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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로루디 Apr 04. 2024

어떻게 사람이 변하니.

사람은 변할 수 없어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 점에서 모두는 대체로 같은 위치에 놓여 있으나 한 발짝 더 나아가 그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 나머지 여기저기 굴리고야 마는 사람들도 있다. 진작에 똥인지 된장인지 알아봤으면서도 굳이 찍어먹어봐야 하는 타입. 내가 그렇다. 그리고 이건 정신적 자해다. 


왜 우리는 우리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이러한 자해를 놓지 못할까. 

기대 탓이다. 


그래도 다르겠지 이번엔 달라질거야 병원도 다닌다고 했으니 무언가 나아졌을거야 이쯤 되면 생각 정리도 되었겠지 설마 아직도 그럴 리 있겠어 지난 번만 그런 거야 이번에는 절대 그렇지 않을거야 조금 걸리는 그 부분만 빼면 완벽해 사람은 다 하자가 있기 마련이야 나아질 거라고 했어 나아졌다고 했어 달라진다고 했어 달라졌다고 했어


그리고 또 실망한다. 


개인사이기에 자세한 것은 적지 못하지만 콩가루보다 더 입자가 곱겠다 싶을 정도로 뿔뿔이 흩어진 가족에게서 나는 어떤 반성이나 노력을 기대했던 것 같다. 아니, 지금도 기대한다. 기대하는 중이다. 아무리 가족에 대한 유대감이 없어 소시오패스 사이코패스 같은 근거 없는 소리를 들으며 자라온 나도 이렇게 절연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에 막연한 기대를 품고 있는 것이다. 


이틀 전에는 갑자기 주어진 상황이 너무나 무거워 울었다. 예전에는 울고 싶어도 우는 방법을 몰라서 얼굴만 일그러뜨렸지 눈물 한 방울 나지 않았는데, 그 때보다 좋아진 건지 이번에는 눈물을 쏟으며 엉엉 울 수 있었다. 내가 원한 건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울어서 어느 정도 감정을 덜어내는 것이었는데, 아직 그 단계까지는 힘든 모양인지 간헐적으로 눈물흘리기쇼 정도에 그쳤지만. 어쨌든 실제로 눈물이 나왔다는 것이 다행이다. 


널뛰는 감정과 내몰린 상황으로 남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진 않았기에 한 번 울고 털어낸 다음 의연하게 해야 할 일들을 적었다. 하나씩 지워나가며 어떻게든 해결하려 애를 썼으나, 


마음을 다잡은 줄만 알았던 엄마가 또 다시 나를 못 살게 만들었다. 그것도 퇴근길 버스 안에서. 무슨 그런 말을 어제 막 조용한 채팅방에서 엄마를 꺼냈을 때 하는지. 얼굴 보는 것도 전화로 목소리를 듣는 것도 무서웠다. 정도가 지나친 텍스트 끝에 수신 거절을 눌렀음에도 끊임없이 울려대는 전화는 절망감을 주었다. 엄마는 아직 변하지 않았구나. 


물론 금방 나아지거나 변화하리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상담 선생님들이 늘 하는 말, '남이 바뀌는 것은 불가능하니 그냥 우리가 피해 봅시다' 를 되뇌이고 또 되뇌어도 어쩔 수 없이 실망했고 절망했다. 성향이 달라도 각자 마음을 정리하는 데는 방법이 있고 그것을 존중해야 마땅한 것이다. 더이상 함께 있지 못할 것 같아 뛰쳐나온 곳에서 나는 또 엄마 안에 갇히는 것 같았다. 


나는 왜 가정에서 딸이어야 하고 친구여야 하고 상담사여야 하고 아내여야 하고 남편이어야 하는가. 나는 왜 그 모든 역할을 짊어지고 해내야만 하는가. 지금까지 충분히 했는데, 앞으로 더 해야 하나? 딸 된 도리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가. 최근 상담 선생님이 말한 결정적 사실이 머릿속을 더 뿌옇게 헤집어 놓았다. 여러 가지 해야 할 일을 두고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했던 말들. 루디 씨는 왜 그 집에서 나오지 않죠? 루디 씨는 왜 부모님 사이에 끼어 모든 일을 해결하려고 하죠? 루디 씨는 사실 그렇게 해도 살 만하다고 생각한 것 아닌가요? ... 결국 오갈 데 없이 숨이 막히는 느낌에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고야 말았다. 스트레스가 극치에 도달할 때 찾는 담배는 3년만이었다. 그렇게 집에 들어와 연달아 줄담배를 피웠다. 순식간에 담배 반 갑이 텅 비었다.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아무것도 없다시피 했는데, 안개를 애써 걷으면 나오는 한 질문이 있었다. '나는 왜'. 


이젠 정말 마음 붙일 곳이 없다. 이런 시기에 누군가를 만나면 십중팔구 큰일이 나기 마련이므로 나는 새로운 사람들을 피하고 있다. 그들에게 정을 붙이고 내 이야기를 미친 듯이 쏟아낼까봐. 쏟아내는 이야기를 듣다 듣다 지친 기색을 보이면 미친 사람처럼 화를 낼까봐. 내가 엄마가 될까봐. 슬픔은 나누면 슬픈 사람이 두 명. 슬픔은 나누면 굳이 그래야 할 필요가 있나? 슬픔을 덜어내기 위해 상담 선생님을 찾아가는 건데. 나 자신을 다잡아 보지만 누구나 그렇듯 방심하게 되는 순간이 있으므로, 나는 죽을 때까지 이 기질을 아무에게도 전이하지 않고 꾹꾹 눌러 살다 죽을 생각이다. 


온 몸의 면역 체계가 무너져 내려서 팔자에 없을 것 같은 진료과 중 한 곳을 다니고 있다. 이 곳엔 체중계가 없어 잘 모르겠지만 바지가 흘러내려 더 길어진 걸 보니 살이 더 내린 것 같기도 하다. 액체를 제외한 고체 음식은 역시 아직 힘들다. 약을 먹어도 잠이 안 오고, 한 번 찾아오면 늘 지옥을 맛보여주는 편두통은 슬슬 고개를 든다. 심하게 아프기 시작하면 빛도 소리도 사람의 존재도 모두 의식하게 되어 불 끈 방, 이불 속에 웅크려 잠드는 순간을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없는 편두통. 앞으로 며칠 해야 할 것이 정말 많은데. 처리해야만 하는 것들이 산더미인데. 아, 머리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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