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엄마는 어디로 갔을까

아들 둘 엄마입니다만, # 5

by 오이야

“어머머, 아들 둘 키우는 엄마 같지 않으세요.”
아이들이 유치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종종 들었던 말이다. 하지만,


“그만해!”
“시끄러워!”
“태블릿 꺼라!”

최근 나의 말투는 8할이 명령형이다.


아들 둘 키우는 엄마 같지 않게, 격하게 여성스럽던 그분은 어디 가신 걸까. 몇 년 사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무엇이 나를,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나는 아이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길 원한다. 권위를 포기하고 소통을 택했으니 아이들이 말을 안 듣는 것, 고집을 부리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까.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예의 바른 아들로 키우는 것은 나의 욕심인가. 친근함과 권위는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할 수 없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너무 부족해서, 혹은 지나치게 이상적이어서 인가.


직장인 10년 차쯤 되면 과장, 차장 직함도 달고 제법 요령과 여유가 생길 시기이다. 하지만 양육은 어떠한가. 아들 둘 키우기 13년 차인 나는 여전히 일희일비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천국과 지옥을 오가고 있다. 남동생이 둘인 환경 속에서 이미 20년 넘게 단련 아닌 단련을 하지 않았던가? 아들들이란 어쩜 이리 새털처럼 가벼우면서 콘크리트 벽처럼 꽉 막힌 존재인 것인가.


나는 3남매 중 맏딸이다. 남동생만 둘인 나는 언니나 여동생 있는 친구들이 늘 부러웠다. 소풍 때면 언니에게 빌린 최신 유행 스타일의 옷으로 한껏 뽐내고 오는 친구들. 입이 떡 벌어지는 각양각색의 인형, 예쁜 옷, 소품들로 가득한 집. 언니와 어제 머리끄덩이 잡고 싸웠다며 미친년 소리를 내뱉을 때조차 ‘그래도 넌 언니가 있어서 참 좋겠다.’ 되뇌었다.


나에게 남동생들이란, 예상치 못한 장대비 속 청바지 아랫단 같았다. 맑고 쾌청했던 하늘에 갑자기 퍼붓는 빗줄기도 당혹스러운데 푹 젖어 걸리적거리는 바짓단이라니. 불쾌하기 짝이 없다. 그뿐인가. 담벼락엔 왜 그렇게 자꾸 기어올라가는지, 한 번 쓴 물건은 제자리에 두는 법이 없는지 이해불가 종족들. 책상 서랍 깊숙이 성인 잡지를 숨겨두는 변태들. 툭하면 깨지고 찢기는 사고뭉치 파이터들. (원래는 다 내 것이었을) 콩 한쪽도 나눠 먹어야 하는 일생일대의 라이벌. 하지만 그들은 그들대로 불만이 많았다. 누나는 왜 자꾸 엄마한테 고자질하느냐고, 왜 저렇게 우리에게 짜증을 내느냐고 말이다.


그런 내가 두 아들의 엄마가 되었다. 자매를 부러워하던 소녀는 친구 같은 딸은커녕 시커먼 아들만 둘을 낳았다. 그리고 그 아들들은 어느덧 열세 살, 열한 살 사춘기를 맞았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마흔다섯의 나는 슬슬 갱년기에 접어들고 있다. 아, 옛날이여. 스무 살 꽃다운 나이에 지금의 이런 나를 상상이나 했을까. 거울을 들여다보니 내 앞엔 낯선 이가 마주하고 있다. 늘어진 뱃살, 처진 가슴, 퀭하니 생기 없는 얼굴.


그래, 거울이란 이에 낀 고춧가루 뺄 때나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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