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 살 아들과 그의 엄마가 주고받은 편지집 [사랑하는 안드레아]의 첫 구절이다. 한동안 책장 한 켠에 잠들어 있던 책을 사춘기 아들들을 키우며 다시 읽으니 전과 비할 수 없이 크게 와 닿는다. 편지로 소통하는 모자 사이라니 얼마나 멋진가! 책을 덮을 즈음 욕심이 생겼다.
나도 편지를 통해 열세 살 사람을 알고 싶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편지를 쓴 적이 언제였던가? 그에 비해 아이들에게 받은 편지는 꽤 많지만, 대부분 어버이날 숙제 또는 반성문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편지라는 것과 아예 담을 쌓고 지낸 것은 아니었다.
특히 첫째가 써 준 색종이 편지는 생각지도 못한 감동이었다. “혼자 보라” 며 접고 또 접은 색종이를 펼치니 그 위 씌어 있는 편지라니! “오다 주웠다.”며 꽃다발을 건네는 드라마 속 남자주인공 저리가라 였다.
2년 전 호주여행 때 쓴 편지는 어떠한가. 여행 중반, 우리는 썬샤인 코스트 숙소 근처 로컬우체국에 들러 한국에 도착해 있을 ‘나’에게 편지를 썼다. 귀국하고도 한참 지난 어느 날, 편지를 받은 아이들의 상기된 표정이 어제일처럼 또렷하다. 그래, 우리도 한 번 해보자! 룽잉타이와 안드레아가 그랬던 것처럼 편지로 이야기를 나눠 보자.
어떻게 엄마와 소통할 수 있죠? 그게 가능한 일인가요?
라는 독자들의 질문에 안드레아가 답하곤 했다. “원고료를 벌거든요.”
지금까지도 안드레아가 애초에 왜 이 일을 수락했는지 모르겠다. 속으로는 여전히 불가사의하게 여겨지지만, 어쨌든 놀랍게도 3년 내내 잘 써왔다. 우리 사이에는 30년이라는 나이 차이가 있고, 또 각자 살고 있는 나라가 다를 뿐 아니라 그 사이에는 동서양의 문화차이가 가로놓여 있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시도를 했다. 나는 노력했고, 안드레아 역시 같은 노력으로 보답해주었다. 나는 열여덟 살 사람의 삶을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안드레아 역시 처음으로 자신의 엄마를 알게 되었다.
- 사랑하는 안드레아 중
쉽지만은 않은 과정이리라. 그들은 원고료를 받고 마감에 쫓기며 어떻게 해서든 써내려 가야하는 편지였다. 그에 비해 갓 열 살이 넘은 우리 아이들. 게다가 사춘기인 아들들이 아무 보상 없는 이 과정을 과연 언제까지, 얼마나 제대로 함께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하지만 진심은 통하는 법! 내가 진심을 담아 글을 쓴다면 아이들도 진심으로 답하리라. 나의 아이들을 알아가는 과정이 또한 나를 돌아보는 거울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여전히 아물지 못해 아우성치는, 내 어릴 적 상처들도 어쩌면 함께 치유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