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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야 Oct 03. 2021

누가 초침 소리를 내었는가?

6학년인지 6세인지 헷갈리는


알 수 없는 아들의 세계


모바일게임, 모바일게임,

모바일게임!!! 됐냐???

나문희가 외치던 호박고구마보다 나를 더 목 막히게 하는 아들의 세계가 있으니. 웬만한 것들은 다 이해하겠는데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하나. 그것은 바로 10대 아들들의 게임 사랑이다. 기-승-전-게임! 게임이 세상 최고인 아이들. 들의 눈이 가장 반짝이는 순간은 당연히 게임하는 시간이다. 그렇지그 못지않게 진심인 순간이 종종 다. 레고에도 흙놀이에도 시들해진 아이들이지만, 클레이 만질 때만큼은 여전히 진지하다. 이 아이 지금 6학년인가? 6세인가? 헷갈릴 만큼.


"하하하! 이게 뭐야?"

무심코 벽시계를 보고는 빵! 터졌다. 방금 전까지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클레이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견된 것이다. (신혼때 산 벽시계는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공에 맞아 바닥에 떨어진 후 유리없이 바늘을 드러낸채 거실 벽에 걸려있었다.)


"뭘 만든 거야?"

벽시계를 보고 한참을 웃다 물으니 

초록색은 '헐크', 노란색은 '궁예' 란다.


출처: 나무 위키, 드라마 태조왕건 중

가히 굴욕적이다. 괴력의 녹색 거인 '헐크', 그리고 기구한 운명의 영웅 혹은 악당 '궁예'가 벽시계에 꼼짝없이 붙들려 있는 신세라니. 오후 3시 지지부진한 시간. 나의 몸 시계는 하루를 시작한 지 48시간은 된 것 같은데 벽 위의 시계는 참으로 더디 가고 있었다. 헐크와 궁예가 큰 웃음을 선사하기 전, 나는 아이들과의 시간을 겨우 견뎌내는 중이었다.




지나고 보면 소중한 시간


일어날 시간, 안 일어난 아이 깨울 시간, 아침 먹을 준비 시간, 아들1 등교 시간, 줌수업하는 아들2 잘하나 종종 체크하며 '브런치' 하는 시간, 점심식사 시간, 등교한 아이 하교할 시간, 아이들 게임 시간(나만의 꿀휴식 시간), 주 1회 도서관 또는 영어 재능기부 시간, 저녁준비 시간, 남편의 퇴근 시간, 저녁식사 시간, 산책 시간, 빠진 공부 없나 체크하는 시간, 낮에 놀기만 한 아이의 공부 닦달하는 시간, 아이들 취침 시간, 그리고 마침내 나만의 시간(그러나 대부분 함께 잠들어 버리는 시간)...


정신없이 복닥대던 내 시곗바늘이

예상치 못한 장면에 그대로 멈춰 섰다.

아이고 귀여운 녀석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꼬.


나는 오늘도 하루 수십 번 벽시계와 휴대폰 시계를 번갈아 보며 쫓기듯 아이들을 채근하고 헉헉대며 움직이고 있었다. 오전의 글쓰기 시간은 참 빨리도 지나간다. 하지만 그 외의 시간은 대체로 매우 더디다. 어쩌면 헐크와 궁예, 그들이 내 시간을 꽉 붙잡아 놓았는지 모르겠다. 느리게만 가는 아이들과의 시간을 겨우 버텨내는 내게, 정신 차리라고! 이 소중한 시간을 허투루  흘려보내말라고 말이다.


"누가 초침 소리를 내었는가?"

궁예가 시계를 혼쭐내고 있었다.


"힘내, 정신 차리라고!"

헐크가 온 힘을 다해 시곗바늘을 붙들고 있었다.




글로 꼭 붙잡아 놓으련다.


얼마나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던가.

그럼에도 딱히 기억날 것도, 특별할 것도 없는 하루.

하지만 아이들의 유머 덕분에 지난했던 하루가 사랑스러운 기억으로 채워진다. 옥수수알처럼 단단 나를 빵! 터트려 보들보들 가벼운 팝콘으로 세상을 날게 만든다. 앨런 버딕의 <시간은 왜 흘러가는가>에 따르면 우리는 시간 속을 살아가는 게 아니라 우리가 그 안에서 어떻게 참여할지 결정한다고 한다. 우리의 감정에 따라 시간은 날아가기도 하고, 달려가기도 하고, 기어가기도 하니 말이다. 한없이 더디게 가지만 돌아보면 찰나였던 순간들. 그 순간들을 사진으로, 글로 꼭 붙잡아 놓으련다.

오늘도 이렇게 하루가 간다.


우리는 시간 속을 살아가는 게 아니라 우리가 그 안에서 어떻게 참여할지 결정한다. 우리가 시간을 계획하고 계산하고 안배할 수 있지만, 시간의 성쇠를 최종적으로 결정짓는 것은 우리의 감정이다. 우리의 감정에 따라 시간은 날아가기도 하고, 달려가기도 하고, 기어가기도 한다. 감정이 더 많이 개입될수록 우리가 인지하는 시간의 속도가 느려지고, 감정이 충만한 순간들이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 혹은 동질감을 느끼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일 때는 그보다 시간이 더 늘어난다. p181

삶의 이 시점(마흔)은 마치 긴 날숨처럼 느껴진다. 때로는 너무 지치고 감당하기 어렵다고 느끼기도 한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내 삶에 그 어느 때보다도 할 일이 많은 것 같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나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십 대에 접어든 지금, 앞으로 다가올 일들이 여전히 걱정이고 절대 다시 오지 않을 날들에 슬픔을 느낄지라도 우리는 지금 이대로를 감사하게 여길 거라 생각한다. p16

- 메건 다음 외 <해볼건 다 해봤고, 이제 나로 삽니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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