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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텀블벅 영퍼센트 Oct 25. 2019

왜 단행본이 아닌 잡지여야 하는가?

1호 이후를 위한 매거진 창작자 워크숍 현장 스케치

루프페스티벌에서 강연 중인 유진선 대표. ©김건호
“안녕하세요.
저는 무비즈 댓 매터의 대표이자, 
프리즘 오브의 대표이자, 
편집자이자, 
발행인 유진선입니다.”


지난 8월 22일부터 9월 5일까지 텀블벅과 플라스크 주최로 ‘1호 이후를 위한 매거진 창작자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세 차례에 걸쳐 매거진에 관심 있는 창작자와 예비창작자를 위하여 어떻게 매거진을 성공적으로 론칭하고, 이를 지속해서 발행할 수 있을지에 대한 내용을 토크와 워크숍 형태로 이야기 나눠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중 마지막 강연은 <프리즘 오브>의 유진선 대표님께서 맡아주셨습니다. 

<프리즘 오브>는 매 호 하나의 영화를 정해, 다양한 시각에서 해당 영화를 새롭게 조명하는 영화 잡지입니다. 2015년 발행한 창간호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부터 지난 9월에 나온 13호 <마담 푸르스트의 비밀 정원>까지 총 13호와 1권의 특별 호를 발행했습니다. 4년여라는 긴 시간 동안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총 9개월의 준비 기간을 통해 만들어진 <프리즘 오브> 1호.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다루고 있다.


<프리즘 오브>는 2015년 3월부터 기획을 시작하여 2015년 12월에 첫 호가 나오기까지 약 9개월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12월에 첫 호가 나오고, 이듬해 3월에 2호, 또 8월에 3호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의 <프리즘 오브>는 비정기 발간으로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잡지라는 매체의 특성을 고려하여 정기적인 주기를 갖고 발행하고자 2017년 4월에 나온 4호부터는 격월로 발행이 되었습니다. 단순히 주기에 변화를 준 것뿐만이 아니라 디자인이나 콘텐츠에도 개편이 이뤄지며 ‘지속가능한' 잡지가 되기 위해 <프리즘 오브>만의 터닝포인트를 위한 밑 작업을 진행하였습니다.  7호 이후 잠깐의 휴식이 될 줄 알았던 휴간 기간은, 많은 고민을 거치면서 예상치 못하게 길어졌지만, 휴간 기간 중간에 특별호로 발행했던 <프리즘 오브 : 불한당 편>이 큰 호응을 받으며 많은 이들에게 <프리즘 오브>가 각인될 수 있었고, 늘어난 관심에 발맞춰 앞선 개편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새로워진 외형과 내용의 8호를 발행하게 됩니다. 8호부터는 1년에 6권이 아닌 4권을 내는 것으로 다시 발간 주기를 변경하며 이에 따라 표지 디자인부터 콘텐츠 내용, 팀 구성은 물론, 수익 구조까지 새롭게 개편하였습니다. 특별호까지 합쳐 총 14권의 잡지 중 10권을 텀블벅 펀딩으로 진행하며, 도합 2억 2천, 누적 후원자 수 약 6,900명을 모았던 <프리즘 오브>가 말하는 ‘지속 가능성'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만들기’를 먼저 했고, 
그 이후에 ‘매거진’을 고민했고, 
마지막으로 ‘지속 가능함’을 고민했습니다.”


<프리즘 오브>의 유진선 대표는 ‘지속 가능한 매거진 만들기라는 이번 워크숍의 큰 주제를 세 덩어리로 나누어 설명했습니다. ‘지속 가능한이라는 큰 덩어리와, ‘매거진이라는 또 다른 덩어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만들기'라는 덩어리로 주제를 나누며 “우리는 ‘만들기를 먼저 했고, 그 이후에 ‘매거진'을 고민했고, 마지막으로 ‘지속 가능함'을 고민했다”고 합니다. 동시에 “우리가 겪은 모든 혼란과 풍파를 조금이라도 덜 겪기 위해서는 ‘만들기'-’매거진'-’지속 가능함이라는 순서로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매거진'을 먼저 고민한 후 ‘만들고, 이를 ‘지속 할 수 있기 위한 고민을 해야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고민해야 한다는 ‘매거진에 대한 유진선 대표의 생각을 들어볼까요.



“왜 단행본이 아닌 ‘잡지’여야 하는가?”


‘매거진'에 대한 고민의 출발은 바로 위의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잡지를 만들고자 한다면, 내가 만들려고 하는 책이 잡지여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잡지를 만들고자 하는 주변의 많은 분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잡지를 만들고자 하는 이유가 의외로 ‘잡지를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단순한 이유에 그친다”고 합니다. 실제로 이 글을 작성하는 저 역시 ‘일단 만들어본다’라는 마인드로 잡지 창간을 준비하시는 분들을 더러 만나기에 무척 공감되었습니다.

유진선 대표는 어떤 콘텐츠를 기획할 때, “이 콘텐츠가 과연 잡지라는 매체에 가장 적합한 것인지를 먼저 따져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즉, 단행본이 아니어야 하는 이유, 10호 이상 연재를 하고 싶은 이유와 발간의 주기성을 가지고 싶은 이유가 분명히 존재하는 콘텐츠여야 하는 것이지요. 잡지라는 매체에 어울리지 않는 콘텐츠를 잡지로 내게 되면, 1호와 2호는 어떻게든 만들 수 있겠지만 그 이후에는 결국 다시 ‘내가 왜 잡지를 만드는지, 이 콘텐츠가 왜 잡지여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에 봉착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잡지를 낸다는 것은 해당 기획이 단발성이 아니라 지속해서 독자에게 전달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기적으로 발간을 하든 비정기적이든, 잡지는 ‘다음 호로 곧 돌아온다'는 메시지를 독자에게 전달하는 매체이지요. 때문에 “잡지를 기획하고 있는 창작자는 독자에게 ‘내가 돌아와야 하는 이유'를 설득해야 하며, 이를 고민하는 것이 무척 중요”합니다. 


다음으로 ‘내가 돌아와야 하는 이유'를 전달해야 할 ‘독자'는 누구일까요? 이 문장을 보다 거칠게 말하자면 ‘내 잡지는 누구에게 팔릴까'요? 한 권을 내고 마는 단행본과 다르게 잡지는 장기적으로 발행한다는 점에서, ‘팔리는 매체'로서의 속성을 반드시 고려해야 합니다. 잡지는 독자와 끊임없이 접점을 만들어갑니다. 그 점에서 어떤 사람이 나의 독자인가를 고민하는 것은 당연한 부분이지요.

다만 독자에 대한 고민을 너무 한 결과, 일부 독자에게만 맞춘 잡지 혹은 독자가 원하는 내용만을 뒤쫓는 잡지가 되어, 주객전도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해야 할 이야기를 내가 컨트롤하고, 이 이야기가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지 내가 할 이야기를 독자에 맞추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처음엔 무작정 ‘잘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점차 ‘우리가 다루는 내용이 어렵나?’를 고민하게 되었고, 
다시 독자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제야 주체적으로 담론의 장을 만들고 있다는 책임감이 생겼습니다.”


두 번째 ‘만들기'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며 유진선 대표는 ‘일단 잘 만들자’라는 생각으로 3호까지 만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기획에서 실제 출간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9개월. “그 기간 동안 평생 볼 잡지는 다 살펴보았다”라고 하실 정도로 준비를 철저하게 한 까닭은, ‘일단 잘 만들자’라는 신념 때문이었습니다. 일단 어디에든 놓였을 때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 잡지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고, 실제로 그렇게 공을 들인 1호는 출간한 지 4개월 안에 완판을 이루었습니다. 2호 역시 “1호의 퀄리티를 유지하는 것에 온 신경을 쏟았다”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곧 “3호를 만들며 다양한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라고 합니다. “이 콘텐츠가 정말 좋아서 사는 걸까?” “아니면 단순히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서 사는 걸까?”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 하며 ‘독자'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고, 동시에 보다 지속 가능한 디자인과 아이덴티티를 위해 개편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4호부터 7호까지는 독자를 계속해서 유념하며 “이게 어려운지" “쉬운지"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던졌다고 합니다. “영화 평론을 다루는 잡지이면서도, 동시에 많은 독자에게 닿는 것을 목표로 하다 보니 콘텐츠의 난이도와 글의 톤을 조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잡지가 예상한 것보다 많이 나가지 않았다면 왜 팔리지 않았는지를 분석하며 이를 보완해나가는 방식으로 다음 호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는 독자를 산정하고 콘텐츠를 조정하는 것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잡지의 독자는 매 호마다 매번 일정하지 않고, 그 반응 역시 매번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프리즘 오브>처럼 매 호 다른 영화를 다루기에 보는 이가 크게 유동적인 경우에는 특정한 독자층을 찾아 일치시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을 인정한 후, 되려 “주체적으로 콘텐츠를 만드는 발행인으로서의 책임감이 생겼다”고 합니다. 

결국, 내가 좋으나 싫으나 잡지를 만드는 것은 어떤 담론에 기여를 하는 것입니다. 유진선 대표는 “예전에는 단순히 우리 독자가 좋아할까를 고민하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면, 지금은 이 기사를 통해 그에게 새로운 인식/감상을 남길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나오게 된 8호는 디자인적으로도 콘텐츠적으로도 달라진 시선이 많이 반영되었습니다.



“2007년에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상>이라는 영화가 나왔을 때, ‘혐오'라는 단어는 지금과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2016년 이후를 살아가는 독자는 ‘혐오'라는 단어에서 다른 것들을 읽어냅니다. 우리 역시 그랬기 때문에, 이 영화에 대한 A to Z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여성 혐오에 대한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다루고자 했습니다. 그것이 이 영화의 담론에 새로운 물결을 불러일으키는 방향일 테니까요.”

“결국 제일 중요한 것은 살림입니다.”

마지막 ‘지속 가능함' 파트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며 유진선 대표는 ‘살림'이라는 단어를 꺼냈습니다. 발간 주기에 따른 잡지의 살림을 어떻게 계산하고 관리하는지에 대한 충분한 고민이 없다면 그것은 지속가능성을 고민하지 않는 것입니다. 

유진선 대표는 <프리즘 오브>의 지출과 수익 구조를 설명하며 잡지의 발간 주기에 맞춰 전체 회계 플랜을 짜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기사를 작성하는 비용부터 인건비까지, 잡지를 만드는 비용이 있다면 반대로 크라우드 펀딩 모금액, 온/오프라인 판매액, 정기 구독료 등의 잡지를 통한 수입이 있기 마련입니다. “처음 매거진을 시작하는 분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한 호수기준으로만 회계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1호는 이렇게 지출이 되었고, 이렇게 수입을 얻을 것이다’라는 결과론적인 회계만 가지고 있고, 그다음 호에 대한 회계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다음 호는 언제 나오나요?”라는 질문엔 “저도 몰라요"라고 대답하게 됩니다. 하지만 발간 단위를 기준으로 연 단위 혹은 반년에 대한 회계를 짜보면, 적어도 위의 질문에 다음 호는 언제쯤 나올 수 있겠다고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게 되죠.

회계를 짜면서 염두에 꼭 두어야 하는 것은 “돈은 생각보다 빠르게 들어오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100부를 찍은 잡지가 다음 호에도 100부를 찍으려고 할 때, 다음 호 출간 시점에 맞춰 이전 호가 모두 팔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돈이 들어오는 주기'는 어떠한 서점에 얼마만큼이나 입고되어 있는지, 또 각 서점의 정산 주기는 어떠한지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현재 자신의 상태를 체크하여 자신만의 수익이 들어오는 주기를 계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독립출판, 그리고 저희의 장점은 엉덩이가 가볍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유진선 대표는 지출을 줄이는 중요한 팁 한 가지를 더 제공하였는데요, 그것은 바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면 화끈하게 개편을 진행하는 것입니다. 많은 매거진 창작자들이 창간호의 아이덴티티를 끝까지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데, 문제가 있다면 빠르게 개편하는 것이 오히려 매거진을 지속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예컨대 사진 촬영에 비용을 너무 많이 투자하는 것이 지속적인 문제를 발생시킨다면, 과감하게 사진을 줄이고 글을 늘리거나 편집 디자인을 바꿔 그 크기를 줄이는 방법을 통해 비용을 절감하는 길을 택할 수도 있습니다. “이 매거진이 고수해야만 하는 근원이 되는 아이덴티티만 지키면서, 그 외의 것은 더 늦기 전에 빠르게 변화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죠. 내가 만드는 잡지를 새롭게 변화시키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그것이 ‘지속가능한 매거진 만들기'의 주요한 팁이라는 모두가 예상하지 못했지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팁이었습니다. 



“책을 만드는 이와 
책을 발행하는 사람의 마인드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엔 책이 너무 좋고, 만들고 싶고, 만들면 재밌을 것 같다는 마음가짐으로 책을 만들기 시작했다면, 지금은 책을 만들며 그다음을 계속해서 고민하는 ‘발행인'으로서의 마음가짐으로 <프리즘 오브>를 발행하고 있다”는 유진선 대표. “단행본은 실수해도 금전적 타격이 한 권에 그치지만, 잡지는 작은 실수도 크리티컬한 영향을 끼칠 수 있기에 사업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며, 두 시간가량의 긴 시간 동안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한 ‘지속가능한 매거진 만들기'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해주셨습니다.

<프리즘 오브>는 현재 두 번째 ‘특별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2호에서 다뤘던 <이터널 선샤인>을 완전히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다시 다룹니다. 이번 강연에서는 새로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프리즘 오브>를 통해 ‘1호 다음'을 함께 고민하고, 지속가능한 매거진 제작을 위한 유용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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