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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모는 진화다

박참치의 두피 위 혁명 선언문

by 박참치

#T-R-Θ50427-G


탈모는 진화다

—모발의 시대를 끝내며


박참치의 두피 위 혁명 선언문


선언자: 박참치 (탈모인류혁명사상가 / 진화론적 급진주의자)



1. 서문: 왜 우리는 머리카락이 적은 것을 수치라 여겨야 하는가


인류는 오랫동안 불필요한 털을 벗어던지며 진화해왔다.

그러나 유독, 머리 위의 털만은 아직도 ‘있어야 하는 것’으로 남았다.


길고 짙고 풍성한 모발은 건강, 젊음, 생식력, 미적 완성의 상징으로 숭배되었고,

이 시대의 미디어는 가닥 당 수천 원짜리 욕망을 팔아 치우며,

탈모인을 무력화시켜왔다.


하지만 나는 묻는다.


“머리숱이 적다는 게 왜 미(美)가 아닌가?”


나는 물리학, 생물학, 인류학, 천문학, 유전학, 심지어 기상학까지 동원했지만

‘머리숱이 많아야 미남’이라는 명제에 대해 납득 가능한 과학적 근거는 단 한 줄도 찾지 못했다.


도리어, 듬성듬성한 모근은 강력한 남성호르몬의 증거이며,

태초의 전사들이 투구를 벗었을 때 가장 흔하게 보였던 두피의 형태였다.


탈모는 병이 아니다.

그건, 탈진화적 미의 과잉에 저항하는 남성적 절제다.



2. 머리카락은 어디까지 인간인가 – 인류학적 검토


인간은 털을 잃은 유일한 유인원이다.

그렇다면 머리카락은 왜 아직 남아 있는가?


진화론적 설명은 분분하지만, 현재 가장 설득력 있는 설은 다음과 같다:


두피 보호

체온 유지

미적 장식


그러나 우리는 이미 모자를 쓴다.

실내온도는 23도를 유지한다.

머리 위 장식을 위해 수백만의 모공이 매달려 있어야 할 이유는 사라졌다.


탈모는 진화다.

머리카락은 뒤처진 장식의 관성일 뿐이다.



3. 탈모는 테스토스테론의 승리 – 생물학적 해석


테스토스테론은 남성호르몬의 핵심이다.

문제는 이 호르몬이 DHT로 변환되면 모근을 수축시킨다.


→ 즉, 머리카락은 남성성에 패배하는 부위다.


그러나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는다.

풍성한 머리카락은 남성성이 부족하다는 증거는 아니다.

다만, 듬성한 머리카락은 종종 과잉된 남성성의 흔적이다.


탈모는 성적 위축이 아니라, 호르몬적 과포화 상태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빼앗겨온 건 머리카락이 아니라, 의미였다.



4. 탈모 비즈니스의 구조적 폭력성 – 자본주의 분석


모발이식 평균 비용: 1,200만 원

탈모약 평생 복용 비용: 연 180만 원


이 모든 산업은 “탈모는 잘못된 것이다”라는 전제를 깔고 존재한다.

그리고 그 선전은 TV, 광고, 연예인 캐스팅, 캐릭터 설정까지 전방위적으로 수행된다.


탈모인은 ‘관리 안 한 사람’, ‘노화된 사람’, ‘패배자’라는 프레임을 쓴 채

정작 가장 많은 테스토스테론을 품고 있는 사람들은

밤마다 인스타그램 필터 속 풍성한 가발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거세된 존재로 상상한다.


이건 모욕이다.

이건 구조다.

그리고 이제, 이건 혁명이 될 것이다.



5. 우리는 가늘어지지 않는다 – 선언문


우리는 더 이상 머리카락의 풍성함으로 인간의 가치를 나누지 않겠다.

우리는 이마를 더 넓게 쓰는 사람들이고, 바람의 저항을 줄이며 달리는, 실용적 두피의 인간들이다.

우리는 이마의 위엄으로, 얼굴 뼈대의 선명함으로, 그리고 말 한 마디의 중량으로 ‘잘생김’을 설계한다.


우리는 정수리의 반란이 아니라, 두개골의 진실이다.



6. 박참치의 마지막 외침: 머리는 빠질 수 있어도, 나는 빠지지 않는다


나는 오늘도 이마 위에서 햇빛을 튕긴다.

그것은 후퇴가 아니라 개화다.

나는 줄어드는 머리숱을 보며 인생의 간결함을 배운다.

나는 더 이상 머리숱이 적은 내 친구들을 위로하지 않는다.

나는 그들을 경외한다.


탈모인이여, 이제 그만 캡모자를 벗어라.

우리는 드러난 두피의 민낯으로, 이 과잉된 장식의 사회를 박살내고

드디어 인간이 된 자신을 마주하리라.


일어나라, 탈모인이여.

두피 위엔 아무것도 없지만,

너의 선언 위엔

혁명의 광채가 있다.





남은 것은 이마가 아니라, 진보된 사고의 창(窓)이다.


— 박참치, 현장노트 제2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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