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는 열 딸 안 부럽겠어

아들 둘 엄마입니다만, # 3

by 오이야

‘자연안에서 함께 숨쉬고 살아가는 모든 생명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어린이’.

아이들이 졸업한 유치원의 모토이다. 아들들은 유치원에 등원해 매일 신나게 놀고 왔다. 화요일엔 산으로, 금요일엔 공원으로, 눈이 내린 날엔 스키바지를 입고, 비가 오는 날엔 우산을 쓰고 말이다. 4학년인 둘째는 지금도 춘덕산에 가면 “저 언덕에서 친구가 넘어졌었어요”, “여기 동그랗게 앉아서 물 마시고 쉬었는데” 라며 유치원 때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해 주곤 한다. ㄱ,ㄴ,ㄷ을 일찍 깨치기보다 개나리, 노린재, 도토리를 가까이서 관찰하고 자연의 경이로움을 몸으로 느끼며 크는 아이를 원했던 내게 더없이 좋은 기관이었다.


둘째와 로리는 일곱 살 같은 반 친구였다. 졸업 후 자연스레 멀어진 다른 친구들과 달리 한 동네 같은 초등학교에 입학한 둘은 꾸준히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아이들은 그때도 지금도 그림 그리기와 자연에서 뛰어놀기를 가장 좋아한다. 캠핑 고수인 로리네 집에 숟가락만 얹으며 시작된 캠핑은 아이들에게도 아빠, 엄마에게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한 해는 평창으로, 다음 해는 속초로, 그렇게 함께 한 가족여행도 여러 번이었다. 첫째의 까칠한 사춘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까똑!’ 작년 이맘 때쯤 로리엄마가 사진을 한 장 보내줬다. 아이들이 로리네 집에 놀러갔다 오는길, 배웅해주며 찍은 사진 속에 우리 아이들 뒷모습이 담겨있다. 열 살, 열 두 살 형제가 나란히 손을 잡은 채 걷고 있는.


- 로리엄마: 형제가 이렇게 다정할 수 없어.
- 아들 둘 엄마: 겁나게 싸워도 다행히 친구처럼 커가고 있는 거 같아. 딸 없는 아쉬움 이렇게 달래야지.
- 로리엄마: 손잡고 다니는 형제, 열 딸 안 부럽겠어.


한 뼘이나 키 차이가 날 때도 둘은 종종 “쌍둥이에요?” 소리를 들었다. 그만큼 서열관계 라기보다는 친구 같은 사이였다. 아이들은 그동안 심심할 틈도, 친구 때문에 고민해 본 적도 없었다. 시도 때도 없이 다투긴 해도 놀 때는 참 잘 놀았다. 레고, 보드게임, 딱지치기, 종이접기 하다못해 땅바닥에 덩그러니 돌멩이 뿐이라도 노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바닥에 그림을 그리고 개미를 관찰하고 돌멩이를 갈며 형제는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시간 가는 줄 모르며 놀았다.

첫째가 바지 위에 팬티를 입고 나오면 둘째는 머리에 팬티를 뒤집어썼다. 첫째가 양말을 짝짝이로 신으면 둘째는 신발을 짝짝이로 신었다. 얼마 전 둘째가 방문에 <OO이의 그림연구소>라는 팻말을 붙이자 첫째는 <OO이의 연구소 : 노크 꼭!> 이라 붙였다. 그 아래 곁들인 ‘친구는 Free Pass.’ 문구가 나에게 말한다. ‘엄마, 이제 난 친구가 더 좋아요. 이해하고 인정해주세요.’ 라고.


동생이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때부터 손을 잡고 다니던 형제에게 최근 변화가 시작되었다. “손은 놓고 갈까?” 자전거에서 내려 자연스레 형 손을 잡는 둘째에게 첫째가 조용히 말했다. 하긴 수염 거뭇거뭇하게 난 형제가 손 잡고 다니는 모습이란 내가 상상해 보아도 영 깨름직하다. ‘열 딸 부럽지 않던, 손잡고 다니는 형제’의 모습은 이제 사진 속에서나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내게도 말할 것이다. “엄마, 손은 놓고 갈까요?” 그러니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가.


아이의 손을 만질 수 있는,

어깨를 안을 수 있는 이 순간을 실컷 즐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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