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리미티드 에디션11- 서울아트북페어2019' 후기
작품들을 찬찬히 보고, 아끼는 마음으로 간직할 것을 구입하고, 창작의욕 충전하는 시간 좋아하세요? 요즘 재밌는 거, 예쁜 거, 사람들이 좋아하는 거 뭐 있나 싶을 때 한번에 답을 얻을 수 있는 '언리미티드 에디션 - 서울아트북페어'가 지난 금토일에 열렸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큰 아트북페어답게 궂은 날씨에도 전시장은 북적였고, 신작 마감과 페어 준비로 바빴을 작가들과 눈이 초롱초롱한 관람객은 영감을 주고받는 소리로 공간을 가득 채웠습니다.
국내외 일러스트레이터, 그래픽디자이너, 작가와 출판사 220팀이 참가한 올해는 페어 기간 동안 총 2만 3천여 명이 다녀갔습니다. 광고비를 쏟아붓는 행사도 아닌데, 언리밋의 모객파워는 대단하지요. 3일 중 이틀은 춥고 비가 많이 내렸으니 맑았다면 더 많이 오셨을 것이고요.
텀블벅-언리밋 온라인 기획전은 4년째 성황.
현장 수령 잊지 마세요!
언리미티드 에디션을 텀블벅에서 미리 만날 수 있는 것, 아시죠? 열한 번째 언리밋에서는 46팀이 페어에서 선보일 신작을 텀블벅펀딩으로 선보였습니다. 페어 방문이 어려운 분은 배송받아 볼 수 있고, 직접 방문한다면 현장에서 수령하는 방식으로 진행됐어요.
취향에 맞는 창작물을 후원하고는 시간이 조금 흐른 뒤 작가를 직접 만나 받아보는 경험은 짜릿합니다. "저 후원했어요. 현장 수령할게요."와 "감사합니다." 하는 짧은 대화 사이에는 응원과 감동과 희망이 흐르는 것 같아요. 많은 사람과 부스 속에서 헷갈려하시는 경우가 많아 올해부터는 현장 수령 스티커와 안내 POP를 나누어 드렸습니다. 창작팀들은 POP를 테이블 위에 올리고, 하얀 벽에다 까만색 스티커를 붙여 소중한 후원자들을 불러 모았지요. (그런데도 다른 것 잔뜩 사다가 현장 수령 잊고 돌아온 동료가 있다는 것은 안 비밀입니다.)
텀블벅 상담소가 열렸습니다
작년까지 텀블벅 부스에서는 후원자가 많아서 분주한 창작팀을 대신해 현장 수령을 돕곤 했습니다. 하지만 작가와 따뜻한 눈인사 나누며 작품을 건네받는 두근거림을 만끽하시는 편이 좋을 것 같아 올해부터는 대리를 접고, <텀블벅 펀딩 상담소>를 열었습니다. 한 번쯤 무언가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한 분들이 지나가다 편하게 들러 펀딩에 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자리였어요. 사전 약속 없이 들러주시는 분들이 많을까 하고 걱정했던 것과 달리 "아직 계획이 구체적이지 않아도 되나요?" 하고 살포시 다가온 분부터 당장 펀딩을 눈앞에 둔 분까지 무려 65팀이 상담을 청해 주셨습니다. 아트북페어답게 일러스트, 전시, 출판 분야를 준비하는 분들이 가장 많았고요.
(상담을 미처 받지 못했던 분은 outreach@tumblbug.com으로 메일 주시면 담당자 통해 연락드릴게요.)
화면 밖에서 만난 근사하고 아름다운 작품들
언리밋 현장에서는 기획전 참가팀 외에도 텀블벅펀딩을 경험한 창작자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독립출판의 조력자답지요? 계속해서 창작자와 후원자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해낼 수 있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여러 번 후원을 경험하다 보면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것이고 온라인 플랫폼이기 때문에 실제로 보고 싶다는 욕망이 강해지는데요, 그렇기에 언리밋 같은 오프라인 행사는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단비와도 같습니다. 게다가 자신이 좋아하는 창작자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리워드에 대한 반응을 전달할 수도 있고요. 텀벌텀쓴(텀블벅으로 벌어 텀블벅에서 쓴다)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에디터들도 창작자를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새로 탄생한 작품을 구매하는 등 설레는 마음으로 행사를 즐겼습니다.
취향을 넓힐 수 있는 새로운 창작자와의 만남
물론 현장에는 텀블벅에서 미리 만난 분들 외에 더 많은 창작자들이 각고의 노력으로 준비한 창작물이 가득했습니다. 덕분에 취향이 넓어지고, 외연이 확장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지요. 내가 몰랐던 세계가 이만큼이나 다채롭고, 깊다는 것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고, 당시의 감정을 물성으로 간직하기 위해 지갑을 열 수밖에 없었습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신기하고, 읽는 것만으로도 내가 구축했던 세계가 넓어질 수 있다니 참 놀라운 시공간입니다.
국내에서 만나기 힘들었던 해외 작가 작품 구경하기
아무리 시대가 발달해 인터넷으로 전 세계 유명 창작자를 내 방, 내 핸드폰에서도 만날 수 있다지만 실제로 만나는 것만큼 설레고 실감나진 않겠지요. 그저 화면으로만 보던 해외 작가의 작품을 직접 만져도 보고, 이를 소장까지 할 수 있다니 구미가 당겼습니다.
일본 작가들은 대체로 일러스트의 강국에서 건너온 면모를 톡톡히 보여줬습니다. 각자만의 감성이 가득 담긴 다양한 일러스트 작품들에 마음이 노곤해졌고요. 태국이나 중국에서 오신 창작자들은 왠지 모르게 독특하면서도 자꾸만 눈이 가는 창작물을 선보였습니다. 특히 가지고 있는 주민등록증이나 면허증, 신용카드 등을 건네면 이를 커다란 종이에 쓱쓱 그려주는 창작자를 보면서 눈을 뗄 수 없었어요.
발길 닿는 대로, 인파에 휩쓸리기
그저 남들이 가는 대로 움직여 보는것도 즐거웠습니다. 궁금했던 창작자나 부스까지 돌아보고 나서는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해 방황하다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기웃거리며 그들의 창작물을 들춰 보았지요. 창작의 바다를 두둥실 떠다니다 예쁜 창작물을 발견했을 땐 마치 행복한 미역이 된 듯했습니다.
사람들의 표정이나 움직임도 관찰할 수 있었어요. 표정은 행복해 보였고, 원하는 창작물을 발굴하고 채집하기 위해 발 빠르게 이곳저곳을 돌아보고 있었죠. 특히 2층으로 올라가 새로운 관에 발을 딛기 전, 비장하게 들어서는 사람들을 보았을 땐 저 역시 결연한 의지가 생겼습니다. 창작자들이 1년간 준비해 세상에 내놓은 창작물을 만나기 위한 자세라고 생각하니 경건해지는 기분이었어요.
새삼스럽지만 떠올려보면 10년 전만 해도 콘텐츠를 담을 그릇은 책, 신문, TV, 라디오 등 레거시 미디어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빠르게 변하며 블로그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와 유튜브, 팟캐스트 같은 영상˙오디오 플랫폼이 등장, 콘텐츠를 담을 그릇은 다각화됐지요. 쉬워진 만큼 콘텐츠를 제작하는 사람도 늘어났고요. 종이책의 물성을 사랑하던 사람들은, 그리고 그것으로 먹고살던 사람들은 다 같이 걱정했습니다. 독자가 모두 전자책, 스마트폰과 사랑에 빠져 떠나버릴 것 같아서요.
물론 시장의 변화는 크지만, 3일간 2만 명 넘는 사람들이 다녀간 '언리미티드 에디션11-서울아트북페어2019'에서 다시 곱씹었습니다. 본질은 '어떤 그릇이냐'보다 '어떤 콘텐츠가 담겼는가'라는 것을요. 그리고 플랫폼은 매일 새롭게 태어나는 콘텐츠와 독자를 연결하고 발견성을 높이는 일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도요. 갑자기 비장한 다짐을 내보이며, 긴 글을 마칩니다. 현장에서도 지금도 함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글과 사진. 권수현&주소은 | 진행. 유어마인드(언리미티드에디션)
지금은 끝났지만, 2019 언리밋-텀블벅 기획전 살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