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이겨내기
매달린 줄의 압박이 편안하게 만들기 직전, 그는 불현듯 할 일이 떠올랐다.
바로 그의 반려동물 헨리에게 밥을 주지 않은 것이다.
첫번째 계획이 실패할 것을 대비해 소지한 칼을 꺼내, 수수밭으로 떨어지기 위한 발악을 시작했다.
이미 욕조에는 물이 틀어져 있었다.
그는 그만큼 철두철미했다.
그래서 그가 헨리를 잊었던 건 기적에 가까웠다.
아니면 그만큼 힘들었던지.
헨리는 옆방에서 자고 있었다.
지금은 대낮이었고, 헨리는 야행성이었다.
그의 활동 시간엔 헨리를 보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한창 중 일땐 늘 은신처에 숨어있었고, 그가 헨리의 생존 여부를 파악하는 방법은 줄어든 먹이와 밤새 녹화된 홈캠 영상 뿐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헨리를 아꼈다.
다시 말하지만 그가 헨리를 잊은건 그만큼 이례적인 일이었다.
헨리는 귀뚜라미를 먹는다.
귀뚜라미는 야채를 먹는다.
그는 헨리를 먹지 않는다.
그는 철저한 채식주의자였다.
귀뚜라미는 베란다에 있었다.
그는 귀뚜라미의 먹이를 주지 않았다.
귀뚜라미에게 먹이를 주지 않으면 서로를 먹는다.
그는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다.
보일러가 켜져 있어, 금세 시동이 걸렸다.
그는 꺼져있는 TV의 검은 화면에 비친 자신을 보았다.
새 악세서리가 제법 어울리지 않았다.
그의 목은 두껍지 않았기 때문이다.
칼은 바닥에 떨어져 제발로 부엌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는 오른손잡이였다.
갑자기 베란다에서 안 좋은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그가 향한건 부엌 쪽이었다.
그는 정신이 없었지만 바닥에 떨어진 나침반 덕분에 손쉽게 길을 찾을 수 있었다.
한손에 나침반을 꼭 쥐어서일까, 그는 3번의 시도 끝에 왼손만으로 냉장고 열기를 성공했다.
냉장고에는 야채만 가득했다.
그의 것과 귀뚜라미의 것. 배정된 양의 차이는 압도적이었지만, 크게 구분은 두지 않았다.
그는 냉장고에서 무와 당근을 꺼내려고 시도했다.
한 손에 그 두개를 드는건 무리였다.
냉장고를 여는데 힘을 다 써버려, 당근을 놓쳤고, 덩달아 칼까지 놓쳤다.
당근은 데굴데굴 굴러서 베란다 턱에 걸렸다.
칼은 멀리 가지 않았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향했다.
그는 냉장고 문이 열린 채로, 당근을 줍기 위해 베란다로 향했다.
당근을 주워서 베란다 문을 열었다.
이미 부패는 진행되고 있었다.
부패한 단백질 냄새가 주황 칼날이 되어 코를 찔렀다.
살아남은 귀뚜라미들이 있었지만, 이들의 위장은 검게 차있다.
헨리에게 줄 수 없는 상태이다.
그는 먹히지 않은 시체들을 처리하고, 식인종들 마저 처리했다.
처리 방법은 간단했다.
뚜껑을 덮는 것이다.
모든 생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환기이다.
환기가 없었다면 그도 부패한 냄새를 풍기며 누군가에게 처리되었을 것이다.
그는 당근을 뺏어먹으며 나갈 준비를 했다.
마침 욕조에 물이 틀어져 있어서, 수고를 덜었다.
그는 땀으로 범벅된 옷을 전부 벗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안 어울리는 목걸이도 같이 벗었다.
그는 소심한 사람이어서 수전의 물마저 약하게 틀었다.
그가 오랜 시간 기절해 있던 덕에, 욕조에 물이 딱 알맞게 차있었다.
그의 손에 칼이 들려있었다면, 또한 가능성이 높았지만 지금은 당근이 들려있었다.
아직 헨리에게 먹이를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욕조에 누워서 당근 하나를 다 먹어치워야 했다.
샤워기가 무겁게 느껴져서였다.
무거운 샤워기에 한계를 느꼈는지 그는 울며 소리를 질렀다.
화장실 문이 열려있어서 헨리가 깨어 있었다면 아마 들었을 것이다.
헨리는 그 울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생물의 지능 지수는 사람 기준으로 30보단 20에 가까웠다.
헨리의 성별은 알 수 없었다.
물론 성별은 정해져 있었겠지만, 사람 기준으론 알 수 없었다.
헨리는 배가 고팠다.
소음이 들렸고, 은신처 안에 있었다.
그는 샤워를 마쳤다.
문득 그는 냉장고 안에 사료가 있다는 걸 생각해냈다.
그가 처음 헨리를 데려올 때, 귀뚜라미가 떨어졌을 때 줄 수 있는 사료였다.
분말 형태로 되어 있어 물에 개어서 급여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헨리의 지능은 낮아서, 먹이로 인식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가 직접 꺼내서 코에 묻힌 뒤, 직접 먹이임을 인식시켜줘야 했다.
그는 정신이 없어서 동선엔 물기가 가득했다.
냉장고를 열어서 구석에 있는 사료를 발견했다.
그는 사료를 꺼내 뒤의 유통기한을 살폈다.
그는 진정으로 헨리를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아직 유통기한은 지나지 않았다.
그는 한기를 느껴서 냉장고 문을 닫았다.
그래도 정신을 차리는 데에는 도움이 되었다.
그는 칼을 제 자리에 반납하고, 종지를 꺼냈다.
굶고 있을 헨리를 생각하며 식사를 준비했다.
헨리의 체중은 7g 정도였기에, 그는 1cc짜리 주사기를 챙겨 7까지 피스톤을 당겼다.
미숫가루 냄새가 나는 끈적한 액체가 흰 벽을 타고 올라왔다.
그리고는 굶고 있을 헨리의 공간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는 아직 나체 상태였다.
물이 흥건한 손으로 문고리를 돌려 문을 열고, 아마도 자고 있을 헨리의 앞에 도착했다.
헨리는 배가 고픈지 자고 있지 않았다.
먹이가 내려오는 하늘만 뻔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로써 방안에서 자고있는 걸 꺼내는 수고로움은 덜했다.
그건 누구라도 싫어할 일이다.
헨리는 낚아채져 그의 손바닥 위로 올라왔다.
몸이 굳었고 호흡이 가빠졌다.
그는 주사를 코에 가져다 댔다.
헨리는 무언가가 코를 막은 느낌이 들어, 혀로 그것을 치웠다.
헨리는 주사기를 먹이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는 헨리의 반응을 보며 안심했다.
절반 정도 먹은 뒤, 헨리는 고개를 치켜들었다.
소화중이라는 신호이다.
그는 천천히 기다렸다.
몸의 물이 마르기 시작했다.
헨리는 다시 고개를 내렸고, 그는 나머지 절반을 주었다.
식사를 마친 헨리는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했고, 그의 손가락을 깨물었다.
그는 3살 아이가 볼을 꼬집은 정도의 통증을 느끼고, 헨리를 다시 집으로 돌려보냈다.
헨리는 그를 지켜보고는, 물을 마셨다.
그는 사료의 유통기한만큼만 살아보기를 결심했다.
그의 몸은 완전히 말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