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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굽쇠 Apr 26. 2023

건강한 관계를 위한 3요소

관계 ‘모범생’들의 공통점

   인간관계는 중요하지만 참 어렵다. 쉬운 듯하면서도 어렵고, 단순한 듯하면서도 복잡해서 절묘한 센스가 필요하지만 그 센스도 쉽게 배우고 익힐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좋은 관계가 몇 생긴다면 내 마음과 삶을 참 든든하고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잘 유지하는 사람을 살펴보면 저마다 성격, 취향, 스타일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공통점이 보인다. 나도 관계를 아주 잘 만들어가는 사람은 아니지만 개인적인 시행착오와 경험을 통해 배운 것까지 더하면 그 공통점이 어렴풋이 손에 잡히는 듯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직·간접적으로 관찰한 사람들을 통해 깨달은 ‘건강한 관계의 3요소’를 정리해보려 한다. (앞으로 나오는 명칭들은 모두 내가 임의로 정한 것이다.)






   관계를 건강하고 풍성하게 잘 꾸리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무엇을 잘할까? 첫 번째 능력은 바로 ‘자기이해능력’이다. 자기성찰과도 관련이 있는 이것은 말 그대로 자신을 얼마나 잘 이해하는지에 대한 능력이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정확히 무엇인지, 그런 생각과 감정을 가지게 된 배경이나 이유 등을 정확히 인지하는 능력이다. 당연히 모두가 갖추고 있는 능력 아닌가 싶지만 실제로 이게 부족한 사람들을 꽤나 많이 볼 수 있다. 오죽하면 이미 나온 지 오래된 다중지능검사에서 자기성찰지능을 별도의 지표로 만들었을까.


   자기이해능력이 부족하면 스스로가 미지의 영역이 되기 때문에 일관적이지 않은 태도를 보이고, 자신을 위해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지도 잘 모른다. 마치 정확한 진찰을 받지 않고 감으로 민간요법을 사용하는 사람 같달까? 자기가 자기를 잘 모르니 주변 사람들이 상담하며 도와주려 해도 한계가 있다.




   두 번째 능력은 ‘상대이해능력’이다. 이것은 상대가 갖고 있는 생각과 감정의 내용과 구조가 무엇인지, 그것을 갖게 된 배경과 이유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능력이다. 이것은 상대를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포용력과는 별개의 개념이다. 상대가 자신과는 전혀 다른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갖고, 같은 상황에서 자신과는 전혀 다른 감정을 품고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 그것을 무조건 긍정하고 받아들이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그 사람이 어떤 사고의 과정과 논리구조를 거쳐 그러한 말과 행동을 보이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마치 미지의 땅을 탐험하면서 그곳의 지리를 파악하는 것과 비슷하다.


   상대이해능력이 부족하면 독선에 빠지기 쉽다. 마치 피아제의 인지발달이론 중 전조작기의 ‘자기중심적 사고’를 극복하지 못한 것처럼, 자신의 경험과 사고방식만을 기준으로 상대를 판단하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론상 전조작기는 만 7세에는 이미 졸업했어야 하는 단계인데!) 이처럼 상대를 이해하려 하지 않거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대화와 타협 등을 통해 상대와의 접점을 만들기 어렵다. 상대를 제대로 이해해도 타협하기 어려운 경우가 부지기수인데 이해조차 못한다면? 맥락은 좀 다르지만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는 고사에 ‘나를 아는 것’뿐만 아니라 ‘상대를 아는 것’이 함께 있는 이유기도 할 것이다.




   세 번째 능력은 ‘소통능력’이다. 소통이라는 단어가 하도 여기저기서 들리다보니 이 말도 진부하게 보일 수 있다. 다만 여기서 지칭하는 소통능력은 ‘자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바를 가능한 정확히 그대로 상대가 인식할 수 있도록 오류 없이 표현하고 전달하는 능력’‘상대가 표현한 내용을 토대로 상대의 생각과 감정을 가능한 정확히 유추하는 능력’으로 나누어진다. 다시 말해 자기 속에 있는 것을 최대한 그대로 상대에게 업로드 할 수 있는지, 상대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최대한 정확하게 다운로드 할 수 있는지를 모두 의미한다.


   보통은 사람이 자기 속에 있는 추상적인 생각과 감정을 언어로 담아내는 과정에서 일부 왜곡이 생기고 정보가 손실된다. 그래서 이러한 왜곡과 손실을 최소화하는 표현과 방식을 선택하는 것은 매우 섬세한 작업이다. 마찬가지로 상대방이 표현하는 것이 상대방 속에 있는 것과 100% 일치한다고 보기 어렵다. 부득이한 왜곡과 손실이 어디에서 발생했는지를 고려하며 원래의 의도를 유추하는 것은 매우 까다롭지만 고급 기술이다.


   자신을 표현하는 능력이 부족하면 아무리 선의로 말을 하더라도 불필요한 오해를 받아 결과를 망치는 경우가 빈번하고, 상대의 표현을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하면 자기 안에 왜곡된 정보들이 쌓여 소통이 점점 어려워진다. 콜레스테롤 찌꺼기가 덕지덕지 붙은 혈관 마냥 대화가 아무리 오가도 뭔가 시원한 느낌이 들지 않고 답답한 상태가 계속된다. 소통능력이란 정확한 상호 이해를 위해 이런 여러 가지 장애물들을 걷어내는 능력이라 할 수 있다.




   자기이해능력이 충분해야 상대와 안정적인 관계를 쌓을 수 있는 일관적인 토대가 만들어진다. 상대이해능력이 충분해야 상대를 더 깊고 넓게 파악해서 관계의 접점을 만들고 유지할 수 있다. 소통능력이 충분해야 앞의 두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고 관계를 건강하고 맑게 유지할 수 있다. 이 세 가지 능력은 설명을 위해 나누었지만 실제로는 분리되지 않고 동시에 작동한다. 내가 본 성숙한 사람들은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 세 가지 능력을 모두 잘 발휘했다.






   관계는 두 사람의 협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보니 어느 한 쪽만 성숙하다고 해서 관계가 유지되지는 않는 것 같다. 서로가 서로에게 유익한 관계가 되려면 양쪽이 세 가지 능력을 모두 잘 갖춰야 한다. 어느 한 쪽이 한두 가지 능력에서 펑크가 난다면 그 관계의 난이도는 꽤 높아질 것이다. 하물며 양쪽이 모두 펑크가 나 있는 상태라면……. 안타깝게도 우리는 가깝게는 주변에서, 멀게는 매체에서 세 가지 능력이 전반적으로 부족한 양자가 얽히고설켜 갈등하는 모습을 종종 본다. 그런 모습을 보며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어디서부터 잘못됐고 어디부터 고쳐야 할지 등등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차마 모두 담아내지 못하는 답답함 때문일 것이다.


   관계에서 나를 좀먹고 피곤하게 만드는 사람보다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가 더 어려운 것 같다. 세 가지 능력이 모두 성숙한 사람보다 어느 한쪽이 부족한 사람일 확률이 더 높으니까. 다만 좋은 사람을 만났다 하더라도 그 사람과의 관계를 오랫동안 잘 유지하려면 나 또한 세 가지 능력을 잘 길러야 할 것이다. 그 좋은 사람에게 내가 ‘어딘가 부족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기에. 그래서일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의도적 분류가 아닌 결과적 현실로 다가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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