텀블벅 첫 번째 창작자 둘러 모임, <여성 창작자 밋업> 현장 살펴보기
‘워라밸'에 대한 논의가 최근의 ‘사이드 프로젝트' 트렌드를 선도하는 것을 보며, 이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취미의 영역으로 두는 것이 아니라 직업으로 삼는 것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난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 특히 예술 창작 분야의 일을 전업으로 삼는 것은 굉장한 용기가 필요하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용감하게 선택한 이들은 좋아하는 일을 하기에 자유로워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기약 없는 전쟁을 홀로 치르는 것과 흡사합니다. 자기 일을 스스로 개척하고, 자신의 가치를 높여가야 한다는 외로운 싸움을 지속하는 이들에게 때로 동료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지난한 창작 과정에서 생기는 고민을 나누고, 서로에게 조언과 칭찬을 아끼지 않는 동료를 찾으시면 좋겠다는 취지로 텀블벅이 창작자 밋업을 기획했습니다. 그 첫 시도로 일러스트레이션과 만화 분야에서 활동하는 여성 창작자분들을 초대했습니다. 텀블벅 진행 경험이 있는 여성 창작자분들이 독립적으로 창작을 이어나가는 방법과 노하우, 커리어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초대를 드렸던 분들이 작가로서 이력을 시작하신 기간도 모두 다르고, 이번 자리를 통해 처음 만나는 분들이 많아 서로 서먹하진 않을까 걱정이 많았는데요. 우려와 달리 자리에 함께 계셨던 분들 모두 앞장서서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고, 다양한 주제로 열띤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시범적으로 열린 자리였던 터라 작은 규모로만 진행할 수밖에 없었지만, 현장의 뜨거운 열기를 보며 더 많은 분야의 창작자가 서로 힘이 되는 동료를 찾아갈 수 있는 자리를 더 많이 마련해야겠다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행사는 1부와 2부로 나뉘어 진행되었습니다. 1부에서는 독립적인 창작 활동을 이어나가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하는 라운드테이블을, 2부에서는 2020년을 맞이하여 자신의 계획을 짧게 세워보고 논의하는 워크숍을 진행하였습니다.
먼저 텀블벅 영업기획팀으로 일하는 미카님이 이번 밋업을 개최하게 된 계기와 내용을 간단하게 소개해주셨습니다. 자유롭게 다과도 이용하시면서 보다 편안하게 서로에 대해 알아가셨으면 하는 바람에 직접 자기소개를 부탁드렸어요.
텀블벅을 통해 탄생화와 꽃말을 그린 신화 이야기를 선보인 라우님과 동화와 판타지를 그리는 제이펑크님, 소녀와 꽃을 소재로 그림을 그리시는 웨지님, 빵에 사는 요정을 기반으로 다양한 창작을 텀블벅을 통해 소개하는 작은비버님, 웹툰 작가이자 텀블벅으로 봉제 인형을 선보였던 사자솜님, 인어 일러스트를 지속해서 그리시는 파라나님과 그리고 웹툰 작가로 활동 중이신 비둘기님이 함께 참석해주셨습니다. 또 세상의 다양한 표정을 모아 이야기를 그리고 만드는 전포롱님과 유유히 떠오르는 상념을 동화적으로 표현하는 왼데님, 다양한 역사적 의상 그림과 이야기를 풀어내는 글림자님과 페이퍼 아티스트 작가 송진님까지. 각자의 위치에서 작업을 이어나가고 계신 총 11명의 여성 창작자님이 자리를 빛내주셨습니다.
첫 질문으로 각자가 진행하셨던 펀딩 경험이 어떠셨는지, 또 펀딩을 준비하고 계신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노하우가 있는지를 여쭤보았습니다. 가장 먼저 활발히 논의된 주제는 창작물 제작에 있어 인쇄소를 선택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지류 형태의 리워드를 처음 만드시려는 분들에겐 당연히 어려운 선택이겠지만, 베테랑분들 역시 믿을 만한 인쇄소를 어떻게 선택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안고 계셨습니다. 특히 인쇄는 일반적인 단가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더욱더 어려운 과정이라고 여기시는 것 같아요. 송진님은 인쇄, 커팅, 후가공은 정말 인쇄소마다 가격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최대한 직접 발로 뛰면서 여러 업체에서 견적을 받아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현장을 직접 찾아가라'는 조언은 인쇄뿐만이 아니라 제작 전반에 적용되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텀블벅 펀딩을 통해 봉제 인형을 제작한 사자솜님은 인형 역시 업체에 따라 견적과 퀄리티에 차이가 있었으며, 심지어 내가 그린 그림을 재봉사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도 샘플이 다르게 나오기도 한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원단 선택을 하는 과정에서도 원단을 작게 볼 때와 크게 볼 때의 느낌 차이가 달라 난항을 겪기도 하셨다고 합니다. 여러 시행착오 끝에 직접 공장에 찾아가서 소통하며 작업하니 그러한 격차를 많이 줄일 수 있었고, 자신의 의도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의사소통 능력이 그때 많이 는 것 같다고 회고를 하셨습니다.
출판사를 통한 출판과 독립 출판에 대한 장단점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습니다. 라우님의 경우, 첫 펀딩을 진행할 당시 인쇄 문제로 인한 재판 비용과 배송에 필요한 비용 등 예상외의 지출이 크게 발생하였는데, 출판사와 작업하면 인쇄소 컨펌부터 배송 관리까지 모두 일임하여 진행되니 확실히 간편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하지만 간편한 만큼 자신의 수익을 쉐어해야 하는 부분이 있지요. 인지도를 넓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 역시 출판사의 장점으로 꼽혔지만, 일반 서점 독자층이 아니라 나의 작업과 결이 맞는 장르의 팬에게 인지도를 넓히는 것이 목적이라면 오히려 텀블벅 펀딩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글림자님의 말씀에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셨습니다.
특히 출판사 계약에 있어 출판사가 얼마나 영향력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온라인과 오프라인 서점에서 해당 출판사가 보유한 도서 목록을 체크하고, 어떤 분야의 서적이 점수가 높았는지를 확인하고, 또 그해 혹은 월에 얼마나 많은 책이 출판되는지를 보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내 책이 이 출판사와 결이 맞는지, 출간 후 프로모션을 잘 챙겨줄 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를 사전 조사를 통해 확인하는 것이지요.
출판사에 대한 이해만큼이나 내가 준비하고 있는 책이 트렌디하고 시의성이 중요한지, 생명력을 길게 가져가야 하는지를 파악하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만약 시의성이 중요하다면 펀딩을 통해 내 작업을 많은 사람에게 빠르게 소개하는 것이 더욱 적합한 방법일 테니까요.
2부에서는 2019년을 돌아보고, 2020년을 계획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준비된 계획서를 통해 각자 자신의 2020년을 계획하고, 도움이 필요한 일에 대해서는 조언을 구하는 시간을 나누어 보았습니다. 연간계획을 하시면서 중요한 페어 기간에 맞춰 창작물을 준비하실 수 있도록, 몇 가지 페어 일정이 표시된 달력도 함께 제공해드렸는데요. 만약 페어에 참여하신다면, 해당 기간보다 2~3달 정도 앞서 펀딩을 진행하여 제작비를 충원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죠.
이 날 진행한 계획서 양식은 미국의 컨설턴트 스티븐 코비의 시간관리 매트릭스인데요, 만약 2020년 계획을 정리하고 싶으시다면 이 매트릭을 활용해보세요. 직접 해보실 수 있도록 하단에 파일을 첨부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2020년 계획 정리를 위한 시간관리 매트릭스
밋업이 긴 시간 동안 진행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동료분들과 헤어짐이 아쉬웠던 창작자님들은 함께 더 시간을 보내고 가셨습니다. 자리를 정리하며 실력 있는 여성 일러스트레이터가 결혼하고 사라지는 것을 자주 보았다며, 지금 창작 활동을 시작한 분들이 오래 활동하는 여성 일러스트레이터의 삶을 꿈꿀 수 있도록 모두 건강하게 오래 활동하자는 창작자님의 말이 마음속에 계속 맴돌았습니다. 각기 경력과 분야는 조금씩 달라도, 같은 고민을 함께 나누고, 같은 위치에서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힘을 얻는 순간이 있지요. 이번 밋업을 통해 얻은 그 순간이 보다 창작 활동을 오래 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자리 잡을 수 있길 바랍니다. 추후 이와 같은 자리를 더 많이 만들 예정이니,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현장 스케치_ 김민규 ㅣ 이미지 제공_ 김민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