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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야 Sep 15. 2021

초2 아들의 '나의생활계표'

빨리 말하면 문제없는!



빵빵 터지는

아들 키우는 재미


2017년 12월, 초2 아들이 겨울방학 계획표를 만들었다. 색종이와 한지를 접고 오리고 붙이며 한참을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아들이 가져온 생활계획표는 알록달록 무지개 빛이었다. 그런데 월화수목금 온통 학원? 하루 한 번 오후 4시에 가서 5시에 돌아오는 그 합기도 학원? 당시 아이는 평일엔 합기도, 토요일엔 미술 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토요일 미술학원이 빠졌네."라 말하니 "아, 맞다!" 란다. 토요일 학원까지 썼다면 내내 학원만 다니다 방학 끝낼 모양새이다. '일요일 여행은 뭐지? 주말마다 여행을 가고 싶다는 건가?' 궁금해 물어보니 수영을 잘 못 썼단다. 당시 아이는 아빠와 일요일마다 수영장을 다니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수영''여행'으로 잘 못 쓸 수 있는 것인가.


심지어 제목은 나의 생활계표?

뭐, 듣기에는 별 문제없는 그저 빨리 말한 생활계획표.

생활계획표, 생활계획표 , 생활계획표, 생활계표...


"제목이 뭔가 이상한데?" 라 말했는데

한참을 들여다보고도 도통 모르겠다는 아이.


"천천히 소리 내어 읽어볼까?" 하니

그제야 빵 하고 웃음을 터트린다.



생활계표 하나에도

빈 틈이 아주 빵빵 터지는

이 아들 키우는 재미! 핫!




아이의 방학이다.

내 방학이 아니다.


D-30! 아이들 방학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오면 마음이 바빠졌다. 인기 있는 방학특강은 예약시스템이 오픈되자마자 마감 또는 경쟁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방학 내 돌아볼 박물관과 미술관, 각종 체험을 검색해 한 달 일정을 미리 세팅해 두었다. 

방학 동안 체험한 내용들은 일목요연하게 정리 후 입장권을 붙이고, 아이 사진을 출력하고, 관련 활동지를 한데 모아두었다. 그리고 개학날이면 방학숙제와 함께 <OO이의 방학생활>이라 써붙인 파일첩을 아이 가방에 들려 보냈다. "선생님이 잘 했데요." 아이는 선생님께 받은 선물이라며 필통이나 사탕가져오기도 했다. 내가 받은 상장인 양 기뻤다. 이만큼 나는 아이에게 신경 쓰는 엄마입니다 광고하고 싶었나 보다.


어설퍼도 아이가 직접 쓰고 붙인 체험 보고서라면 좋았겠건만. 즐겁게 체험하고 끝냈으면 좋았겠건만. 엄마가 만들어 준 체험 보고서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아이가 둘이라  다행이다. 아이가 하나였다면 난 방학 때마다 그 쓸데없는 수고를 반복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이도 크고 나도 컸다. 마흔 중반의 나는 그렇게 할 체력도 안 되거니와 이제야 정신을 좀 차린 것 같다. 아이들은 이제 방학숙제를 못하면 한대로 학교에 간다. 느긋한 첫째와 달리 둘째는 울고 불고 난리가 난다. "내일 개학인데 어떻게 해.", "글쓰기를 언제 다 하란 말이야, 꺼이꺼이" 지난달 여름방학이 끝나던 날 둘째는 한 시간 가까이 울었다. 아이가 진정하고 "엄마, 좀 도와주세요" 말할 때까지 모른 체 했다. 아이가 울고 떼쓰면 참아내기가 힘들다. 얼른 도와주어 그 울음을, 그 짜증을 그치게 해 줘야 할 것만 같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어설프고 부족해도 아이 스스로 해 나가야 할 몫이라는 것을.


아이의 방학이다. 내 방학이 아니다.

아이의 인생이다. 내 인생이 아니다.




Photo by Cathryn Lavery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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