아닌 것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며 여러 활동을 하는 사람입니다. 2017년부터 윤지양이라는 이름으로 시를 썼고, 앤솔로지 시집 <좋아하는 것을 함부로 말하고 싶을 때>(은행나무, 2018)의 저자 중 한 명으로 참여했습니다. 


텀블벅을 통해 연재를 준비 중인 <시시각각(詩詩刻刻)>은 어떤 프로젝트인가요?

웹진 <비유>에서 진행했던 <비시각각>의 2탄격입니다. <비시각각>에서는 시가 아닌 것이 무엇인지 탐구하면서 시가 무엇인지 질문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시가 아니라고 치부되는 것, 비시(非詩)라 일컬어지는 광고물, 경고문, 낙서 등의 텍스트를 살펴보았습니다. 

<시시각각>에서는 텍스트를 단순히 분류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텍스트가 생성되고 수용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감정과 느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시대 감성과도 연관되는 지점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또한 <비시각각>의 화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에 가까웠다면 <시시각각>에서는 시인이라는 정체성을 지닌 화자가 등장할 예정이에요. 그래서 보다 내밀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도 포함될 것 같습니다.


<비시각각>을 애독하면서 무척 흥미롭게 읽었고, 시즌2를 기다렸습니다. 기획하게 된 계기가 있었는지요?

비시(非詩)라는 개념은 슬럼프에 빠졌을 때 떠올린 것입니다. 이 용어가 문학계에서 잘 쓰이는 것은 아니에요.그보다 개인적으로, 시가 아닌 것에 매달려야 했던 때 떠올린 개념인데요, 당시 디자인 학교를 다니면서 여러가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과제 등 여러 생활에 대한 어려움을 시 탓으로 돌렸죠. ‘어차피 사람들이 보지도 않을 시를 써서 뭐하지?’ ‘써봤자 돈도 못 벌 텐데.’ 같은 생각을 하다 ‘시 말고 뭘 쓰지?’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시가 아닌 것에 대해 쓰자는 생각이 들었고 그걸로 학교에서 웹 매거진을 만드는 과제를 하기도 했습니다. 일종의 비시각각 테스트 버전이었던 셈이죠. 그러다 웹진 <비유>에서 문학 관련 프로젝트 공모를 접하고 본격적으로 기획을 발전시키게 됐습니다. 나는 비시를 쓴다고 말하면서 역설적으로 계속 시 생각을 했던 거예요.


이번에 연재하실 <시시각각>은  <비시각각>의 심화 버전으로 보이는데, 앞서 연재된 <비시각각>을 먼저 읽고 봐야 할까요?

<비시각각>을 먼저 봐주시면 좋겠습니다만 필수는 아닙니다. 저는 불친절하게 시를 쓰지만 비시에 있어서는 친절하게 쓰는 편이에요. 처음 접한 독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쓰려고 합니다. <비시각각>의 연장으로 읽히더라도 <시시각각>에서는 제보를 통해 나타나는 특정한 시선에 주목해 기존과는 또 다른 시리즈를 만들어갈 예정입니다.


좌_ 연재될 <시시각각> 원고 첫 부분 / 우_ 비시각각으로 제보된 사진들


<비시각각> 인스타그램 계정은 꽤 활발하게 업데이트되고 있지요. 주로 어떤 분들이 이미지를 보내주시나요? 

처음에는 지인들의 제보가 대부분이었어요. 하지만 <비시각각> 연재 중반부터는 낯선 분들이 보내주시는 제보가 많아졌습니다. 연재 종료 후에는 다양한 ‘수집 계정들’로부터 제보와 팔로잉이 늘었고요. 특히 전국의 무지개 사진을 모으는 @colorful.pride 계정주님으로부터 많은 제보를 받고 있어 무척 감사합니다. 언젠가 제보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 <비시각각>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계정이라는 것을 모르는 분도 있었습니다. 아마 여러 텍스트를 모으는 수집 계정 중 하나로 보여진 것 같습니다.


방금 말씀해주신 것처럼 최근 인스타그램을 중심으로 특정 주제의 이미지를 모으는 ‘수집 계정’이 늘어나고 있지요. 개인적으로 물티슈만 수집한 @wtwps, 음식점에 걸린 음식 효능을 모은 @hyoneung_of_00, 심지어는 이런 수집 계정만 모으는 @ongot.collectors 계정들이 재밌었습니다. <비시각각>이 이 흐름의 시초에 놓여있다고 생각되는데, 이런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다양한 수집 계정은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뉘는 것 같습니다. 본인이 실물을 수집하고 그것을 찍는 계정(병뚜껑, 레고 모음 등)과 실제 소유한 것은 아니지만 특정 이미지를 수집하는 계정(간판, 쓰레기 등)으로요. 인스타그램은 이미지를 수집하고 전시하기에 적절한 플랫폼입니다. 어쩌면 빈곤함과 공간 부족의 제약을 무한하고 저렴한 온라인 공간에서 극복하려는 것 같기도 하고요. 

수집 계정을 둘러보다 흥미로운 지점을 발견하기도 했는데요. 망한 가게의 간판을 찍은 사진이었는데 ‘영화 세트장 같아요’라고 댓글을 다는 사람들이 있는 거예요. 거긴 실제로 망한 가게인데! 그걸 보며 확실히 요즘은 현실을 이미지가 지배할 수도 있는 세상이구나, 깨달았습니다.


황인찬 시인의 시 <구관조 씻기기>에 “새는 냄새가 거의 나지 않습니다. 새는 스스로 목욕하므로 일부러 씻길 필요가 없습니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구절이 인상 깊어 찾아보니, 실제 ‘구관조 씻기는 법’을 검색하면 나오는 네이버 지식인 답변에서 발췌한 것이더라고요. 시가 아닌 것(非詩)으로 시를 쓴 거죠.

<시시각각> 프로젝트 스토리에서 “비시(시가 아닌 것)가 시가 되는 지점을 찾는다”는 부분을 읽으며 이 시가 떠올랐습니다. 실제 시를 쓰는 시인의 입장에서, 시를 통해 영감을 받는 경우와 시가 아닌 것을 통해 영감을 받는 경우 중 어느 쪽이 더 많은가요?

시를 통해 영감을 받는다는 것은 시 읽기를 통해 영감을 받는 것이라고 해석하겠습니다. 시가 일종의 이데아처럼 취급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데요. 이 경우 어떤 사물에 시의 일부 속성이 담겨 있고 그것으로부터 시를 끌어냈다는 식입니다. ‘시적인 것’이라는 개념이 여기서 비롯되는 것 같아요. 시가 아닌데 시를 불러일으키는 어떤 것을 시적인 것이라고 말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저는 그 표현을 잘 쓰지 않는 편이고, 그래서 비시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물론 시가 아닌 것을 통해 영감을 받아 시를 쓰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세상에는 시 말고 다른 것들이 더 많으니까요. 시와 상관없이 흥미로운 텍스트, 사물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그동안 제보받은 비시 이미지에서 영감을 받아 쓴 시도 있는지요?

물론 있습니다. 인스타그램 제보를 받아 2019년 3월 30일자로 업로드한 것인데, 고개를 치켜든 여성의 얼굴 밑에 TURE LOVE 라고 써 있는 그래피티 사진입니다. TRUE LOVE라고 쓸 것을 TURE LOVE라고 잘못 쓴 것임에 틀림없는데, 혹시 진짜로 TURE LOVE란 것이 있나 궁금해서 찾아봤죠. 그런 건 없었습니다. 대신 true를 ture 로 잘못 쓰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심지어 ‘true love가 맞나요? ture love가 맞나요?’ 질문하는 글에 ‘ture love가 맞습니다.’ 대답하는 게시물도 있었어요. 진실(true)의 맞춤법이 거짓인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그래서 그 게시물을 적절히 끌어와 배치해 시를 썼지요. 제목도 <Ture Love>예요.


텀블벅으로 연재하게 된 소감은 어떠신가요? 처음 <시리즈 오브 시리즈> 참여를 제안받고 의아하지는 않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연재 플랫폼으로 텀블벅을 상상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관련 제안을 받고 흥미롭다고 생각했어요. <비시각각> 연재 종료 후 인스타그램에 제보되는 것들로 뭘 더 해나갈 수 있을까, 혼자 10분간 고민하다 돈 안되는 짓은 그만하자 싶어 더 생각하기를 관둔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 고민에 대한 해결점이 나타난 것 같습니다. 


혹시 윤지양님이 생각하시기에 <시리즈 오브 시리즈>에 출몰하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창작자가 있나요?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트위터를 통해 일상비평 쪽(zzok.co.kr)이라는 플랫폼을 알게 되었고 연재되는 기획들이 의미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세계 여성시인들의 시를 번역하고 시에 대한 감상과 소개글을 쓰는 이필 님의 기획을 좋아합니다. 이밖에 뚜렷한 지향점을 갖고 나아가는 좋은 기획들이 많습니다. 귀중한 플랫폼이라고 생각하며 일부 글들로 <시리즈 오브 시리즈>에 참여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들려주세요. 

9월은 내내 <시시각각> 프로젝트에 전념할 예정입니다. <시시각각> 연재글 외에 별책부록 선물에 들어갈 글을 생각하는 게 은근히 고민되네요. 친구들과 하는 프로젝트들도 있는데 10월에는 시를 읽고 쓰는 법과 관련한 프로그램을 기획 중이고 어쩌면 추리게임 비슷한 것을 만들게 될지도 모릅니다. 11월 중순까지 여성 캐릭터가 주체가 된 독립운동 관련 보드게임도 만들어야 하고요. 어쩌다 시 쓰는 것 말고 벌인 일들이 많은데요, 앞으로도 시와 시가 아닌 것 사이를 넘나들며 여러 활동을 해나갈 것 같습니다. 그러는 동시에 취준생이라 취직도 고민 중입니다.


살짝 들려주신 프로젝트 예고가 모두 멋지네요. 취준을 포함해서 손 대는 일마다 승승장구이길 기원합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으신가요?

관심을 가져주세요. 모든 창작자들이 바라는 것일 겁니다. 기대를 배반하고 싶지 않습니다.



인터뷰. 김민규(프로젝트 매니저), 윤지양 | 사진. 윤지양 | 정리. 주소은(프로젝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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