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를 정말 놓아주실 거예요?
나를 10년 넘게 지켜봐온 미혼의 성공한 여성인 외래 진료 선생님은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남자친구를 만들거나, 결혼을 하라고.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덕에 나는 내 또래 중에서는 그 누구보다 일찍 비혼주의에 눈을 떴고, 그 누구보다 일찍 비혼비출산을 부르짖었다. 절대 내가 겪은 것을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에게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안 키우면 되잖아. 넌 잘 할 수 있을 거야' 같은 말은 여전히 솜사탕 나라에 사는 요정들이 할 법한 이야기로 들린다. 나는 가장 원망스러운 삶 그 자체를 부여하는 존재가 되고 싶지 않을 뿐이다. 가능성 자체를 염두에 두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15년 전부터 상담을 진행해 온 선생님께서 그걸 모르실 리는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미쳤습니까 선생님?' 을 눈으로 외치며 '네?' 라고 반문했다.
그 뒤로 선생님은 무슨 말을 더 했던 것 같은데 워낙 충격이라 그 의미를 묻지도 못했었다. 그게 이 년 전쯤이었나.
지난 해 4월부터 나는 나름의 안정을 찾았다. 사람의 감정이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가라앉지 않을 수가 있다니. 생리 직전 PMS로 인한 가벼운 변화를 제외했을 때 확실히 나는 과거보다 많이 '나아졌다'. 더이상 공사 현장을 지날 때마다 간판이 머리 위로 떨어지길 기대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다 보니 상담 선생님도, 외래 진료 선생님도 나에게 많은 것을 권유했다. 결국 이제 이 상태를 떠나 나 홀로 서야 한다는 의미이다. 나는 그 때마다 매번 못 하겠어요, 안 할래요, 정말 못해요, 하면서 울었다. 그게 일 년인지 반 년인지를 넘어서 (이 글은 일 년 전에 쓰기 시작했다.) 이젠 이 년 정도가 된다. 그리고 내가 아무리 해도 동굴에서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으니까, 선생님들은 조금 더 현실을 일깨워 주는 방법을 택했다.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중간에 어떤 일로 - 망가져버린 뇌는 지금 그 사유를 기억해내지 못하고 있다 - 상담을 그만두겠노라 일방적 선언을 했다. 그런 식으로 회피하는 것은 내가 걱정한 수많은 인간관계의 끝과 다를 바 없다는 말을 듣고 용기를 내 상담 선생님을 찾아갔다. '남자친구를 만들거나, 결혼하라는 말은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그 뒤로 선생님들은 더이상 그런 권유를 하지 않았다.
물론 나도 맥락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이 비정상적으로 깊이 관여되어 있는 가정에서 완벽하게 벗어나 나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 그 울타리 안에서 행복을 이어가 보라는 것. 정신과에서 추천하는 방법들 중 하나라는 것도 알고, 그 방법을 통해 심리적 안정을 찾은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너무 잔인하지 않나. 가정의 모든 요소에 상처받으며 자라왔고 지금도 하루가 다르게 말라죽어가는 사람에게 가정을 꾸리라고 하는 것은. 나는 그렇게 할 바에야 바다에 내 몸을 던질 것이다. 명을 끊는 것이 안 된다면 자궁을 제거하는 수가 있더라도 절대 나에게 그런 것이 생기도록 두지 않을 것이다. 시도해 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라고? 그 말이 그렇게 불쾌하게 다가올 수 없다. 트라우마 극복을 위해 직접 경험을 권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가장 큰 공포이자 두려움 그리고 구역질이 날 만큼 꺼리는 것을 굳이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나의 삶 외에 다른 이의 삶이라는 책임을 수반한 것이라면 더욱더.
선생님들의 그 말은 다른 말로 하자면 더이상 도와줄 방법이 없으니 가장 보편적인 방법을 택하라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확실히 우울은 늪이나 습관과 같아서 한 번 빠지면 그 기묘한 편안함에 몸을 맡기게 된다. 아무리 꺼내려 애를 써도 나 스스로 가라앉길 택하니, 15년이 넘도록 지속된 이 짓거리가 이쯤 되면 기질인 것을 인정하고 24시간 나를 보호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으라는 것이다.
상태가 그럭저럭 괜찮았던 옛날에는 이 말이 꼭 나를 병원으로부터 떼어놓으려는, 그러니까 밤이 되면 엄마로부터 떼어놓아 내 방에서 혼자 자게 하는 아홉 살짜리 애를 대하는 것만 같아 불안했다. 지금은 내가 너무 엄살을 부려서 모두가 질린 건가, 하는 생각이다. 실제로 생각했던 것보다 나의 증세는 그다지 심하지 않으니까. 단지 아주 많이 예민한 것뿐. 사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지금의 내가 한심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 달리 할 수 있는 말도 없다. 무언갈 늘 하고 있다 하더라도 여전히 난 제자리걸음이니까. 몇 년 동안 나는 불안정한 프리랜서 - 그나마도 아는 사람들을 통해 간신히 일자리가 들어오는 - 였고 삶을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들을 마주해도 무섭다며 시도조차 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더 어이없는 것은, 내 인생을 떠맡겨서 도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이런 해결법이라면 폭탄 돌리기밖에 되지 않는다.
'나는 도망치듯 친구와 결혼했어. 그래서 아이를 낳고 살고 있어. 뭐가 즐거운지 잘 모르겠어. 그냥 남편도 있고, 아들도 있으니 사는 거지.' 언젠가 아는 언니가 한 말이 깊숙히 박혔다. 잘 모르는 사이에도 그런 말을 하는 언니를 보며 여러 감정이 들었다. 내가 예상하는 내 인생의 가장 잘못된 미래같으면서도, 잘 모르는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을 알면 아들은 얼마나 서운할까, 라는 생각. 그 언니는 아직도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연애나 결혼은 나같은 사람에게 그냥 이벤트일 뿐이다. 진통제 패치 같은 것. 시간이 지나면 약효가 떨어지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향한 나의 애정과 증오는 뿌리가 깊고 복잡하다. 모든 문제는 결국 부모님으로 이어진다. 모든 관계는 비정상적으로 꼬여 있고, 비정상적으로 좁은 공간 안에 구겨들어가 이미 이곳저곳이 터져 있다. 이미 다 터진 박스 안에 들어가 있는 거대 고양잇과 동물 세 마리의 꼴이다. 나잇값도 역할도 못한 채 불편하게 꼬리가 엉겨 있는 사람들. 언젠가 좁은 공간에 모여들고 얽어든 쥐들의 꼬리가 엮여 결국엔 봄이 와도 꼬리의 매듭을 풀지 못한 채 단체로 아사하는 현상에 대해 읽은 적 있다 (rat king). 딱 그 모양새다.
숨이 막힌다. 나는 딸의 역할과 부인의 역할 그리고 남편의 역할과 친구의 역할을 아직까지 구분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다들 제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가족 구성원이 없다. 나이 많은 사람은 나이 많은 사람대로, 어린 사람은 어린 사람대로. 내면의 늙은이와 어린아이가 끊임없이 주도권을 잡고 상황을 수습하려 들고 그 사이에서 나는 병이 든다. 누군가가 가진 내면의 어린아이는 몇십 년동안 미성숙한 채 남아 타인의 머릿속에서 자라야 할 또다른 자아를 억제하고 또 다른 내면의 어린아이를 만들어낸다. 딸을 낳은 순간 내 딸은 절대 이런 인생을 살게 두지 않아야지, 다짐했던 엄마의 결심은 실패했다. 나는 대물림된 예민함과 우울함이 전 생애주기에 걸쳐 어떻게 작용하는지 모두 보아왔고 또 경험했다. 나이가 들면서 그 괴물이 어떻게 자제력을 잃는지도 보았다. 그것을 굳이 반복할 생각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