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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야 Sep 09. 2021

고양이를 보았네

feat. 앤서니 브라운


더 많이 사진 찍어둘걸,

더 자세히 기록해 둘걸.


아이들이 제법 크고 글을 쓰기 시작한 후 드는 생각이다.

아이만이 할 수 있는 말, 행동 그리고 생각들. 불쑥 튀어나왔다 쏙 들어가 버리는 그들만의 기발함과 싱그러움. 깔깔대고 흘려보낸 그 어여쁜 조각들이 그리워진다. 날아가지 않게 연필로 꾹꾹 눌러 놓을걸. 흩어지지 않게 자판으로 탁탁 막아 놓을걸.


문득 '영재발굴단' 유럽 특집 편이 기억났다.

언어 영재 노은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앤서니 브라운', 그를 만나기 위해 제작진이 영국으로 직접 찾아갔더랬다. 다시 한번 보고 싶어서 2017년 9월 방영분을 찾아 다운로드하여 보았다. 방영 당시 이미 일흔이 넘었던 앤서니 브라운. 그가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아이가 가져온 스케치북을 보고, 아이의 생각을 귀담아 들어주고, 함께 박장대소했다. 그리고 스컹크를 소재로 만든 아이의 이야기에 아래와 같은 코멘트를 달아주었다.



작업실 구경 후 앤서니 브라운과 아이들은 함께 동네 산책에 나선다. 그리고 나무줄기에서 '물고기'도 발견하고, '새'도 찾아낸다. 이에 질세라 아이도 '부엉이 집'을 짚어낸다. 그는 아이에게 말한다.

"그래 맞아. 너의 상상력을 이용해서

 아주 자세히 보면 돼. 여기 온 세상이 있단다."      

역시 좋은 사람에게서 좋은 작품이 나오는구나. 동화는 정말 그런 것 같다.      



"얘들아! 우리도 고양이 찾은 적 있잖아"


2017년 당시, 아이들과 함께 이 방송을 보고 있었다. 방송을 보고는 우리가 나무에서 발견한 고양이 사진을 꺼내봤었다. 독일 여행 중 노이슈반슈타인 성 나무줄기에서 발견한 고양이였다.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디즈니 성의 모티브가 된 곳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 성의 의미나 유명세에는 당연히 관심이 없었다. 흙더미가 보이면 주저앉아 흙을 파고, 좁은 탑의 더 좁은 계단이 보이면 일단 올라가보는, 놀이터 같은 곳이었다. 


"나무에 뭐가 숨겨져 있나 볼까?" 조금더 머물고 싶은 마음에 아이들에게 숙제를 내 주었다. 신기하게도 나무껍질에 고양이 한 마리가 보였다. 누가 새겨놓은 듯 완벽한 모습이었다. 고양이는 아이들의 시선을 빼앗았고 아이들은 또 다른 무언가를 찾는데 한참을 집중했다. 덕분에 우리는 노인슈반스타인 성에 조금더 머물 수 있었다.


"그래, 맞아. 온 세상이 여기 있단다.

 너희들이 하는 걸 즐겼으면 좋겠어."    



디즈니 성의 모티브가 된 노이슈반슈타인 성


아이여서, 아들이어서 가능했던 추억들이 떠오른다.

머리에 팬티를 뒤집어 쓰고. 물안경을 낀 채 자전거를 타고. 코 밑에 김을 붙이고 보헤미안 랩소디를 부르던 그 모습들이 생각난다. 뜬금없고 어이없지만 박장대소했던 그 기억들을 더듬어 기록해보려한다. 더 잊혀지기 전에, 다 날아가기 전에 말이다. 중2 중3... 아들들의 사춘기로 씩씩댈 나를 조금 일찍 위로하고 격려하며 Cheer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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