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리비도는 무엇입니까?

감정평가사를 꿈꾸는 사람을 위한 조언

by 감정평가사 정은경

적당히 대충 살면 되지 뭐 하러 힘들게 산 담.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는 것도 귀찮고, 옷을 고르는 것도 옷을 입고 누구를 만나러 가는 일도 귀찮다.

누워서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는 일을 빼고는 아무것도 하기 싫다. 먹고사는 걱정만 없다면 죽을 때까지 이 상태로 누워만 있어도 될 것 같다.


연휴 첫날부터 스물스물 올라오는 귀차니즘은 만연한 무력감으로 번져 가곤 한다. 어서 빨리 던져버리고 싶지만 결국 몸까지 병들게 만들었다. 쿨럭.


정감사 정신 차려! 연휴 전 보류됐던 일들을 어서 빨리 처리해야 해!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고 여유로운 삶을 위해 전문직을 꿈꾸긴 하지만 감정평가사의 삶은 우아하고 평온한 삶과는 거리가 있다.

공부는 못하지만 뻔뻔한 아이였던 정감사는 기억을 왜곡하기도 모질라 자기 최면적인 말을 잘하곤 했다.

‘별다른 사교육 없이도 중학교까지는 공부를 아주 잘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때문에 할 수없이 ~~‘

다시 열공하면 중학교 때처럼 잘할 수 있다는 정감사의 오만방자한 행보는 대학 시절까지 이어졌고, 띵까땡까~룰루랄라의 삶은 졸업할 무렵 찾아온 IMF와 함께 집안이 풍지박살 나면서 깔끔히 종결되었다.


마치 흥행 참패를 면치 못하는 영화의 클리셰처럼 그렇게 철이 들었고, 이제라도 달려가는 앞선 사람을 한방에 따라잡기 위한 인생 역전의 기회를 찾기 시작했다. 일 이년만 고생하고 시험에 합격한다면 고소득이 보장되는 전문가가 될 수 있다니. 몇 개의 계단을 껑충 뛰어오를 수 있을 것 만같은 전문직의 삶은 달콤하게만 느껴졌던 것이다.


중학교 때 공부 엄청 잘했잖아. 열심히 하면 될거야. 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품은 채 감정평가사 시험에 도전장을 던졌다.


변호사, 관세사, 변리사, 세무사, 노무사, 회계사 등등 많은 전문직 중 감정평가사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나뿐만 아니라 감정평가사를 도전하는 사람들의 80% 이상의 답변이 이렇다.


부동산과 관련된 전문직으로 부동산 투자 정보를 활용하여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고, 2차 시험이 3과목*밖에 되지 않아 다른 전문직 시험에 비해 만만해 보인다는 점이다.


*감정평가이론, 감정평가실무, 감정평가법규


정감사는 다행히 시험에 합격하고 20년을 평가업을 하고 있지만 ‘학원에서 도서관에서 신림동에서’ 스쳐갔던 수험생들 중 합격한 사람은 많지 않다.


1차 시험은 객관식으로 평균 60점만 넘으면 되므로 열심히 하면 붙을 수 있다.


문제는 2차 시험!

해마다 2차 시험 합격 인원은 약 200명 정도. 정감사가 합격했던 2006년도에는 경쟁률이 10대 1정도. 지금의 응시생은 더 많다고 하니 경쟁률이 만만치 않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킬러 문항에 대한 순발력의 필살기가 요구되는 ‘감정평가 실무’, 배스킨라빈스의 아이스크림 종류마냥 ‘감정평가이론’의 범위도 무궁무진, 행정법을 기본으로 하는 법규는 사법고시 못지않은 깊은 지식을 요하기도 한다.


공부하기가 어렵다가 아닌 ‘합격하기가 어렵다’


합격한다고 고소득의 안정적인 직업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감정평가시장 취업 시장은 넓지 않고 연차에 따라 수행할 수 있는 업무 범위도 정해져 있다.


높은 소득을 얻기 위해선 본연의 전문성을 고양하기보다는 영업 능력을 우선으로 하는 일에 몰두할 수밖에 없기도 하다. 술 마시고, 영업을 위한 체육 활동,,지나치면 자신의 일에 회의가 들기도 한다.


타인의 재산권의 가치를 감정 평가하는 행위다 보니 담보, 경매, 보상 등 여러 목적으로 사용된 감정평가가 문제가 생기는 경우 손해배상 및 구상권의 책임도 지어야 한다.


감정평가를 위한 현장 조사 시 발생하는 예측치 못한 위험도 많다.


* 개에게 잘 물림. 여자감정평가사의 경우 강아지를 자극하는 색깔의 스타킹은 입지 마시오.

* 운전하다 밭고랑에도 잘빠짐. 십 오 년 정도 경력이 쌓이는 시점부터 덜 빠짐

* 시골 동네 바보 형님들 조심. 리별로 상태 안 좋으신 분 한분씩 있음

*공장 감정평가 시 기계에 넥타이 빨려 들어간 괴담, 머리카락 빨려 들어간 괴담은 항시 듣고 삼. 여성분들 공장 감정평가 하러 갈 때는 머리 쫌 매고 가세요.

*조폭 같은 브로커에게 걸리면 노상 시달림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오래된 일이긴 하지만 부녀자 연쇄 살인마 강호순의 부동산 감정 평가를 수행했던 일화가 있다.


H공기업 재직 시절 들었던 이야기로 살인마 강호순이 은행에 대출을 받기 위해 담보 감정평가를 의뢰하고, 감정 평가를 위해 현장 조사 시 강호순 살인마와 임장까지 한 여자 직원이 있었다고 한다.

현장에서 만났을 때 ‘강호순’은 신사적이었고 평가 좀 잘해주세요 하는 당부 인사까지 살갑게 하였다고 한다. 강호순이 머지않아 채포 되어 뉴스에 대서특필되고 나서야 살인마의 부동산을 감정평가 한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다행히 평가를 수행한 여직원은 무탈하였지만 ‘강호순 담보물’이라는 감정서 표지를 보고 헛소문이 아님을 재확인하고 나서 여러 차례 경악했던 기억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주변에서 감정평가사 되려는 시험에 도전해 보고 싶다면 일단 만류한다.


프로이트가 최초로 언급한 리비도. 리비도(Libido) 일반적으로는 개인이 개인적 발달이나 개성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자생적인 정신적 에너지를 의미한다고 한다.


내재적으로 갖고 있는 정신적인 에너지를 가리키지만 칼 융은 이를 좀 더 확장하여 역동성을 갖는 생명의 에너지로 해석하기도 하였다. 칼 융은 '리비도'가 상실된 인간은 우울증에 빠진다고도 했다.


남에게는 만류하지만 나는 걸어왔던 감정평가의 삶.

먹고사는 문제를 넘어 열정이 없었다면 지속할 수 없었던 직업이었기도 했다. 감정평가사로서의 삶의 동력은 분명 나의 리비도였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만약 감정평가사의 삶을 꿈꾸고 있다면

인생 전반을 통틀어 그만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 가치가 있는 일인지

나의 적성에 맞는 일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래도 좋다면 리비도. 열정을 쏟아부우세요!


그리고 건투를 빕니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