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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덕교수와 함께 하는 군함도여행

서경덕교수와 함께하는 해외독립운동유적지 제3탄 후쿠오카/나가사키

서경덕교수와 함께 하는 해외 독립운동 유적지 탐방
제3탄 군함도


올해는 2·8 독립선언, 3·1 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입니다.


의미 있는 100 주년을 맞아 자유여행기술연구소 투리스타는 한국 홍보 전문가 서경덕 교수님과 함께 '해외 독립운동 유적지 탐방'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패키지 관광 상품에 독립유적지 한두 군데 슬쩍 끼워 넣는 형식적인 여행이 아닌 '진짜 역사투어'로만 꾸며지는 여행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에게나 의미 있는 역사투어가 될 것입니다.


지난 11월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는 상해와 항주를 다녀왔고 2월에는 2·8 독립선언 100주년을 기념하여 도쿄를 다녀왔었습니다.


서경덕교수와 함께 한 해외독립유적지 탐방 후기 보러 가기



이번에는 많은 분들이 문의하셨던 지역!

「군함도」가 포함된 「후쿠오카/나가사키」 지역에 남겨진 대한민국 역사 유적지 탐방을 기획하였습니다.



강제징용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군함도와 다카시마를 포함한 이번 여정은 보다 뜻깊은 역사투어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서경덕 교수님과 투리 스타가 의기투합하여 최고의 역사탐방이 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여 기획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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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누구보다 바쁜 서경덕 교수의 의미 있는 재능기부

지난 11월의 상해·항주, 그리고 2월의 도쿄 탐방에 이어 이번에도 그의 재능기부는 계속됩니다.



후쿠오카/나가사키의 2박 3일간 일정


1일차 |2019년 4월 12일 금요일


「미이케 탄광 만다갱」

만다갱은 이미케탄광의 주력 시설 중 하나이다. 미쓰비시 성장의 기반이 된 미이케 탄광은 한 때 일본 석탄 생산량의 4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손꼽히는 탄광으로 조선인 9,000여 명이 강제동원되었다. 생산량이 부족할 때에는 미이케 탄광 전용 감옥을 설치, 죄수들이 도주하지 못하도록 옷을 입히지 않고 족쇄를 채운 상태로 할당량을 채우게 했다.



「강제징용 희생자 위령비」

미쓰비시 계열사의 작업장에서 강제노역을 하다 숨진 조선인 징용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1995년 '재일코리아오무타'가 건립하였다. 위령비 뒤쪽에는 별도의 건립문 글귀가 있다. 2015년 위령비에 악의적인 낙서와 전범기 스티커가 발견되어 논란이 되었다.


「후쿠오카 형무소」

윤동주와 송몽규가 수감되었다가 옥사한 후쿠오카 형무소가 있던 곳이다. 윤동주와 송몽규는 1942년 10월부터 1943년 7월까지 민족의식 앙양 및 구체적 운동방침 등에 관한 협의를 거듭하였다. 이들의 목적은 조선독립의 여론을 환기하여, 민중을 봉기시켜 일거에 독립을 완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활동이 일제 당국에 의해 발각되어 후쿠오카 교도소에 갇혔다가 끝내 그곳에서 순국하였다. 현재에는 후쿠오카 구치소가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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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차 |2019년 4월 13일 토요일


「오카 마사하루 기념 나가사키 평화박물관」

오카 마사하루 기념 나가사키 평화박물관은 1995년 10월 1일에 개관하였다. 일본의 무책임한 현실을 고발하는데 일생을 바친 고 오카 마사하루씨의 유지를 이어,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여 일본의 가해 책임을 호소하기 위해 시민의 손으로 설립하였다. 한국인 원폭 생존자들, 강제노동, 군함도, 일본군 위안부 등의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군함도 자료관」

기존의 군함도 자료관이 있었지만,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후, 2017년 7월 기존 자료관 옆에 새롭게 개관한 자료관이다. 군함도의 역사와 자료뿐만 아니라, 2015년 군함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에 내용이 전시되어 있다. 하지만 조선인 강제동원 및 희생에 대해서는 어떠한 내용도 없다.


「군함도 하시마 탄광」

나가사키 항구서 약 23km 떨어져 있는 섬으로, 군함처럼 생겨 일명 '군함도'라고 불렸다. 1890년 미쓰비시가 이곳을 인수해 운영했다. 콘크리트 아파트에는 일본인 광부와 직원이 살았고, 쇠창살이 쳐진 허름한 건물에는 조선인 노동자들이 수용되었다. 조선인 노동자들을 감시하기 위한 10m 높이의 탑도 있었으며, 육지와 철저하게 고립된 이 섬에서 징용자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열악한 노동조건과 잔인한 폭력 속에 사투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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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차 |2019년 4월 14일 일요일


「난고지묘 해난자 무연불지비」

군함도 자료관에서 나가사키역 방면으로 해안을 따라 10분 정도 걸어가면 볼 수 있다. 하시마에서 표류해 온 희생자를 매장해 세운 추도 비이며, 1985년 '나가사키 재일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이 발굴, 유골을 확인했다. 


「다카시마 탄광」

1869년에 개발이 시작된 일본 최초 증기기관에 의한 수직갱(홋케이갱)이 있었다. 1881년 미쓰비시가 사들였고, 여기서 채굴한 석탄으로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 당시 강압적인 관리로 '폭압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약 4,000여 명의 조선인들을 강제동원하였다. 1986년에 폐쇄하였고, 지금은 매년 3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해양 레저의 섬으로 알려져 있다. 


「나가사키시 다카시마 석탄 자료관」

다카시마항으로 들어가면 바로 볼 수 있으며, 미쓰비시 다카시마탄광 노동조합 사무소를 정비하여 1988년에 개관하였다. 다카시마탄광에서 사용되었던 장비를 전시하고 있으며 당시 갱도의 모형, 광차 등의 중장비, 갱부의 복장 등이 전시되어 있다. 하지만 조선인 강제동원 및 희생에 대해서는 어떠한 내용도 없다. 


「다카시마 공양탑」

다카시마 공양탑은 탄광에서 사고로 죽은 노동자들을 위해 세운 무연고자 묘지이다. 이곳에 묻힌 주검은 대부분 다카시마 탄광 사고로 죽은 이들, 바다에서 조난을 당한 표류자들, 그리고 하시마에서 나온 사망자들이다. 1988년 다카시마탄광이 폐광하며 유골의 일부를 인근의 '킨쇼지(금송사 金松寺)'에 옮기고, 나머지는 모두 공양탑 아래 매립하였다. 2015년 입구와 탑 주변을 정비하였으나, 현재 나가사키시에 의해 폐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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