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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굽쇠 May 23. 2023

의외로 교과서에서
배울 수 있는 사회성

자세히 살펴보면 꽤나 실용적이다

  “학교 공부 열심히 해봤자 나중에 써먹을 데 없지 않아요?”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종종 듣는 말이다. 예전에는 꽤 많이 들은 것 같은데, 요즘은 그냥 시키는 걸 하기에 바빠서 그런지 이런 질문조차 안 하는 경우가 많다. 공교육의 권위는 어디에 있는지 가늠하기 어렵고, 사교육 시장과 자강두천을 하는 듯한 요즘은 저 질문이 더 복잡하게 다가온다.


   그래도 학생들이 질문을 하면 반응을 해야 하기에, 나는 먼저 이런 반문을 한다.


  “써먹을 데가 있는지 고민될 만큼 열심히는 해봤고?”


   여기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멋쩍은 듯 웃는다. 사실 처음 질문은 많은 경우 ‘공부하기 싫다’의 다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열에 하나 둘 정도는 스스로 열심히 했다고 자부한다. 실제 결과도 그런 학생들이 있다. 그 학생들은 이 질문을 깊이 고민하고 있는 거다. 그러면 나는 좀 더 진지하게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학생들의 공부를 도와주다 흥미로운 내용을 발견했다. 모두들 고등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에 ‘대화의 격률’이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도 교과서에 있었는데, 그땐 가볍게 넘겼지만 이제 와서 새롭게 보인 것이다. 이건 대화법에 대한 내용인데, 흔히 말하는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과 ‘예의 바른 사람’을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는 절묘한 규범들이 있다. 크게 3가지가 있는데 간단하게 옮겨보겠다.






1. 상황에 따른 화법


1) 사과할 때 :

- 사과의 의도가 명백한 표현을 사용한다.

- 변명하거나 핑계를 대기보다는 자신에게 사건의 책임이 있음을 밝히는 등 잘못한 행위를 정확히 알고 있음을 드러내고 진심을 담아 말한다.


2) 부탁할 때 :

- 자신의 사정이나 입장을 상대가 잘 알 수 있도록 설명하고, 성실함과 진심으로 상대를 설득한다.


3) 축하할 때 :

- 그 사람과의 관계에 따라 적절한 표현을 사용한다.

- 잘못된 명령형은 사용하지 않는다.


4) 위로할 때 :

- 신중하고 차분하게, 상황에 따라 정중하게 한다.



   어떤가? 초등학교 도덕책에서나 나올 법한 내용이지만 이마저도 지킬 줄 모르는 사람들이 생각나지 않는가? 하지만 다음 두 가지가 더욱 생생할 것이다.






2. 공손성의 원리 – 대화할 때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것


1) 요령의 격률 : 상대에게 부담이 되는 표현은 최소화, 이익이 되는 표현은 최대화

- “혹시 잠시 시간 괜찮으실까요?” (O)

- “다들 이번 주말엔 당연히 등산 괜찮지?” (X)


2) 관용의 격률 : 자신에게 혜택을 주는 표현은 최소화, 부담을 주는 표현은 최대화

- “제가 정확히 이해하려고 하는데 다시 한 번 말씀해주시겠어요?” (O)

- “하나도 안 들리는데 좀 더 크게 말해주세요.” (X)


3) 찬동의 격률 : 상대를 비난하는 표현은 최소화, 칭찬하는 표현은 최대화

- “여러분이 많이 도와주셔서 이런 결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O)

- “여러분이 좀 더 열심히 해주셨으면 더 좋은 결과가 나왔을 것 같은데요.” (X)


4) 겸양의 격률 : 자신을 칭찬하는 표현은 최소화

- “부족한 사람이지만 이렇게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O)

- “저 아니었으면 누가 이걸 해낼 수 있었겠습니까?” (X)


5) 동의의 격률 : 상대와 불일치하는 표현은 최소화, 일치하는 표현은 최대화

A : 영화 보러 갈까? 액션 영화 어때?

B : 영화 좋지. 근데 저번에 보기로 했던 SF영화 먼저 보는 건 어떨까? (O)

B : 싫어. 액션 영화 완전 별로야. 그런 걸 돈 주고 보는 사람은 이해가 안 가. (X)



   주변에 보면 평소 말투가 종종 거슬리는 사람이 있다. 주로 ‘어떤 마음인지는 알겠는데 꼭 말을 저렇게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의 경우 위의 공손성의 원리에서 최소 한 가지 이상 제대로 지키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3. 협력의 원리 – 대화를 할 때 서로 상호작용이 잘 되도록 하는 것


1) 양의 격률 : 대화 목적에 필요한 만큼만 정보 제공

A : 이거 얼마에요?

B : 그건 15,000원이고 그 옆에 건 18,000원인데 2+1 행사 중이에요. (X)     


2) 질의 격률 : 진실한 정보를 제공하고, 거짓이거나 증거가 불충분한 말은 하지 않기

A : 이 투자 상품은 수익성이 좋나요?

B : 그럼요, 원금 100% 보장해드리고 수익도 연 10% 이상 가능합니다. (X)     


3) 관련성의 격률 : 대화의 맥락에 맞는 정보 제공

A : 오늘은 피곤하니까 평소보다 일찍 자야겠어.

B : 너 수면에도 렘수면과 비렘수면이 있다는 거 알아? (X)


4) 태도의 격률 : 모호하거나 중의적 표현을 피하고 의도가 분명히 드러나도록 말하기

A : 내일 뭐할까?

B : 어… 저번에 사려던 옷 보러 가고 싶기도 하고, 근데 좀 피곤해서 쉬고 싶기도 하고, 생각해보니 근처에 맛집이 있대서 가보고 싶기도 한데……. (X)     


  이 대목에서도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협력의 원리를 잘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과는 대화할 때 상당히 피곤하다. 소위 ‘티키타카’가 잘 안 되고 중간중간 답답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특히 직장 상사 등 내가 피드백을 편하게 하지 못하는 사람이 이런 사람이라면 더더욱 속이 터진다.






   대화의 격률을 항상 모두 지키며 살아야 하는 건 아니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 관계나 상황도 있고, 때때로 일부러 격률을 어겨서 더 효과적인 의미 전달을 하는 방법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원칙이 필요한 상황에서 이를 잘 지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대화의 격률을 적재적소에 잘 활용하는 사람들은 흔히들 ‘사회성이 좋고 예의가 바르다’고 평가받는다. 반대로 인간관계에서 사람들이 조금씩 기피하고 거르는 사람들은 상당수 이 부분에 문제가 많다. 그렇다, 당신이 생각하는 ‘사회성이 떨어지는 사람’, ‘교양 없이 말하는 사람’, ‘대화하는 게 좀 불편하고 답답한 사람’, ‘별로 말을 섞고 싶지 않은 사람’ 말이다.


   저런 게 뭐가 중요하냐, 쫌생이처럼 너무 따지는 거 아니냐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저것만 잘 지켜도 사회성의 반은 먹고 들어가지 않을까? 내 경험으로는 저런 센스가 없는 사람 치고 사회성 괜찮은 사람 보기 힘들었다. 사람 사는 방식이야 제각각이지만 대화에 센스가 있는 사람이 편안하고 더 가까이 두고 싶은 건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것을 지키고 말고는 개인의 자유지만, 지키지 않아서 사람들로부터 거부되거나 배제당하는 것은 당연히 감수해야 하고 말이다.


   이 글을 쓴 이유는 사회성 부족하고 예의 없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개성이라든지 스타일 같은 말로 합리화하는 모습을 종종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 자신들을 받아주지 않는 남들을 탓하는 모습을 보면 하고 싶은 말이 많다. 하지만 그들에겐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음을 알기에 그냥 그러고 살게 놔둔다. 그러다 혹시 나도 누군가에게 저런 모습을 보이는 건 아닐까 하는 일말의 반사적 성찰에 몸서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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