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1회 친정집 화초 급수부터 틈나는 대로 병원으로 간식, 빨래, 약 심부름까지. 가까이 사는 자식(딸이면 더더욱)이 자잘한 일을 도맡을 수밖에 없다.
"그럼. 딸이 해야지, 어쩌겠어."
"딸이 반찬도 안 해다 줘요?"
불편한 시선과 맏딸이란 책임감이 나를 옥죄인다. 주말 오후, 필요한 것들을 챙겨 어머니께 가져다 드리고 돌아오는 길. 마음 한켠 불쑥 심통이 난다. 두 평 남짓 자동차 안은 잠시나마 오롯이 나만의 공간. 정지 신호를 받고 등받이 시트에 몸을 폭 기대니 땅이 꺼져라 한숨이 나온다.에효(孝)… 자, 오늘의 숙제는 마쳤고 이제 전쟁터로 돌아가 볼까. 휴대폰을 꺼내니 부재중 전화가 세 통이나 와 있다. 하아... 안 봐도 비디오다. ‘위이잉’ 그사이 다시 진동이 울리고, 마지못해 전화를 받았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으악!!! 엄마, 형이 과자 혼자 다 먹었어요! 꺼이꺼이, 딱 한 개 남은 건데. 꺼이꺼이, 그거 내 거라고요. 저리 가, 엄마랑 통화 중이잖아!!!!!”
울부짖는 둘째의 목소리.
첫째가 딱 하나 남은 과자를 홀랑 먹어버렸나 보다.
“내 껀?”
하고 둘째가 물었을 테고,
“이게 마지막인데?”
첫째는 한껏 승자의 미소를 지어 보였겠지.
열 받은 둘째는 아빠에게 달려갔을 테고, 아빠는 강 건너 불구경했을 것이다. 과자 하나로 싸우는 아이들보다 나 몰라라 하고 있는 남편에게 더 화가 난다. 통화를 길게 해 봐야 소용없다. “집에 곧 도착하니 만나서 얘기하자” 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돌아와 머리 위 찬장을 열어보니 과자가 한 박스 더 있다. 다행이다! 1+1 행사 때 사놓았나 보다.
“여기 한 박스 더 있었네. 자, 실컷 먹어.”
라며 둘째를 불렀다.
“괜찮아요, 이제 별로 안 먹고 싶어요.”
시큰둥한 표정으로 둘째가 돌아선다.
만화의 한 장면처럼 머리 위로 영혼이 휘잉 하고 빠져나간다. 녀석은 그저 형이 남은 과자 하나를 먹어버렸다는데 화가 났던 것이다. 내가 너희를 굶기며 키웠냐, 그놈의 초콜릿 과자에 금가루라도 뿌려놨냐. 대체 왜들 그러는 게냐.
생각해보면 아들 둘 형제라 좋은 점도 많았다. 수영할 때, 그림 그릴 때, 캠핑 갈 때, 친정 갈 때. 특히 내가 아프거나 일이 생겨 다른 사람 손에 아이 둘을 맡겨야 할 때. 형제는 서로 의지하고, 함께 노는 친구 같은 사이였다. 그러나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들던 작년, 코로나가 터지고 서로 붙어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싸우는 빈도가 급격히 늘었다. 장녀로 살아온 세월이 너무 버거워서일까. 나는 아이들에게 ‘형이니까’, ‘동생이니까’라는 말을 절대 하지 않는다. 서열을 강조하지 않고 사탕 하나, 껌 하나도 똑같이 나누어 주며 공평하게 대하려 노력했건만. 아이들은 어떻게든 불리한 점, 불공평한 점들을 찾아내고야 만다.
둘째가 첫째만큼 몸집이 커지며 싸움도 거칠어졌다. 게다가 두 살 터울임에도 동생이 더 잘하는 것들이 생겨났다. 그림대회에 같이 나갔는데 동생만 상을 받는다거나, 한창 좋아하는 태블릿 게임을 동생이 더 잘한다거나 하는 경우가 생기며 형에겐 동생이 보호해야 할 약자가 아니라 라이벌로 느껴졌을 것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 어찌나 깐죽거리며 동생 약을 올리는지, 나 같아도 주먹이 날아갔을 게다.
말로도 힘으로도 형을 이길 수가 없는 둘째는 악에 바쳐 소리 지르고 우는 방법을 택했다. 그러던 둘째가 얼마 전부터 형에게 몸을 날리기 시작했다. 그래 봤자 형을 몸싸움으로 이기기엔 역부족이다. 몸을 던졌다가 이내 다시 ‘소리 질러 고막 찌르기’ 전법으로 태세 전환, 집안을 초토화시킨다. 우리 집 아래 8층에는 고등학생이 산다. 얼른 움직여야 한다.
첫째, 화장실 문 닫기. 둘째, 복도 쪽 창문 닫기. 셋째, 베란다 창문 닫기. 마지막, 뚜껑 열리지 않게 단단히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